“HR은 정말 권력 부서인가요?”
조직에서 HR로 일하다 보면 가끔 마주하는 멘트가 있다. “권력 있는 부서에 계시네요.” HR은 과연 권력을 가진 부서인가? 채용을 결정하고 평가 등급을 나누고 보상을 설계하는 위치에 있으니 그렇게 보일 법도 하다. 실제로 인사 발령 한 줄, 평가 점수 소수점 하나가 누군가의 커리어를 가른다. 그렇다면 HR은 힘을 쥔 자리인가. 아니면 단지 제도를 운용하는 기능인가. 이 질문을 붙들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권력이 무엇인지로 시선이 옮겨간다. 권력은 단순히 직위나 직급에 따라 행사되는가, 아니면 조직의 언어와 규정, 평가표의 문장 속에도 스며들어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미셸 푸코의 사유가 개입한다. 그는 권력을 누가 소유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느냐의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푸코의 첫 번째 축은 권력-지식이다. 그는 권력과 지식을 분리하지 않았다. 지식은 세계를 설명하는 동시에 세계를 구성한다. 어떤 현상을 이름 붙이는 순간 그것은 분류 체계 안에 들어간다. 미치광이, 범죄자, 동성애자, 비정상이라는 말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특정 시대가 만들어낸 분류다. HR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역량 모델을 만든다. 문제 해결력, 실행력, 전략적 사고, 협업 능력 같은 항목을 정의한다. 그리고 그 정의에 따라 평가하고 보상한다. 이때 역량은 사람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특정 범주로 재편한다. 예를 들어 ‘주도성’을 핵심 역량으로 설정한 조직에서는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은 소극적으로 해석되기 쉽다.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결과가 수치화되지 않는 역할은 낮게 평가된다. 우리는 지표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했다고 믿지만, 그 지표가 허용하는 인간형의 범위는 이미 정해져 있다. 권력-지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HR은 사람을 기술하면서 동시에 어떤 사람이 조직에 어울리는지를 생산한다.
두 번째는 규율권력이다. 푸코는 근대 사회에서 권력이 공개 처벌의 형태에서 벗어나 일상적 훈련과 감시로 이동했다고 보았다. 학교의 시간표, 군대의 훈련, 병원의 기록, 감옥의 감시는 사람의 몸과 시간을 세밀하게 조정한다. 중요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규범의 내면화다. HR에서 가장 대표적인 장치가 성과관리 체계다. 연초 목표를 설정하고 분기별로 점검하고 연말에 등급을 부여한다. KPI, OKR, MBO 같은 시스템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다. 그러나 이 구조의 핵심은 지속적인 관찰과 기록이다. 구성원은 자신이 평가되고 있음을 안다. 그 인식은 행동을 바꾼다. 상사가 자리를 비워도 기준은 남는다. 사람은 점점 자기 자신을 감독한다. 특히 최근에는 다양한 IT 시스템이 세밀한 기록을 남긴다. 누가 몇 시에 로그인했고 얼마나 많은 메시지를 보냈는지 추적 가능하다. 직접 통제하지 않아도 사람은 스스로를 통제한다. 규율권력은 조용하지만 지속적이다. 성과평가 시즌에 느껴지는 긴장감은 단지 보상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수치로 환원되는 순간을 경험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생명정치다. 푸코는 18세기 이후 권력이 개인을 넘어 인구 전체를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통계와 인구조사, 출생률과 사망률, 공중위생 정책은 모두 인구를 최적화하려는 시도였다. 기업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과거의 인사관리가 채용과 평가, 보상 중심이었다면 오늘날은 직원 경험과 웰빙, 몰입과 정서 관리까지 포함한다. 조직은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심리 상담을 지원하고 사내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한다. 직원 참여도 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번아웃 지수를 측정한다. 표면적으로는 배려다. 실제로 많은 제도가 구성원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조직은 더 넓은 범위의 삶을 관리 대상으로 삼는다. 결근율과 이직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감정과 태도까지 데이터화한다. 재택근무 정책 역시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효율성과 비용 구조를 계산한 결과다. 생명정치는 억압이 아니라 관리와 최적화의 언어로 다가온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개인의 삶이 조직의 목적에 맞게 조율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통치성이다. 푸코는 현대 권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다스리도록 만든다고 보았다. 자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강조된다. 그러나 그 자유는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된다. 오늘날 조직은 자율과 성장을 이야기한다. 커리어는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학습하고 스스로를 브랜딩 하며 경쟁력을 유지하라고 요구한다. 나는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면서 ‘주도적 경력관리’를 강조해 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메시지는 또 다른 규범이다. 구성원은 상사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동력 삼아 움직인다. 뒤처질까 두려워 자발적으로 사외 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준비한다. 평가는 외부의 채찍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로 변한다. 통치성은 이렇게 개인의 욕망을 경영의 언어와 결합시킨다. 회사는 강제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압박한다.
이 네 가지를 함께 보면 HR은 단순한 관리 기능이 아니라 어떤 인간을 만들고 있는지 보여주는 자리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권력-지식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가치 있다고 정의하는지를 드러낸다. 규율권력은 그 기준에 맞게 사람을 훈련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생명정치는 관리의 범위를 일과 성과를 넘어 삶 전체로 넓힌다. 통치성은 그 과정을 개인의 자발성이라는 이름으로 내면화한다.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 나는 제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푸코는 이 장면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그의 질문은 나의 질문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HR을 하며 나는 종종 두 세계 사이에 섰다. 숫자와 지표의 세계와 불안과 열망의 세계다. 제도는 언제나 일반화를 향한다. 그러나 사람은 특이한 존재다. 푸코가 말한 것처럼 보편적 인간은 없다. 특정한 배치 속에서 구성된 주체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HR의 과제는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내는 인간상을 자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설계하는 평가와 교육이 어떤 주체를 길러내는지 질문하는 일. 조직의 생존과 개인의 존엄이 충돌할 때 어디에 기준을 둘 것인지 고민하는 일. 나는 현장에서 그 긴장을 체감했다. 다만 푸코를 통해 이제는 안다. 제도는 중립이 아니며 우리는 늘 어떤 인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