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개념이 있나요?
저는 모르는 것을 깨닫는 순간 느끼는 쾌감이 큽니다. 여기서 ‘알다’가 아니라 ‘깨닫다’라고 표현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부족했던 정보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핵심을 꿰뚫는 생각을 이해하는 순간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과 현상의 핵심을 추려 하나의 틀로 묶어낸 사고의 구조를 우리는 ‘개념’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몇몇 개념을 만나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삶의 방향을 분명하게 흔들어 놓았던 세 가지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은 누구나 삶 속에서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듯 읽기보다 한 사람의 경험을 따라간다는 마음으로 바라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악의 평범성’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본 뒤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개념입니다. 악은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에게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통찰입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치 친위대 장교로서 유대인 강제 이송과 학살을 조직적으로 집행한 핵심 실무 책임자였습니다. 수백만 명의 죽음에 행정적으로 관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법정에 선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괴물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평범한 얼굴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자녀를 둔 가장이었고, 일상에서는 성실한 중산층 시민처럼 보였습니다. 아렌트는 그에게서 악의 특별함이 아니라 사유의 부재를 보았습니다.
둘째는 자크 데리다의 ‘용서’입니다. 그는 “진정한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용서에는 대개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사과가 있고, 반성이 있고, 보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용서가 따라옵니다. 그러나 데리다는 그런 용서는 거래에 더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조건이 붙는 순간 용서는 계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한 용서는 계산과 교환의 바깥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개념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동시에 오래 사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셋째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 1927년에 발표된 이 원리는 이전까지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 틀이었던 고전 물리학의 관점을 크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고전 물리학은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으로 대표됩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세상은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질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듯이, 충분한 정보와 계산이 있다면 세상의 움직임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가 다룬 미시 세계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아주 작은 입자의 세계에서는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나를 정확히 알려고 할수록 다른 하나는 흐려집니다. 이것은 측정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자연 자체의 속성입니다. 세상은 완벽하게 계산되고 통제되는 구조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개념이 나를 왜 흔들었나요?
유년 시절, 제 삶에는 나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것도 핏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이었습니다. 저금통에 동전을 모아 가난한 어머니께 신발을 사드렸는데, 그 신발을 아무렇지 않게 신고 나가버린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이유로 사춘기였던 저를 심하게 폭행한 삼촌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한 채 가정을 내팽개친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악의 얼굴들이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된 상처 속에서 악은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니라 제 삶 한가운데 놓인 질문이었습니다.
대학에서 한나 아렌트를 읽기 전까지 저는 악을 단순하게 이해했습니다. 나쁜 사람은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그 확신을 무너뜨렸습니다. 아버지도, 삼촌도, 할머니도 뿔 달린 악마는 아니었습니다. 그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고, 자기감정과 체면을 더 앞세웠을 뿐이었습니다. 악은 특별한 존재의 속성이 아니라 사유의 중단에서 시작된다는 통찰은 제 분노의 기세를 꺾었습니다. 동시에 타인을 향해 드리우던 악의 가능성이 제 안에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위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에게 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제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자크 데리다의 ‘용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저를 붙들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생각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완전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만약 인간이 실수하지 않는 존재라면 조건 없는 용서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합니다. 그렇다면 용서는 거래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어떤 기본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족으로 인한 상처를 오랫동안 붙들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위로라기보다 도전에 가까웠습니다. 이해한다고 해서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종류의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다가왔습니다. 고전 물리학은 세계를 예측 가능한 질서로 이해했습니다. 성격이 이러하면 행동도 이럴 것이라는 식의 결정론이 제게도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불확정성의 원리는 세계가 본질적으로 완결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를 명확히 하면 다른 하나는 흐려집니다. 완벽한 파악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 개념을 인간에게 겹쳐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 역시 하나의 성질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하고, 용서를 구하며, 다시 관계 속으로 돌아오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세 개념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나왔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생각을 멈춘 인간은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고, 불완전한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으며, 아무리 정교한 이성이라도 세상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세 개념이 보여 준 인간의 한계는 결국 저라는 존재의 한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개념은 지금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나요?
재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이미 오랫동안 남처럼 지내던 아들이었습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서 먼저 떠오른 것은 추억이었습니다. 동해안으로 떠났던 가족 캠핑, 군대 후반기 교육대에서 상을 받던 날 저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흐뭇한 표정 같은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어두운 기억도 뒤따랐습니다. 집을 떠나게 만든 갈등과 실망, 오래 반복된 원망의 장면들이 순서를 지켜 다시 떠올랐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원망이 먼저 저를 덮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영정 사진 속 아버지는 더 이상 미워해야 할 대상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와 똑같이 불완전한 인간으로 보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애정을 갈구하던 아이, 시대의 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했던 가장, 가족과 멀어진 채 쓸쓸히 늙어간 노인. 그 역시 자신의 한계와 시대의 조건 안에서 흔들리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데리다의 ‘용서’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문장을 오래 붙들고 있었지만, 실제 삶에서 그것을 감당하는 일은 늘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너무 많은 상처를 남긴 사람이었고, 저는 그를 쉽게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 선 아버지를 바라보는 순간, 용서란 상대를 무죄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가 계속 붙들고 있던 심판의 자세를 조금 내려놓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을 끝까지 이해 가능한 존재로 바꾸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미워하는 자리에만 머물지 않는 선택에 가까웠습니다.
거기에 더해, 인간은 하나의 모습으로만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는 생각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상처를 남긴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기쁨의 기억도 남긴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아버지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을 단 하나의 얼굴로만 끝낼 수는 없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났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오래 피해자로서의 제 입장에서만 바라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그 역시 실패와 결핍, 외로움을 지닌 한 인간으로 보였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존재를 완전한 기준으로 심판해 온 것은 어쩌면 저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를 향해 오래 품어온 분노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곧 용서나 화해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과거를 붙들고 원망을 반복하기보다, 그 감정을 여기서 멈추기로 했습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그보다 몇 해 전, 회사에서도 비슷한 갈림길에 선 적이 있습니다. 한 직원이 해외 출장 중 현지 고객이었던 군 관계자들에게 식사와 술을 제공했고, 예산을 초과한 비용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현장에 동행한 책임자의 승인 아래 진행된 일이었지만, 귀국 후 해당 국가의 접대 한도를 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회사의 영업활동이 제한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었고 저는 인사팀 소속으로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현장 책임자에게 더 큰 책임이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책임자를 보호하고, 실무자인 직원을 해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도 절차를 충분히 지키지 않은 채 서둘러 내린 판단이었습니다.
저는 회사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회사가 결정했다’라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따르는 일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보았던 아이히만의 태도와 아주 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을 멈춘 채 제도와 조직 뒤에 숨는 순간,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타인에게 부당한 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그 개념을 통해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의 판단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그 직원을 구제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인사권을 강하게 쥐고 있던 주체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외부 조직이었습니다. 외국계 기업에서 종종 드러나는 구조적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결국 해고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이후 부당한 결정을 내린 회사를 상대로 그 직원이 노동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료와 논리를 정리해 주었습니다. 조직의 지시와 다른 선택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저도 회사와의 긴장이 점점 깊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개념들이 제 삶을 극적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매 순간의 판단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습니다. 죽음 앞에서 한 인간을 단 하나의 얼굴로만 단정하지 않게 했고,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앞에서도 심판의 자세를 조금 늦추게 했습니다. 또 조직이 옳다고 말하는 판단 앞에서도 한 번 더 멈춰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제가 원망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도, 회사의 부당한 결정 앞에서 적어도 생각을 멈추지 않으려 했던 것도 결국 그 개념들이 제 안에 남긴 변화의 결과였습니다.개념은 저를 더 똑똑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더 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흔들립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쉽게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을 하나의 얼굴로만 보지 않으려 하고, 어떤 판단이든 그것이 정말 정당한지 한 번 더 묻게 되었습니다. 그 차이가 지금의 저를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