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소개해 주세요.
오래 다닌 회사에서 만난 선배가 있습니다. 제가 직전 회사에서 2년의 경력을 가지고 입사했을 때 그의 직속 후배가 되었습니다. 저보다 열한 살 위였고, 노무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였습니다. 우리의 인연은 면접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팀장은 아니었지만 후배를 직접 선발하는 자리에 있었고, 사실상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제게 던진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살면서 누군가를 보살핀 경험이 있는지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답했습니다. 이념을 떠나, 그가 보여준 탈권위의 태도와 앞서가는 리더십을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는 군 복무 시절의 일을 꺼냈습니다. 신병으로 들어온 한 미군이 있었습니다. 유난히 위축되어 있었고, 위생도 엉망이었으며, 동료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주말이면 목욕탕에 데려가 함께 씻었고, 다른 미군들에게도 그를 잘 챙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 말을 듣던 그의 눈빛이 바뀌었습니다. 평가자의 눈빛에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바뀌는 순간이 느껴졌습니다. 함께 일한 뒤 그는 그때 제 대답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단순한 선후배를 넘어섰습니다. 우리는 치열하게 일했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7년을 함께 보냈고, 회사를 떠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관계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로 만났지만 사람으로 남은 인연입니다.
또 한 사람은 그보다 앞선 첫 직장에서 만난 선배입니다. 제가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다섯 살 위였고, 스스로를 ‘슈퍼맨’이라고 부를 만큼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신입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분명했고, 태도도 엄격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의 다른 면을 보게 됐습니다. 무뚝뚝한 인상과 달리 사람을 세심하게 챙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취향도 비슷했습니다. 그는 독서를 좋아했고, 저 역시 책을 가까이 두는 사람이었습니다. 읽는 분야는 달랐지만, 책을 삶의 일부로 삼는 태도는 닮아 있었습니다. 교육 업무를 맡고 있던 그는 저를 북토크에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농구도 함께했습니다. 그는 실력자였고, 저 역시 한때 농구에 빠져 살았습니다. 주말 출근을 하면 올림픽공원 농구장에서 함께 뛰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저는 그 회사를 2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관계는 남았습니다. 연락을 이어가다 6년 전에는 함께 러닝 크루를 만들었습니다. 각자 달리기를 하고 있었기에 마음이 맞았습니다. 몇 명의 초보자로 시작한 모임은 ‘해피러닝크루’라는 이름으로 40명이 넘는 규모가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인연으로 모였지만 달리기라는 공통의 취미를 통해 가까워졌습니다. 이제는 일보다 더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제게 서로 다른 얼굴의 ‘일’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전문성과 신뢰를 통해 조직 안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주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일 밖에서도 이어지는 연대와 지속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회사를 떠나도 관계는 남습니다. 결국 저를 지탱해 온 것은 회사와 일보다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이 두 선배가 제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사람들과 일하면서 배운 사실은 무엇입니까?
노무사인 선배는 제게 인사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태도로 서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회사를 사실상 신입처럼 들어갔습니다. 이전 경력은 있었지만 안정적이지 않았고, 이력도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저를 보며 가능성과 동시에 리스크를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전형적인 모범 직장인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술자리를 좋아했고 주량을 절제하지 못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지각을 했습니다. 8시 30분 출근이었지만 10시가 다 되어 나타나는 날도 있었습니다. 출근시간을 중시하던 제 기준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노조를 담당하는 업무 특성상 잦은 술자리가 불가피했고, 조직은 그에게 어느 정도 관대했습니다.
그 관대함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을 정확히 해냈습니다. 노동조합과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일은 인사 업무 가운데서도 가장 까다로운 과업입니다. 그는 업계에서도 드물게 7개의 노조를 상대하면서 큰 충돌 없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사람을 잘 대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꼼꼼했습니다. 협약서의 문장 하나, 표현 하나도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쟁점이 될 수 있는 지점을 미리 짚었고, 당장의 합의보다 그 이후의 파장을 먼저 계산했습니다. 지금의 선택이 1년 뒤, 3년 뒤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 내다보았습니다.
그 치밀함 위에 사람을 대하는 감각이 더해졌습니다. 그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언어로 말했습니다. 상대의 결을 읽고 호흡을 맞췄습니다. 자신의 허술함을 숨기지 않았고, 체면을 앞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직장의 문법에서 조금 비껴 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신뢰했습니다. 원칙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유연함을 잃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실무의 치밀함과 관계의 감각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7년 동안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그에게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그는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쉽게 냉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나아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학생운동을 했던 시절의 신념이 그의 내면을 오래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무례하게 굴어도 즉각적으로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해석했습니다. 저는 판단도 빠르고 감정도 빠른 편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강인함은 목소리를 높이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관대함과 인내가 오히려 더 단단한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첫 직장에서 만난 선배에게서는 또 다른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는 업무 기술을 가르친 사람이라기보다 태도를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섰고, 타인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누군가 계획을 세우면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실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그 성향은 지금 제가 속한 러닝 크루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처음 모였을 때 대부분은 초보였습니다. 5킬로미터도 버거워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막연한 격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구체적인 훈련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느 속도로 달려야 하는지, 언제 쉬어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거리를 늘려야 하는지를 세심하게 안내했습니다. 개인마다 부족한 부분을 파악했고, 직접 함께 달렸습니다. 누구나 완주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반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결과는 서서히 드러났습니다. 작은 모임에서 다섯 명의 풀코스 완주자가 나왔습니다. 저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10킬로미터를 겨우 달리던 사람이 하프를 수십 번 뛰고, 이제는 풀코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성장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실제 변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는 타인을 바꾸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곁에서 실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에게서 배운 것은 결이 달랐습니다. 한 사람에게서는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고, 다른 한 사람에게서는 관계를 대하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노무사 선배에게서는 사람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법과, 원칙이 꼭 차가운 얼굴만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첫 직장의 선배에게서는 타인의 가능성을 믿고, 그 성장을 위해 실제로 움직이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업무에 대한 태도와 관계에 대한 태도. 두 배움은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곳에서 만납니다. 일은 결국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일을 할 때 치밀함을 잃지 않으려 하고, 사람을 대할 때는 조급함을 줄이려 합니다. 일에는 책임 있는 시선을, 관계에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두려 합니다. 그것이 두 사람에게서 제가 받아들인 가장 분명한 영향입니다.
그들이 나의 일하는 방식에 남긴 영향은?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습니다. 전공 서적을 읽으며 역사는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실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지켜보며 그 생각은 더 굳어졌습니다. 잠시 후퇴하는 순간은 있어도, 방향은 결국 진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직장에 들어온 뒤 그 확신은 금방 흔들렸습니다.
회사라는 공간은 사회와는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곳처럼 보였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진보의 언어는 조직 안에서 좀처럼 체감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문장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조직은 변화의 최전선이 아니라, 가장 늦게 반응하는 집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실망은 제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굳이 앞장설 필요는 없다는 생각, 문제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는 태도가 서서히 스며들었습니다. 냉소는 조용히 합리화가 되었습니다.
그때 노무사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는 학생운동의 기억을 과거의 장식이 아니라 현재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기대를 잃지 않았고, 회사 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래 굳어진 구조라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부조리한 관행이 반복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갈등을 피하지 않았고, 설득해야 할 일이 생기면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가 조직을 얼마나 바꾸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 태도가 달라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회사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안에서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이후 관리자의 역할을 맡으면서 저는 당장의 효율만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방향을 바로 세우는 선택을 하려 했고,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한 걸음 물러나 구조를 보려 했습니다. 냉소 대신 책임을 택하는 태도는 분명 그의 영향이었습니다.
다른 선배는 또 다른 지점을 건드렸습니다. 저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쪽이었습니다. 가까운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그 생각을 더 굳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정반대였습니다. 쉽게 실망하지 않았고, 관계를 서둘러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그 태도는 때로 순진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저는 그가 오래 유지해 온 관대함의 무게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에 한 직원이 있었습니다. 신입으로 입사해 30년 가까이 한 회사를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복된 문제 행동과 무책임한 태도로 이미 조직 구성원의 신뢰를 잃고 있기도 했습니다. 처음의 저는 그를 조직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선배가 떠올랐습니다. 그라면 그렇게 빨리 사람을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제 감정이 곧바로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선택은 달라졌습니다. 비난보다 절차를 따랐고, 판단보다 시간을 두었습니다. 결과가 극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적어도 그때의 저는 감정에 끌려 결정을 내리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조직을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도 않으려 합니다. 일에서는 치밀함을 유지하려 하고, 관계에서는 가능성을 너무 빨리 닫지 않으려 합니다. 조직은 단번에 변하지 않지만, 그 변화를 이끌어 내는 태도는 축적된다고 믿습니다.
그들과의 경험은 제 일하는 방식을 분명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냉소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단정보다 절차가 중요하며, 조급함보다 시간이 더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저는 그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조직이 완벽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사람과 방향을 함께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의 제가 일하는 방식 결국 그런 믿음과 태도에서 비롯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