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위가 뒤늦게 읽은 4·3 기사 하나

by 세템브리니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시작한 뒤로 관련 뉴스를 꼼꼼히 챙겨보지 않는다. 알아서 잘하리라는 믿음이 생기면서 괜한 불안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주어가 이재명 대통령이고 내용이 제주 4.3인 기사를 하나 보게 됐다. 제주 4.3은 제주가 고향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내게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사건이다. 제주도를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내 삶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장소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날은 바쁜 작업이 있어 기사만 저장해 두었고 오늘에서야 다시 꺼내 보았다. 내용을 다 읽고 나니 대통령을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김익렬 대령은 해방 후 제주도의 치안 유지를 위해 배치된 국방경비대 제9연대의 지휘관이었다. 당시 경무부장(경찰 총책임자)이었던 조병옥과 미군정의 강경 정책 속에서 4.3이 촉발되자 그는 무력 진압 대신 평화적 해결을 시도했다. 무장대 측 군사 책임자였던 김달삼(본명 이승진)을 만나 협상을 추진했고 실제로 평화협상까지 성사시켰다. 그러나 미군정은 제주 4.3을 협상이 아니라 군사력으로 진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익렬과 김달삼의 협상은 무시되었고 김익렬은 결국 9 연대장에서 해임된다. 그 후임으로 기사에 등장하는 박진경 중령이 부임한다. 그의 취임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


미군정이 그를 연대장으로 임명한 이유는 분명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꺼려할 민간인 토벌 작전을 주저 없이 수행할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대규모 토벌 작전과 수색 작전을 실시했고 중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수천 명의 주민을 체포했다. 무장대 협조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강경 작전을 펼쳤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3천에서 6천 명의 제주 주민이 체포되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의 작전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는 당시 손선호 하사의 진술에서도 드러난다.


“박 대령의 30만 도민에 대한 무자비한 작전 공격은 전 연대장 김익렬 중령의 선무 작전에 비해 대원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그릇된 결과로 이런 사태가 빚어졌다. 우리가 화북이라는 마을에 갔을 때 열다섯 살쯤 된 아이가 아버지의 시체를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고도 무조건 사살해야 했다.”


이 학살을 더는 견디지 못한 그의 부하 장교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결국 박진경을 암살한다. 제주에 온 지 약 40일, 연대장으로 부임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충청도 출신으로 육사 3기였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문상길 중위는 총살형 집행 직전 이런 말을 남겼다.

“스물두 살의 나이를 마지막으로 나 문상길은 저세상으로 떠납니다. 여러분은 한국의 군대입니다. 매국노의 단독정부 아래서 미군의 지휘를 받아 한국 민족을 학살하는 군대가 되지 말라는 것이 저의 마지막 염원입니다.”


함께 처형된 손선호 하사의 진술도 전해진다.

“박 대령을 암살하고 도망칠 기회도 있었지만 30만 도민을 위한 일이므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 하나의 생명이 30만 도민과 3천만 민족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처벌을 받겠다.”


그런데 이런 인물의 후손이 신청한 국가유공자 등록이 지난해 10월 국가보훈부 산하 서울보훈지청에서 승인되었다. 유공자 증서까지 유족에게 전달된 사실이 알려지자 제주 지역 사회와 4.3 유족들 사이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논란이 커지자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11월 직접 제주를 찾아 4.3 유족회를 만나 사과의 뜻을 밝혔다. 당시 진압에 참여한 군인과 경찰 역시 시대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관련 사실을 다시 살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안이 계속 확산되자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나섰다. 박진경 대령의 유공자 지정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처사라며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했다는 소식이었다.




4월 3일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지금은 그날의 비극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도 충분히 남아 있다. 나는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을 통해 제주 4.3을 처음 알았고 이후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를 읽으며 그 역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 이후 제주를 바라보는 감정도 달라졌다. 예전의 제주가 바다와 바람, 돌담과 유채꽃으로 기억되는 아름다운 풍경의 섬이었다면 이제의 제주는 그 풍경 아래 겹겹이 쌓인 시간과 침묵이 함께 느껴지는 장소가 되었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같은 오름을 걸어도 예전처럼 그저 풍경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삶과,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어쩌면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은 그곳의 비극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다른 결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역사를 알기 전의 제주는 눈으로만 보는 섬이었다면, 역사를 알고 난 뒤의 제주는 기억과 함께 읽히는 섬이 된다. 풍경이 더 이상 단순한 경치로 머물지 않고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제주 4.3을 알고 난 이후의 제주도는 이전의 제주도와 분명히 다르다. 같은 바다와 같은 바람 속에서도 이제 그 섬의 풍경은, 우리가 오래 기억해야 할 역사와 함께 더 깊은 의미를 품은 장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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