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써보고 싶다

by 세템브리니

최근 가까웠던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처럼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자신의 장례식이 되어서야 형제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상주가 되어야 할 아들은 끝내 빈소를 찾지 않았다. 상주가 아닌 조문객의 처지로 부친상을 지켜보았던 재작년의 나를 떠올리며, 직계가족을 대신해 내가 삼일장을 치르면서도 누구를 쉽게 비난할 수 없었다.


고인이 화장장에 들어간 뒤 사실혼 관계였던 나의 친척은 처음 만난 그의 형제들과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친척과도 잠시 함께 살았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좀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직계 가족을 떠나온 지도 어느덧 삼십 년이 지나 있었다. 그를 알고 있는 지점이 서로 다른 그들에게 그는 하나의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다. 나를 포함해 각자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달라, 우리가 말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동일한 인물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알다가도 모른다는 말이 사람을 두고 만들어진 문장이라면, 바로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재작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어 몇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중에는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던 간호사도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자상함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는 결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간호사에게 아버지는 또 다른 모습의 사람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서로 다른 얼굴로 기억된다는 사실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때 문득 한 편의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그를 둘러싼 사람들. 나, 사실혼 관계였던 나의 친척, 그의 형제들, 그의 아들,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이웃들. 각자가 마주했던 그의 모습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내는 이야기였다. 한 사람을 둘러싼 서로 다른 기억들이 겹치고 어긋나면서, 결국 한 인간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남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을 상상했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모일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윤곽이 드러나는 그런 이야기였다.


마침 그 무렵 나는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한 ‘분인(分人)’이라는 개념을 읽고 있었다. 그는 인간을 하나의 단일한 자아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관계마다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부모 앞의 나와 친구 앞의 나, 직장 동료 앞의 나는 완전히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습들이 거짓된 것도 아니다. 각각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들 모두가 나의 일부다. 하나의 단단한 자아가 인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여러 개의 ‘분인’이 모여 한 사람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다.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들이 개념으로 정리되자, 화장장에서 느꼈던 낯선 그가 조금 더 이해되었다. 누군가에게 그는 가족을 떠난 차가운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정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기억들이 충돌한다고 해서 그중 하나만이 진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모든 기억이 함께 놓일 때 비로소 한 인간의 삶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한 사람을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하려 하지만, 실제의 삶은 언제나 여러 이야기의 겹침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써보고 싶어졌다. 서로 다른 기억 속에 흩어져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을 이어 붙이는 이야기. 관계마다 다른 분인으로 존재했던 한 사람의 삶을 여러 시선으로 그려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줄곧 써온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장르다. 하고 싶은 이야기와 주제는 분명했지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야기를 어떻게 엮어야 하는지도 막막하다. 그래서 일단 밑그림이라도 그려보자는 마음으로 이 책「짧은 소설 쓰는 법」을 빌렸다.


이 책을 읽는다고 당장 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튜브를 보고 수영을 잘하게 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소설 역시 책 몇 권으로 배울 수 있는 기술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 주제로 글을 꼭 써보고 싶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내 글쓰기의 힘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감당할 수 있을 때 도전해보고 싶다.


그의 아들의 시선에서는 나는 나의 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의 형제의 시선에서는 관계가 멀어져 버린 나의 동생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따뜻한 모습을 기억하는 나의 시선도 함께 써넣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분인들이 겹쳐질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삶이 조금 더 또렷하게 드러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처음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며 스스로를 다시 이해하게 되었던 것처럼, 타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나 역시 사람을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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