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Feb 12. 2016

여자, 서른 즈음에

누군가의 삶에 나의 파편을 남긴다는 것.

서른, 누군가는 내 나이에 죽기로 결심했다는데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이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은 그 내용보다는 제목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결심하다'라는 말이 제목에 등장하는 책의 경우에는 더. 결심이 단순히 결심에만 그치고 마는 상황은, 책 속의 등장인물에게도 흔히 일어나는 일인지라.


 1987년 생. 내 출생년에 따르면 나는 생물학적 나이로는  스물여덟이지만, 사회적 나이는 서른이다. 아무런 준비나 각오도 없이 앞자리가 바뀐 순간, 갑자기, 이러다 어느 날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끝나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V의 플러그를 뽑는 것처럼, 슉 하고.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

 

 10대부터 20대를 지내며 겪었던, 눈을 뜨면  하루하루 더욱 성숙해지고 예뻐지는 것 같았던 기대감의 시기는 지났다는 느낌이랄까. 서른을 기점으로, 적어도 육체적인 관점에서 '내일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다는 느낌. 지금보다 더 에너제틱한 내일은 오지 않을 것 같은, 이제는 오로지 조금씩 쇠약해질 길만 남은 것 같다는 그 허탈한 느낌.


서른,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한 생각의 끝에 '죽음'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전까지 내게 죽음이란 것이 좀처럼 실감 나지 않는 관념적인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좀 더 실감 나는 실체의 느낌이랄까. 앞으로 살아온 나날들 만큼만 더 살면, 60세가 된다.


 사실 정작 무서운 건,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그러한 불의의 상황들로 인하여 나의 삶이 끝나는 것보다도, 그 후의 문제인 것 같다.  내일 당장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더라도, 나의 부재는 이 세상에 어떠한 충격도 주지 못한다. 세상은 마치 애초부터 나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태연하게 흘러갈 것이다.  나는 그것이 못내 서운하고 아쉬웠다.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이 세상 속에 내가 존재했던 흔적을 남기고,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남기고 싶었다. 비록 얼굴 없는 인터넷 상의 글에 불과할 뿐이지만 적어도 인터넷을 떠돌다 이 곳에 와 닿을 누군가에게는 나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의 파편들을 전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삶에, 파편을 남기고자.

 

 나는 앞으로도 세상에 나온 모든 좋은 책들을 읽고 싶고, 내 마음과 생각이 담긴 글을 쓰고 싶고, 서툴지만 열심히 그린 그림을 세상에 남겨놓고 싶다. 그러한 나의 기록들이,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이 공간을 스치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유의미하게 다가가 닿을 수 있다면.

 누군가는,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 존재하는 나라는 한 명의 존재를, 그 존재의 파편을 기억해 줄 것이므로.

 앞으로 이 공간에서 내가 읽고, 쓰고, 그리고, 생각하는 어떤 것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아주 작게라도 남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너무도 짧고, 나의 삶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기에.



* 필명에 대한 설명.
    일본에서는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 여자들을  '아라사'라고 한다.
    Around Thirty를 일본식 발음으로 읽은 것을 줄인 것이다.
    다 커서 사춘기를 겪는 듯이 한없이 마음이 흔들리고 연약해지는 서른 전후의 한 여자로서,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일상과 생각을 꾸준히 기록하고자 한다.



놀다 보니 봄은 다 갔고,
내 사랑하는 젊은 목수들은
집을 다 짓고 어디론지 가고 없다.

- 김훈, 『라면을 끓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