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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ug 23. 2020

변기를 닦으며

최근의 이런저런 단상


 최근 코로나 19 확진세의 어마어마한 증가로 인해, 휴직 이후 오랜만에 종일 집에서만 머무는 주말을 보내고 있다. 밀린 집안일을 하던 중, 화장실 청소를 하며 묵묵히 변기를 닦다 문득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각각의 소재로 한 편의 글을 써내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 짤막한 생각들을 나열하듯이 적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최근의 이런저런 단상들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1호가 될 순 없어


 어릴 때부터 항상 생각했다. 만약 지구가 멸망하는 그 날이 오거나,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날이 오면 구차한 꼴 보지 말고 1 빠로 죽고 싶다고. 폭탄이 떨어지는, 혹은 자연재해나 대형 사고에 휘말리는 그 순간 "저게 뭐지...?"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강력한 충격에 내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그것은 아마도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남아서 다른 사람들이 공포에 미쳐가거나,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며 인간성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마음 한편에 움트는 이 생에 대한 강렬한 욕망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자가격리 대상자가 아님에도 극도로 외출을 삼가고 항시 마스크를 쓰고 수시로 손을 씻으며 극도로 조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안 만나고 있다. 옆동네, 직장 근처, 집 근처에서 확진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미 다 끝난 게 아닐까"하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단지에서, 직장에서..'내가 1호가 될 순 없어!'라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몇 년 전 한 방송에서 개그우먼 김신영 씨의 할머님은 언제나 '늙으면 죽어야지, 이제 죽어야지'라고 말씀하시면서도 각종 영양제를 고루 챙겨 드시고 치매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언행 불일치의 삶을 살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었던 적이 있다. 요즘의 나 또한 약간 그런 상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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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인기 없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나는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적도 없고 확진자와 접촉한 적도 없다. 다행히 가족들도 모두 무사하다. 다만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회사 때문에 출근할 때마다 좀 불안하긴 하지만.. 회사 내에서도 가능한 한 최대한 밥을 혼자 먹고, 웬만하면 메신저 외의 대화는 하지 않으며 철저히 혼자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코로나 19로 전 국민에게 되도록 집에 머무르길 권장하는 이 시국에서 나는 그것이 조금 지루하긴 하지만 '불편'하거나 답답하진 않다. 친구도 별로 없고, 직장 동료들과 밥을 안 먹고 거리를 둬서 '유난'이라고 눈총을 받으면서도 그다지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내가 원래 모태 인기 없음이어서 그런 걸까. 인기 없는 삶에, 찾아 주는 이 없는 삶에,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스마트폰에 이미 너무 익숙해서 그런 것일까.


 그런데 또 생각보다 이 삶이 지겹지 않아서 또 '현타'가 오기도 한다. 나란 인간은 대체 얼마나 사회적 교류와 단절된 삶을 살아왔던 것일까. 남자 친구가 있는 친구는 이 시국에 여행을 어찌 가야 할지, 데이트 중 식사는 어찌해야 할지 그런 것들을 걱정하고 있는데 나는 애초에 불러 주는 이 없으니 나갈 일이 없어서.. 어디.. 놀러 갈 일도 없어서.. 그런 불안함에 공감해 줄 수가 없다. 단지 이 시국에도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필수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인기 많은 이들은 좀 더 불안하겠구나, 싶을 뿐.


 결국은 그렇게 인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찾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해야 해서 코로나 19에 감염 및 전파 확률이 높아지고, 나처럼 찾아주는 이 없어 집콕만 해서 안전하게 살아남은 사람들만 이 지구 상에 남는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


 오직 인기 없는 자들만이 살아남은 세상. 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예식장... 그래 만약 내가 애인이 있었다면 나는 분명 오히려 이 시국에 결혼을 했을 것이다. 대충 생각해봐도 결혼식장에 와줄 친구가 10명도 안 되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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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올드보이가 된 시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모든 이가 집 속에 틀어박힌 주말. 마치 올드보이가 된 기분이다.


밥을 먹는 나의 모습..


 어두침침한 단칸방에 갇혔을 때, 최민식이 어떻게 행동했더라? 하루 세 끼 군만두만 먹으면서도 복수를 생각하며 몸을 갈고닦았지. 그 생각이 드니 최근 뽈록 나온 나의 뱃살이 생각났다. 열심히 다니던 운동인데, 코로나 감염 우려로 못 간 지 좀 됐다. 태양을 싫어해서 뜨거운 야외에서 야외 운동을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그토록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은 집에서만큼은 마음껏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는 자신에게 어느 정도 면죄부를 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액티브 카우치 포테이토​'였기 때문이다. 액티브 카우치 포테이토란, 주 2~3회 격렬한 운동을 즐기지만 운동이 끝난 뒤의 생활 패턴에서는 운동량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카우치 포테이토'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본인들은 일주일에 2,3번씩 운동을 하니 스스로 건강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앉아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 기본적인 활동량이 많은 사람들보다 더 건강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실생활에서 움직이는 것을 격렬하게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집에선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기에 밖에서 실내 운동을 하며 스스로의 운동 죄책감을 채워 온 타입이었다. 그런 나에게 집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을 할 수 없는 환경은 나를 액티브 카우치 포테이토가 아닌 그냥 카우치 포테이토로 만들어버렸다.


 처음엔 '코로나 19가 잠잠해질 때까지'라는 한시적 조건이 붙어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시 운동 쉬고, 여건 되면 다시 나가서 하지 뭐, 하고 다소 가볍게 생각했던 경향이 좀 있었던 듯하다. 어차피 곧 다시 운동을 할 거니까, 집에서는 오랜만에 맘껏 늘어져볼까?라고 생각했던 것이 2주가 되고, 3주가 되고, 한 달이 되어 나의 온전한 근손실로 이어진 것뿐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회사에 앉아 있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피곤하다.(이 회사는 이 시국에도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다...) 체력이 급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긴 한데..



홈트의 이상과 현실.jpg


 그런데 난 진짜 '홈트'는 재미없어서 못하겠다. 집은 그저 그냥 마음껏 누워있는 곳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 이사 올 때 그 스텝퍼랑 스쿼트 머신을 내가 왜 버렸을까? 막상 그땐 짐 줄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거라도 있었으면 집에서 운동이라는 걸 좀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지금은 이대로 누워서 폴 오스터 전집이나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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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꾸다



브런치를 생성한 이래 최초로 작가명과 브런치 주소를 바꿨다.


 변경 사유는 전반적으로.. 내 브런치가 개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쭉 '30대 언저리의 여성'이라는 테마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지금 내가 30대를 훌쩍 넘어 30대 중반에 접어든 관계로 이젠 '서른 즈음에'라는 취지에서 조금 어긋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라사'라는 작가명도, 사실 일본에서 30 언저리의 여자(around 30, 아라사)를 통칭하는 호칭이었어서...(지금 생각해보면 개설 당시에 정말 작가명도 주소도 대충 짓긴 한 것 같다.) 좀 더 오래오래 쓸 수 있는 이름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사리나'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에 있을 때 친구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흔치 않은 이름이라 아끼며 잘 사용하고 있다. 단, 영문을 병기한 게 생각보다 좀 별로여서 한 달 뒤 병기한 영문만 삭제한 상태로 유지할 예정이다. (브런치 작가 이름은 정말 신중히 또 신중히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이것도 교체 전 '미리 보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주소명 또한, 그런 의미에서 around30(서른 즈음에)라는 평소의 취지에서 조금 어긋난 것 같아서.. 그렇다고 mid30s라고 하기에는 나도 언젠가 마흔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주소로 바꿨다.


 다만, 이전의 주소 (@around30)로 기존에 공유되었던 글들의 링크를 누르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작가님입니다'로 나온다. 누군가는 '아깝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나는 화차의 김민희처럼 신분을 세탁(?)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뭔가 좋기도 하다.


다시 태어나기를 꿈꾸는 이 눈빛...!


 내가 그동안 밥먹듯이 링크 주소를 바꾼 것도 아니고 계정 개설하고 조금씩 나이 먹어 가는 동안 망설이고 망설이다 한 번 바꾼 거니까.. 그리고 앞으로 안 바꿀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기존의 글들도 공유가 많이 되던 스타일의 글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그냥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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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민은 고작 20분을 버티지 못하고



 2주 정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긴 장마로 좀처럼 외출을 하지 못하고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기적적으로 날아온 노린재 한 마리가 방충망에 날아와 붙었다. 20층이나 됐는데 어떻게 올라온 것인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어떻게든 날다 보니 바람에 떠밀려 이 높은 곳까지 엉겁결에 올라오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 평소에 벌레를 무척 싫어하고 기겁하는지라, 조금 놀랐지만 그 날만큼은 힘겹게 날아와 방충망에 꼭 붙은 그 노린재의 모습을 보니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창밖엔 여전히 거친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집이 있어서 안에서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보송보송하게 쉬고 있는데, 방충망 하나를 사이에 둔 그 벌레가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젖은 날개를 잠시 쉬어가는 정도였을 테니.


 그래, 쉬어가라. 어차피 나도 재수 없어서 벌레로 태어났으면 저렇게 살았을 수도 있는데, 뭐 딱히 믿는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닌가. 내가 지금 이렇게 한낱 미물에게 베푼 호의가 내세에서나 환생할 때 나에게 가산점으로 작용할지도 수 있을지도!


 그렇게 나는 노린재와 방충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계속 책을 읽었다. 처음엔 괜찮았다. 저러다 날아가겠지,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한 10분 정도 지났을 때부터 미동도 하지 않는 그 노린재가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촘촘한 방충망에 커다란 왕서방 점 같은 노린재 한 마리가 계속 눈에 거슬렸다. 애써 외면하고 계속 책을 읽으려 했는데 나중에는 그 노린재의 존재감(?)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시간을 봤다. 처음 노린재를 발견했을 때부터 대략 20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아, 나의 연민은 고작 20분 짜리였구나. 나는 소인배다. 


 나는 자를 들고일어났다. 방충망에 매달려 있는 그 노린재를 톡 쳐서 다시 바람 속으로 날려 보낼 심산이었다. 그런데, 자로 살짝 톡 쳐도 노린재는 날아가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노린재를 다시 톡, 톡 쳤다. 톡, 톡, 톡 탄력 있게 방충망을 두들기니 위기의식을 느낀 노린재가 갑자기 온 다리로 방충망을 더욱 꼭! 강하게 감싸는 것이 아닌가! 마치 태양과 북풍에 나오는 북풍 맞은 나그네처럼 방충망을 꼭 끌어안는 모습에 나는 당황했다.


'이게 아닌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노린재가 원망스러웠다. 그냥 한 번 툭 쳤을 때 날아가 줬다면 좋으련만 왜 날아가 주지 않는 것일까? 왜 버텨서 꼭 나로 하여금 이런 잔인하고 나쁜 짓까지 하게 만든단 말인가?


나는 자를 고쳐 잡고, 방충망에 노린재가 붙어 있는 자리를 위아래로 긁기 시작했다. 잠시 꿋꿋이 버티던 노린재의 다리가 나의 긁기 공격에 미처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씩 풀리더니 결국 포기하고 날아가 버렸다.


 기어이 벌레를 쫓아내 버리고 만 나 자신에 대해 약간의 혐오감과, 벌레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고작 20분짜리 연민이라니! 그렇지만, 괜찮다. 내 연민이 20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면, 이 죄책감도 어차피 20분짜리일 테니까.  난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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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확행


요즘 집에 오래 있다 보니 새들하고 친밀도가 올라갔다. (무슨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도 아닌데... 자주 눈에 보이니 친밀도 + 애정도가 올라간다)


예전에 퇴근하고 주 2,3회 운동하며 늦게 들어오고 주말마다 밖으로 나갈 땐 나를 '아빠, 우리 집에 또 놀러 오세요!'라고 하는 애들 정도로 봤던 새들이 지금은 나를 좀 자주 놀러 오는 이모 삼촌 정도로는 봐주는 것 같다.


최근의 나의 삶에서 손에 잡히는 유일한 행복.


 비가 쏟아지고,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그럼에도 나는 오늘의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야 하는, 이토록 잔혹한 세상에 이토록 확실한 존재감으로 손에 쥐어지는 행복이 있다는 것. 실체감 있게 손에 쥐어지는 어떤 행복. 사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할 당시에는 그 말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들을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이 있을까 싶다. 나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확실히 이 아이들이다.



 혹시라도 내가 코로나 19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새들을 봐줄 사람이 없다. 이 땅의 반려인들 모두 자신의 반려동물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각별히 조심하고 안전하셨으면 좋겠다.








 써 놓고 보니 2020년 여름을 지나는 이야기들인 것 같은데,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코로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어서 이 모든 것이 끝나서 내년 이맘때쯤이면 이 시기를 '그땐 그랬었지'하는 마음으로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저는 이제 다시 변기를 닦으러 갑니다. 밖에도 못 나가는데 어쩌겠나요. 변기나 빡빡 닦아야지. 모두 이번 주말도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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