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Oct 15. 2020

내 첫 책,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를 출간하며

한 편의 글이 한 권의 책이 되기까지.


 그다지 꾸준히 쓴 건 아니지만, 5년 간 브런치를 운영하다 보니 댓글이나 인스타그램 DM으로 종종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받게 된 아래 메시지도 그런 메시지들 중 하나였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작가님이 브런치에 쓰신 클라이밍 관련 글(하염없이 매달리는 것)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혹시 앞으로 클라이밍에 대한 다른 글도 계속 쓰실 예정이 있으신가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아니오, 쓸 생각 없는데요."


 


 나의 브런치는 애초에 글렀다. 다른 브런치 작가들이라면 하나의 시리즈나 매거진으로 쭉 써 내려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낼 수도 있을 법한 주제를 나는 단 한 편의 긴 글로 마무리하고, 이후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주제에 대해 또다시 장황하게 써 내려가는 패턴의 반복이니까. 그만큼 나의 관심사는 언제나 빠르게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이동했다.


 그것은 아마 내가 반복됨과 지루함을 싫어하고, 생각과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지구력이 받쳐주지 않는 허약한 글쟁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매번 어떤 하나의 주제에 푹 빠져서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점점 쓰는 과정에서 소재에 과몰입하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지쳐가고.. 한 마디로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쓸 때마다 매번 기가 완전 쏙 빨리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할 때쯤 되면, 나는 완전히 번아웃이 와 '당분간은 이 주제에 대해서는 거들떠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랬기에 나는 내 글 한 편 한 편이 그 자체로 이미 뭔가를 덧붙여야 할 필요가 없는 '완결작'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포스팅 사이에 일관성은 부족할지언정, 매번 새로운 소재를 하나의 완결된 글로 다루고, 그 안에서 끝을 맺고, 또 새로운 소재를 탐구하는 이것이 나의 스타일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런 나의 스타일이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지속적인 구독자를 확보하거나, 전문성을 어필하거나, 콘셉트를 명확하게 잡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지난 5년 간 브런치를 운영하며 다음 메인이나 브런치 메인 등에 노출된 적이 종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브런치에서 선호하는 '이상적인' 작가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은 어설프게 브런치 북을 구성해 보기도 했지만,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콘셉트가 명확한 수많은 반짝이는 브런치 북들 앞에서 내 콘텐츠는 단순히 옆에 두고 봐도 부족한 점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말을 걸어온 그분이 사실은 출판사의 편집자 님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아, 클라이밍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가 보다. 하긴, 브런치에 클라이밍 관련 글들이 별로 없긴 하지...’ 하고 간단히 생각하고 넘어갔을 뿐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다소 단호했던 대답에 편집자님이 상당히 당황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부터 2주 정도 지났을까? 한동안 그 짧은 대화를 잊고 지내던 나에게,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일전에 브런치에 쓰셨던 글을 보고 연락드렸었는데 기억하시나요?
저는 사실 출판사 편집자고, 작가님께 출간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출판사 편집자가 나에게 연락을 하다니? 그것도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고.. 이 모든 게 약간 암행어사 같은 전개라고 생각했다. 지난 5년 간 브런치를 운영하면서 콘텐츠 조회수가 빵 터지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출간 제안’이라는 것은 그 모든 기간 중 내게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브런치에 글도 좀 쌓이고,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서는 고배를 마셨고, 그냥 '내돈내찍'으로 독립출판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타이밍 좋게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은 셈이었다. (참고로 이 ‘안 팔리면 순장책’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를 타겟으로 따로 준비 중이다.)


 출판사 담당자분들과의 첫 미팅일은 내 생일이었다. 환한 카페에서 환한 미소로 서로를 마주한 그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아마도 30대 중반까지 살아온 여태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생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편집자 님이 관심을 가지고 출간 제안을 주신 콘텐츠의 소재가 바로 '클라이밍'이라는 것이다. 내 브런치에 클라이밍이라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고작 단 한 편의 글만 올렸을 뿐이었는데, 그리고 그 한 편의 글 외에는 다른 어떤 글도 없었는데. (심지어 나는 그 후로는 앞으로는 그거에 대해서는 안 쓸 거라고 단호하게 답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 주제로 출간을 제안한 것이다. 바로 그 단 한 편의 글을 보고 편집자님은 책으로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내 브런치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글도 별로 없고, 진행하게 된다면 원고를 전부 새로 써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책 한 권 내지 않은 내게 이런 용기 있는 제안을 해 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 글은 한 편 한 편이 완결작이지만, 긴 글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글에서 모든 것을 다루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중간중간에 압축된 부분도 있었다. 그랬기에 나 또한 편집자님의 눈에 들었던 <하염없이 매달리는 것>이라는 글도, '압축 해제'를 하듯 각 소재별로 굽이굽이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의지가 솟았다.


 때마침 독립 출판을 준비하고 있던지라 편집 기획안은 금방 작성했다. '클라이밍'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내가 풀어내고 싶었던 이야기들로 꼭지를 풀어 나갔다. 내가 꼭 쓰고 싶었던 내용들을 위주로 구성한 목차로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평일에는 도통 쓰기 어려웠기에 주로 주말을 틈타서 글을 썼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중간에 수술을 받게 되어 잠시 휴직을 하게 된 것이다. 수술을 한 뒤로도 2달 간은 운동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운동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정작 그 운동을 직접 할 수 없다는 게, 삶의 일부였던 운동을 먼 과거의 일처럼 되새기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조금 힘들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감일까지 꾸준하고 꿋꿋하게 이 글을 계속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이 운동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5년이면 인생에서 꽤 긴 시간이고,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시기와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이제 '나'라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 '클라이밍'을 빼 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 최근의 삶에서 이 정도의 즐거움을 주고, 이 정도의 정신적 성취감을 주며, 안정감과 만족감을 주는 것이 또 있었던가. 나를 만들었고 성장하게 한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쓰면서 나도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싶었다.


 그랬기에 끝까지 '존버'할 수 있었고, '완등'해낼 수 있었다.

 


 




 지난 주말, 편집자 님이 인쇄소에서 내 인생의 첫 책이 인쇄되고 있는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주셨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책을 꼭 껴안은 채 뿌듯한 표정으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조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아씨들> 따끈한 초판 받아든 조 맘 = 내 맘



이런 기분이구나, 내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건.


사실 나도 아직 책 실물을 못 봐서 뭔가 잘 실감이 나진 않지만.... 그래도 이번 주말 즈음이면 나도 따끈한 나의 작은 책을 품에 안아볼 수 있을 것이다.






 레퍼런스도 없는, 경력도 없는, 글쓰기 능력도 검증이 되지 않은 인터넷의 끄적이스트인 나를 발견해 주고, 이 책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의 가능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편집자 님, 클라이밍의 특징을 잘 살려서 너무 예쁜 일러스트와 표지를 그려주신 일러스트레이터 오하이오 님, 그리고 나의 글을 이 세상에 정제된 책으로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그리고 비정기적이고 불성실한 연재 텀에, 철저히 내 위주의 독백 같은 불친절한 글들 뿐임에도 끝까지 이 채널을 구독하며 가끔씩 다양한 형태로 응원을 보내주시는 구독자 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말로는 늘 '나만을 위한,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라고 하며 브런치를 운영하고 쓰고 있지만, 그래도 항상 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 계정을 구독하고 내 글을 읽어주고 있다는 것이 용기가 되고 항상 든든하다. (책도 출간되었으니 앞으로는 다시 성실 연재하겠습니다..)



 작년, 그리고 올해. 운동하는 여자들에 대한 강인한 에세이가 많았던 것을 안다. 이 책은 그러한 다른 운동 에세이들처럼 거창한(?) 패기 넘치는 책은 아니다. 다른 책의 저자분들에 비해 나는 운동 전후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5년 동안이나 했는데도 어떤 경지(?)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대회에 나가서 수상한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늘 눈에 띄지 않는 한 구석자리에서 허우적대며 머무르면서도 그냥 이걸 계속한다. 그냥, 좋아하니까. 이 운동을 할 때는 마음이 좀 편해지니까. 그게 전부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덧붙인다.


"클라이밍을 하기 때문에 더는 내 인생의 불행이 나의 삶을 잠식할 수 없다고 단언하지는 못한다. 클라이밍을 한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슈퍼 히어로처럼 '용감하고 행복한 나'로 변신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일상은 대체로 고요하며 우울은 여전하다. 클라이밍을 하든 하지 않든, 나는 그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끊임없이 몰려오는 어지러운 생각과 매일같이 씨름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 각 서점별 구매 링크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매거진의 이전글 변기를 닦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