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 날 아침, 문득 일어나 잠이 덜 깬 채 마주한 과거의 내 모습에 받은 충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끈 다음, 다시 이불속에 파고든 채 (자고로 아침의 기상 알람은 3번 정도는 거절해 주는 것이 미덕이니까) 졸린 눈을 비비며 습관적으로 켠 페이스북 앱에 떠 있는 것은 9년 전의 내 사진이었다.
페이스북의 '과거의 오늘' 기능은 참 재미있는 기능이다. 스물여덟 정도부터는 거의 나이를 먹음에 따라 차이를 별로 못 느끼고 살아왔는데, 가끔씩 페이스북이라는 SNS가 보여주는 내 과거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아, 나 참 많이 변했구나' 하고 납득하게 되어버리니까.
여하튼, 페이스북은 내 눈 앞에 '봐봐, 너 이랬었어' 라며 몸무게가 40kg대 중반을 찍고 있던 9년 전의 내 모습을 무자비하게 들이댔고, 그것은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왠지 모를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보다는 거의 10kg가 불어난 내 몸을...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9년 전 사진이었으니 1년에 거의 1kg씩 쪘다고 보면 계산이 얼추 맞는 것 같다... 읍읍) 보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미용적인 의미만을 위해 다이어트를 결심한 것은 아니다. 비록 페이스북이 보내준 과거의 내 사진이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긴 했지만, 내가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느낀 계기가 또 하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상당히 이전부터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 19로부터 기인하여, 수술을 받는 등 개인적으로 이래저래 운동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던 탓일까. 올해 들어서의 나는 최근의 몇 년을 돌이켜 봤을 때, 이렇게 급격하게 살이 쪘던 적이 없을 정도로 살이 붙었다.
급격하게 살이 붙자 가장 먼저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아무래도 몇 년 동안 잘 입던 옷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배가 나오면서, 앉아있을 때마다 몇 년 간 잘 입고 다니던 바지가 갑자기 배를 조이기 시작하는 경험은 무척 불쾌했다. 한 번은 배의 접힌 부분을 파고드는 바지 훅 때문에 회사에서 도저히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아 점심시간에 점심을 건너뛰고 회사 근처의 의류 샵에 가서 품이 넉넉한 바지를 사서 갈아입은 적도 있었다.
일단 한 번 불어나기 시작한 살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때마침 수술, 휴직, 이어진 코로나 19로 인한 재택근무 등 모든 상황 또한 나의 운동량을 부족하게끔 하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체중은 불어나는데 비해 근육량은 부족해지자, 평소에 나를 단단히 지탱해주던 어떤 축이 망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같은 일을 해도 쉽게 지쳤다. 자꾸만 몸이 축축 처지고 두통이 느껴졌다. 예의 그 게으름이 살아났다. 자꾸만 누워있고 싶었다.
그렇게 변해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어느 정도 경각심은 가지고 있었으나, 알면서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모두가 비슷한 일을 겪고 있었고, 그 상황은 딱히 내가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서 타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어서 이 특수상황이 끝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그 단계가 내려가면서 그동안 이래저래 바빴던 탓에 가지 못했던 클라이밍을 갔던 날이었다. 사전에 3,40분 정도 몸을 충분히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굴 같은 케이브 벽에서 박쥐처럼 매달린 채 다음 홀드로 비틀어 손을 뻗다가 그만 허리를 삐끗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어려운 난이도의 문제도 아니었는데, 당하고 보니 너무도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한 2,3일 동안은 제대로 걷지도 못해 생활이 불편할 정도였다. 부상의 원인은 사실 간단했다. 운동을 게을리하는 동안 체지방이 늘어난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는데, 나를 지탱해줄 근육은 녹아버려서 그토록 쉽게 떨어져 다친 것이다.
근육이 잘 붙는 몸이 아님에도 내가 그동안 이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을 꾸준히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내 몸무게가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살이 찌니까 단순히 불편한 것을 넘어서서,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을 할 때에도 자칫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살을 빼야 할 필요성을 조금 더 절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최근의 나는 생활의 편의성과 원활한 취미생활을 위해 인생 최초의 다이어트를 경험하는 중이다. 비록 거창하게 '다이어트'라고 결심을 하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입이 짧아 빼빼 마른 인간으로 살아왔던 나로서는 평생 살면서 다이어트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노하우도 뭣도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나는 다만 나의 다이어트가 내가 살아오면서 친구나 지인들을 통해 간접 경험했던 것만큼 고통스럽지 않기 바랐다. (인생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고통이다. 어찌 거기에 나 자신에게 또 다른 고통을 추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나만의 다이어트 방법을 고안해냈다. 내가 스스로 이름 붙인 그것은 바로 '맹수의 식사법'이다.
1.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고프지 않을 땐 먹지 않는다.
2. 먹을 때는 허기를 달랠 정도로만 가볍게 먹는다.
왜 '맹수의 식사법'이라는 표현을 붙였는가 하면, 맹수들은 배고프지 않으면 굳이 사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위 포식자로서 인간과 맹수가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방금 배를 채웠거나, 아직 점심 식사의 여운이 남아 있는 사자는 눈 앞에 얼룩말이 뛰어다녀도 그냥 쳐다만 볼 뿐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어떤가. 배가 고파도 먹고, 입이 심심해도 먹는다. 밥을 먹고도 디저트를 먹으며, 점심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저녁때 뭐 먹지'를 생각하며, 심지어 냉장고나 창고에 나중에 먹을 것도 잔뜩 저장해둔다.
인간이 밥을 먹는 기준이 동물들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생존을 위한 본능에 따라먹는다면 인간은 인간으로서 사회적으로 정해진 '삼시세끼'라는 규칙에 따라서 먹는다. 배고픔이라는 본능보다 '이 시간에는 밥을 먹어야 해'라는 사회적 규칙이 우선하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에게 때로는 식사는 단순히 밥을 먹는다는 것 그 이상의 사회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배고프지 않아도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억지로 밥을 먹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한다.
그러나 사실, 평소 아침을 먹지 않고 하루 두 끼만 먹어온 직장인으로서의 내 식사 패턴을 차분히 돌아보았을 때. 약속이 있어서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날은 저녁때까지 배가 고프지 않은 적도 종종 있는 편이었다. (아마도 내가 직장과 가까이 살면서 차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다른 직장인에 비해 출/퇴근 시 소모되는 에너지가 현저히 적어서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럴 때도 나는 '이따가 잠들기 전에 배고플지도 모르니까' 하는 마음으로 굳이 저녁을 챙겨 먹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있고,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내가 굳이 배가 고프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래도 점심은 먹어야지',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밥을 먹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루 두 끼 안 먹는다고 뭐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라고, 왜 무조건 다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걸까. 그동안 나 스스로 너무 아무런 의심도 없이 꾸준히 하루 두 끼를 먹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맹수를 본받기로 결심했다. 나는 정말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떤 의도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고 해서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이 내게 고문같이 느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게 있어서 다이어트는 나 자신을 돌보는 과정이어야 한다. 배고프다고 해서 막 '먹으면 살이 찌니까 먹으면 안 돼!' 하면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힘들게 하는 것보다도, '아까 좀 많이 먹지 않았나? 지금 배 별로 안고픈데.. 두 시간만 있으면 잘 거니까 그냥 요구르트 같은 걸로 가볍게 요기나 할까?' 라던가, '이따 배가 좀 고파질 것 같으니까 지금 밥을 해 먹고, 운동을 좀 하자.' 라던가. 그렇게 스스로의 상태를 체크하고, 내 몸과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어야 했다. 맹수들이 그러하듯이.
결국 '맹수의 식사법'의 핵심은 이것이 아닐까.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 내가 획득한 열량과, 움직임으로 소모하는 열량의 총량을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 밥 먹으라고 옆에서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는데, 굳이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아도 될 자유를 획득하는 것.
여태까지 이렇게 호기롭게 말은 했지만 사실은 아직 시작한 지 정말 얼마 안 됐고... 의외로 할만하다. 예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몇 번 시도해봤던 간헐적 단식 같은 경우는 지켜야 할 규칙이 철저하고 먹어야 할 양도 제한되어 있어서 답답한 점도 많았는데 이 방식은 기준이 나에게 있으니, 한결 편하다. 어떤 걸 먹더라도 적당히 배부를 정도로만 먹으면 된다는 단순한 원칙만 지키면 된다. 적당히 배부를 정도로만 먹는 이유는 몸을 가볍게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치 언제고 다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속이 부대끼지 않게 식사량을 조절하는 맹수들처럼 말이다.
애초에 나는 배가 부른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배가 적당히 부를 때는 금방 2,3시간 뒤면 포만감이 사라지고 위장이 편안하게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 느낌이 들지만, 어쩌다 너무 배가 부르게 과식을 했을 때면 위장이 쉬어야 할 시간에 쉬지 못하고 계속 과잉 노동을 하는 느낌이 든다. (전자가 3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 식당의 직원이라면, 후자는 아침 11시부터 밤 9시까지 대기를 1시간씩 해가며 먹어야 하는 '골목식당' 출연 맛집의 직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적당한 포만감을 즐기며, 배가 고프면 먹고, 안 고프면 적당히 스킵할 수도 있는 그런 얽매이지 않는 식사를 하고 싶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
그렇게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일반식을 하고, 한 끼는 가볍게 먹거나 건너뛰어도 지장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사할 기회가 줄어드니 왠지 한 번 먹더라도 더 좋은 것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식사의 양과, 섭취하는 영양분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내가 밥을 먹을 때 유일하게 신경 쓰는 부분인 단백질 섭취라던지..)
요즘은.. 주말에는 거의 1일 1식으로 아침에 가볍게 요거트나 샌드위치 반쪽을 먹고, 4,5시쯤 한 끼를 먹는 것 같다. 평일에는 점심 식사량을 조금 가볍게 먹게 되었더니 4,5시쯤 허기가 지면 견과류를 조금 챙겨 먹는다. 그러다 보면 저녁때 배가 고픈 날도 있고, 배가 고프지 않은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안 먹어도 되고, 과일이나 샐러드로 대체해도 괜찮은 수준인 것 같다. (단, 운동하는 날은 운동할 것을 생각해서 가급적 밥 형태로 챙겨 먹는 편이다.)
이렇게 조금 지내보니 평소에 나는 생각보다 많이 안 움직이고, 생각보다 많이 안 먹어도 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내가 맹수가 되는 것 같다(...). 삼시세끼 규범대로 먹으면 스스로의 배고픔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배고플 때 먹는다'로 기준을 바꾸면 계속 자신의 허기진 상태를 체크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중간중간 적당히 배고픈 상태의 나는 좀 예민한.. 맹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도 나는 가벼운 몸과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맹수의 식사법'을 계속 실천해보려고 한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타락해서 나타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살은 아직 많이 안 빠졌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뭔가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직장인이라면 스마트폰에 하나쯤은 짤로 저장하고 있을 미생의 이 감명 깊은 장면을 다시 보면서, 오늘도 생각한다. 어쩌면 몸을 가볍게 유지하는 것도, 체력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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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자주 먹는다는 점, 한 번 먹을 때 새 모이만큼 입 짧게 먹는다는 점,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에서 '새의 식사'라고 표현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새는 먹자마자 비우는 동물 아니던가. 그걸 그대로 적용할 순 없지.
▼ '클라이밍'이 대체 어떤 운동이기에 이 사람이 생애 최초로 살을 빼려고 결심한 건지 궁금하시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