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편에 앉은 상대가 눈을 반짝, 뜬다. 의외라는 듯, 흥미를 보이며 바싹 기대어 앉는다.
나로선 익숙한 반응이다. 취미 겸, 건강을 목적으로 시작한 운동인데, 어쩐지 내 비리비리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매번 말할 때마다 상대가 누구든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들에 비해 운동 신경이 둔해서 고무줄놀이나 바깥에서 놀 때에는 늘 '깍두기'를 맡았다. (그 시절에는 그나마 그런 거라도 있었지, 조금만 다르거나 뒤처지면 바로 ‘도태’시키는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분명히 왕따가 됐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28살 무렵인가부터,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쯤부터 본격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매일 앉아있는 것에 지겨움을 느끼게 되었고 건강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가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자극이 되었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갖춰졌을 게 분명한 그의 건강한 마인드를 닮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운동 유목민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가장 처음 시도했던 것은 필라테스였다. 어릴 적부터 상체를 숙여 내 발끝을 스스로 잡을 수 없는 뻣뻣한 몸이 콤플렉스였는데, 필라테스를 통해 몸의 근육량도 키우면서 몸을 유연하게 만들고 싶었다. 거의 한 달치 월급에 맞먹는 비싼 돈을 들여 개인 강습을 끊었건만.. 나는 해도 해도 굳은 몸을 끝내 다시 유연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래 앉아있는데만 익숙했던지라, 보통 ‘햄스트링’이라 부르는 내 뒷다리 근육은 이미 상당히 굳어 있고, 짧아진 상태였다. 선생님은 내 하체 근육을 늘리는데 집중했지만 생활 습관으로 인해 짧아진 근육을 늘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체 수업과 개인 강습을 오가며 고군분투하던 나는 결국 1년을 해도 나아지지 못하는 몸 상태를 극복하지 못했고, 필라테스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어 두 번째로 시도했던 것은 EMS 트레이닝이었다. 몸에 쫄쫄이와 물에 적신 슈트를 입고 전기 자극을 주어 PT 동작을 똑같이 소화해도 1번 동작하면 그 동작을 6번 반복하는 효과가 있다는 홍보에, 하루에 20분만 투자하면 된다는 홍보에 혹해서 등록했었다. (실제로는 전후 탈의 시간때문에 거의 1시간은 잡아먹었지만.)
오로지 ‘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삶은 계란, 두부에 닭가슴살만 먹어가며, 일주일에 2,3번씩 출근길에 있는 EMS 트레이닝 센터에 들려 운동을 계속했지만 워낙 운동을 안 해 버릇하던 몸이라 그런지 6개월을 넘게 계속해도 그다지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결국 나는 이 운동도 그만두었다. 아무리 시간이 짧다 하더라도, 특정 부위에 근육을 만들 목적으로 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PT는 내게 매력 있는 운동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너무 지겨운 게 문제였다.
그러다, 어느 명절 전 주말. 뭔가 할 것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클라이밍 일일 강습 모집 글을 보게 되었다. 클라이밍. 암벽등반이라.. 사실 뭐 엄청 비장한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니었고. 명절에 만날 사람 하나, 갈 곳 하나 없는 내 처지가 마냥 외롭고 심심해서, ‘이거라도 해볼까?’하는 심경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처음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해 본 클라이밍의 첫인상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지하에 위치한 암장에선 퀴퀴한 냄새가 났고, 발은 꽉 조여서 아팠고, 정성스레 네일아트를 한 손은 하얗게 텄으며, 고작 1시간 남짓한 체험을 끝냈을 뿐인데 온 몸에 힘이 빠져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상쾌했다.
다른 운동을 할 땐 내내 인상을 쓰고,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만 계속했던 것 같은데. 클라이밍을 할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벽에 온 힘을 다해 매달린 채, ‘이다음에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지?’만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훅, 지나가 버린 것이다. 다만 경이로움에 가득 차, 어느덧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자문하고 있었다.
순수한 몰입, 그 후의 개운함. 내가 이런 걸 마지막으로 느껴봤던 게 언제였지?
공들여 한 네일아트가 망가졌다거나, 손바닥의 껍질이 하얗게 일어나 벗겨지는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잊게 하는 순수한 몰입을 경험한 나는 그다음 주에 바로 클라이밍 정기 강습을 신청했다. 그 후 어느덧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결코 질리는 일 없이 이 운동을 계속해 오고 있는 중이다.
중간에 부상으로 인해 3개월 내지 6개월 정도 잠시 중단했던 적도 있지만, 그 날 이후부터 그래도 별 일이 없다면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암장에 가 벽에 매달려 왔다. 사실, 클라이머로서의 나의 실력은 내가 투자한 시간만큼 그렇게 출중하지는 못하다. 타고난 체력이 약한 탓이다. 이 운동은 투입한 시간과 숙련도가 꼭 더 나은 레벨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각자 타고난 신체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부분도 크기 때문이다. 즉, 나보다 이 운동을 늦게 시작한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높은 난이도를 소화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토록 불공평하고,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불리하기까지 한데도, 내가 좌절감에 지지 않고 이 운동을 토끼와 맞서는 거북이처럼 꾸준히 지속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내 맞은편에 앉은 상대처럼, 내게는 ‘왜 하필 클라이밍이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위험하지 않냐고, 무섭지 않냐고. 너무 거친 운동인 것은 아니냐고. 그냥 벽을 올라가는 것일 뿐인데 뭐가 재미있어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그런 질문들에, 곰곰이 생각해서 내놓는 나의 답은 비교적 한결같았다.
"이 운동은 저한테 ‘문제’를 내주거든요.. 어른이 되면 누가 문제를 내주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건 제가 풀 수 있는 ‘문제’를 줘서 좋아요. 저는 그냥 집중해서 ‘답’만 찾으면 되니까요."
30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고 나서부터였을까. 인생에 풀리지 않는 문제가 너무 많다고 느꼈던 것이. 아니, 애초에 ‘문제’라는 게 있는지도 의문이다. 졸업, 취업, 연애, 결혼, 출산 등.. 사회에서 내게 주는 것들은 내 역량으로 풀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수행해야 할 ‘퀘스트’에 가깝지 않던가. 어느 것 하나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낼 수는 없는 인생의 문제들에 부딪히며, 인생의 복잡하고 답답한 면을 깨닫게 되는. 내게 있어 30대 초반은 그런 것들을 깨달아 나가는 방황의 시기였다. 학창 시절, 국영수 문제집을 풀듯이 하나하나 동그라미 쳐나갈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엔 많지 않았다.
사실, 학창 시절에 앉은자리에서 공부를 해 나가며 문제집을 풀어가는 것은 힘들긴 했지만 어느 정도 삶에 활력을 주는 경험이기도 했다. 어찌 됐든 맞히면 동그라미를 치면 될 것이었고, 틀리면 긋고, 다시 풀어서 맞히면 찍 그어진 빗금을 삼각형이나 별표로 수정하여 0.5점을 추가하는 일련의 경험들은 오히려 명확한 성취의 쾌감을 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돼서는 참 애매했다. 이게 성취인지, 아닌지. 내 기준에서는 성취인 것 같은데 사회적인 기준에서는 아닌 것도 같고. ‘맞혔다!’고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 것도, ‘틀렸다’고 비정하게 금을 찍 그어버릴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기준에 갇혀 버렸다. 나는 나 스스로를 응원하고 칭찬할 수단을 찾을 수 없었다. 내 기준에서는 엄청난 성취여도, SNS로 연결된 친구들의 화려한 삶에 비하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운동을 할 때에도 그랬다. 필라테스나 PT 수업을 받을 때 분명 내 몸은 분명 최초 수업을 받을 때보다 조금은 더 유연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필라테스 한 지 얼마 안 되셨냐, 스트레칭 많이 하셔야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다시 기초 중의 기초로 위치가 ‘리셋’된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다른 수강생들에 비해 한참이나 유연성과 근력이 딸리는 내 모습을 어쩔 수 없이 새롭게 자각해 버린 것이다. 물론 그분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그때마다 나는 내가 절대적인 기준에서 봤을 땐 어쩔 수 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절망했다. 적어도 그 운동들을 할 땐, 성취감이나 뿌듯함, ‘더 잘해야겠다’는 의욕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클라이밍은 달랐다.
처음 접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 운동의 룰은 지극히 단순했다.
시작 홀드에 두 손을 모아 출발하고, 완등 홀드에 두 손을 모아 대고 3초간 버틴다.
이 운동은 그저, 시작 지점에서 완등 지점까지 나의 머리와 근력을 이용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도착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시작 - 완등 홀드의 짝으로 지어진 코스들을, 암장에서는 ‘문제’라 불렀다. 문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답도 있다는 것이다. 완등 홀드에 손을 대고 3초를 모아 버틴 그 순간을, 암장에서는 ‘풀었다!’고 불렀다. 더 재미있는 것은, 누군가의 정답이 반드시 나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신체 조건이 다르기에. 키가 나보다 20cm 이상 크고, 근력이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가 쉽게 홀드에 손을 뻗어 푸는 문제는, 내게는 공중에서 추락할 각오로 몸을 날려 점프를 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분명히 똑같은 문제인데, 사람에 따라서 체감 난이도가 달랐다. 그리고 암장에 방문하는 클라이머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 방법이 맞았지만, 너에게는 다를 수 있다. 이렇게 한 번 풀어보라’고 나와 함께 나에게 맞는 정답을 진지하게 고민해 주는 그들은 자신에 대해서도 남에 대해서도 절대 단정하는 법이 없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다르고, 같은 문제지만 여러 가지의 접근법이 필요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면 그건 ‘나이스!’ 한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내가 이 운동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나에게 맞는 정답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방법으로, 성실하게. 그 어떤 누구도 대신 풀어줄 수 없는 당면한 문제를 오로지 나 자신의 신체적 능력과 머리로 풀어나간다는 것은. 어른이 된 후로 내가 인생에서 부딪혔던 그 어떤 ‘문제’들 보다도 무척 명쾌하게 느껴졌다. 최근 내 인생에 이렇게 ‘잘 풀리는’ 문제가 이것밖에 더 있었던가?
클라이밍을 처음 체험했던 날의 상쾌한 기분은, 암장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마다 다시 비슷한 느낌으로 재생되었다.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최소 한 문제는 풀 수 있었고, 그 날 그 날마다 언제나 소소한 성취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풀지 못하던 난이도의 문제를 풀어내거나, 목표했던 만큼의 문제를 푼 날은 그 성취의 느낌이 좀 더 강렬하게 찾아오기도 했다.
이런 소소한 성취의 경험들은, 자연스레 나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다른 운동을 할 때, 나는 스스로를 격려해주지 않았다. 필라테스나 PT를 할 때의 나는 나 자신을 마치 안쓰러운 타인을 바라보듯이 봤다. 남들이 하는 간단한 동작도 힘겨워하고, 절반도 따라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하기 싫다, 언제 끝나나’하는 생각을 하며 버텨내고 있는 내 모습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모습으로부터는 어떤 긍정적인 에너지도 얻을 수 없었고, 하루 일과 중 운동을 하는 내 모습은 그저 ‘빨리 감기’하여 넘겨버리고 싶은 창피한 모습일 뿐이었다. 운동을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복기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클라이밍은 달랐다. 이 운동에 있어서 변수는 오직 나뿐이다.‘벽’과 벽에 붙어 있는 홀드는 변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나 자신뿐이며, 벽에 매달린 순간 내가 이겨내고 견뎌야 하는 것은 온전히 스스로의 무게다. 머리에서 생각한 동작을 구현할 수 있는 근력과, 루트를 파악할 수 있는 두뇌, 위험하고 다급한 순간에 순간적으로 뻗어나가는 순발력 등. 모든 키는 내가 쥐고 있었다.
벽과 마주한 순간에는 오직 벽과 나 자신만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타고난 체력이나 근지구력이 강한 타입이 아니었고, 순발력이 좋은 타입도 아니었다. 다만 균형감각이 좋고 몸이 가벼웠으며, 필요한 동작을 습득하는 센스가 좋은 타입이었다. 하루에 벽에 매달려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시간 정도가 한계였다. 아무리 중간에 무언가를 먹고 체력을 보충한다 해도, 그 날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내 몸이 낼 수 있는 출력이 시간대별로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첫 한 시간 동안 내가 쓸 수 있는 체력이 95%라면, 운동을 두 시간 지속한 뒤 내 몸이 구현할 수 있는 최대의 출력은 70%라는 식으로.)
전날 풀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면, 머릿속으로 계속 그 문제에 붙어 있는 내 모습을 반복 재생하며 복기했다. 떨어진 지점에서 문제가 뭐였는지, ‘이렇게 하면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순발력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허벅지 근력이 부족했던 게 문제였을까? 그 부분에서 다른 홀드에 발을 걸어볼까, 아니면 벽을 짚어서 균형을 잡아볼까? 아니면 단순히 힘이 빠졌던 게 문제였나? 그러면 다음에 가서 첫 문제로 풀어봐야겠다.’
뭐 이런 식으로, 나는 운동을 하는 내 모습과 조금씩 마주하기 시작했다. 매일의 소소한 성취가 쌓이자, 자신감이 되었고, 그 자신감은 더 윗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용기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평소 승부욕이 없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클라이밍에 있어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전의 나보다는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져야 했고, 그러기 위해 때로는 클라이밍과 별개로 체력 단련을 위해 팔 굽혀 펴기나 문틀 철봉 등 다른 운동을 스스로 찾아서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은, 내가 클라이밍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꼭 소소하게나마 그 결과를 보여주었다.내가 이 운동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나는 느리지만 늘 조금씩 확실하게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이렇듯 가시적인 성과로서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비록 완등의 문턱에서 수십 번 좌절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하고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해야 할 수밖에 없는 날이 있다 해도.
그런 순간조차 결코 이 운동은 내게 패배감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순간조차 내가 느끼는 것은 ‘오늘 여기까지 왔으니, 다음번에 와서 하면 될 거야’라는 든든한 ‘빽’ 같은 희망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거의 항상 현실화된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결과로, 이 운동은 거북이처럼 한없이 느리고 답답할 지라도, 매일 내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준다. 그리고 난 아직 클라이밍만큼 나 스스로를 끝없이 긍정하고 북돋아주는 운동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인생에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많다.그러나 클라이밍엔 내가 몸과 정신을 총동원하여 풀어낼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복잡한 기술을 쓰지 않아도, 무리하지 않아도, 겁쟁이인 나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직 나 자신과 마주한 눈 앞의 벽에만 집중해서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무리하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로 가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첫 시작 홀드를 잡고 잠시 심호흡을 한다.
오늘 하루도, 나에게 작은 성취를 선물하기 위함이다.
클라이밍을 하며 사실 가장 크게 상한 건 손보다는 발이다. 암벽화 때문에 터진 물집이 마를 날 없는 못난이 발이지만 나의 반려조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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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을 하면서 따로 식단 조절이나 체중관리를 하진 않았다. 사실 저체중이었던 내 몸무게는 어느덧 무럭무럭 숫자를 키워(?)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2016년에 선물 받은 인바디가 되는 스마트 체중계로 꾸준히 체중을 측정하던 3년 동안 클라이밍을 계속한 나는 어제 드디어 역사적으로 ‘표준 근육형’의 몸을 획득했다!
사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엄청 다른 점도 모르겠고 ‘표준 근육형’이 되었다고 딱히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몇 년간 정직하게 운동에 임한 결과 같아서 뿌듯하다. 앞으로도 더 건강하게 땀 흘리며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