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Aug 08. 2020

손가락에 새긴 resist

문신까지는 못 했지만


나의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에는 항상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다.

운동할 때를 제외하고 한 시도 몸에서 떼어두지 않는 그 반지에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적혀 있다.


resist



이것은 내가 늘 부적처럼 끼고 다니는 이 반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가져봤던 액세서리는, 7살 때 아버지와 이혼한 아버지가 집을 나가면서 채워주고 간 금 목걸이였다. 작은 볼 모양의 펜던트가 달려 있는 금 목걸이. 어머니가 하고 있는 거라면 그저 막연히 다 좋아 보이기만 했던 어린 날의 나는 그 날의 급작스러운 선물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저 좋다고 받았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날 이후로 어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었고, 결국 그 목걸이는 어머니가 내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내게 자신의 일부를 맡기고 갔다고 생각했다. 비록 어머니는 떠났지만, 거울 속에서 내 목 언저리에 반짝거리는 그 목걸이를 볼 때면 나는 다시금 어머니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곤 했으니까. 그 목걸이는 이후 친척 집에 얹혀살며 몇 번의 이사를 거듭하던 끝에 어수선한 틈에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처음으로 내가 가져 본 ‘의미’를 가진 물건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릴 때부터 나는 유독 작고, 반짝이는 것들을 좋아했다. 초등학생일 때에도 나는 꼭 목걸이나 팔찌를 하고 다녔다. 조금 특이한 펜던트나 아이템이 있으면 용돈을 아껴서 산 뒤, 나만의 보석함에 넣어두곤 했다. 중학생 때부터는 유행에 편승하여, 좋아하는 드라마 주인공이 했던 아이템을 따라서 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 나에게 있어서 액세서리는 그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목걸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착용하며 내가 바랐던 것은 ‘예뻐 보이는’것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액세서리를 고를 때, 그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것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늘 하고 다니던 이니셜 목걸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에는 이렇게 자신에게 어떤 소중한 의미를 담고 늘 소지하고 있는 상징적인 아이템을 ‘호크룩스’라고 지칭한다. 호크룩스’는 사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나오는 아이템으로, ‘영혼의 일부를 모종의 어둠의 마법으로 담아낸 특정한 물체’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 개념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치 영혼이라도 들어 있는 듯 늘 소지하는 애용품’을 뜻하는 말로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미 액세서리를 ‘호크룩스’처럼 사용했던 셈이다. 여러 개의 액세서리를 심미적 기준에 따라 돌려 가며 착용하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잘 표현하고 담아낼 수 있는 하나의 액세서리를 주변인의 눈에 익을 때까지 진득하게 착용하는 것을 선호해 왔으니까.


 최근에는 늘 착용하고 다니는 resist 반지가 나의 호크룩스다. 레터링 반지 자체가 특이해서인지, 주로 사용하는 오른손에 위치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곧잘 모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종종 주변인들의 관심을 받는다.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회의 중에도. 다른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게 마련인 내 오른손 중지에서 빛나는 단어를 읽어보려고 애쓰며, 내 손가락 위에 놓인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love’나 ‘peace’ 같은, 잘 읽히고 평범한 단어가 아닌 ‘resist’. 그 의미를 알려주면 그들은 의아해한다. 왜 하필 그런 단어를 손가락에 끼우고 다니냐고.


 그 이유는 물론, 단순히 ‘예뻐서’는 아니다. 그저 그 단어가 내가 살아온 삶과, 살아가야 할 지향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믿기에 꼭 손에 새기고 싶었던 것 뿐이다.






 사실 처음엔, 액세서리가 아니라 아예 타투를 새기고 싶었다. 타투를 하고 싶었던 부위는 내 손, 그중에서도 손가락이었다.


 나는 내 손을 무척 좋아한다. 운동을 할 때나 악기를 연주할 때, 키보드를 두드릴 때, 그림을 그릴 때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손을 보면 잘 기능해 주는 손의 유용함에 늘 감탄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가장 좋아하는 액세서리의 유형도 ‘반지’나 팔찌’다. 목걸이, 귀걸이, 피어싱 등은 착용 당사자인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반지’나 ‘팔찌’는 착용한 내 눈에 바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30대가 된 뒤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어느 날 갑자기 문득 타투가 하고 싶어 졌다. 타투는 액세서리와는 달리 한 번 새기면 쉽게 지울 수 없기에 의미를 담든 글씨를 새기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저런 단어와 기호들을 생각해 보다 타투이스트를 찾아갔다.



내가 새기고 싶었던 타투 위치.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QAF의 브라이언 키니가 가운데 손가락에 RESIST를 새긴 것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타투이스트는 내가 원하는 대로 손가락에 타투를 새길 수는 있지만, 손은 자주 사용하는 부위인 데다 자주 씻어야 하기 때문에 마찰이 심해서 문신이 빨리, 지저분하게 지워질 수 있다고 만류했다. 이런저런 사항을 고려하여, 나는 ‘문신’이라는 옵션은 포기했다.


 그렇지만, 나는 기어코 내 손에 뭔가를 새기고 싶었다. 30대 이전을 살아온 내 삶의 방식과, 이후로도 살아갈 삶의 모토를 담은 하나의 단어를 꼭 내 눈에 잘 보이는 손가락에 새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찾아보다, 결국 나는 레터링 반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타투는 지워지고 흐려질 수 있지만, 어쨌든 액세서리 형태로 끼워두면 어찌 됐든 내 눈에도 잘 보이고, 타투를 하는 효과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주문 제작으로 지금의 호크룩스 반지를 만나게 되었다.



영롱한 자태! i와 t에포인트를 두었다.





 왜 하고 많은 단어들 중에 ‘resist’였나?


사실, 고민을 좀 했다. 누구나 정규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영단어장을 뒤적이다, 마음속에 ‘오 이거 좀 멋있는데?’하고 새겨둔 단어 한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내 경우, 보고 ‘멋지다’고 생각해서 마음 속에 담아둔 단어들은 다음과 같았다.



faith (신념)

liberty (자유)

lovable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포인트인 게 마음에 들었다)

brilliant (찬란한)

resist (저항하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단어를 다 만들어서 다섯 손가락에 다 주렁주렁 달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예산도 한정적이었을뿐더러, 기껏 주문제작까지 하는 만큼 ‘임팩트’가 있는 한 단어를 잘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단어들 중 faith와 resist를 두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다, ‘resist’로 고르게 되었다.


 사실 두 단어 다 평소 나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상호 연관되는 단어이긴 했다. 살면서 나는 한 번도 ‘고분고분’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만큼 나는 어릴 때부터 뜻이 무척 완고 했고, 소위 말하는 ‘반골’ 기질이 강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내향적이다가도, 불합리한 요구나 상황에 부딪히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솟아나는지 피가 끓어올라 죽어라 대들곤 했다. 평소에는 미지근한 온도였던 마음이 막상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순식간에 화르륵 100도씨로 끓어오르곤 했다. 상대가 선생님이어도, 학장이어도, 상사여도, 심지어는 대통령이어도 상관없었다. 그 대상이 누구든 간에, 나는 나를 누르고 순응시키려는 고압적인 모든 태도에 발작했고, 그럴수록 더욱 거칠게 반항하곤 했다. 마치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언제든 건드리기만 하면 뾰족하게 가시를 곤두세울 준비가 되어 있는 고슴도치 같았다.




요시토모 나라 같았던 나의 학창시절. (실제로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라 에코백을 들고 다녔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그렇게 일일이 모든 불의에 화내며 살다 보면 인생이 너무 피곤하지 않느냐며. 적당히 모른 척하면서, 순응하면서 살아갈 순 없는 거냐고.


 확실히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피곤한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에든 영향을 받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차분한 사람들이 부러워서, ‘끓는점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기에 ‘나’였다. 불의에 순응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침묵하지 않고, 이해와 납득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저항하고 해답을 요구하는 것. 나는 그렇게 살 때 마음이 가장 편했고, 설사 그런 내 캐릭터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그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 이런 저항의 정신이 없었다면, 나는 살면서 하고 싶은 말도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모든 것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스르고 저항하려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부당한 인사 발령을 냈던 이전 회사를 퇴사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부당한 요구를 했던 애인과 헤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며, 지금의 삶을 누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게 있어 ‘저항’은 곧 삶의 태도이자 ‘노력’ 그 자체였다.



 나를 까칠하게 하는 이 ‘저항’의 정신이 결국은 지금의 ‘나’라는 사람의 매력도 만든 게 아닐까? 내가 좀 고분고분하고 순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막상 내가 그렇게 변하면 무색무취의 나에게 더 이상 인간적인 매력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나조차도!) 그렇기에 어찌 됐든 나는 나의 저항 정신을, 그로부터 비롯된 ‘까칠함’이라는 특성을 스스로 더욱 사랑하기로 했다.



 30대가 되고, 회사 생활도 어느덧 7년 차 중반을 넘어가면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각종 ‘후려치기’를 당할 때가 있다. ‘어린애도 아니고’ ‘이젠 그럴 나이 아니잖아’라는 말로 나를 후려치며, 나의 저항을 ‘철이 덜 들어서 그런다’는 말로 후려치고,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타성에 젖어 문득 ‘이대로가 좋은 게 아닐까’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하면서 스스로를 놓으려는 순간들에 종종 맞닥뜨리게 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졌던 뾰족함과 예리함을 잃고 무디어져 가고 싶지 않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유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내게 부당한 요구를 할 때, 힘 빠진 호랑이처럼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고 고분고분 대답하고 속으로 삭히고 싶진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손가락에 resist라는 단어를 새겼다. 사회와, 지인들이 내게 굴종을 요구할 때 스스로의 손을 보며 항거의 정신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부당하면 부당하다 얘기하고, 부딪히고 싶을 땐 한 번 부딪혀 보라고. 눈치 살살 보며 비굴하게 살지 말고,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가 되어서도 화낼 일에는 버럭버럭 화를 내고 저항하는 본투비 레지스탕스 할머니가 되자고.


그렇게 나는 매일 외출 전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며 다짐한다. 오늘 하루도 각종 후려치기에 굴복하지 말고 나다운 하루를 보내자고!



+


 반지를 맞출 때 일부러 오른손 중지 사이즈를 골랐다. 앞으로도 새상이 나에게 시련을 준다던가, 굴복을 요구할 경우에는 거침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일 것이다!




끝내 하지 못한 손가락 타투에 대한 아쉬움은 가끔씩 타투 스티커를 붙이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 생각하면 안 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