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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Oct 21. 2020

아무것도 아닌 내가 클라이밍 에세이를 출간한 이유

운동은 잘 못해도 글은 쓸 수 있잖아요


2020년 10월 20일.


나는 아주 오래도록 이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날은 이 세상에 나의 첫 책이 출간된 날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작은 나의 책'이 생겼다!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가 출간된 지 이제 막 하루가 지났다. 주변의 반응은 아직은 조용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책의 가장 첫 장에도 기재해 두었듯이 나는 친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암장에서 오다가다 마주치며 인사하는 적당한 친분은 있었지만, 올여름에 수술을 받으면서부터 한동안 암장에 나가지 않았던 데다가,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운동 시간을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시간대로 조정하면서 가뜩이나 아싸였던 나는 더욱 '아싸'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번에 책을 출간했다고 해서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그들에게 뜬금없이 연락하여 '나.. 사실 이번에 책 냈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도 조금 당황스럽지 않을까? 마치 10년 만에 연락해서 '나, 다음 달에 결혼해'라고 말하는 고등학교 동창을 볼 때처럼 말이다.


 평소 별도의 SNS를 하지 않고,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지내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나로서는 그저 이렇게 브런치에 출간 소식을 알리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닿고 인연이 닿는 사람들에게 내 책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이 상황에 어느 정도 주눅이 들기도 한다. 요즘 시대에 책은 순수하게 '책'으로서만 읽히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특정 저자에 대한 호감으로, 팬심으로 소장용으로 책을 구매하기도 한다. 책의 내용이 좋아서 사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 저자가 내가 아는 사람이라,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 책을 사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어떤 책을 마케팅할 때, 해당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SNS 상에서 얼마나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지, 브런치 글 조회수가 얼마를 기록했는지 등을 꼭 같이 강조하는 것 같다.


 새삼 이런 상황에서, 나 같은 은둔형 외톨이의 책이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 아닐까? 아무리 봐도, 출판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에게는 저자 마케팅으로 활용할만한 요소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나는 클라이밍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실력으로 유명한 '네임드'도 아니고, 유명한 클라이밍 유튜버인 것도 아니다. 그냥 암장을 오며 가는 수많은 회원 중의 하나일 뿐이다. 5년이나 암장에 다녔는데, 늘 제자리를 맴도는 실력 때문인지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암장에서 나의 존재감은 공기 중을 떠다니는 초크 가루만큼이나 희미하고, 최근에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그랬기에 작년부터 한창 운동 에세이가 서점에 쏟아지고 있을 때, 나는 그저 '왜 아무도 클라이밍에 대한 에세이는 안 쓰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을 뿐, 내가 그 책을 직접 쓰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암장에서 나는 너무도 하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정말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 그동안 아무도 쓰지 않았던 클라이밍 에세이를 내게 되었는데, 그게 클라이머들이 흔히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조차 없는, 실력도 평범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니. 왠지 기존에 운동하는 나를 알던 사람들도, 앞으로 이 책을 통해 나를 처음 접하게 될 사람들도, 이 책을 보자마자 "클라이밍에 대한 첫 에세이를 낸 게 왜 하필이면 이런 평범한 사람이야?"라는 의문을 갖게 될 것 같았다. 사실, 이 책을 쓰던 초반에는 나도 자꾸만 '대체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을 하며 땅굴을 파고 들어가게 되는 스스로를 설득하고자 애쓰며 글을 썼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막상 글을 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클라이밍을 멋지게 잘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볼 수 있잖아. 인스타그램 영상이든, 유튜브든, 대회 영상이든. 오히려 나처럼 평범하고 고만고만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보면, 그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온라인 상에서 접할 수 있는 클라이밍 콘텐츠들은 분명 화려하고 멋지다. 클라이머들은 SNS에 본인이 등반하던 중 찍힌 가장 멋지고 아찔한 사진이나 영상만을 편집해서 올려두기 때문이다. 그런 '최상의 결과물'들인 영상들을 보다 보면 오히려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영상 속 클라이머들의 동작이 마치 묘기처럼 멋지게 보이면 보일수록, 감탄스러운 기분이 들면 들수록, 마치 그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은 영영 할 수 없는 운동처럼 느껴지게끔 하는..보이지 않는 진입 장벽이 좀 더 두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클라이밍을 잘하는 사람들의 콘텐츠들은 얼마든지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반면, 그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들의 근처에서 나처럼 혼자서 낑낑대며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조명받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마치 암장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상을 바꿔보면, 오히려 암장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렇게 궁금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저렇게 꾸준히 클라이밍을 계속하는 거지?"


잘하는 사람이 계속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잘하니까 더 재밌어지고 재밌으니까 좋아서 꾸준히 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보다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처럼 이 운동을 잘하지 못해서 실력이 항상 제자리걸음인 사람이 이렇게 꾸준히 이 운동을 하는 것은 확실히 드문 일이다. 대부분 실력의 정체기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 같은 부류의 '못 하는' 사람들에 대해 신기해하고, 그 심리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잘해야만 하나?
꼭 그 분야에서 어떤 경지를 이룬 사람만이 책을 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못하는 사람 이야기도 한 번쯤은 들어볼 수 있잖아.




 그런 생각을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고, 그때부터는 '내가 클라이밍에 대한 책을 쓸 자격이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서 해방되어 진심으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글로 진솔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운동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읽다 보면 이 책 속의 화자를 왠지 모르게 응원하고 싶어지게끔 만들 수 있도록  왠지 이 사람이 계속 어느 정도는 못했으면 좋겠어 내 이야기를 최대한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빨강머리 그분처럼.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엄청나게 공부를 열심히 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누구보다도 많은 문제집을 풀었고, 수업시간에 한 번도 존 적이 없으며,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늘 마지막까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공부하던 친구였다.


 그렇지만 정작 시험만 보면, 늘 공부하기 싫어서 꾀를 부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야자를 제치고 탱자탱자 놀다가 벼락치기로 시험을 봤던 나보다도 성적이 낮게 나왔다. 반 친구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저 친구는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인지. 그러고보면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그 친구는 어떤 결과를 받고서도 한결같이 꾸준히 공부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시험을 볼 때마다 성적이 떨어져도, 그 친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성실하게 야간 자율학습에 몰두했다. 어쩌다 시험을 한번 망치면 한동안 시험지는 꼴도 보기 싫어하던 유리멘탈이었던 내게, 그 친구의 그런 묵묵함과 성실함은 왠지 모를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묵묵히 앉아서 공부하던 그 친구의 등을 보며, 나는 항상 그 친구가 다음번에는 꼭 시험을 잘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마지막까지 시험운은 없었어서, 수능도 망쳐버리고 말았지만.


 그러나, 비록 시험운도 없었고, 공부 머리는 없었을지언정 나는 그 친구가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서 그 꾸준하고 우직한 성실함의 과실을 얻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 친구에게 그것이 '공부'가 아니었을 뿐이지, 그 친구는 다른 영역에서 본인의 방식과 행복을 찾아나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토끼일 때도 있고, 거북이일 때도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토끼라고 해서 거북이를 무시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거북이가 되었다고 해서 지나치게 좌절하지 않으려 한다. 이 책의 말미에 내가 나 스스로를 '거북이 클라이머'라고 칭하고, 그래도 괜찮다고 언급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클라이밍을 할 때의 나는 느리고 답답한 거북이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아무것도 아닌 내 모습이 담긴 이 작은 나의 책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할 계기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고등학생 때, 그 친구의 등을 보며 내가 느꼈던 그 감정처럼.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 각 서점별 구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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