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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Nov 17. 2020

1인 가구도 아파트에 살고 싶어요

1인 가구의 삶이 '간이역'은 아니잖아요


 오늘따라 유독 피곤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일이 끝나면 그저 집에 가서 씻고 바로 뻗어야겠다, 퇴근길에 그런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걸어가며 낮동안 올라온 뉴스들을 쓱 훑어보고 있는데, 두 눈을 의심하게끔 만드는 기사 타이틀이 하나 눈에 띄었다.



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2011178042i



 기사의 타이틀을 보자마자 '말도 안 돼'라는 탄식이 절로 새어 나왔다. 정신이 번뜩 들며 잠이 확 깼다. 벌써 올해만 수십번에 걸친 부동산 정책 헛발질로 전셋값이 폭등하여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는 중인데, 그 대책을 이런 식으로 내놓겠다고? 관광이나 여행을 위해 잠깐 쉬었다 가는 용도로 만들어져,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된 취사 시설도 구비되어 있지 않은 (아, 물론 미니 냉장고와 작은 선반, 전자레인지 정도는 있지. 다만 화장실 벽이 유리벽이지 않을까?) 그런 공간을 주거 공간으로 '용도 변경'을 하겠다는 그 발상 자체도 말이 안 되었지만, 나를 정말 화나게 만든 건 다음 부분이었다.


 관광호텔은 주로 서울 요지에 잇기 때문에 사실상 1인 가구 맞춤형 레지던스처럼 활용할 수 있다.

(중략)

전세난을 유발한 전·월세 신고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임대차 3법을 추진할 때 ‘1인 가구’ 수요를 간과했다는 정책적 반성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 시내 1인 가구의 증가가 전세난을 가중했다는 게 정부·여당의 진단이다. 서울시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3.4%로, 1.4%포인트 늘었다.

이 대표는 “지난 1년간 통계를 보면 서울시 인구는 4만명이 줄었는데 가구 수는 9만6000가구가 늘었다”며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이어 “이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없었다는 게 정부와 서울시의 패착이었다”라고 지적했다.



 1인 가구 맞춤형...레지던스.... 정말 이러긴가?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참담하기도 하고, 울컥하고 분노가 솟구치기도 한다. 집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능을 다 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이런 집을, '1인 가구의 급증에 집중한 대책'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화가 난다. 1인 가구면 이런 '반쪽 짜리' 집에서 대충 살아도 된다는 것인가. 대체 그들 머릿속에서 '1인 가구', 그중에서도 청년층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지, 직접 말은 안 해도 그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지 않는가.


실제로 입주가 진행된 사례가 있어 찾아보니, 더욱 기가 막힌다.  


https://www.bizhankook.com/bk/article/19754



 기사에서 언급되었듯이, 숭인동 역세권 청년 주택은 이름만 '청년 주택'일뿐, 실거주하는 입주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안에서의 라이프 스타일은 사실상 호텔 장기 투숙에 가깝다고 한다.


 기존 호텔에서 사용하던 가구를 그대로 써야 함은 물론, 각 방이(그렇다, 집이 아니다. '방'이다.) 제대로 된 '주택'으로서의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월세 이외에 이것저것 추가되는 비용이 꽤 들어간다. 내가 필요하지 않은데도 트윈 베드 룸에 배정되면 공간이 적어도 침대 두 개를 무조건 다 두어야 하고, 매달 쓸모없는 카펫을 청소하기 위한 비용을 내야 한다. 심지어 아직도 건물 입구에는 '베니키아 호텔'이라는 간판이 버젓이 걸려있다. 이것은 주택인가, 호텔인가.




 대체 왜 이런 촌극이 일어나는 걸까?


 



종종 꼰대들은 젊은 시절의 낭만을 이야기하며, 비좁고, 최소한의 여건도 갖추지 못한 월세 저렴한 자취방에서 인간답지 못하게 살았던 1인 가구 시절을 추억하곤 한다.


"그때는 어떻게 그런 거지 같은 집에서 혼자 살았을까?"

"밥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맨날 라면만 먹었지."

"어쨌든 결혼해서 정말 다행이지 뭐야."

"원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


 그러면서, 그들은 1인 가구의 열악한 삶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기껏 문제를 제기해봤자, 이런 대꾸가 돌아올 뿐이다.


 "원래 그런 거야. 억울하면 너도 빨리 결혼을 해."


 그들이 그렇게 '대충' 살았던 젊은 시절을 낭만 어린 시선으로 반추할 수 있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봤을 때 본인은 결혼과 가족의 구성이라는 방법으로 1인 가구의 삶을 무사히 '탈출'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기준에서 1인 가구의 삶은 처량하고, 어서 좋은 짝을 만나 하루라도 빨리 탈출해야 하는 어떤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꼰대들은 오히려 1인 가구의 삶이 너무 완벽하고 평안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싱글들이 적당히 불행하고, 감히 2인 가구, 4인 가구가 가질 수 있는 영역을 넘볼 정도로 '잘' 살지는 않기를 내심 바라는 것이다.  ('나 때'는 독신자에 대한 이미지가 처량 맞고 고생하는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억울한 걸까? 하여튼 나로서는 그 심리는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가뜩이나 오지랖이 넓은 한국 사회에서 청년이자 1인 가구로 살아간다는 것은 썩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잊을만하면 가끔가다 한 번씩 오만가지 곳에서 오만가지 참견이 날아온다. 나 또한 최근에 '영끌'해서 집을 샀지만(브런치 이전 글 참고 : 얼떨결에 내 집 마련), 나의 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나의 주택 매입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언제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여자 혼자서 무슨 집을 사냐'는 것이다. 언제 시집갈지 모르니 일단은 전세로 있어보라고.


 그들의 말속에서 읽을 수 있는 청년 1인 가구에 대한 공통된 논리는 다음과 같다.



청년층의 1인 가구는 불완전한 형태이며,
'가족'의 형성을 통해 다인 가구 형태로 변이 되기 전
임시로 거쳐가는 단계



 1인 가구는 임시적인 삶의 행태일 뿐이고, 마치 애벌레가 영원히 번데기에 머물지 않고 언젠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듯이, 무조건 다음 단계로 변태 하게끔 대기 중인 삶이라는 논리다.


 그렇지만.. 나는 벌써 14년째 혼자 살고 있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지금까지, 집을 못해도 8번은 옮겨 다니며 매번 나 혼자 잘 살았다. 이제 몇 년만 지나면 아마도 인생을 통틀어 혼자 살았던 시간이 남들과 같이 살았던 시간을 훌쩍 뛰어넘게 될 것이다. 나의 삶에는 앞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일은 없다. 아마 무슨 사고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나는 아마 이대로 쭉 혼자 살아가고, 늙어갈 것이다.


그런 내게, 감히 '지금의 너의 1인 가구 상태는 임시적인 상태일 뿐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비혼을 결심한 사람도 아닌, 어쩌다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1인 가구 상태를 임시적인 것으로 규정하려 드는 것은 단호히 거부하고 싶다.


 1인 가구의 삶은 서둘러 지나쳐 가야만 하는 그런 간이역 같은 삶이 아니다. 당연하게 진행되어야 할 결혼과 가족 구성에 앞선 통과 의례도 아니다. 나에게 있어 1인 가구의 삶은 어떤 삶의 전 단계가 아닌, 다른 2인 가구, 3인 가구, 4인 가구가 그러하듯이 현재 내가 구성하고 선택한 삶의 형태일 뿐이다.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1인 가구도 어엿한 '가구'이다. 스스로 가장이 되고, 내 인생의 책임자가 되어, 전입 신고를 하고, 집주인이 되고,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기왕이면 제대로 된 집에 살고 싶다. 시내 관광호텔을 대충 개조해서 만든 '임시 주택'이나 '1인 가구 맞춤형'을 표방하며 공급되는 좁고 불편한 집들 말고. 20평대, 30평대, 아니 능력만 된다면 50평대 아파트나 타운하우스에서도 혼자 충분히 완전하고 완성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 앤 리치 이슬아 작가님을 보라. 혼자 2층 짜리 전원주택에서 멋지게 잘 살잖아.





Singles Be Ambitious!


 어차피 요즘 시대에 1인 가구의 증가는 필연적이다. 그런 만큼 나는 여기저기서 평범한 1인 가구가 좀 더 잘 사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사실,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에서는 혼자서도 멋지게 잘 사는 이들의 모습을 비춰주면서, 뒤로는 평범한 1인 가구에게 호텔방을 '청년 주택'이랍시고 공급하는 이 나라의 양면성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저 위에 높으신 분들은 이제 제발 좀 1인 가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눈을 뜨시는 게 좋겠다. 세상엔 평범한 4인 가구가 부러워할 만큼 멋진 집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1인 가구도 있다. 그러니 1인 가구에 자꾸 구질구질한 프레임을 씌우지 말라. 거지 취급 좀 하지 말라.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사람들은 혼자서도 훨씬 '잘'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는 흐름에 대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해서 큰일', '1인 가구 급증, 출산율 저하, 사회적 문제' 운운하며  꼰대 같은 마인드로 못마땅해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하여튼 맨날 말로만 1인 가구를 위한 대책이랍시고 별 거지 같은 대책 내놓지 말고 정말 1인 '가구' 취급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저런 허접한 방법을 대책이랍시고 내놔서 괜히 열심히 살고 있는 청년 1인 가구들 심란하게 하지 말고.



설마 이게 1인 가구들의 삶을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어 결혼 및 출산율을 증가시키려는 '무해한 음모'의 일환은 아닐지.


 그리고 이 땅의 모든 1인 가구들은 다인 가구 위주의 세상의 후려치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고 보란 듯이 더욱 열심히, 잘 살아냈으면 좋겠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혼자 책임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로 멋진 사람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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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 MBC <나 혼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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