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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Sep 12. 2020

설레지 않아도 버리지 말아요

미니멀리즘보다 리사이클리즘


코로나 19, 미니멀리즘의 귀환


 최근 여기저기서 '미니멀리즘'을 권하는 메시지들이 눈에 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한 5년 정도 전에도 한바탕 미니멀리즘 열풍이 불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미니멀리즘 열풍은 그때 당시와는 조금 양상이 다른 듯하다.


 몇 년 전 유행했던 미니멀리즘은 타깃이 다소 한정적이었다면, 최근의 열풍은 보다 광범위한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19의 여파로 인해 재택근무, 자가격리 등의 사유로 인해 누구나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좋든 싫든 '집'의 효용에 대해서 재탐색하고, 공간을 점검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이전까지의 '집'은 사실 일부의 집돌이, 집순이 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평소에 오래 머무르는 공간은 아니었다.


매일 칼퇴해서 집에서 저녁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모를까. 야근이라도 하게 되면 집에서 깨어 있는 시간은 급속도로 줄어든다. 주말에도 사실 집에만 붙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각종 가족 행사에, 친구들 모임에, 자기 계발 겸 사회생활 목적으로 진행하는 이런저런 모임들에 참석하고 집에 들어오면 주말은 훌쩍 지나가 있고, 아쉬우면 넷플릭스로 영화나 한 편 보다가 다음 한 주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집'은 그저 거대한 침대 + 식당 + 화장실이었을 뿐이다. (솔직히 저 3개만 갖추고 있다면 뭐 얼마나 '쾌적'한지야 알게 뭔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 19는 그런 우리들을 몽땅 가택 연금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어진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금 집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쓸모없는 물건들로 가득 채워진 채 방치되어 있던 집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물건들로 쌓여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짐에도, 당장 집을 넓혀 이사를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에 사람들은 '생존 비우기'라는 이름의 미니멀리즘 유행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559488



'생존'을 위한 '비우기'라니.


지난 주말, 나는 이 기사를 읽는 내내 우려스러웠다. 본문에서 언급된 '생존'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직 지붕 아래, 내 '집' 안에서 스스로의 '생존'만을 위한 비우기라는 말인가? 집에 짐이 좀 쌓여 있다고 생존에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 비록 온갖 짐들을 다 버리고 비워내서 그들의 집의 공간이 넓어지고, 좀 더 삶의 영역이 쾌적해졌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생존'이라는 절박한 말을 써야 할 정도의 효용은 아니다. 정작 그들의 '생존'이 진짜로 위협받고 있는 지점은 따로 있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최근에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생활 쓰레기 양이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121/99333162/1


 몇 년 전 유행한 미니멀리즘에는 나름대로 복합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유행했던 미니멀리즘의 '단샤리'는 분명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도 물론 '정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긴 했지만, 어쨌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물건과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정신적인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당시의 미니멀리즘은, 척박한 세상에서 정신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나 또한 과거 '옷장 파먹기의 즐거움'이라는 글로 생활 속에서 나름대로의 미니멈(?)리즘을 실천 중임을 고백하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중단된 상태이지만.)


 그렇지만 최근, 미디어에서 무분별하게 주도하고 있는 '미니멀리즘 열풍'과 그에 무분별하게 탑승하는 각 가정의 '버리기 놀이'에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가뜩이나 코로나 19로 인해 세상에는 피치 못할 일회용품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0824069100074?input=1195m


 우리나라 민족은 총알배송 택배와 배달의 민족으로서 각종 일회용품, 택배 상자, 밀 키트, 배달 음식 용기 등 각종 쓰레기들기록적으로 배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식당도 안 가서 도시락 용기가 넘쳐나고, 일부 카페에선 텀블러를 들고 가도 텀블러 할인만 해 주고 커피는 일회용 컵에 준다. 직장에서, 집에서, 우리는 모두 이러한 폐기물 증가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로 인한 집콕이 장기화되면서 인테리어를 새로 하거나 홈 오피스를 꾸리기 위해 가구를 새로 구비하는 집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집에 있던 이전의 가구들은 전부 쓰레기가 된다.


 '버리기 놀이'를 통해 내 집을 좀 더 넓게 쓸 수 있을 거라고, 이제 집이 더 쾌적해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무작정 버리기 전에 이렇게 비워낸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굳이 이 타이밍에 단순히 나와 우리 가족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추가적인 쓰레기를 배출해야 할지'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말이, 요즘 내겐 가장 무책임한 말처럼 들린다. 모든 사람이 단순히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이유로 물건을 버려댄다면, 최근의 속도로는 지구는 분명 앞으로 10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비우기였을까?

오히려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어 배출함으로써 본인을 포함한 앞으로의 인류의 생존에 해를 끼친 것은 아닐까.





 '설레지 않으면 버리기'와는 목적이 다르지만, 나 또한 최근 대대적인 정리를 단행했다. 나 역시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 번 정리를 싹 해 볼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정리 과정에서 내게도 물론 버리고 싶은 물건이 잔뜩 나왔다. 아마 그 과정에서 조우한 '설레지 않는' 물건이나 의류만 모아도 100L 쓰레기봉투 한 두 개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 단순히 내가 설레지만 않았을 뿐, 대부분은 아직 쓸 수 있는 물건이었던 탓이다. 설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레기봉투에 넣는 대신 나는 그 물건들의 용도를 다시 한번 꼼꼼히 따져봤다.


내가 왜 이 물건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는지, 원래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좀 더 활용을 해볼 여지는 없는지. 그런 생각을 해 보며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물건들의 용도를 재설정해보는 과정을 반복했다.


지금의 내게 생존을 위해 중요한 것은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어떻게든 하나라도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리사이클리즘'이었다. 칩거하면서 어쩔 수 없이 시키게 되는 택배도 최대한 1-2주에 한번, 필요한 것을 모아서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70억 명과 함께 지구를 공유하고 있는 한 명의 지구인으로서, 세상에서 점점 늘어나는 일회용품 및 폐기물들에 대한 근본적인 부채감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처럼 쌓인 폐기물들이나, 마스크 귀걸이에 발이 묶인 새들을 볼 때마다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를 속으로 되뇌인다. 인간인 내가 태어나버려서, 살아야 해서, 생존 행위를 위해 일어나는 모든 행동들을 포기하지 못해서.


그랬기에 나는 기껏 찾아낸 설레지 않는 물건들을 대상으로 '버리기 놀이'가 아닌, '어떻게든 다시 써보기 놀이'를 했다. 마치 오래 만난 연인 미적지근한 온도의 연애를 이어가다, 연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권태기를 극복하듯이, 잃어버린 '설렘'을 다시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 기준으로 라면 버리기 1순위였을 7년 된 PC. 새 PC와 태블릿 PC들이 많아 더 이상 설레지는 않지만, 재택근무 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시도를 했는데도 좀처럼 용도가 발견되지 않는 물건들은 모아서 상자에 넣었다. 그런 다음 수납장에 넣어 '봉인'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미련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쓸모없는 물건을 모아서 공간이나 차지하게 하다니. '비우면' 얼마나 행복한데! 하면서.


그렇지만 난 그것들을 버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비록 지금 나의 집에 짐이 너무 많아서 좁아 보여도, 폐기를 통해 보다 나에게 쾌적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싹수'가 보인다 해도. 나는 일단 그 모든 것들을 최대한 갈무리하여 안 보이게 해 두고 집 안에 '킵'해두려고 한다. 일단 계속 갖고 있다 면 언젠가는 용도가 발견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오래 묻어둔 물건을 다시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설레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나 혼자만 내 집 안에서 좀 더 쾌적하게 살아보자고, 모두가 같이 쓰는 지구에 부담을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예전에 쓰던 기기들을 보며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고, 구석에 처박혀있던 s펜을 찾아 펜촉을 대일밴드로 수선해서 다시 써보기도 했다.



 


 그렇게 정리를 다 끝낸 내 집은 '생존 비우기'를 한 집들처럼 드라마틱한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잡동사니들을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치워뒀을 뿐. 그래도 나만의 리사이클리즘도,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일단 저런 정리를 통해 집에 물건들을 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새로운 물건을 잘 사지 않게 되었다. 꼭 기존의 물건 중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물건을 '폐기'하는 방향으로만 미니멀리즘의 원리가 작동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물건을 살 때는 설렜는데, 이젠 더 이상 설레지 않네. 근데 이런 시국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완전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네...'라는 마음으로 깊이 반성하고, 새 물건을 사고 싶은 '뽐뿌'가 오게 되면 집 안에 쌓인 짐 한 더미를 보며 '아.. 지금 산다 해도 결국 짐만 늘어날 뿐이고, 언젠가 저것도 설레지 않게 되면 처치 곤란해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소비를 자제하게 되더라. 근데 이런 마음도 길게 보면 일종의 미니멀리즘이 아닐까?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미니멀리즘도 좋긴 하지만.. '꼭 이 타이밍이어야 하냐'는 것이다. 내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무작정 설레지 않는다고 버리기보다는, 용도를 재발견하거나 재설정해봄으로써 잃어버린 '설렘'을 되찾아보는 게 어떨까. 그저 '집에 있는 물건을 폐기의 목적으로 집 밖으로 내놓지 말아 달라. 잠시 멈추고 집 안에 킵해달라' 외치는 내가 너무 반골인가.



 정 여의치 않다면 내겐 더 이상 설레지 않지만, 이 물건을 보고 설렘을 느낄 타인에게 보내주는 것도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당근 마켓'이라는 중고거래 앱이 무척 핫하더라.


https://www.fnnews.com/news/202009090754003089


살면서 스스로의 소재지를 함부로 노출하지 않는 것이 생존을 위한 습관이 되어버린 독거 싱글녀로서 배달앱과 더불어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앱이긴 하지만, 그래도 1천만 유저가 사용 중인 중고거래 플랫폼이라 한다.


아나바다 정신을 되살릴 수 있으면서도, 누군가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처치하기 곤란한 쓰레기가 되어 세상에 부담을 주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당근 마켓으로 지구를 구하자!




+


최근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삶'혹은 '제로 웨이스트'라는 삶의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책을 추천한다.



1. <노 임팩트 맨 (2009)>


 작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콜린이 뉴욕의 한 복판에서 1년 간 지구에 무해한 생활을 하는 프로젝트를 해 본다. 9층에 살고 있지만 전기를 쓸 수 없으니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다. 냉장고도 쓸 수 없다. 폐기물이 나오니 화장실 휴지도 쓸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는 항아리 속 구더기로 처리해본다. 그렇게 1년을 어떻게든 '존버'하는 이야기다. 동명의 책도 있으나,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쪽이 더 생생하다. (왓챠에서 볼 수 있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0464



2.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허유정 지음 / 뜻밖)>


아직 한국에선 생소한 '제로 웨이스트' 운동에 대해서 다룬 책. '환경' 얘기를 다룬 책들을 읽다 보면 '엄근진'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며 왠지 모르게 혼나는 느낌이 드는 책이 많은데(나도 모르게.. 점점 무릎을 꿇게 된다고나 할까) 이 책은 떡볶이, 커피 등 누구나 일상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비교적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는 제로 웨이스트 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채식에도 여러 단계가 있듯이, 제로 웨이스트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 책 속에 있는 것 중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만 따라 해 보면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가끔씩만 채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안도 채식주의자인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61386



3.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 김영사)>


이건 아직 나도 안 읽어봤는데, 읽을 책 리스트에 넣어두었다.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이 쓴 책이다.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환경 문제들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차분히 풀어나간 책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앞으로 지구에서 인간과 이 행성이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풍요'를 모색해보고자 한다고. 전작 <랩 걸>에서 느꼈던 그녀의 필력이라면 이 책 역시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55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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