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기저기서 이런 말들이 많이 들려온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깥세상이 하도 어지러운 탓일까? 스스로의 정신을 바짝 붙잡고 있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정을 찾곤 하는 것 같다. 서점에도 저런 뉘앙스의 제목과 부제를 단 책들이 넘쳐난다. 그런 책들은 마치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지금 네가 힘들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야. 잠시 버티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게 다 지나가고 난 뒤 비로소 너는 다시 온전하고 평온한 너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태생이 부정적이고 삐딱한 나는 저런 메시지를 보면서 '글쎄, 과연 그럴까?'라고 생각해 버리게 된다. 내 지난 삶을 돌이켜 봤을 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우울함이 과연 '일시적'인 상태인가,라고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원래 찰나의 '순간'이었으며,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장바구니에만 담아 두었던 어떤 물건을 마침내 구매했을 때나, 소망하던 일을 이뤄냈을 때 느껴지는 뿌듯함과 행복함은 결코 오래 머물지 않았고, 머지않아 쉽게 잊혔다. 그렇기에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무언가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 인생이 가장 행복의 피크에 다다라 있었을 때조차 말이다.
삶이 힘들다 느껴졌기에 나는 생각을 했다.몇 안 되는 행복했던 찰나에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그 순간을 누리는 데 집중했다면, 이외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우울한 공상을 하며 보냈던 것이다. 살아있는 한 내게 있어 우울하고 힘든 것이 디폴트 값이었고, 행복하고 아무 일도 없는 상태가 오히려 주의해야 할 비정상 상태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나는 요즘 쏟아지는 저런 메시지들이 조금 불편하다.
괜찮아지는 방법
마음의 평정을 찾는 방법
자기 긍정을 통해 행복해지는 방법
이런 메시지들이 미디어로부터 쏟아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 우울하고 힘든 현재의 상태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고치고 교정해야 할 어떤 결점으로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꼭 괜찮아져야 하는 것일까?
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되나?
현재의 우울한 상태를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인가?
지금 내 우울한 상태가 '비정상'이고 이걸 명상을 하든 뭘 해서든 '정상'상태로 돌려야 한다면.. 나는 인생 대부분을 비정상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자기 인식이 정말 그들이 말하는 '셀프케어'의 출발점이 되는 것일까? 스스로 자신을 문제아처럼 다루고 다그치고 고치고 교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게?
마치 학창 시절 엄친아에게 비교당하며 쫓아가려던 뱁새 같은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일도 사랑도 인간관계도 완벽하게 하며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며 외롭지 않고 정신 건강도 완벽한 인간'
애초에 그런 유니콘 같은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는데.. 겨우겨우 스스로의 힘듬을 견디며 하루하루 어른으로 밥벌이하며 먹고 살아가기도 힘든데, 이젠 정신건강 챙기며 행복하기까지 하라고 한다. 자신감까지 가지라고 한다. 아, 정말 K-스탠다드의 기준에 맞추자니 한심하고 불행한 인간인 나로서는 도무지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글을 쓰지만 그 목적은 글쓰기를 통해 나의 비정상적인 우울을 해소하고 그럼으로써 내 피폐해진 멘탈을 정상 상태로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글을 쓴다 해서 기분이 좀 더 나아지지도 않고 내 인생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쓸 뿐, 그게 다다. 그저 힘든 상태로 글을 쓰고, 쓰고 나서도 힘들다. 뭐가 특별히 달라지길 기대하지 않는다.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결국 나의 욕망이고 기대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속인 건 언제나 나의 욕망..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거리 두기'를 위함이다. 내가 왜 힘든지, 내가 왜 불행한지를 덤덤히 써내려 가다 보면, 그저 글을 써 내려가는 와중에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아, 그렇구나' 하고 나 자신의 상태를 객관화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출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들은 이야기 중에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다.
먼저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어두운 밤, 숲 속 한가운데 피어오른 모닥불을 생각한다. 모닥불 주변에는 인디언들이 자유롭게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다. 당신은 그곳에 가까이 가고 싶어서 손을 힘껏 뻗어본다. 당신의 손이 위치한 그곳, 그곳이 바로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이다.
나는 내 마음이 있는 곳을 알기 위해 글을 쓴다. 그저 그뿐이다.
"아무래도 말이지, 인생이란 게 좀 엿같긴 한 것 같아."
요즘 친구와 툭하면 메신저로 주고받는 대화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렇지만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우리 각자가 겪는 고통의 범주는 서로의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 버렸다. 매일 서로에게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우리는 서로가 실질적인 위로가 되어주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럴 땐 그저 이렇게 말해줄 뿐이다.
"힘들어? 음... 근데 계속 힘들 거야."
서로의 불행 토크가 구질구질해지기 직전의 간당간당한 수위의 마지노선 앞에서, 나와 친구는 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티키타카 하면서 웃어넘긴다.그런데 힘내라는 말보다, '존버'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말보다 이게 더 맞는 것 같다. 힘내라고 해서 힘 안 나고, 무작정 존버 하다 망하는 수가 있다. 그냥 힘들면 힘든 거지 뭐 어쩌겠나. 힘든 건 다 지나가는 게 아니다. 힘든 거 끝난다고 괜찮아지는 거 아니다. '힘들다'와 '괜찮다'라는 두 상태 값은 OX 퀴즈 같은 2지선다 관계가 아니니까.
원래 인생은 그냥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다 힘든 거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우리는 소녀 때처럼 낄낄거리는 웃음을 나눈다.
하루만 힘들었으면 좋겠어.. 늘 힘드니까...☆
어차피 인생은 이 짤 같은 것이다. 하루만 힘들고 싶겠지만, 하루만 힘들 수가 없다. 힘든 것은 디폴트고, 행복한 것이 비정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그걸 애써 '정상'적인 상태로 '교정'하려고 하는 순간 모든 비극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꼭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어야 살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힘들지 않을까.그냥 오늘도 힘들고, 내일도 힘들 거야. 그게 디폴트니까. 그러니 매일의 힘듬은 그냥 받아들이자. 그냥 살아보자. 긍정 편향의 시대의 비관론자는 그냥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커트 보니것의 제5 도살장을 인용해 본다.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인용 가능한 만능 인용구라고 생각한다..)
뭐, 그런 거지(So it goes).
커버 이미지는 허지웅 씨의 신간 <살고 싶다는 농담>의 한 페이지를 찍은 것이다. 연휴 기간 중 읽은 책인데, 삶과 불행에 대한 초연한 태도가 최근 내 생각과 결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