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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Nov 30. 2020

열심히 할게요, 6시까지만.

직장인에게도 직장인은 '부캐'일 뿐이랍니다.


 밥 먹을 때 TV를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막상 혼자 저녁을 먹을 때는 왠지 모를 허전함에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틀어놓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맞은편에 인형을 앉혀놓고 혼자 미친 사람처럼 주절주절거리면서 밥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매일 저녁을 먹을 때마다 한 편씩 틀어놓는 LCD 화면 속 콘텐츠가 요즘에는 이른바 나의 '밥 친구'인 셈이다.


 그러나, 이 '밥 친구'가 될만한 콘텐츠를 고르는 것은 의외로 꽤나 까다롭다. 보통 30분 남짓의 식사 시간에 보기엔 2시간짜리 영화는 너무 길다. 그래서 주로 2-30분짜리 드라마나 시트콤, 애니메이션 등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 내용이 또 너무 기가 빨릴 정도로 진지하거나 부담스러우면 안 된다. 또, 내가 잠시 먹느라 한눈을 팔며 귀로만 들어야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는 언어로 된 콘텐츠는 좀 그렇다. (중국어라던가.. 잠시 눈을 놓치면 자막이 훅 지나가버리더라). 마찬가지로 보는 내내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봐야 할 정도로 세계관이나 설정, 복선 등이 촘촘하면 오히려 좀 곤란하다.


 <어제 뭐 먹었어?>라는 드라마는 그런 내게, 지난 12일간 완벽한 '밥 친구'가 되어주었던 콘텐츠였다. 


 회사에서 돌아와 씻고 혼자 밥을 차려놓고 앉아서, 밥상 앞 거치대에 세워둔 태블릿 PC에 이 드라마를 켜는 즐거움이 너무 컸기 때문에. 나는 하루에 한 알씩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는 마음으로 이 콘텐츠를 몰아보지 않고, 하루 한 편씩 아껴 봤다.


 이 드라마는 요시나가 후미의 <어제 뭐 먹었어?>라는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요리를 좋아하는 변호사, 카케이 시로와 그런 변호사를 사랑하는 미용사 야부키 켄지가 한 집에서 밥을 나눠먹는 식구이자, 동성 파트너로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두 사람이 매일 함께 나누는 저녁 식사다. 두 사람은 각자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밥상에 마주 앉아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40대 중반, 중년의 나이에 다다른 두 사람의 식사에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 매일 단백질은 적당히, 당은 적게, 기름기도 적게, 80% 정도 배가 부르면 멈출 것. 그것은 서로가 서로의 곁에서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기 위한 두 사람만의 약속이다.



 매일 저녁 이것저것(주로 가격)을 따져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밥상을 차리는 것은 주로 변호사인 시로의 몫이다. 그는 매일 밥상을 차리면서 생각한다.


'이런 충실함을 하루에 한 번씩은 맛볼 수 있다니, 저녁 차리는 건 위대해.'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행위에서 그는 뿌듯함과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그 기분을 안은 채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회사에서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시로는 변호사이지만, 모자가 운영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다소 시시한 사건들만 맡고 있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상사에게 대놓고 이렇게 선언한다.



"저는 일에서 보람 같은 건 바라지 않아요.
편하고 간단한 일이라면 아무리 시시한 사안이어도 맡을 테니까 계속 주세요.
6시에 퇴근할 수만 있다면 저는 아무 불만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시로는 영 변변찮은 사소한 사건들만 골라서 담당한다.(동료들로부터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일은 완벽하게 한다. 그게 또 매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식비를 아끼기 위해 매일 저녁마다 마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장을 보고, 가끔가다 그의 파트너인 켄지가 편의점에서 기분 내며 사 오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보고 '낭비'라며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여유가 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파트너인 켄지는 그에게 '변호사라면 조금 더 큰 국제 변호사 사무소에 가서 어려운 일을 맡고, 더 힘들게 일을 하면 얼마든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냐'라고 묻는다. 그 질문에 시로는 이렇게 답한다.


"죽을 만큼 일하는 거 난 싫어.
그럭저럭 괜찮은 수입에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쪽이 훨씬 좋아."







지난주, 우연히 KT 신수정 부사장이 페이스북에 썼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https://www.facebook.com/shinsoojungceo/posts/2692864760931423


'기업의 젊은 직원들에 대한 고민'이라고 시작하는  글은, 최근 본인이 만나고 있는 20~30대의 여러 젊은 창업가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대기업 내의 젊은 직원들의 생각의 폭과 관점이 다르기에 젊은 직원들에게 벤처 기업가의 정신을 심어 기업 입장에서 그들의 가능성을 조금 더 끌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한마디로, '창업가와 대기업 직원들의 경험치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요새 대기업 주니어급 직원들(a.k.a 요즘 것들)에게는 벤처 창업가와 같은 패기와 창의성이 없어 아쉬움'으로 요약될 수 있는 장문의 글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와... 요즘 시대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임원이 있네. 하고.


 저 글을 쓴 분이 높으신 분인 데다, 여러 저명한 인사로부터 인정받고 추종받는 분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렇지만, 저런 생각을 저렇게 가감 없이 장문의 글로 써서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놀라웠다. 마치 본인의 능력이 좋고 똑똑해서 연구 성과는 잘 내고, 논문도 잘 써서 세간의 존경을 받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시야가 좁아져 평범한 학부생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 강의는 잘 못하는 교수님의 글 같달까. "왜 너넨 이렇게 못하니? 이렇게 쉬운데." 어떤 경지를 이룩한 사람은 때때로 천진하게, 잔혹해질 수도 있는 법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 문득 최근 보았던 <어제 뭐 먹었어?> 드라마 속, 상사의 앞에서 "전 일에서 보람 따윈 찾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던 카케이 시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어디 요즘 '직장'에서 일에서 보람을 찾는 밀레니얼 찾아보기가 쉬운 일이던가.


https://news.joins.com/article/23933044


 실제로 최근 주변에서 "아, 팀장이 되어버렸습니다. 팀장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라는 한탄이나, "선임되기 싫어서 계속 도망 다녔는데 결국 억지로 감투 쓰게 되어버렸어"라는 이야기를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 요즘은 아무도 회사 내에서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에이스, 이른바 '핵심 인력'이 되기를 꿈꾸지 않는다. 직급이 낮아도 '6시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위치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아무리 회사를 오래 다녀도 임원을 달고 싶지 않은 요즘 세대는 더 이상 회사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이 꼴을 보고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른다. 어린것들이 열심히 기업의 '충성스러운' 노예 생활을 해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제 잇속만 차리려고 딴생각만 한다고. 그렇지만 밀레니얼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저 '6시에는 보내주세요'라고 외칠뿐이다.


 나름대로 밀레니얼들에게도 이유는 있다. 요즘의 밀레니얼들은 다 클라크 켄트이고, 스파이더맨이고, 마법소녀들이다. 6시가 땡 하고 회사를 나서며, 셔츠를 팍 열어젖혀 숨겨왔던 가슴팍의 로고를 드러내거나, 배낭에서 주섬주섬 쫄쫄이 슈트를 꺼내거나, 요술봉을 꺼내 뾰로롱 주문을 외운다. 그렇게 그들은 회사 문밖을 나서는 순간 변신한다. 6시 이후에는, 회사원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누구는 유튜브를 하고, 누구는 사이드잡을 한다. 누구는 재테크 공부를 하며, 누구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 누구는 글을 쓰며, 누구는 또 전직을 위해 학원 다니며 새로운 공부를 한다. 그렇게 저녁 시간 또한 허투루 쓰지 않는 직장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모두가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 경쟁은, 회사 안에서의 경쟁보다 훨씬 더 치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장인들이 퇴근 이후에 또 다른 부캐의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들을 고용한 기업들에서 어떻게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까놓고 말해서, 직장인 월급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는 시대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고,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대기업이라 해도 대기업의 연봉 상승률 따위는 부동산 가격 상승률과 물가가 가뿐히 비웃어주는데 말이다.



기업에 충성했다간 '벼락 거지' 되는 것을.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0/11/28/6JHBZ3RBXNBMRGL3OIZQ3EX5P4/



 2020년, 코로나19와 부동산 폭등장을 겪으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한 푼 두 푼 모아봤자 결국은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것을. 우리가 뭐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 그저 내 몸 하나 눕힐 집, 그리고 집이 주는 안정감을 원할 뿐인데. 집값은 계속 오르고 앞으로 당장 내가 10년간 받을 연봉을 계산기로 두들겨봐도 서울 변두리에 집 한 칸 마련할 수 없는 것을. 이 와중에 고액 연봉자들은 '영끌'도 못하게 신용대출 규제까지 한다. 그런 상황에서, 밀레니얼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보겠다고 '부캐'를 만들어서 활약하는 것이 나쁜 것이냐는 말이다. 이토록 각박한 세상에서 말이다. 오히려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한 직장인의 슬픈 진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오죽하면 이러겠냐는 말이다. (테스 형! 듣고 있나요?)


 직장인들이 멀티 페르소나를 가지게 되면 회사 일에 몰입을 덜 한다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에도 여러 기기를 동시에 연결해서 쓴다. 아이패드에 글을 입력하다가, 휴대폰으로 카톡이 오면 이지 스위치 버튼을 누르거나 돌리면 똑같은 키보드로 스마트폰에 바로 내용을 입력할 수 있다. 예전에야 부업이 본업을 침범한다 어쩐다 하는 인식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요즘 젊은 직장인들에게 직장이란 그저 할당량이 조금 많은 수입원일 뿐이다. on/off  스위치를 누르는데 어려움도 거리낌도 없다. 오죽하면, 최근 퍼블리에서 만든 직장인 대상 심리테스트에서도 직장인으로서의 자아를 '업무용 부캐'라고 표현했겠나.


https://publy.typeform.com/to/j2OaBjde


'본업'이 직장인인 직장인이라도, 그들이 직장인으로서 갖는 정체성은 '업무용 부캐'일 뿐인 것이다.







 한때, '열정 페이'라는 아주 나쁜 말이 있었다. 무급 인턴, 수습기간 월급 90만 원.. 이런 말도 안 되는 돈을 주고 하루에 14시간씩, 15시간씩 건강 상해가며 회사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을 모범이라고 칭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가스라이팅이었다. '열정 페이'라니. 내가 내 건강과 시간을 바쳐서 그렇게 회사 하나에 나의 전부를 '올인'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열정 페이'에서 열정과 페이를 뒤집으면 '페이 열정'이 된다.


ⓒ 약치기



 딱 입금된 만큼의 열정.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회사와 그에 소속된 직장인이라는 개인의 관계에서도 Give & Take로 가자는 것이다. 회사와 개인은 근로계약서를 체결했고, 거기엔 근로시간과 그에 따른 급여가 어엿하게 명시되어 있다. 회사는 직원에게 그만큼만 바라면 된다. 마찬가지로 직원은 회사와 계약한 시간 동안 최선을 다 해서 책임지고 맡은 일을 완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6시까지만. 그 안에 본인의 할 일을 완벽하게 다 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에게 '이기주의'라느니 '칼퇴'를 한다느니 하면서 가스라이팅할 이유도 권리도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업체와 업체 간의 관계에서라도 서로 납기에 따라 페이를 주고받는 관계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데, 회사와 직장인으로서의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면 '이기적이다'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직장인은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구성원이지, 대표나 경영진이 아니다. KT 신수정 부사장처럼, 가끔씩 회사원들에게 '창업가 정신'을 요구하거나 '네가 회사의 대표라고 생각해라'라는 인식을 불어넣으려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과연 '요즘 것들' 귀에 들어올까? 받는 연봉부터가 다른데. 회사 내에서 아무리 빡세게 일해봤자 결국 '되어봤자 임원' 아닌가?

 

 적어도 나와 같은 밀레니얼에게 있어서 '좋은 회사'는, 임원이 되기 위해, 회사에 유능한 인재가 되라며 격려하는 회사가 아니다. 나에게 '경영자 마인드' '주인의식' 운운하며 애초에 입장이 다르기에 장착이 불가능한 마인드를 강요하지도 않고, 오직 9시간의 몰입을 바란다며 합리적인 제안을 해주는 회사이다. 6시에는 집에 보내주며, 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주는, 그런 회사가 '좋은 '회사다.


 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내가 이런저런 힘든 일을 극복하고서도 어쨌든 지금의 직장에 꾸준히 다닐 수 있는 이유도 6시에는 무조건 칼같이 끝내주고 나에게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적어도 '나'의 자아를 회사를 위해 개조하거나 소멸시키려 하지 않으며, 내 삶에 불편한 제약을 두지 않는다. 그런 모습으로부터 나는 이 회사가 나를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충성'까진 아니지만, '이 조직은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진 않을지언정, 적어도 나의 삶을 파괴하지 않겠구나'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직장 생활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찰스 핸디의 저서, <코끼리와 벼룩>에서는 개인이 속해 있는 거대 조직(ex. 대기업)을 '코끼리'로,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 개인을 '벼룩'으로 표현한다. 비록 지금 당장은 코끼리에 속해 있을지라도, 언제라도 독립하여 프리랜서로서 회사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인' 또한 벼룩이라고 볼 수 있다. 벼룩은 자신의 독자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코끼리는 벼룩이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포트폴리오 중의 일부일 뿐이다. 본문 속에서는 코끼리와 벼룩, 그 둘의 관계의 속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의 충성심은 첫째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미래에 관한 것이고, 둘째가 자기 팀과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며, 마지막이 회사에 관한 것이다. -p.182

코끼리들이 벼룩을 필요로 하고 있는 데 비해 이 벼룩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또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직접 편성하기를 바란다. -p.330

그렇다면 앞으로 회사는 벼룩 집단의 연방체가 될까?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 모두가 그런 식으로 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보다 큰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 것이다. -p.152

대기업은 개혁을 해야 한다.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자본주 못지않게 존중해야 하고 또 시장의 법칙이 정의와 윤리보다 아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기업의 앞날은 위험 그 자체가 될 것이다. -p.122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941735



 <코끼리와 벼룩>이 국내에 처음 출간된 것은 약 20년 전이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3년 전이다. 당시에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언젠가는 이런 시대가 오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직장과 직장인의 관계가 기업 대 개인사업자의 관계로 재편되는 세상을. 단지, 2020년의 상황이 그 변화를 급격하게 앞당겼을 뿐이다.  아마도 저 부사장님께서도, 기업 내의 젊은 직원들에게 창업자의 마인드를 이식하는 것보다,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 세상의 변화를 인지하고 왜 젊은 직원들이 직장 생활에 '창업가의 태도만큼 충분히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는지'  한번 그들의 입장에서 고민해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제일 아쉬운 것은 바로 아무런 대외활동(ex. 동아리나 공모전, 봉사활동 등)도 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았던 것이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라는 생각에 그것에 방해되는 다른 것은 안 하고 계속 정진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공부만 했었던 나의 과거를 후회한다. 그 삶은 안정적이긴 했지만, 그로 인해 뭔가 나에게 자산으로 남는 풍부한 경험은 없었으니까.


 어쩌면 바로 그 시절의 아픈 후회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내가 다니는 회사에 맹목적인 충성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다니는 회사 하나에 나의 100%를 바치지는 않을 것이다. '난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맞게 직장에 모든 걸 바쳐야지!'하는 실수만큼은 되풀이하고싶지 않다. 내가 직장에 다니면서 저녁시간 및 주말을 활용하여 글도 쓰고, 책도 내고, 재테크를 하고, 독서모임을 하고, 유튜브도 하고, 부업도 하고, 대외활동을 하며 다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또한 그런 의지의 표명이다.


 대신, 나는 내가 나의 '포트폴리오' 중 가장 많은 영역을 나의 회사와 계약한 주체라고 생각한다. 마치 개인사업자로서 회사와 계약했다는 생각으로, 일단 회사와 계약한 나 한 사람의 몫은 책임감 있게 완수할 것이다. 나는 '나'의 대표이지, 내가 다니는 회사의 대표가 아니니까.


그러니 내가 결국 회사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내게 6시 이후의 헌신까지 요구하지는 말아달라는 것이다.

<어제 뭐 먹었어?>의 카케이 시로처럼, 나 또한 결연하게 속으로 되뇌어본다.


"6시까지는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6시에는 집에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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