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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r 24. 2021

앵무픽 말고 문조픽

코인은 원래 이렇게 고르는 거라면서요?



 코인의 세계는 넓고도 넓다. 주식 종목은 그나마 기업 명이나 산업 명이라서 이름만 봐도 대강 뭐하는 데인지는 유추가 되는데, 코인은 이름만 봐서는 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에이다, 픽셀, 이오스 등등... 잔뜩 멋을 부린 것 같은 코인 이름들은 마치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나 사이버 가수 아담, 류시아 같은 세기말적 감성을 간직한 세계관 속에서나 접할  수 있는 단어들 같다.


 다른 증권사 앱과 같이, 업비트 앱에도 대략적으로 해당 코인에 대한 공시 자료나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메뉴들은 있다. 그러나, 봐도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 나는 비트코인이 뭔지도 잘 모른다. 근데 그냥 돈이 된다니까, 최근 주식 장이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코인 판에 뛰어든 무식한 불개미일 뿐인 것이다.


 한 달 전, 내가 처음 코인을 해보겠답시고 케이뱅크 계좌를 개설했을 때. 몇 년 전 코인 광풍에 탑승하여 매일매일 소소하게 치킨값을 벌어왔던 친구에게 '코인은 대체 어떻게 투자하면 좋은 거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도 잘 몰라. 근데 뭐 요즘엔 워낙 장이 좋아서, 우스갯소리로 '이름 매매'한다, 뭐  그러기도 해~"


 그녀가 말한 '이름 매매'란 이렇다.


코인 이름 매매법

1. 이름이 예쁜 걸 산다
2. 기다린다
3. 오른다
4. 판다


 우스꽝스럽지만, 사실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요즘 같은 랠리 상승장에서는 잡코인이 다 한 번씩은 가는 거 같은데, 비트코인, 이더리움 아닌 이상 아무거나 잡아도 한 번은 시세를 주지 않겠나? 어차피 운전 (시세를 움직일 수 있을만한 큰돈을 쥔 세력이 거래를 통해 시세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행위를 뜻함)은 운전수(세력)의 마음에 달린 거지 내 손에 달린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럴 거면 그냥 아무거나 사고 시세 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지 않을까?


 뭐, 아무리 그래도 이게 소개팅 앱도 아니고, 어떻게 이름만 보고 골라서 덥석 투자하겠나, 싶어서. 그냥 비트코인 카페에도 가입해보고, 오픈 톡방에도 들어가 보고 하면서 나름대로 정보를 얻어서 넣었다 뺐다 해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한 달 동안 원금 손실은 없었고, 장이 들쑥날쑥하는 가운데도 원금의 5% 정도 수익을 실현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주에 문득 코인 커뮤니티를 달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른바 '앵무픽 레게노(LEGEND, 전설이라는 뜻)'라고 불리우는 짤이었다.


출처 : 디씨인사이드



 반려조 픽이라니! 이것은 '이름 매매법'을 또 한 단계 넘어선 신박한 매매법이었다. 물론 메디블록이 떡상해서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 되긴 했지만 사실 뭐 어차피 이름보고 고르나 그냥 고르나 반려조가 골라주면 좋지 않은가. 월드컵 우승팀을 점치는 문어 폴도 있는데 반려조라고 해서 안될 것은 무엇인가? 매일 밥주고, 놀아주고, 서식지를 제공해 주는 인간 횃대의 재정 상황에 보탬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반려조 입장에서도 기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사실 내가 새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아는 주변 지인들이 이 짤을 내게 보내오며 내게도 한번 해보라고 권하기도(?) 해서... 뭐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심심한데 그냥 저녁 먹고 짬 내서 한번 해봤다.





 일단 집에는 프린터가 없어서 100% 수작업을 해야 했다. 업비트 앱을 켜서 눈에 띄는 코 인명을 수기로 적고, 가위로 대충 잘랐다. 사부작사부작 작업을 하고 있다 보니, 문조님이 눈을 빛내며 '저건 뭐지?' 하는 표정으로 순순히 다가왔다.



다만 그렇게 다가온 것까진 좋았는데... 바닥에 깔려 있는 종이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간식으로 유혹을 해서 종이들에 더 가깝게 접근하도록 만들어도 보고, 아니면 내 손에 종이를 좀 올려놔서 선택하도록 유도도 해봤지만 그래도 그는 완고히 선택을 거부했다. 아마 종이 질이 너무 얇고 미끄러워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집 새들은 아지트로 이런저런 종이를 물어가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휴지처럼 가볍고 잘 잡히고 부피감이 있거나, 아니면 명함처럼 딱딱한 종이를 선호하기에, 이 종이들은 확실히 그의 타입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인지,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그가 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신탁(?)이 내려졌다. '스토리지'라는 코인은 다만 수많은 난해한 이름들 속 하나의 텍스트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의 문조님이 그를 골라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코인이 되어 준 것이다.


'이거 이거 급등하면 우리 집 문조도 앵무픽 레게노 짤처럼 유명해지는 거 아니야? '스토리지 호재 떴다' 막 이러면서?' 하며 잔뜩 설레발을 치며 바로 스토리지 차트를 확인했다.



왜 줘도 하필...


아... 그런데...이거이거 차트가 뭔가 비범했다. 어제의 그 난장판 같았던 급락장에 혼자 로켓처럼 치솟은... 남들과는 확연히 다른 노선을 탄 존재가 아닌가. 어제 심지어 2배 이상 올랐다가 오늘은 뚝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집 새는 어째서 나로 하여금 이렇게 선뜻 들어갈 염두가 안 나는 코인을 골라준 것일까?


 그러나 이미 내려진 신탁은 물릴 수 없다.  어차피 원금이 아닌 코인으로 실현한 수익금 중 일부만 재미 삼아 넣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잡코인에 도전하는 나의 작고 귀여운 스케일에 맞춰서 딱 5만원만 묻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넣자마자 스토리지 시세는 쭉쭉 떨어지기 시작했고..





1시간 만에  -5% 손실을 기록 중이다 ^^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진정한 신탁은 어쩌면 스토리지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처음 문조님의 픽을 요청했을 때, 그가 고르라는 종이는 안 고르고 국수에만 정신 팔려 딴청 피우던 그 모습 자체가 일종의 신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으이구 이 화상아. 나한테 골라달라 하지 말고
이렇게 찍을 정성으로 공부나 해!"




투자, 자신만의 근거가 없으면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문조님이 마지못해 골라준 스토리지는 계속 들고 가 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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