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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r 28. 2021

JTBC가 '영초언니'를 소비하는 방식

그녀의 이름을 빼앗지 말라


 얼마 전, 책을 한 권 읽었다. 문학동네의 이연실 편집자가 쓴 <에세이 만드는 법>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베테랑 편집자인 그녀가 오랜 시간 에세이 편집자로 일해 오며 경험했던 일들과 노하우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 또한 저자로서 출간 작업을 한번 해본 적은 있으나, 그다지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편집자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갔다.

 

 얇고 가벼운 책인지라, 처음엔 그저 '팔리는 에세이에 대한 팁을 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특히 그녀가 여태까지 편집했던 에세이와 작가들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를 아끼지 않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유독 아끼고 너무도 사랑했던 것으로 보이는 에세이가 한 권 있었다. 바로 <영초언니>였다. 




그녀는 이 책을 향한 애정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주위 동료와 마케터들이 이 책의 가치를 몰라주는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에 '흑화'되기까지 했다고 고백한다.



 "대한민국은 영초언니의 삶과 몸을 그렇게 부숴놓고도,
왜 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에조차 관심이 없는가. 왜, 왜, 왜!"




 이 대목에서 그녀는 '이런 이야기가 읽히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대체 뭘 보고 있는 건가'라고까지 말한다.


 왜, 왜, 왜!


'중요한 말이니까 3번 한다'는 드립처럼, 너무 간절하면 삼세번을 외치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녀의 절규에 어딘지 마음 한구석이 뜨끔해졌다. 그 부분에서 유독 강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간절함에, '돌아오는 주말에는 <영초언니>를 한번 읽어봐야지.'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결심했던 것도 잠시,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중에서 나는 <영초언니>의 존재를 다시 까무룩 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내 일상 속에 다시 '영초'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전혀 뜻밖의 경로를 통해서였다.


 지난주에 첫 방영된 <조선구마사>라는 드라마가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이며, 세간이 시끄러웠다. 이와 함께 우려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드라마가 있었다. 바로 JTBC의 <설강화>라는 드라마이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궁금해서 한번 쓱 읽어본 기사에 소개된 드라마의 시놉시스를 읽어 내려가는데 뭔가 당황스러웠다. 일단 이 드라마는 민주화 운동 시기인 87년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드라마라고 한다. 남파 간첩인 남자 주인공이 여대생인 여주인공의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고, 남자 주인공을 민주화 운동가로 오해한 여주인공이 그를 숨겨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나. 그런데 심지어 그들과 삼각관계의 한 축으로 엮이게 되는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은 '대쪽 같은' 안기부 직원이란다.


 간첩, 민주화 운동, 안기부, 그리고 로맨스.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드라마를, 그것도 실재했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시놉시스 작성부터, 제작 스탭을 모으고 투자를 받고 촬영을 하고 방송 일정을 잡고 해외 컨텐츠 납품 계약을 체결하는 그 많은 과정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수많은 스태프들은 이 단어의 조합의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심지어 <1987>이라는 제목으로 바로 그 해에 일어난 일들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도 있는데.


 한번 불거지기 시작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고, JTBC 측에서 뒤이어 급히 해명 자료를 내놓았다. 그러나 그 해명문 속에는 한층 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블랙 코미디.


 불의의 기습을 당한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저 시기를 겪지 않았던 나만 해도 당장 머릿속으로 '1987년'이라는 시기만 떠올려봐도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자라나면서 역사책에서 봤던, 영화에서 봤던,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흑백 화면 속 처참한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특히 저 해는, 한 대학생 청년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쓰러지는 사진이 신문 1면을 차지했던 해이다.


 굳이 굳이 저 잔인했던 한 해에서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를 억지로 찾아내 보자면, '책상을 탁 하고 쳤더니 억 하고 심장마비로 죽더라.'라는 흑백 화면의 그 유명한 뉴스 멘트 아닌가.


 모든 사람이 시대적 엄숙주의에 빠져 엄숙하게 과거를 추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를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 영화(ex. <그가 돌아왔다>)도 있는 판에. 다만, 과거를 추억하고 돌이키는 것에도 어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어떤 시기는 너무 아파 차마 웃으며 추억할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간첩, 민주화운동, 안기부 이런 단어들을 '로맨스'와 연결시킬 수 있는 상상력이야 뭐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전쟁통에도 애는 태어나니까), JTBC에서 해명한답시고 내놓은 '블랙 코미디'라는 단어는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그때였다. 그들의 시놉시스 속 여주인공의 이름을 보게 된 것은.



은영초.

영초.


 해당 배역을 맡았다는 배우의 사진과 함께, 얼마 전 봤던 책에서 이연실 편집자가 절규하듯 부르짖던 '영초언니'의 이름이 거기에 있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lhswind2/222263391678

 


  문득, 며칠 전에 봐야지 생각했던 책 <영초언니>가 떠올랐다.


 '영초'라는 이름은 결코 흔한 이름이 아니다. 특히, 민주화 운동을 하던 '천영초'라는 이름은 비록 구글 검색 등에 인물 검색으로 나올 정도는 아니나 민주화 인사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의 이름을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드라마의 귀엽고 발랄한 여자 주인공으로 소비하는 것은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JTBC가 비록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니라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화 운동'과 '영초'라는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은 천영초를 떠올릴 것이었다. JTBC는 고작 한 편의 상업 드라마를 위해 민주화 투사의 이름을 훔친 것이었다.


 나는 그 도둑질이 너무 치사하게 느껴져서 화가 났다. 그와 동시에 얼마 전 읽었던 읽었던 책에서 '세상은 왜 영초언니를 몰라주는가'하고 한탄했던 이연실 편집자가 생각났다. 그녀에게 이 인물 소개가 어떤 충격이었을지 나는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SNS 계정에 들어가 보니 그녀 또한 이 일에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그녀의 트위터에는 '진짜' 영초언니가 휴대전화 너머로 불러주는 노래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영상 속 서명숙 씨는 영초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울고 있었다. 아직 <영초언니>를 읽지 못해 그녀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듣다 보니 왠지 서글퍼져서, 눈물이 나왔다.







 오늘 하루, 방에 틀어박혀서 <영초언니>를 읽었다.


 제목과는 달리 이 책에는 영초언니의 등장 비중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오히려 작가인 서명숙 씨 본인의 개인적인 회고와 감상이 더욱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영초언니>여야만 했던 이유를.


 산천초목 사건의 첫 공판날, 법원에 가기 위해 포승줄에 연결된 채 호송버스에 오른 서명숙 씨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대학생들을 보며 '나도 불과 넉 달 전까지는 저 풍경 안의 평범한 여대생이었는데'라고 비현실적인 기시감을 느낀다. 그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세상을 다 살아버린 노인네처럼 느껴졌다고. 자신의 청춘은 산산조각나버렸노라고 고백한다. 당시, 그녀의 손을 묶은 포승줄은 옆에 앉은 영초언니의 그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영초 언니에게 청춘이 있었을까?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독재 정권에 의해 차압당하고 압류당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귀한 시기를 그녀는 "독재정권 물러가라! 민주주의 쟁취하자!"라고 외치며 저항하는 존재로 살아갔다.


 이 책은 민주화 운동 이후에도 지속되었던 영초언니의 삶을 꾸준히 담아낸다. 영초언니는 민주화 운동 시기에만 박제된 이미지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의 삶을 살았다. 민주화 운동은 그녀의 삶의 일부였지만, 삶의 전체는 아니었다.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던 남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함께 투쟁을 계속했으며, 소중한 아들을 위해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 이후 불행한 사고를 겪어, 보는 서명숙 씨로 하여금 과연 이런 상태가 죽음보다 나은 것일지 의문이 들 정도의 비참한 생존 상태를 유지한다. 그녀의 입체적인 삶은 '영초'라는 이름 하나에 단편적으로 갇혀, 이용되고 박제될 것이 아니었다. 영초라는 이름은 그러기엔 너무도 무겁고, 너무도 아픈 이름인 것이다.


 시대가, 역사가 그녀의 이름을 기록하고 남겨주지 않았기에 철저하게 지워졌던, 구글 인물 검색에조차 나오지 않는 '영초언니'의 이름. 아마 서명숙 씨는 이 책을 통해 그녀에게 그 이름을 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서명숙 씨는 책의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헌사한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한 여성에게 바치는 사랑노래입니다."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청춘을 끝내버려야만 했던 영초언니의 삶을, 그 이름을 책으로 남겨 소중하게 기억해주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그럼으로써 비로소 서명숙 씨는 긴 세월 자신의 마음을 괴롭게 했던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영초언니가 교도소에서 서명숙 씨에게 보낸 비닐 편지 어디에도 '미안해'라는 말은 써져 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안에서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책은 어쩌면 그 날 감옥에서 받았던 비닐 편지에 대한 서명숙 씨의 뒤늦은 답장일지도 모르겠다고. 서명숙 씨 또한 그녀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닐까.


 그런 깊은 의미를 담은 그녀의 이름을, 2021년의 JTBC가 소비하는 방식은 얼마나 피상적이냔 말이다. 하고 많은 이름 중 왜 하필 굳이 '영초'라는 이름을 훔쳐야만 했단 말인가. 나 또한 세번 묻고 싶어졌다.



왜, 왜, 왜!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아직까지도 JTBC의 <설강화>가 촬영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에 더욱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천영초'라는 이름은 구글에도, 네이버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는다. 네이버에 '천영초'를 검색하면 인물 검색은커녕 뉴스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천년초'라는 단어를 잘못 입력한 것으로 인식이 되는지 '천년초'에 대한 검색 결과만 주르르 나온다. 그런 '영초'의 이름은 이제 JTBC <설강화>와 영초 역을 맡은 배우가 가져갈 것이다. 각종 포털에 올라올 드라마 클립이나 기사로 영초라는 이름을 도배할 것이다. 긴급조치 9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 달라며, 국가에 소송을 냈다 패소했다는 진짜 '영초언니'의 삶은 검색 화면 저 뒷페이지로 밀린 채로 말이다.



이화여대를 떠올리게 하는 FM 슬로건을 소품으로 사용하여 또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이 드라마의 시놉시스 단계에서의 최초 가제는 <이대 기숙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이화여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우려가 있어 이수여대로, 이수여대의 줄임말이 '이대'라는 이유로 또 다시 한번 호수여대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대학교의 이름은 쉽게 바꿔주면서, 민주화 인사로 살아가며 청춘을 바치고, 잃어버린 청춘 속에 다시 갇혀서 살아가고 있는 천영초 씨의 이름을 훔쳐내어 쓰는 것은 어떤 만용인가 묻고 싶다. 큰 조직인 이화여대는 무섭고,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고 어린아이의 지능으로 돌아가 살아가고 있는 작은 개인 천영초 씨의 이름은 마음대로 훔쳐도 된다는 것인가?


 나는 부디 이 드라마가 어디에서도 방영되지 않길 바란다. 대한민국이 영초언니의 이름을 기억해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왜곡하고 이용해 먹는 것을 눈 뜨고는 볼 수가 없다. 아직 살아있는 그녀의 아픔을 대가로, 민주주의라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것뿐이다.


 그리고 부디 해당 드라마의 관계자나 배우, 제작사, 협찬사의 담당자들은 <영초언니>를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빌려오려면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라고 우겨봐도 이미 대중은 은영초를 천영초 씨의 모티브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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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설강화> 촬영 중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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