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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pr 21. 2022

투자는 42다

세상 만물에 대한 궁극의 해답


나는 태어나서 한 평생을 소비자로 살아왔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소비라는 행위는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기에 나는 그것에 그다지 무거운 의미를 둘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소비라는 행위에 처음 무게를 두게 된 것은, 호주에서 처음 채식주의자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녀에게 왜 채식을 하느냐고 물어보았고,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동물들이 어떻게 크는지 한 번 보게 되면 알게 될 걸."


나는 그 날 바로 집에 가서 구글에 how to raise a cow.. how to produce meats 어쩌고를 검색해 봤다. 검색 후 보여지는 화면은 충격적이었다. 한 평도 되지 않는 땅에 누워 답답해 하는 돼지들, 그저 알을 낳기 위해 감금된 채 몸을 돌리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로 서로 쪼아 공격하지 못하도록 부리가 숭덩 잘려나간 닭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고통받는 것은 사람들이 고기와 계란을 조금이라도 싼 값에 먹고 싶어해서였다. 자연과 어우러지며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라게 키우는 방식은 생산성이 떨어졌다. 결국 공장에서 고기를 찍어내듯, 최소 비용 최대 효율을 추구하기 위하여 공장식 축산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현재 살아서 겪고 있는 고통이 대중이 그들을 소비하고자 하는 필요 때문이라면, 적어도 나만이라도 그런 소비 패턴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불매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가 하는 소비 활동이 내 생각보다 더 큰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며, 내가 돈이 있음에도 그것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일종의 의사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후로도 가끔씩 어떤 사회적인 현안에 꽂히면 종종 다른 불매 운동에도 동참을 했다. 그렇게 소비자로서 내가 가진 파워를 인식하고, 세상에 돈으로 내 의지를 표현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윽고 나는 불매운동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매운동이라는 것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그런 행동이 불편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상품을 소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의사를 표현하는 순간 상대는 "그러시든가."하고 내가 아닌 다른 잠재 고객을 찾아나설 뿐, 근본적인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차고 넘치게 많았고,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내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해주지 않을 사람의 마음을 어르고 달래는 것보다는, 어떠한 편견도 의견도 없는 하얀 백지 상태의 신규 소비자를 찾아나서는 게 보다 비용과 에너지 면에서도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불매 운동가가 아니라 잠재 소비자가 되기로. 


'나는 돈이 있고, 이런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 단, 보다 올바르고 나의 신념에 보다 부합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제품에 한해서'라는 나의 생각을 기업들이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돈을 썼다. 닭들을 풀어 키우는 농장에서 계란을 배달시켜 먹고, 가급적이면 제조 과정에서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는 제품을 구매했다. 당장 제품의 단가가 오른다 하더라도, 생산 과정에서의 윤리를 중요시하는 회사의 제품을 골라 구매했다. 비록 나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의 기여가 극히 미약할지는 모르나, 그렇게 내가 돈을 쓰면서 나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다 보면, 그런 내 행동이 주변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소비자로서 내가 느낀 점을 다른 소비자인 동료,친구, 가족들에게 공유하고, 그렇게 조금씩 돈의 흐름을 바꿔나가다보면. 반드시 생산성이나 낮은 가격만이 상품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소비자들이 다른 많은 것도 고려한다는 것을 기업들이 알게 된다면, 이 세상이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인간성에 기대는 것보다는, '돈'이라는 현실적인 욕망의 원인을 움직여야 겨우 해결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마찬가지로 투자도 큰 범위에서 일종의 소비라고 본다면, 투자자로서 내가 투자를 하는 행위도 이러한 가치 소비의 맥락과 맞물리는 것 같다. 특히 성장주에 가치투자를 할 때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나는 주주로서, 투자자로서 가능한 한 나와 가치관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맞는 기업에 투자를 하면서 '돈'의 흐름을 보여준다. 대체육에 투자하고,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하는 종목에 투자하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기업에 투자한다. 모두가 나의 신념과 맞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후원자가 되듯이 내 돈을 그들에게 위탁하며, 인류에게, 즉 내게 닥친 절체절명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란다.


인간의 잘못으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송하기 때문에. 환경이 오염되고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이 세상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아도, 앞으로는 지구에 좋지 않은 일만 벌어질 것만 같고 내 눈 앞에 계속해서 못 볼 꼴만 펼쳐질 것만 같아도.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한 신박한 기술들을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뉴스들 속에서 나는 내심 알게 모르게 다시 인류애를 회복한다. 인간들은 정말 뭐든지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쩌면 아직 이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돈은 투표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나 또한 깊이 공감한다. 돈은 우주시민으로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투표권이 맞다. 그러니 일단 계속 이 땅에 희망을 가지고, 지구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기술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하루씩 하루씩 더 살아보련다.


투자자로서도, 지구인으로서도. 그런 희망은 아주 중요한 거니까.



+


구글 검색창에 '세상 만물에 대한 궁극의 해답'이라는 것을 검색하면, 숫자 42가 뜬다. 더글라스 애덤스의 명저이자 불후의 고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왜 42인가에 대한 뚜렷한 해설은 없지만, 42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어쩐지 좀 알 것 같다. 그러니 내게 있어 투자는 42다. 결국 투자는 문제 해결의 예술이며, 세상 만물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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