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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Dec 14. 2021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구인난의 시대, 투자를 생각하다


최근 '책키라웃'이라는 매체에 칼럼을 하나 기고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글은 최근 직장을 이탈하고 있는 30대 '허리'들에 대한 이야기다.


 9월에 내가 퇴사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30대 중반 젊은 나이에 은퇴한 내가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나는 그저 거대한 사회적인 현상에 편승한 작은 한 개인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30대들의 직장 이탈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묵묵히 회사에서 허리의 위치를 지키며 존버 했을 그들아 더 이상 직장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모임에 나갔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모인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날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최근 퇴사했거나 하던 일을 그만둔 2030이 절반 이상이었다. 자연스레 퇴사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제 몸을 갈아서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들 중 일부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사실 최근 고용노동시장에 불어닥친 이 구인난이라는 현실의 정확한 원인이 코로나19라고 무조건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기존의 세대와 생활양식이 달랐던 MZ세대가 점점 성장해가며 세대교체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코로나19라는 변수가 그 변화를 가속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찌 됐든, 코로나19가 사회에 가져온 것은 일시적인 마비였다. 이전까지는 당장 전쟁이 나거나 세상이 끝나지 않는 한 변함이 없을 것 같았던 일상의 많은 부분이 순식간에 뒤바뀌어버렸다. 회사의 사정으로 휴직에 들어가거나, 산업이 급격하게 비대면 위주로 바뀌며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도 많았다. 한순간에 일이 없어진 사람들은 나름의 자구책을 강구했다. 플랫폼과 단기계약을 맺고 근로자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노동을 할 수 있는 긱 경제가 급속히 활성화되었고, 개인투자자들의 절박함을 담은 역대급의 자금이 때마침 상승장을 맞은 투자 시장으로 흘러들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기성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2030도 그간 인생에서 가정으로만 존재했던 '내 직장이나 일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깨닫는다.



 '하루아침에 내 소속(=회사)이 없어진다 해도 큰일 나는 게 아니구나.'



 회사에 고용되어 죽기 살기로 하루하루의 일을 해나가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어려운 상황에 닥쳐 휴직이든 퇴사든 하고 보니 딱히 당장 그렇게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니더라는 거다. 오히려 늘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직장인의 루틴에서 벗어나고 보니 더 명확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회사가 그동안 그들에게서 '시간'을 사는 대가로 고정된 월급을 지불하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을 앗아가고 있었는지 말이다.


 직장인들이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차피 월급만 받아서는 평생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월급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극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차원의 생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직접 한번 그 상황에 부딪혀 보는 것이 더 나은 법이니까.



 어차피 월급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월급이 아예 없으면 왜 살 수 없단 말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직업도, 직장도 아닌 돈과 자본이라는 것을 깨달은 2030들이 조기 은퇴를 이룬 파이어족이 되길 꿈꾸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렇게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젊은 일꾼들은 본격적으로 '회사 탈출 플랜'을 세우기 시작했다.


 요즘 2030들에게 물어보면, '임원이 되겠다'던가 '정년 퇴임을 하겠다'던가 '회사에 뼈를 묻겠다'라고 포부를 밝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니 회사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극심한 취업난을 뚫고 취업한, 회사에 몸을 갈아 충성해줄 것만 같았던 젊은 근로자들이 자꾸만 회사를 떠나고 있고, 그나마 새로 채용하고자 해도 이번 사람은 우리 회사에 얼마나 머물러줄지 몰라 불안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누군가를 채용하여 교육시키는 것 자체가 비용이기도 하지만, 3~5년 정도 일하여 회사의 시스템과 업무에 어느 정도 친숙해진 인재가 장기근속하지 않고 회사를 떠나는 것 자체가 그 이상의 매우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은 비단 국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저마다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난리가 난 상황이니까.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너무 많은 시간을 노동에 매여있길 바라지 않는다. 부동산과 코인, 주식, 가상 자산 등 무형의 자산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 가치가 드라마틱하게 상승해가는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9시간, 혹은 그 이상을 바쳐서 벌어가는 월 200~300만 원의 월급은 도무지 융통성이 없다. 고정된 날짜에 고정되어 찍혀 들어오는 액수는 내가 하기에 따라 더 나아질 거라는 상상의 여지조차 없게 가능성이 차단된 상태다. 자연히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돌려보게 되고, 직장에 앉아 있는 시간이 손해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회사는 '조직'이고, 사회생활이기 때문에 타인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일이 많다. 각종 회의나 급하게 터지는 이슈, 주어지는 일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비업무적인 일들 등등을 따져보면 직장인이 9시간을 일한다 해도 그 시간 내내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능력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런 회사 생활이 소모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는 9시간 동안 따로 혼자 집중해서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을 것이고, 그에 따라 벌 수 있는 돈도 훨씬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언제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전 세계를 덮쳐 당장 나의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극도의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더 이상 회사가 제공하는 노후 연금이니, 복지니, 자녀 학자금이니, 그런 것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됐다. 그렇기에 2030이 원하는 것은 업무에서의 보람과 즉각적인 보상이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2030을 잡자고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간 구축해 왔던 회사의 체계와 근간을 한순간에 뜯어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그들보다 오랫동안 회사를 지켜왔던 기성세대는 여전히 회사에 잔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젊은 세대들이 채용 관련 익명 커뮤니티에서 회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때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것이 퇴사율과 근속연수가 되었다. '근속연수가 긴데 퇴사율이 높다'는 회사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야말로 최악의 회사로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고인물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채용 공고를 낼 때 '우리 회사는 2021년에 퇴사자가 0명이다'는 식으로 퇴사율이 적음을 적극 어필하기도 한다. 취업난 속에서도 '일할만한 사람'이 좀처럼 일하러 오지 않는 최악의 구인난 속에서 2030이 '떠나기 싫은 회사'로 탈바꿈하는 것은 이제 기업의 최대 미션이 되었다.


 기업들은 고심한다.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2030이 원하는 업무에서 성과를 발휘하게끔 하기 위해서, 좋은 인재들을 채용하기 위해서,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노동자들이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돈보다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회사에 헌신하지 않는 2030들을 붙잡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결국 사회의 변화를 한층 더 앞당길 것이다.



<트렌드모니터 2022>라는 책의 저자인 윤덕환 마크로밀 엠브레인 이사가 최근 유튜브 드로우앤드류에 출연해 말한 바에 의하면, '시간 선택권'처럼 회사에서 무엇인가 바꿀 수 있는 권한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직장 생활을 오래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사실에는 나도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실제로 나도 지난 직장생활을 돌아봤을 때 가장 만족스러웠던 복지 혜택은 시차출퇴근제였으니까.


 결국 조기 은퇴를 꿈꾼다는 사실의 근간에는 '내 시간을 자유롭게, 보다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월급에 있어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면, 적어도 시차 출퇴근이나 유연근무제를 통해 그러한 시간에 대한 융통성이라도 발휘할 수 있게 해 준다면 2030 젊은 직원들의 만족도가 조금 더 높아지고, 잔류율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나는 곧 '주 4일제'의 시대가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 노동자들이 금보다 귀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직장에 돌아오는 것을 꺼린다면, 시간을 직접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런 만큼 나는 주 4일제가 국내에서도 예상보다 빨리 도입되고 정착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모든 업종에 통용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근시일 내에 큰 기업들 위주로 시작하여 서서히 피할 수 없는 대세의 흐름이될 것이다. 그렇게 주 4일제가 정착되어, 직장에 소속되었음에도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인들이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사회의 모습도 크게 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쩌면 2,3년 내로 웬만한 사람들은 직장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개인 사업이나 창작을 하는 투잡을 하는 것이 '디폴트' 값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현재의 채용 시장은 그만큼 철저히 노동자 우위의 시장이다. 이 상황에서 기업은 지속적이면서도 충성스러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22년만 되어도 기업들은 대부분 절박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일할 인력이 없어 고사할 수는 없으니까.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임금과 복지 혜택을 대폭 조정할 것이며, 이외 근무 환경의 변화도 상당할 것이다. 직장인의 겸업 금지 조항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 비웃음을 살 것이다.('직장에서만 벌어서는 평생 집 한채도 마련 못하는데 회사가 대체 무슨 근거로 내 시간을 다 독점하려 하나? 나야 뭐 여기서 일 안하면 그만인데'.) 어차피 비대면으로 일할 수 있는 세상이니, 국내에서 일할 사람이 없으면 아쉬운 대로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도 채용해서 쓰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 더 노동자에게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쓸만한 인력을 소개해 주는 등 채용에 도움을 주는 행위에 대한 보상도 현 수준보다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일부 회사에서는 이미 '소개비 100만 원'을 내걸고 채용 사실을 홍보하고 있다. 이 포지션에 쓸만한 사람을 소개해주고, 그 사람이 수습 기간을 거쳐 정직원으로 채용하게 되면 소개자에게 10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것이다. 곧 있으면 더 나아가 소개해준 사람이 2년, 3년 장기근속을 할 경우 추가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자체적인 체계를 개발할지도 모른다. 일할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돈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니 HR, 헤드헌팅 등 중개 플랫폼의 성장도 상당할 것이다. 쓸만한 인력풀을 갖춘 능력 있는 헤드헌터들의 협상력에 따라 회사의 명운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 모든 회사에서 탐낼 만한 능력을 갖춘 근로자의 경우에는 헤드헌터를 개인 에이전트로 두고 몇 년 주기로 잡 호핑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철저하게 자동화, 기계화를 통해 높아진 인건비를 상쇄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 시기 동안 로봇, AI, 키오스크 등은 더욱 정교화되지 않을까.


 하여튼 요즘은 이런 것들을 고민하며 관련 산업에 투자할 만한 곳을 알아보고 있다. 20대에 극심한 취업난을 뚫고 취업했고, 30대에 극심한 구인난 속에서 사표를 던지고 나온 나로서는 내가 은퇴를 마음먹고서야 비로소 구직자 우위의 고용노동시장을 맞이하게 된 상황이 다소 얄궂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아무리 타이밍이 야속하더라도, 재미는 있다. 이렇게 사람이 귀한 시대, 노동자 우위의 시장에 투자할 만한 투자처가 어디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고 조금씩 담가도 보면서, 여기저기 '일할 사람이 없다!'라고 곡소리가 들려오는 바깥세상의 아비규환에서 한걸음 떨어진 채. 한창 일할 나이에 조직에서 이탈한 나는 마치 그것이 남의 일인 양 태연자약하게 방구석 나의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이렇게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보는 것이다.




커버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드로우앤드류 'MZ세대가 퇴사하는 진짜 이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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