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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Oct 27. 2021

경력은 이만하면 됐습니다.

자발적 경력 중단녀의 고백


 9월 말일 퇴사 이후 10월이 된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있다.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직장의 생태계에서 벗어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대체로 안락한 집에서 보내며 이전에 비해 한결 편안해진 삶을 영위하고 있다.


 집에서 하는 일은 음.. 딱히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막 매일 늦잠을 자서 생활 패턴이 무너지고 그런 것도 아니다. 다년간의 숙련되고 학습된 노예(...)의 삶은 나로 하여금 별일이 없어도 오전의 특정한 시간에는 눈이 자동으로 떠지게끔 해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눈을 뜨고 나서는 슬렁슬렁 스트레칭도 하고, 겸사겸사 빈둥거리기도 하면서 그날 오전 장을 본다. 백수가 된 이후로 며칠은 벌었고, 며칠수익 실현을 못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시황 및 잔고 현황을 체크한 다음엔 늦은 아점을 먹고, 오후 장을 또 보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가고... 그러다 보면 코인하고, 미국 주식 볼 시간이 온다.


이런 나에게 누가 갑자기 직업을 묻는다면, 마치 영화 <작전>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하루를 보내도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지나간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직장인일 때는 이렇게 하루를 온전히 보내기 위해서는 직장에 휴가를 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낸 '휴가'라는 기간 내에 어떻게든 나의 모든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항상 뭔가에 떠밀려 쫓기듯이 시간이 후르륵 지나가 버렸다면 지금은 그럭저럭 스스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의식한 상태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인간적으로 너무 집에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밖에도 조금씩 다니고 있다. 퇴사를 하자마자 시작한 단기계약직 일이 있어 종종 밖에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마침 그간 준비해 왔던 책도 출간됐겠다, 지인들도 조금씩 만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그렇게 집에서 놀면 불안하지 않냐고 물어온다.


 어째서인지 그들은 그런 질문을 들은 내가 '전혀 안 불안한데요'라고 말하면 동공이 거침없이 흔들리지만, '사실은 제가 퇴사 직후에 바로 3개월짜리 단기계약직 일을 하게 되어 현재 상태가 마냥 백수만은 아니다'라고 대답하면 그제야 뭔가 납득이 간다는 듯 안도하는 표정을 짓곤 한다. 



"그래, 지금 한다는 그 일도 분명히 너의 앞으로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야.
쭉 그렇게만 잘해나가면 돼."



 라는 그들의 격려는 어쩐지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해진다. 나의 커리어를 걱정해주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나는 더 이상의 업계 경력은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기꺼이 자발적 경력 중단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더 이상 일과 직장이 무의미해진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내게는 더 이상 열정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내가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는지조차 의문이다.


 돌이켜보자면 나는 월급을 받고자 하는 일에 동종업계의 유명인들처럼 열정을 쏟아가며 커리어를 키우고자 하는 욕심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직장에 다닐 땐 직장생활에 최선을 다했고, 퇴사할 땐 동료로부터 '너같이 열정적인 애가 퇴사를 왜 해'라는 아쉬움 섞인 작별인사를 듣기까지 했지만 정작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전혀 열정적인 사람으로 느끼지 않았다. 내가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일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사실 학창 시절 공부가 정말 싫었지만 '학생이니까 공부를 잘해야 해'라고 생각하고 학습된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내 모습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30대 또래가 직장인으로 살았고, 그랬기에 휩쓸려서 직장인이 된 나는 일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하는 척해왔을 뿐이다. 내 나이 정도면 직장인으로서 으레 가져야만 할, 내 이름 옆에 내세워야 할 '커리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서.


그러나 나는 본디 열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열정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이제 와서 내 지난 직장 생활을 돌아보니 나는 특별히 내 일을 좋아해서 미친 듯이 하거나, 맡은 일을 잘 해냈다고 해서 거기서 보람을 크게 얻는 타입도 아니었던 것 같다. 혹시라도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였다면, 그것은 단지 내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왕 해야 한다면 '잘' 하고 싶었던 마음. 그것이 나를 소처럼 일하는 직장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한 내 태도가 가져온 일련의 결과와 그것을 향한 과정들이 내게 '열정라이팅'으로 작용하여 한때는 나도 저런 내 속성을 '열정'으로 착각한 적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열정이 아닌 책임감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는 결코 그것을 열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 내 본질은 철저한 한량이었다. 난 노는 게 제일 좋다. 그리고 어떤 것에도 열정을 강요받지 않고, 나를 불사르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고요한 상태가 즐겁고 행복하다. 지금의 나는 그야말로 열정 없는 즐거운 삶을 한껏 만끽하는 중이다.


 그리고 어쩐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나와 같이 '한량'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내가 특이한 존재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상 지나고 보면 나만큼 대세를 착실히 따르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요즘 뜨는 위와 같은 기사들을 보며 나는 내가 또 이번에도 '내 판단'이라고 생각하며, 사실은 사회적 흐름에 휩쓸려버린 것이 아닌지 잠시 고민해 보았다. 그런데 뭐 정말 어떡하나. 일하기 싫은 것을.


 그렇게 20대 중후반, 조금은 늦은 나이에 시작했던 내 경력은 그렇게 끝내 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막을 내렸다. 앞으로의 내 인생엔 과장도, 차장도, 부장도, 임원도 없다. 업계에 내놓으라 할 네임드가 될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앞으로 계속 나다. OOO 소속도 아닌, 내밀 명함도 없는 지극히 작고 작은 개인이지만, 그냥 '나'다. 내가 낸데. 그러면 안 되는 건가.


 퇴사하던 날, 누군가 내게 물었다. '그동안 쌓은 커리어가 아깝지 않냐'라고.

 나의 대답은 '전혀'였다. 나를 여태껏 갉아먹고 있던 게 바로 그 '커리어'라는 허상이었다는 것을, 직장 생활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하던 그날의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발상 해서 생각해 보면, 잃을 게 없는 사람이 두려움이 없다고.. 딱히 커리어에서 주목할 만한 뭔가를 쌓아둔 게 없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놀라울 정도로 아쉽지 않다. 적어도 내가 있었던 회사에서는 나의 '커리어'라는 것이 내게 직접적으로 밥을 먹여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더 나아가 앞으로도 내게 밥을 먹여줄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커리어'라는 말은, 내게 늘어나는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없기에 여기저기서 건네는 실체 없는 환상 속의 달콤한 결과 - '이걸 해내면 너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야' - 에 불과했다.


 대체 '그날'이 언제 온단 말인가? 경력을 열심히 쌓아서 커리어에 도움이 되면 나는 내 삶을 내 뜻대로 영위할 수 있게 되나?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숙련된 직장인이 될 뿐 아닌가. 그때 가서 주어지는 '최고의 직장인'으로서의 명예가 내게 어떤 기쁨과 행복을 줄까? 를 생각했을 때 나는 회의적이었다.


 내가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의 경우에는, 내 직업에 대해 그렇게까지 열정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뿐이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직장에서의 명예보다 나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의 가치를 무척 높게 두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읽은 칼럼 중에 정말 공감하며, 감명 깊게 읽었던 글이 하나 있다.



 이 글에는 일주일에 60-80시간 일하며 40대 초반의 나이에 1,000만 달러의 재산을 이룩한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창업가 개리와, 30세에 은퇴하고 60만 달러 가량을 투자하며 연간 2만 5천 달러의 소득을 얻으며 살아가는 피트의 이야기가 나온다. 둘 중 누가 더 스스로를 '부유하다'라고 느낄까?


 글쎄, 본인들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일단 개리는 아니다. 그의 주변엔 항상 그보다 더 버는 사람들이 넘쳐나기에, 주변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자꾸만 가파르게 커져가는 그의 욕망의 성장 속도를 그의 소득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면, 피트는 다르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투자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는 피트는, 일을 하지 않고 연 수입도 크지 않은 수준이지만 스스로 부유하다고 느낀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자신이 스스로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이다. 무엇보다 그는 연 2만 5천 달러의 소득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는 사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원하는 삶의 행복과 여유를 추구하는 데에는 그렇게까지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스스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으며, 유연한 일정을 보내는 것이다. 컨트리클럽의 부자들이 부자라고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더 많은 돈을 벌수록, 원하는 물건이 더 많아지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하며, 이로 인해 삶이 더 바빠지고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나이 50에 퇴사 후의 일상을 기록한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을 쓴 이나가키 에미코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그녀는 조금 이른 퇴사를 하고 나서 한정된 재정 상황을 인지하고 검소한 삶을 살고, 절약하며, 가끔씩은 글을 쓰거나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SBS 스페셜 475회 20170611 SBS


  피트와 이나가키 에미코와 같은 얼리 파이어족의 삶은 얼핏 봤을 때 남들이 꿈꾸는 FIRE족의 그것은 아닐 수 있다. 30억, 100억을 벌어서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뒤 조기 은퇴하는 사람들이 대문자 FIRE라면, 이들의 사례는 상대적으로 작고 귀여운 소문자 fire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대문자 FIRE를 꿈꿨지만, 결국은 소문자 fire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직장에 다닐 때보다 지금의 나 자신이 더 부유하다고 느낀다. 아침에 눈떠서 부랴부랴 나가야 할 데가 없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내가 한창 젊은 나이에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나?' 라던가, '내 경력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결국 내가 자발적으로 나의 경력을 포기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이었음을 알기에.


 나는 나의 경력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자꾸만 저런 말을 듣는 게 조금 귀찮아서 단톡방 친구들에게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경력이 아쉽지 않냐고 물어봐. 난 경력 이제 필요 없는데.'라고 했더니, 누군가가 대뜸 이렇게 대꾸해왔다.



"부자가 커리어지 뭐.
그냥 '돈이 제 경력입니다'하고 살어!"


 

 돈이 곧 경력. 이게 뭐라고 듣는 순간 10년의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는지. <돈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의 'Best Friends Ever' 챕터에도 언급했지만, 이렇게 적재적소에 짤막하면서도 팍 꽂히는 말을 던져주는 그들을 나는 무척 사랑한다!


 그렇다. 나는 앞으로 살면서 거창한 경력 그런 거 필요 없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고, 내 시간 내가 맘대로 쓰고, 소득이 줄어든 만큼 덜 쓰고 그럼 되지 뭐. 일 들어오면 가끔 이렇게 계약직 일 하고, 일 안 들어오면 안 들어오는 대로 주식/코인하며 매달 집 빚 갚고 관리비 낼 정도로 벌고, 글 쓰고 싶으면 쓰고. 그러면서 살면 된다. 이제 와서 내 경력기술서에 뭐 한 줄 더 추가하겠다고 아등바등 살지 않겠다. 내 인생에서 경력은 이만하면 됐으니까.


 비록 소문자 fire가 대문자 FIRE로 바뀌지 않더라도, 경제적 자유를 얻진 못했더라도, 작은 fire인 나는 이 열정 없는 편안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다.




+


혹시 그간의 내 모습을 알던 사람들 중 아직까지 나의 열정 없음이 납득되지 않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사실 제 열정의 8할은 책임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더 이상의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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