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이 맘 때쯤,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평소 즐겨하던 운동이던 클라이밍을 소재로 써 내려간 나의 첫 책의 제목은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였다.
작고 귀여운 나의 첫 책은 새파란 색이었다.
비록 스포츠 클라이밍을 소재로 한 책이었지만, 나는 이 책의 한 챕터를 클라이밍과는 동떨어진 생소한 주제에 할애했다. 바로 주식 투자였다. 이 책의 '내가 주식투자를 하는 이유'라는 챕터에서 나는 클라이밍과 주식 투자가 내 인생에서 매일매일의 작은 모험의 경험을 선사해준다는 점에서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해당 챕터의 마지막 문장은 아래와 같았다.
"아마 언젠가 내가 두 번째 책을 내게 된다면 그 책의 제목은 '나는 주식 투자로 인생을 배웠다'가 될지도 모르겠다."
언령(言霊). 말에는 힘이 있다고 하던가. 우스갯소리처럼 내뱉었던 그 말이 곧 현실이 될 줄이야. 그 말을 내뱉은 지 1년 만에 나는 그 일을 실제로 이루게 되었다. 공언했던 투자 에세이를 출간하게 된 것이다.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코스피 3천을 하방으로 돌파한 이 시국에 아주 적절한 제목!
나의 두 번째 책 <돈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는 이 브런치의 <주식하는 작고 귀여운 마음>이라는 매거진에 연재되던 글들과, 나의 인스타그램 매매일지(... 라 쓰고 드립이라 읽는다) 계정인 100불녀 피드에 올라오던 게시글들을 재미있게 본 편집자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나는 투자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가 1K를 넘는 네임드도 아닌데 이런 내가 투자에 대한 책을 내도 되는 것일까' 잠시 고민했었다. 그러나 이내 나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카카오TV의 예능 프로그램 <개미는 오늘도 뚠뚠>을 보면 김동환 프로나 슈카월드같은 전문가들이 나오고, 노홍철, 딘딘, 김종민과 같은 고정 패널들이 나온다. 2020년부터 동학 개미 운동에 힘입어 수많은 전문가들이 투자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출간했다. <개오뚠>으로 치면 주로 멘토님들이 책을 냈던 셈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런 멘토님 급은 될 수 없다. 첫 책을 낼 때도 고백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나 스스로를 <개오뚠>에 나오는 출연진에 대입해보면, 나는 절대적으로 노홍철, 딘딘, 김종민과 같은 고정 패널들의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렇지만, 투자에 대한 책은 꼭 멘토님 같은 사람들만 내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노홍철처럼 홍반꿀의 슬픈 전설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나, 딘딘처럼 초 하이 리스크 투자를 하거나, 김종민과 같이 물려 있는 개미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개오뚠>을 볼 때나, 투자 관련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눌 때 항상 깊은 인상에 남았던 것은 누군가의 수익률보다는 웃픈 에피소드인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 투자하다 잘못된 선택을 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더라도, 당사자가 먼저 나서서 그것을 농담으로 승화하면 그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 한편이 뚝딱 탄생하는 것 같았다. 비록 익명으로 소통하는 단톡방이지만, 그곳에서 만나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웃픈 에피소드들을 가감 없이 풀어놓곤 했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스토리에 빠져들고, 나의 스토리도 같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투자를 해서 큰돈을 벌진 못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투자'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만나게 된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투자를 해서 돈을 못 벌거면 재미라도 있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내게 투자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는 살아 숨 쉬는 리얼리티 예능 그 자체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100불녀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직접 열어 본격적으로 스스로 웃픈 에피소드들을 연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이 세상에 존경받는 투자 멘토나, 성공한 투자자의 입장에서 노하우를 전수하는 다큐 같은 책은 많다. 그러나, 누군가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개미는 오늘도 뚠뚠>의 멘토가 낸 책 말고, 노홍철이, 딘딘이, 김종민이 신나게 풀어놨던 자신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희로애락을 담아 풀어낸 '썰'같은 그런 책. '투자'를 다큐가 아니라 예능으로 접근하는 나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그런 책이 세상에 한 권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이 책의 원고를 쓰는 것은 나 스스로도 굉장히 즐거운 과정이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속해 있는 단톡방에 얘기하듯이, 종목 토론방에 하소연하듯이, 아니면 친구와 술자리에서 얘기하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술술 써져서 분량이 너무 넘치다 보니 종국에는 상당 부분을 덜어내야 했지만, 어쨌든 이 책의 원고를 쓰는 과정조차 내게는 너무도 즐거운 과정이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읽는 내내 그런 나의 업된 텐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 책을 읽어주셨던 분들은 그 갭 차이에 놀라실 수도...)
요약하자면, 이 책은 투자에 대해 엄청난 해법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내가 썼지만 음.. 정말 놀라우리만치 당신의 투자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딱히 투자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고 해답이나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그냥 한 평범한 직장인 개미투자자의 입장에서 '난 이렇게 저렇게 투자해봤고, 이런 걸 느꼈다. 그래서 난 좋았고, 앞으로도 계속 투자할 거다.' 하는 캐주얼한 독백을 담은 책이라고 봐주시면 된다.
요컨대, 투자는 각자 하던 대로 알아서 하시고 이 책은 그저 재미로만 봐주시길 바란다.
그저 나와 비슷한 처지의 평범한 개미 투자자들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꼈을 희로애락의 한 꼭지라도 웃으며 공감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족한다. 이 책을 읽는다고 당신이 당장 익절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웃음만은 익절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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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 그저 늘 머리속으로 생각만 했고, 웃으며 지나치려고만 했던 가볍고 사소한 에피소드들까지 늘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신 위즈덤하우스의 이선희 편집자님, 넘치는 아이디어로 위트 넘치면서도 따뜻한 일러스트들을 그려주신 최진영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두 분의 열정적인 아이디어로 탄생한 책 표지를 본 순간 느꼈던 감동은 말로 표현 못한다. 나의 사랑하는 새들과, 나의 모습이 함께 담긴 이 표지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인생의 보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