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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city] 당신 인생의 불투명도는 얼마인가요?

포토샵 - Opacity (투명도)

by 사리나

들어가는 말 - '그래픽 툴 에세이 : 디자인 툴 배우는 에세이스트'에 대하여.


얼마 전, 책키라웃이라는 매체에 프리 칼럼을 기고할 일이 있었다.

사실 칼럼을 기고한 최초의 의도는 어느덧 회사를 퇴사한 지 6개월 정도 된 나의 퇴사 에필로그를 쓰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다 써놓고 보니 왠지 너무도 개인적이고, 구구절절해져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칼럼인데, 뭔가 의미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불투명도'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떠오른 그 말을 키워드 삼아 아래의 문장을 써 내려갔다.



포토샵 프로그램에는 ‘오퍼시티(투명도)’라는 조절 값이 있다. 이 값이 0%면 완전 투명, 100%면 완전 불투명이다. 이전까지, 직장에 다니던 당시의 나의 삶은 완전 0%의 오퍼시티까지는 아니더라도, 반투명하게 미래가 어느 정도 들여다 보였던 삶이다. 나는 그렇게 내 3년 후, 5년 후가 눈에 빤히 보이는 대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회사를 뛰쳐나오는 순간 내 삶의 오퍼시티는 100%의 하얀 백지가 되었다. 가뜩이나 그냥 냅둬도 불투명한 그 상태 위에, 나는 이런저런 불투명한 브러시로 돌이킬 수 없는 색칠을 해나가고 있다. 3D 모델링이든, 웹 소설이든, NFT든, 글쓰기든, 뭐든지 닥치는 대로 해나가며.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하나의 색깔로 규정되지도 않는 존재가 되었고, 나 스스로도 당장 내년의 내가 뭘 할지 빤히 들여다 보이지도 않는 , 그야말로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니까.


https://checkilout.com/?p=11614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글이 꽤 맘에 든다. 아마도 내가 올해 써 왔던 모든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동안 브런치에는 글을 쓰고 있지 않았지만, 10줄 문학을 통해 내 근황을 계속 지켜봐 온 독자라면 최근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 프리칼럼에서 고백한 대로 나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퇴사를 질렀지만, 그다지 멋지게 살고 있지는 않다. 사실은 저 칼럼을 쓰게 된 것도 지난 월말에 예기치 못하게 주머니 사정이 궁해져서, 뭐라도 좀 벌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혹시 제 글을 좀 팔아먹을 수 있을까요?'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던 것뿐이었다. '20엔 놓고 꺼져'라고 말하던 다자이 오사무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다소의 곤궁함이 묻어나는 칼럼을 쓰게 된 데에는 그런 어느 정도의 현실적인 사정도 분명 존재했다.


문제는 회사를 나옴으로써 나의 일상의 배경이 일부의 영역으로 한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던데. 나를 강제로 집에서 끌어내 주는 의무가 없는 생활 패턴 속 나의 일상에서는, 적어도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글쓰기의 영감을 받을만한 부분은 전무했다.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있으려면 한없이 혼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라. 정말 하루 종일 한 마디도 목소리를 내어 말하지 않는 날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으니까.)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필요에 의해 쓰는 글이나, 10줄 문학 같이 뇌 빼놓고 막 쓰는 그런 글 말고.

예전의 내가 썼던 그런 에세이를 내가 다시 쓸 수 있을까?

고민해 봤지만 그다지 확신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 어느 정도는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어느 가영이의 고백>의 마지막 부분을 쓰면서 나는 느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는 그 말이 참으로 맞지 않은가?


직장에 다니며 2권의 에세이를 출간한 평범한 직장인이, 자신의 퇴사 에필로그를 쓰다가 뜬금없이 포토샵 얘기를 꺼낸다. 이 이상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녀가 직장을 퇴사하고 나서 컴퓨터 학원에 다니면서 2달간 포토샵을 배웠기 때문이다.



FYI. 포토샵의 Opacity 기능이란...

투명도를 조절하는 기능으로, 값이 100%면 불투명, 0%면 투명이다.



포토샵뿐만이 아니다. 애초에 그녀가 컴퓨터 학원에 등록한 최초의 목적은 포토샵을 배우는 게 아니라 3D 모델링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포토샵을 배우기 전, 인체 해부학을 배워야 했다. 포토샵을 활용한 디지털 드로잉도 배웠다. 그녀는 이제 3D 모델링 수업을 수강한 지 1개월이 넘었고, 요즘에는 ZBrush라는 프로그램으로 악전고투하며 난생처음으로 버추얼 조소(彫塑)에 도전 중이다.


마케터이자 MD로 일해왔던 그녀의 지난 8년 간의 세월 동안, 이와 같은 그래픽 툴은 전혀 다른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녀는 엑셀과 파워포인트, 키보드의 세계에서 벗어나 포토샵과 3D 그래픽 프로그램, 타블렛과 와콤 펜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 것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으며, 그녀는 여태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녀가 뇌에서 써왔던 부분과는 전혀 다른 부분을 자극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을 깨닫고, 생각한다.


그동안은 왜 이것을 영감의 원천으로 인식하지 못했을까?


평생 물건 팔고 글만 써왔던 문과생이, 처음으로 2D, 3D 디자인 툴을 접하면서 느끼는 이 경이로움이 얼마든지 글쓰기의 새로운 영감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유레카!'를 외치며 이 글을 쓰고자 브런치에 들어왔다.


이 매거진에는 평생을 문과생으로 살아왔던 한 30대 중반의 글쟁이가 처음 마주하게 된 그래픽 툴의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질 것이다.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당신이 일상적으로 쓰는 그 기능에 나는 인생을 빗댈 수도 있고 사랑을 빗댈 수도 있다.

오퍼시티 100% 기능으로 불투명한 인생의 즐거움을 논한 '어느 가영이의 고백'처럼, 어떤 이야기들은 말도 안되는 갖다붙이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앞으로 써나갈 모든 이야기들이 말도 안되는 황당한 비약처럼 느껴지더라도, 전문가로서 이 내용이 다소 어설프게 느껴지더라도. '글 쓰는 사람이 그래픽 툴을 배우니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참 특이하네'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겠다.


디자인 배우는 에세이스트의

그래픽 툴 에세이 : 디자인 툴 배우는 에세이스트 매거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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