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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p] 잘라내도 지우진 말아요

포토샵 - Delete Cropped Pixel에는 체크박스를 해제하세요

by 사리나

Crop의 의미는 '잘라내다'는 뜻이다. 포토샵에서 크롭 기능의 아이콘은 아래와 같이 생겼다.



생긴 모양이 마치 사진을 찍을 때 구도를 잡기 위하여 검지와 엄지를 사용하여 위아래로 교차하여 프레임을 만드는 모양새 같지 않은가?



기껏 불러온 이미지에서 무엇인가를 잘라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미지의 용량이 너무 크거나, 스스로 판단했을 때 쓸데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크롭 기능을 사용한다. Crop 기능의 아이콘이 마치 손으로 사진을 찍는 모션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비슷한 모양새를 띄고 있는 것은, 이 행위 자체가 마치 무엇인가를 촬영하는 행위와 무척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프레임 안에 둘 것인가.

혹은 무엇을 프레임의 바깥에 둘(버릴) 것인가.



결국 이것은 일종의 선택의 문제이다. Crop 버튼을 눌렀을 때 생성되는 사방의 꺽쇠 박스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서 대상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무엇을 프레임의 안에 둘 것인가에 대해서 선택했을 땐, 그 이후로는 또 한 번의 선택의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포토샵에서 이 'Crop' 버튼을 누르면 상단에 활성화되는 'Delete Cropped Pixels'라는 옵션의 체크 박스의 체크 유무이다.


이 옵션의 디폴트 값이 체크가 되어 있는 상태일 경우도 있고, 선택이 해제되어 있는 경우일 수도 있지만, 포토샵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강사들은 Crop 기능을 가르칠 때 꼭 이 부분의 체크박스가 해제되어 있는지 확인하라고 알려준다.


이 옵션은 'Crop기능을 통해 선택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영역을 완전히 삭제할까요?'라고 물어오는 값이다. 어찌 보면 이상하다. 애초에 필요가 없어서 잘라내는 것인데, 버려지는 영역을 아예 돌이킬 수 없게 완전히 삭제할 거냐고 굳이 더 물어본다는 것이.


그렇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의외로 Crop 된 영역을 다시 되살려야 할 때가 종종 발생한다. 이만큼만 필요한 줄 알고 다 잘라냈는데, 사실은 조금 잘렸다거나. 아니면 원본을 복사해서 다른 부분을 별도의 레이어로 활용해야 한다던가.


그럴 때, Crop이 이미 완료된 상태에서 시점이 한참 지난 뒤라면? 심지어 Crop 기능을 사용할 당시 Delete Cropped Pixels 옵션에 이미 체크가 되어 있던 상태라면?


Ctrl + Z를 아무리 눌러도 돌아오지 않는 원본을 찾지 못한 채, 처음부터 새로 작업을 하거나 아니면 그 부분을 다시 작업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즉,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있던 작업이더라도 결국에는 그 작업의 흐름이 깨져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명한 디자이너들은 Crop 작업 시 저 부분의 체크 박스를 미리미리 해제함으로써 잘라냈지만, 언제든지 복원할 수 있도록 잘려나간 부분을 간직해 두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8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끔은 어설프게나마 급한 대로 대충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발생하곤 했다. 그렇기에 포토샵의 몇몇 기능은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눈대중으로 대충 배워 알고 있었다. Crop 기능 또한 그러한 기능들 중의 하나였다. 당시 포토샵을 제대로 배우기 전의 내게는 Crop은 그냥 단순히 '잘라내기' 기능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 기능의 신비로운 'Delete Cropped Pixels'라는 옵션을 배우고 나니 나는 이 기능의 핵심이 '잘라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직 쓸데없는 것을 배제하기 위해서인 것처럼만 보였던 이 기능의 핵심이 사실은 무엇인가를 거침없이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잠시 선택되지 못한 부분을 은밀하게 숨겨 간직하는 것이었다니!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일 수는 있으나, 나는 이 사실에 꽤 감동했다. 의외성이랄까, 반전이랄까. 겉보기와는 다른 히든 속성을 발견했을 때 찾아오는 소소한 감동을 느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살아오면서, 나는 항상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해 왔다. 말이 좋아 효율성이지, 사실은 에너지의 낭비를 조금도 견디지 못하며 뭐든지 계산적으로 재고 판단해 온 인생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삶에 다가오는 어떤 지식도, 정보도, 사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었다. 누구든, 무엇으로부터든, 나는 그저 내가 필요로 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을 Crop 하여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잘라내고, 잘라내어져 버린 부분은 지워내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Crop의 조각들을 쌓아가는 동안 나는 점점 필요 없는 부분까지 받아들이는 여유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의 Crop은 당연히 노 빠꾸였다. 잘라낸 부분을 나중에 다시 돌이켜볼 일이 있으리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이것저것 다 잘라내고 쳐내며 꾸준히 달린 인생이었다. 그런데, 똑똑한 포토샵이 비치해둔 이 기능이 내게 일종의 가르침을 준다.



인생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지금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나중에도 그게 아쉽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

잠시 내 시야에서 잘라내더라도, 아예 버리지는 말라고.



살다 보면 이렇게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어서 잘라냈던 어떤 부분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어떤 순간에 불현듯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내가 모든 크롭질에 인정사정없이 'Delete Cropped Pixels'를 선택해놔 버렸더라면 어땠을까? 내게 필요한 부분만 취하고, 당시의 판단에 의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죄다 휴지통에 버려버렸더라면? 되살릴 수 없는 그 부분이 아쉬워 체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포토샵의 Crop 기능을 배우며, 나는 비로소 내 인생의 Delete Cropped Pixels의 체크박스를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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