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CTRL+Z] 실행취소, 혹은.

모든 그래픽 툴의 절대 공용어

by 사리나

Ctrl + Z.


이 단축키가 갖는 기능에 대해 단순히 사전적으로 정의하자면, '실행 취소'일 것이다.


그래픽 툴이든, 저작 툴이든.

결정적인 순간에 Ctrl + Z만큼이나 '구세주'처럼 느껴지는 기능이 있을까?


Ctrl + Z 기능을 사용하여 되돌리고, 되돌리고, 되돌리다 보면. 과거의 어떤 과오를 되돌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느 시점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웹소설에서나 가능한 회빙환이, Ctrl + Z 하나로 가능해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인생에서는 Ctrl + Z 가 없다.

때문에 뭔가를 작업할 때 Ctrl + Z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누를 수 있다는 것은, 실제의 인생에서는 얻을 수 없는 엄청난 행운이라고 봐야 마땅하지만.








살다 보면 종종 공들여 준비하던 어떤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들이 더러 있다.


특히, 당신이 프리랜서라면 더욱더 그럴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신분의 당신에게는 어디서든 항상 '논의'할 만한 일들이 들어온다. 그렇게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며, 한참 일에 몰입하여 진행시켜 가는 과정에서 당신은 이미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비록 아직 계약서도 쓰지 않은 상태일 지라도 당신은 최선을 다한다. 지금 논의 중인 일이 실제로 이뤄지는 순간을 꿈꾸면서.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논의가 진행되면서, 당신의 타임라인과 미래 계획도 단계들이 쌓여 나간다. 마치 포토샵 프로그램의 히스토리 창에 값이 쌓이듯이.


history.PNG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Ctrl + Z를 눌러야 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클라이언트의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다른 경쟁자가 등장해서, 운영 방식을 바꾸게 되어서, 예산이 없어져서 등등. 혹은 그냥 자연스럽게 Fade Out 되듯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되면서 한 단계씩, 한 단계씩 Ctrl + Z를 통해 다시 히스토리를 되짚어 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꽤나 고통스럽다.


절실히 쌓아왔던 어떤 것들은, 마치 그런 것이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하게 돌아간다. 마치 얄궂을 정도로.



이렇게 혼자서 최종의_최종의_최종의_최종의_최종.psd라는 완성본을 꿈꾸며 착착 진행해오던 어떤 일들에 Ctrl Z를 눌러 실행 취소를 해야 하는 순간. 그것도 아예 초기화 수준으로 되돌려야 하는 순간도.


당신의 일상이, 생계가 이러한 외부의 어떤 일로 인하여 꽤나 충격적일 정도로 휘둘릴 때.

어쩔 수 없이 좌절하고, 무력해지는 그 순간이, 꽤나 자주 찾아올지도 모른다.


당신이 프리랜서라면 말이다.







'Ctrl + Z'는 대체 뭐의 약자일까?


예전에 컴퓨터를 막 배우던 시절, 나는 가끔씩 이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가끔씩 찾아보곤 하는데, 별다른 설은 없는 것 같다.

그냥 나 혼자 추측해보는 바로는 이렇다.


Z는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Ctrl + Z는 그런 뜻 아닐까.

A부터 시작해 Z까지 왔다면, 마지막 한 번 기회를 더 준다는 뭐 그런.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Ctrl + Z당하는 것은 확실히 속상한 일이지만,

어떤 일들은 적절할 때에 되돌리지 못하면, 앞으로는 더 수습이 어려울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 되었다 하더라도, Z는 희망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니 나는 기꺼이 Ctrl + Z를 스스로의 희망을 컨트롤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프리랜서인 나의 정신승리를 위한 소중한 명령어로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Crop] 잘라내도 지우진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