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Feb 29. 2016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할아버지가 된 반려동물과 산다는 것.


"관절염입니다."


늘 가던 동물병원의 주치의가 진단 결과를 말하는 순간, 충격받았다. 곧이어 순간적으로 한꺼번에 몰려드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관절염이라니?' '그거 새도 걸릴 수 있는 건가?' '치료할 수는 있는 건가?' '혹시 치료가 불가한 거라면 앞으로 평생 장애가 생기는 건가?'


나의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보고, 의사 선생님은 싱긋 미소 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래요."


그리고는 자신의 손목을 들어 올려 내게 보여주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자, 제 손목을 봐요. 왼쪽 손목이 오른쪽 손목에 비해 잘 꺾이지 않죠? 이게 최대한으로 꺾은 거예요. 저도 관절염이 있어요. 그래서 아침마다 약을 먹어요. 약을 먹으면 고통을 잘 느끼지 않게 되지요. 아마 이 아이도 앞으로 그렇게 지내야 할 거예요."


나는 손목을 쳐다보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관절염을 앓고 있어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50대의 중년 남성. 그래, 만약 내가 키우는 새가 사람이라면, 딱 저 정도의 나이겠구나 싶었다.





내가 나의 반려조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의 봄이었다. 나는 당시 1년 반의 어학연수와 워킹홀리데이를 마친 뒤, 복학을 위해 당시 다니던 대학 근처에 작은 원룸을 얻었다. 내가 열심히 벌어 온 돈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들뜨고 뿌듯했던 것도 잠시. 나는 예상치 못한 복병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그 전까지는 혼자 살던 내가, 아무도 없는 집에 익숙했던 내가. 어학연수와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하우스 메이트들과 함께 살며 누군가와 같이 사는 재미를 느껴버리고 만 것이다. 적어도 그 1년 반의 해외 체류 기간 동안은,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 간 경험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10평가량의 비좁은 원룸에 룸메이트를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이 집에서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차선책을 찾아야 했다. 반려동물과의 삶을 결정했을 때, 가장 고민했던 것은 '지속 가능성'이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내가, 적어도 그 동물과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 동시에 반려동물에게도 충분한 삶의 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환경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개, 고양이는 애초에 탈락이었다. 귀엽긴 하지만 10평도 안 되는 원룸은 너무 좁았고, 또 소음이 발생할 경우 쫓겨날 수 있었다. 또한 매월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꽤 클 것 같았다. 다람쥐나 파충류, 고슴도치, 햄스터 등 다양한 후보를 거쳐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사람을 따르면서, 작고, 소음이 적고, 고정 비용이 크지 않은 애완조였다.


사람의 손을 타는 애완조, 문조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 나는 바로 입양을 할 수 있는 펫숍을 찾아갔다. 가정 분양을 받기에는 알고 있는 것도 없고, 커뮤니티에 활동 이력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멀리 강동구에 있는 곳까지 찾아간 그 펫숍에는 딱 한 마리의 새끼 새가 남아있었다. 같은 시기에 태어난 동기들은 전부 입양이 완료되어, 마지막으로 남겨진 딱 한 마리라고 했다. 새의 특성상 수컷인지, 암컷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처음 마주친 날카로운 눈빛과 어딘지 모르게 도도한 몸짓이 마음에 쏙 들었다. 온갖 파충류와 새들, 다람쥐 등 희귀 애완동물들이 한껏 모여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펫숍의 한 가운데서, 형제들이 떠난 플라스틱 박스 안에 혼자 남겨져 있던 그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마주쳐왔다. 마치  그동안 자신을 이 어수선한 공간에서 꺼내 줄 누군가를 기다려 왔다는 듯이. (어서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각종 생활 용품(새장, 둥지 등)을 들고 지하철을 타서 처음 집에 오기까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조심스레 오르던 순간. 쿵쿵 거리 지는 않을까, 멀미를 하지는 않을까 잔뜩 긴장했던 그 여정이. 마침내 집에 도착해서 상자를 열었을 때, 스윽 나를 한 번 쳐다보고 기지개를 켜던 그 눈빛이 생각난다. 그는 마시라고  놓아둔  물그릇에서 흠뻑 목욕을 해 버렸다. 새끼라 체온 유지가 되지 않아 목욕은 시키지 말라고 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반려동물이란 도무지 내 의도대로 행동해 주지 않는 생명체라는 것을.


이 귀여운 얼굴은 철저한 가면이었다!


나 외에 다른 생명체가 내 집에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기지개를 켜고, 날개를 퍼덕이는 그의 모든 행동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한 후 3일 정도는 가만히 두라고 했지만, 모이를 넣어주는 내 손에 그가 선뜻 허락하듯  올라앉은 날은 그보다 더 일찍이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감동한 것도 잠시, 내 손 위에서 잠들어버린 그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고, 두근거려했던 게 생각이 난다. 그와 나는 서로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처음이었지만, 낯선 내게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준 것은 그였다.


이후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좁은 방 안에서 달리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유독 내 손을 좋아했다. 내 손을 독점하고자 했으며, 내가 손으로 하고 만지는 모든 것을 질투했다. 컴퓨터를 할 땐 컴퓨터 자판 위 혹은 마우스패드 위에서 알짱거리며 시선을 끌었으며, 책을 읽을 땐 책의 위에 턱 하니 올라앉아 자신과 놀아달라며 칭얼거리기도 했다. 펜으로 공부를 하고 있으면 펜을 사정없이 쪼아대기도 했다.  (그때부터 성깔이 장난 아니었다...)


어딜 봐? 나만 봐!


매일 집으로 가는 길이 즐거웠다. 수업 시간이 지루할 때면 그와 놀아주러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에 가면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그가 있었다. 내가 오자마자 새장에 매달려 문을 열어달라고 다그치는 모습에 여러 번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과제를 하다보면 손가락 틈으로 쓰다듬어달라고 머리부터 들이밀고 돌격(..)하는 모습에 몇 번이나 과제를 중단했는지 모른다. 책을 읽을 땐 모든 책의 귀퉁이를 다 씹고 찢어놓았다. 책갈피는 뺏어갔다. 도무지 공부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원래 나 혼자였다면 입도 뻥긋하지 않고 보냈을 그런 휴일들에도 그의 모습을 보며 웃고, 위안을 얻었다.  


文鳥のおるすばん(문조의 집지키기). 아마 이렇게 나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때로는 내 미래가 불안해서, 막막해서, 속상해서 울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 어깨 위로 올라와 기회를 노려 눈물을 맛보려 하는 그가 있었기에 나는 슬프다가도 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어떤 순간에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와 함께 삶의 가장 큰 보람이었다. 내가 라섹수술을 하고 3일 동안 눈을 뜰 수 없을 때에도, 처음으로 주차를 할 때 어쩔 줄 몰라  쩔쩔매며 기둥에 차  뒤 범퍼를 쿵쿵 박아댈 때에도 이 아이는 나의 곁에 있어 주었다. (내가 차를 산 후 가장 최초로 혼자 운전해서 간 게 동물병원이었다...)


물론 피치 못할 불행한 사고도, 아픔도 있었다. 그가 내가 받아 놓은 뜨거운 물에 빠져버려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나는 대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상황이라, 동물병원을 수소문하여 현재 다니고 있는 조류 전문 동물병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선생님께 야간 특별 진료비를 내며, 매일같이 퇴근하면 집에 갔다가 그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생활을 2달 간 지속했다. 당시 선생님은 그가 살 수 있다는 얘기는 끝끝내 해주지 않으셨다. 상처가 깊었던 탓이기도 하고, 소동물의 상태는 언제 급격히 악화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는 말은 지 않으려는 의도였으리라.


새도 다치면 이걸 낀다(...) 매일 통원치료를 하던 그 해 겨울은 너무나도 추웠다.


그렇게 2달간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몽땅 다 쓰고 난 뒤에야, 나는 겨우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치료 종료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는 발가락 세 개가 잘린 장애조가 되고 말았다.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그는 나름대로 다시 찾은 삶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점차 기운도 차려갔고, 약간 불편할 뿐,  머지않아 그 자신의 짓궂은 모습을 잘 찾아갔다. (애초에 성조가 되고 나서부터는 나를 좀 덜 따르긴 했다.)


안타깝게도 그에게 이성운은 따라주지 않았다. 그가 멋들어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수컷이란 사실을 알게 된 후, 한 번 짝을 맺어주려 시도했지만 상대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가정에서 사랑받고 키워진 애교 많고 예쁜 새였으나, 주인인 나에게 너무 '끼'를 부리는 게 영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짝으로 점찍어 데려온 아이는 그와 계속 싸워서... 곧바로 다시 분양을 보내야 했다.


두 번째로 짝으로 생각하고 데려왔던 아이와는 생각보다 잘 지냈다. 이전처럼 사람을 너무 따르는 새라면 질투 때문에 싸움이 날 것 같아서 일부러 반애 조(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애완조)로 골라 데려왔는데, 아뿔싸. 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가 아닌가. 새끼 때는 도통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새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 데려온 아이가 그를 꽤나 좋아한다는 것이었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무심한 태도 때문에 경계심을 느낄 필요가 없었는지, 그도  머지않아 새로 온 아이와 썩 잘 어울리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정신적 동반자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와 내가 처음 만나게 된 지 올해로 꼬박 6년째가 되는 것이다. 한 해 한 해가 갈 때마다 옷이나 머리카락 등 겉모습이 조금씩 변해가는 인간과 달리, 6개월 차에 한 번 잿빛 아기새에서 알록달록한 성조로 화려한 털갈이를 한 후 한결같이 모습이 변하지 않는 그들의 겉모습에 그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시간이 꽤나 부지런히 흐르고 있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반려동물이란 어쩌면, 함께 하는 인간에게 삶의 유한성을 일깨워주는 보물이 아닐까.


그들의 1년은 우리에겐 10년과 같다. 그들의 빠름은 우리네 인생의 짧음을 느끼게 해 준다.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나 자신의 시간 또한 그들의 삶과 함께 흐르고 있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또한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리게 되는 노화의 징후를 통해, 특정한 계기를 통해, 자신과 종이 다른 반려에게 다음과 같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언제나 당신의 귀여운 '아기' 같은 존재인 나도 늙는다. 나도 몸이 고장 난다.
무엇보다 당신과 내가 함께 할 시간은 앞으로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이랬던 그가, 이렇게 컸다. 그리고 이젠 늙기까지 한다..



그가 세상에 온지 이제 6년 차. 사람으로 치면 60대에 들어선 그는 이제 앞으로 점점 늙어갈 것이다. 노화의 징후도 이제 막 나타나기 시작했고, 2년 터울의 파트너와도 슬슬 기력 차이가 나며 그 더러운 성질머리로도 어쩔 수 없이 서열이 교체되는 날도 올 것이다. 더 이상 날 수 없는 때가 올 지도 모르며, 횃대에조차 앉지 못해 바닥 생활을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모이를 삼키지 못해 이유식을 먹어야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없을 때 그가 죽는 것이다. 어느 날 퇴근길에 문을 열었는데, 늘 들려오던 짹짹거리는 소음 대신 그가 바닥에 굳은 채 누워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 제일 무섭다. 그리고 그의 그런 모습들이, 마치 내 삶의 압축 판처럼 보이게 될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하나하나 노화의 징후를 겪다가,  그가 그러했듯 이렇게 삶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기에.


그들은 자신과 함께 했던 인간들에게  온몸으로 알려주는 게 아닐까. 모든 생명에는 결국 끝이 있고, 모든 만난 것들은 헤어져야 하고, 마지막에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 자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삶, 그것에는 별다른 것이 없고, 마지막 순간엔 오로지 기억만이 남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최대한 단순하게, 행복한 기억들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런 면에서,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자신이 속한 세계 밖으로 모험을 떠날 수 없는 반려동물의 삶은 슬픈 것이긴 하다. 처음 이 아이를 데려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그의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아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알게 될 '세계'의 범위가 철저하게 내가 있는 집, 나와 함께 놀러 갔던 내 가족이나 친구의 집, 동물병원, 카페 등이 고작  전부일뿐이라는 것에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더욱 간절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 아이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한결같이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 때, '태어나길 잘했다.'는 충만한 느낌으로 눈을 감을 수 있도록. 그를 더욱 사랑해주고, 한 번이라도 더 이름을 불러주고, 맛있는 걸 챙겨주고, 졸릴 때 쓰다듬어주고,  마음을 알아채 주는 것이다. 나는 그가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니까. 그의 하루가, 야생의 새들과 같이 포식자들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긴장상태가 아닌, 지금같이 자기가 이 집에서 왕인 줄 아는 한 없는 기고만장 속에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계속 만만하게 보고 주인 취급 안 해줘도 되니까, 호구로 보고 매번 놀려먹어도 되니까. 같이 살았던 내가 '인간'이었다는 걸 몰라도 상관 없으니까. (날개 없는 덩치 큰 찐따새로 기억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그저 그가 나를 만난 순간부터, 눈을 감는 그 날까지, 그가 살았던 세상을 지켜주었던 소중한 동반자로 기억되고 싶다. 그의 길지 않은 삶이 온전히 안온하고 평온했던 삶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발,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너는 나의 한결같은 사랑이니.




앞으로 그들과 함께 할 날이 유한하다는 생각이 드니,
무엇보다도 고화질의 사진, 영상을 많이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포스팅을 하려고 2010년도에 찍었던 사진들을 찾아보니
의외로 제대로 찍혀 있는 고해상도의 사진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