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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Nov 03. 2019

흰머리 좀 안 뽑으면 안 되나요?

나는 염색을 그만두기로 했다.



 내게는 정수리로부터 삐죽 솟아 나온 흰머리카락이 한 올 있다.


 마치 낚싯줄 끝에 매달린 찌처럼, 위로 곧게 뻗은 채 내 움직임에 따라 위아래로 나풀대는 그 흰 머리카락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보는 이를 한없이 약 올리는 모양이다. “어! 잠깐만...!” 하고 나를 정지시킨 다음, 내 의사와 상관없이 타깃(?)을 향해 기습적으로 슝- 하고 날아드는 손가락을 급하게 저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


 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대부분 ‘한 올 한 올의 소중함’을 역설하며 탈모를 막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새치 나 흰머리라면 가차 없이 제거하려고 드는 느낌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베개를 스치는 빠진 머리카락에 눈물짓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하물며 타인의 머리카락이라도 새치를 뽑으려는 손길은 이렇듯 언제나 깜빡이도 켜지 않고 매섭게 날아드는 것을 볼 때마다 다소 당황스럽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수리를 잽싸게 두 손으로 가리며, 이렇게 외치곤 하는 것이다.



“그만!!! 내 흰머리 건들지 마, 나는 강경화 장관처럼 늙을 거란 말이야!”


그녀의 시그니처인 흰 머리. 사실 딱히 흰머리를 하려던 건 아니고 해외 생활을 하던 기간 비싼 염색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저 흰머리를 유지했던 것뿐이라고 한다..


 30대인 내가 이렇게 외치며 필사적으로 흰머리를 사수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웃음과 의외성을 주는 모양이지만, 나는 진지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눈썹도, 머리카락도, 눈동자도 전부 새카맸다. 머리숱도 고무줄이 터져나갈  정도로 많았다. 무겁고 시커먼 머리카락은 좀처럼 통제가 되지 않았다. 중, 고등학교 때는 귀밑 3cm, 15cm의 엄격한 두발 제한이 있었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갈색머리 전성시대의 흑발 소녀~"(NMB48 '절멸흑발소녀' 중에서) 내가 바로 그 멸종위기의 ‘흑발 소녀’였다고 볼 수 있다.


 수능이 끝난 직후 처음으로 세팅 펌이라는 것을 했을 때에도, 차마 염색을 할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냥 이 ‘직모’ 상태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머리를 꼬불거리게 바꾸면 적어도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20대 뉴비 느낌은 안 들 것 같았다. (현실은, 막상 대학 가보니까 펌을 해서 머리가 꼬불거리는 건 전부 신입생들이었다. 윗 학번들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생머리였고, 그래서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당시 꼬불꼬불 파마머리를 하고 앉아있던 여자애들의 모습은.. 막 제대한 군인이 머리를 급하게 길러서 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고등학생 때까지 그 흔한 틴트나 BB크림 하나 발라보지 않고 미친 듯이 공부만 했던 내게 처음 대학에 들어갔던 때는 모든 게 새롭고, 익숙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꾸며보고 싶은 것은 많았지도저히 어떻게 입어야 할지,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하염없이 기르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문득 염색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적어도 20대가 되고 나서 3년 정도는 지난 이후의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했을 때에는, 마치 ‘다시 태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거울을 통해 본 스스로의 인상도 한결 부드러워 보였고... 예전식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스러워’ 보였다. 나는 단박에 내 갈색 머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갈색 머리가 찰떡’이라며, 훨씬 사람이 밝아 보인다며. 그때부터 작년까지, 거의 10년 간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갈색 머리를 쭉 유지해 왔다. 나중에는 갈색 머리가 아닌 나 스스로의 모습이 어색하고 이상해 보일 정도로, 갈색 머리는 내 정체성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정체성은 3개월 내지 6개월에 한 번 이뤄지는 뿌리 염색으로 억지로 유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몇 달만 지나면 다시 거뭇하게 자라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보며, 대체 ‘그웬 스테파니 같은 본연의 머리색이 아닌 색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뿌리 염색 주기가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해하기도 했던 것 같다.


NO DOUBT의 그웬 스테파니. 대체 저 두피까지 새하얀 머리를 어떻게 유지하는 것인지 예전부터 궁금했다.



 뿌리 염색은, 사실 언제나 돌이켜봐도 내게 있어서 그다지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다음 뿌리 염색 주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두피에 가깝게 염색약을 칠하는 순간이 되면, 두피 가득 느껴지는 따가움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지곤 했다. 염색약에서 풍겨져 나오는 독한 냄새가 콧속으로 가득 스며드는 것도 싫었다. 두피 전체가 따끔거리는 상태로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이 약이 너무 독해서 이대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 머리카락이 몽땅 녹아서 뽑혀버릴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곤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처음 염색하고 난 후로 10년 정도는 나름 염색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갈색 머리가 나에게 찰떡이라고 믿으며 뿌리 염색의 고통을 매번 꿋꿋이 견뎌냈다. 그러다 가끔씩은, 톤 다운이나 기분 전환을 핑계로 전체적인 머리카락의 색깔을 바꿔보기도 했다. 좀 더 내게 어울리는 색을 찾아보겠답시고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아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작년의 어느 날을 마지막으로 나는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그토록 목숨같이 여겨왔던 ‘갈색 머리’를 포기한 이유는, 처음에는 단순히 하고 싶은 헤어스타일이 있었는데 그 스타일이 잘 나오려면 머릿결이 너무 심하게 상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전 글 : 히피펌 해서 다행이야 참고)


 그렇게 검은 머리가 자라도록 방치하고, 어느 정도 머리를 길러서 히피펌을 한 뒤에도 나는 뿌리 염색을 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렇게 뿌리 염색을 하지 않은지 1년 반이 지났다. 햇빛에 바랜 바깥쪽 머리는 거의 금발이고, 안쪽 머리는 갈색이며, 윗부분은 천연의 검은색인, 지금의 내 머리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향미만큼이나 얼룩덜룩한 상태이다.



 뿌리 염색을 하지 않고 검은 머리를 쭉 기른 지 오래되어, 어느덧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거나 묶으면 완벽한 흑발로 보이는 내게, 주변인들은 가끔 "염색 안 하냐" 고 물어보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농담으로  "이게 바로 시크릿 투톤 염색이에요" 혹은 "옴브레 염색 아시죠?" 하고 농담하며 받아치곤 한다.


 누군가는 뿌리 염색을 하지 않아 검게 자라난 머리를 그대로 방치하는 사람들을 보며 ‘게을러 보인다’ 거나,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흉을 보기도 한다는데. 상관없다. 아래는 갈색, 위는 검은 색인 상태도 나름 뭐, 커스터드푸딩 같고 귀엽지 않은가?






 처음엔 별다른 거창한 의미가 있어서 염색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최초에는 단지 히피펌을 하고 나서 머릿결이 회복 불가할 정도로 많이 상했는데, 굳이 염색으로 또 머리카락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짐짓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사실, 펌을 한 이후에도 뿌리 염색으로 색깔 정도는 맞출 생각이었는데, 펌 이후에도 열심히 자라나고 있는 내 검은 머리가 모여 있는 정수리를 한 번 손으로 쓸어보면.. ‘아, 내 머리카락이 원래 이렇게 부드러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화학적 처리도 하지 않은 내 천연 그대로의 머리카락의 상태는 이렇구나, 하고. 실감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실감은 ‘이 감촉 그대로, 이 상태 그대로 머리를 쭉 길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내가 갖고 태어난 천연의 모발의 상태로 살아본 지가 꽤 오래된 것이다. 그냥, 궁금했다. 어떤 ‘덮어쓰기’도 하지 않은, 그저 순수하게 내가 가지고 태어난 본연의 모습이.


 머리카락에는 그 주인의 역사가 담겨있다고들 한다. 실제로 과학수사에서도 머리카락을 활용한다. 한 올만 있으면 머리카락 주인의 거주지, 하는 일, 평소 식습관 등 생체 정보를 파악해 낼 수 있다고 하니까. (머리카락으로 분신을 만드는 분신술을 사용하는 홍길동 이야기는 의외로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일지도!)


 지금 나의 머리카락의 상태는 마치 차곡차곡 쌓여 온 지층처럼. 나의 살아온 지난 몇 년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30대에 처음 들어서 했던 마지막 염색. 히피펌을 하고자 묵묵히 길렀던 시간들. 햇볕을 받고 잔뜩 돌아다니느라 금발처럼 밝아진 겉부분의 머리카락. 이런 것을 그냥 잘라내는 것도, 덮어 씌우는 것도 너무 아깝지 않느냔 말이다.


가장 최근의 내 머리 상태. 검은 머리가 많이 자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더욱 나의 머리카락을 다른 색으로 덮어 씌우고 싶지 않았다. 나의 30대의, 지난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DB와 같은 이 머리카락을, ‘덮어 씌우기’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나는 염색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뿌리 색을 맞추기 위한 염색도, ‘깔끔해 보이기’ 위한 덮어 씌우는 염색도, 예뻐 보이기 위한 염색도. 일단은 당분간 멈추기로 했다. 그동안 갈색머리를 목숨처럼 여기고 살았던 내가, 남들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던 내가. 조금만 검은 머리가 자라나도 거울을 보며 답답해하던 내가. 이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내가 편안하고 이 상태가 좋은데 뭐’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른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제일 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비록 내가 타고 태어난 머리가 내 퍼스널 컬러에 '베스트'로 맞는 톤은 아닐지라도, (퍼스널 컬러에 따르면 나는 검은 머리를 피해야 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예쁜’ 색이 아닌 그냥 ‘자연스러운’ 색의 머리카락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자연스럽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몇 달에 한 번씩 내 두피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진 것이다.


 또한 내 자연스러운 노화의 상징인 흰머리를 숨기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염색을 하지 않으려 한다. 비록 향후에 있을 소개팅이나 맞선에서 누군가 내 정수리에 안테나처럼 돋은 흰머리를 보고 갑자기 내 나이를 직면하며 여자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해도. 이게 무슨 치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자연 그대로의 가장 자연스러운 30대의 ' 나 다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요즘은 워낙 동안이 많고 다들 잘 꾸며서 30대도 20대 같다지만, 30대 중반을 초입에 둔 나이에 이제 마냥 20대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다. 그냥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40대가 되어버리기 전에 30대의 나에게도 서서히 나름의 ‘그라데이션’을 주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늙었다’며 충격받기보다는, 서서히 변해가는 내 모습을 나 스스로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이러다 갑자기 변덕을 부려 어느 날 갑자기 염색을 강행해버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내가 나 답기를 포기하지 않겠다. 그리고 조금 더 기다려, 언젠가는 내가 타고 태어난 머리카락만으로 된 내 모습을 한 번 더 확인해보고 싶다. 그때쯤이면 아마 40대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흰 머리카락이 조금 섞여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본연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한 번쯤은 더 만나보고 싶다. 꾸미지도, 덮어씌우지 않은 100% 천연인 상태의 중년의 나를!



+

 길가다 혹시 뿌리 염색을 하지 않은 사람을 봐도 ‘지저분하게 보인다’ 거나 ‘게을러 보인다’며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도 나처럼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천천히 회복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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