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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y 12. 2016

나는 왜 일하는가

두 번의 퇴사 후 알게 된 것


"XX 씨는 왜 일을 해요?"


어느 늦은 시각, 노곤한 몸을 이끌고 탄 지하철, 옆 자리에 나란히 앉은 동료로부터 문득 던져진 질문이었다.


나는 당시 1년 반 정도 다녔던 회사를 막 퇴사한 참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회사에 들어와서, 평소에 이런저런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 왔던 직장 동료였던 그녀였다. 야심한 밤이었기 때문일까,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었기 때문일까. 무심한 듯 넌지시 물어오는 질문에 잠깐 머릿속이 희뿌옇게 변했다. 그녀에게 어떤 말로든 대답해야 하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입술이 열리며, '할 말이 없다'는 생각보다도 먼저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글쎄요... 그냥.. 전....이 세상에...제가 있다는 걸... 누군가...알아줬으면...좋겠어서요..."


그 순간, 왜인지 모르겠지만 더듬더듬하고 단어들을 하나씩 하나씩 힘겹게 내뱉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머릿속에 마냥 희뿌옇게 싸여 있던 무엇인가가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안개가 걷히듯이 마냥 허옇던 머릿속에서 뭔가가 실체 있는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내 이야기를 듣지 못하기라도 했다는 듯, 조금은 덜 더듬거리며, 내가 했던 말을 반복했다.


"네.. 저는... 저는 제가 이 세상에 있다는 걸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저 말을 내뱉고 나자, 그제야 비로소 뭔가가 명확하고, 선명해졌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전까지의 나는 전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계기가 없었다.

언제나 원 오브 뎀(1 of them)으로 사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기에.



마치 수많은 양떼 속 한 가운데에 파묻혀 얼핏 보면 독자적인 존재로 보이지조차 않는 한 마리의 양처럼. 매사 그저 적당히, 튀지도 않고, 내가 오늘은 어디에서 어떤 땅의 풀을 먹는 건지 궁금해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양치기의 손에 이끌려 몰리는 대로 움직이는 것에 만족하며,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는 삶을 원했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학창 시절이 좋았다. 다들 그 시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지만, 사실 내게는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명확하고 안온한 시간이었다. 사회가, 가족이, 친구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명확한 '학생'이라는 개념 안에 갇혀 있던 나는 퍽도 평온했다. 언제나 모든 것에 시험 문제지처럼 정답이 있는 삶이었다. 교칙은 어기면 안 되고, 공부는 해야 한다. 어차피 해야 할 공부라면 성적을 잘 받는 편이 좋으니, 나는 내가 당시 내가 해야 할 일, 사람들이 내게 '학생'으로서 기대하는 일의 기대치를 충족하기 위해. 보다 솔직히는 내게 사실은 별다른 원대한 꿈이 없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수'가 그득하며 90점, 100점이 빽빽한 성적표를 받는 모범생의 삶을 이어갔다.


대학 진학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럭저럭 대세를 따르면서 살아왔던 내게,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생각은 감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능 성적은 기대하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크게 실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애초에 수능에 임했던 나의 마음가짐 자체가 그러했다. 그저 통과의례처럼 해야 하니까 했던 것이지, 딱히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진학해서 어떤 미래의 꿈을 이루리라는 생각 따윈 안 했었다. 나는 나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 순간 순순히 인정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 내 실력은 여기까지야. 다시 한다고 딱히 달라질 건 없어.라고.


그렇게 나는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대학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옵션을 골랐고, 당연히 이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니, 당연히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의 등을 계속 그쪽으로 떠미는 것 같은 삶이었다.


학교가 지겨웠던 나는 어서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엔 내가 왜 일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는 채 그냥 무작정 일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대기업들에 골라서 이력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탈락하고 말았다. 나의 인생의 첫 번째 쇼크는 바로 그곳에서 왔다. 주변 동기들이, 선배들이 다 하는 대기업 취업을 내가 못하다니. 그것은 자존심의 상처라기보다는, '나는 그럼 이제 어떡하지?'라는, 무리에서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순전한 공포에 가까웠다. 더욱 공포스러웠던 것은, 나는 당시 '남들 하는 대로' 한치 모자랄 것 없이 일종의 매뉴얼과 같은 취업 스펙을 쌓아왔었다는 사실이다. 학점 4.0 이상, 토익 950, 인턴, 해외 어학연수, 배낭여행, 봉사활동, 인턴 등. 객관적으로 봤을 때에는 전혀 모자란 게 없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도저히 그 원인도 해결책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대세를 따라왔고, 그렇기만 하면 비교적 평온하게 흘러갈 수 있었던 내 인생에서, 본의 아니게 맞닥뜨린 첫 번째 위기 상황이었다.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 날은 점점 다가오고, 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초조해진 나는 이내 취업을 하지 않는 대졸자가 가장 많이 고르는 또 다른 선택지들을 두고 고민했고, 결국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취업 도피성의 목적도 있었지만, 내 본연의 목적은 인맥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진학한 대학원의 특성상, 이미 사회에 진출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현직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와 같은 전략적인 선택을 통해 나는 내 인생의 첫 커리어를 만났다. 대학원 지인의 소개로 신생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나이 스물일곱에 겨우 인생 첫 일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부지런히 일했다. 이때 일에 임하는 내 마음가짐은 학창 시절에 공부를 대할 때의 내 마음가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린 내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하여 '기왕 공부하는 거 성적 잘 받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높은 성적을 받았던 것과 비슷했다. '내게 주어진 일'은 무엇이든지 슥슥 잘 처리했다. A학점을 받으려는 모범생처럼 말이다. 그 결과 어린 나이에 팀장직을 맡고, 대표님의 신임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사전에 왜 내가 이 일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저 '남들 하는 것처럼' 내게도 드디어 일자리가 생겼다는 기쁨에 온전히 취해 있었던 것 같다. 그 중심에는 이제야 비로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27세들의 삶과 비슷하게 보조를 맞추어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사실에 안도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저런 안이한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일까. 나의 첫 번째 커리어는 고작 1년 반 만에 위기를 겪는다. 또 하나의 대세를 따르고픈 욕구가 일에 대한 내 욕구와 충돌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남들 하는 대로' 으레 그때쯤엔 하리라 믿었던 서른 즈음의 결혼 고민였다. 당시의 남자친구는 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 했고, 내가 번듯한 직장에 다녔으면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신생 스타트업이었던 지라 연봉이나 복지가 상대적으로 미흡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직장을 옮기거나, 궁극적으로는 아예 그만두고 그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길 원했다. 나 또한 그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지만, 막상 선택의 순간이 오자 직장을 아예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바로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에게 '직장'이란 게, 일하는 삶이 주는 의미가 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 나는 그가 바라는대로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게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어주길 바라는 그와 헤어졌다.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일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 가령, 그가 어느 날 내게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보다, 당장 내일부터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더욱 숨이 막히게 느껴졌다. 그가 없는 나는 괜찮았지만, 일이 없는 나는 괜찮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일'을 영원히 박탈당할 지도 모를 위기 상황에 처하자 비로소 내 안에 있던 일에 대한 강한 열망을 깨치게 된 나는 기왕이면 재미있는 일,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첫 회사에 이별을 고하고 오래전부터 동경해왔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한 IT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고, 때마침 TO가 있어 채용될 수 있었다. 그 후로 또다시 꿈결 같은 1년 반이 흘렀다. 좋은 동료들, 내가 만들어가는 서비스에 대한 자부심과 뿌듯함으로 충만하게 보냈던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누가 그랬던가. 좋아하는 일은 업으로 삼는 게 아니라고. 팬이었던 사람과 연예인이 서로 사귀면 안 되는 것처럼, 나는 그 서비스를 순수히 좋아하는 마음으로 헌신했던 만큼 상처를 받았다. 너무 좋아했기에 일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에 실패했고, 일과 팬심의 경계에서 자신을 잃고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순수한 짝사랑 같았던 내 마음에는 거듭된 실망으로 인한 원망과 상처만 빼곡히 남았고, 그토록 좋아했던 마음은 바닥이 드러난 우물처럼 메말라버렸다. 나는 더 이상 상처 입기 전에 피폐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 그래서 인생의 두 번째 사표를 던졌다.






그 후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지, 이제 꼬박 한 달 째이다. 이 곳은 첫 번째 직장처럼 모험과 파격 승진의 기회가 있지도 않고, 두 번째 직장처럼 내가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서비스도 아니다. 기존의 직장들에 비해 전반적인 분위기도 많이 보수적이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부쩍 많아져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매일 부딪히며 감정 씨름을 보고 눈치를 봐야 한다. 전에 했던 업무들과 다른 업무를 하기 때문에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선택에 굉장히 만족한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일하는 것이 좋고, 출근하기 위해 이전보다 두 시간 일찍 눈을 떠야 하는 상황임에도 마냥 좋다. 퇴근 후에 일 생각을 해도 즐겁다. 그야말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매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세 번에 걸쳐서야, '내가 일하는 이유'에 대해 겨우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무작정 일이 하고 싶다.
→ 재미있는 일이 하고 싶다.
→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 싶다.


세 번째 직장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나에게는 일하는 데 있어서 객관적인 복지나 연봉 등의 조건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보다는 쉴 새 없이 나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여기서 '나'의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싶다는 것은, 그저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단순한 범주의 것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게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이 세상에서 문득 사라져 버렸을 때. 늘 출근하던 시간에 별다른 노티스 없이 출근하지 않았을 때.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구나'를 생각해 줄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가족보다도 매일 보는 직장 동료들이 아닐까.


누군가와 사회적 존재로 얽혀 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

나와 얽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 성과를 인정해 주고, 함께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


이 넓은 세상에서 나를 붙잡아 줄 인연을 얻기 위하여. 그로 인하여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하여.

내게 있어서 일은 그런 것이고, 나는 그래서 일을 하는 것 같다.


비록 나는 생각 없이 대세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물 흐르듯 살아온 탓에 3단계에 걸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모쪼록 이 글이 지름길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는 것이,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보다, 일단 아무 일이나 시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함을 알게 되었으면. 그래서 적어도 누군가는 내가 겪었던 시간의 낭비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학창 시절은 매일의 스케줄과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다르기에,
당시의 하루하루는 매일 아침마다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과도 같다.

그러나 직장인이 되고, 타인과 시간을 요일 단위로 맞추어 살아가게 되는 처지가 되면
다들 그냥 큰 생각 없이 저냥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더 이상 아침에 눈 뜰 때조차 그 날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이 생각이 다 바래 질 때쯤엔 누군가 또 내게 물어주었으면 한다.

"당신은 왜 일을 하냐"고.

그 질문이 주는 무게는 분명 '당신은 왜 사나요?'라는 질문과 비슷한 중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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