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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Nov 18. 2019

이름이 많던 그 고양이.

출판단지 아롱이에 부쳐.


너의 이름은 많았지.


아롱이, 두성이, 웽님.


너를 보는 사람마다 모두 너를 다르게 불렀어. 

그렇지만 들 모두 분명 같은 마음으로 널 사랑했을 거야.





 2년 전, 산책하던 길에 한 건물의 주차장에서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있는 너를 처음 만났지. 너는 그중에 가장 순한 성격의 고양이였어. 무척 여유로워 보였고.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네가 그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았더라고.)


이 때까지만 해도 몰랐지. 길고양이 4총사가 언제까지나 함께일 순 없다는 걸.


  당시 나는 마음이 무척 많이 다쳐 있었던 것 같아. 잠을 설치기도 하고, 가끔씩 심란해지는 마음에 일하다가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 하염없이 걷곤 했으니까.


 처음 마주친 후로, 나는 가끔 너를 보러 갔어. 너는 그런 내 상황을 알 리 없었겠지만, 그다지 안면이 있지도 않은 내게 처음부터 곧잘 다가와줬어. 네가 나에게 다가와 애옹-하며 말을 걸고, 몸을 부비적거리고, 쓰다듬는 내 손에 기꺼이 머리를 내어줄 때. 너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몸의 감촉에 경이로우면서도 뭔가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



 넌 가끔씩은 내 치맛자락을 붙잡고 가지 말라는 듯이 꾹꾹이를 하기도 했고, 무릎 위에 올라와 당연한 듯 자리를 잡기도 했지. 내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을 울멍하고 서운한 눈으로 지켜보기도 했는데, 이미 너와 노느라 몇십 분 월급 루팡 짓을 했는데도, 나는 그런 너를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계속 뒤를 돌아보곤 했었어.


 하루에 한 번, '잠시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하며 일어나는 건 사실은 '잠시 고양이 좀 보고 올게요'라는 뜻이라는 걸, 주위 동료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주었던 것 같아. 내가 너로부터 에너지를 충전받는다는 것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한 번은 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누가 나한테 물은 적이 있어. '너 캣맘이니?' 그 말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던 것 같아.


"캣맘까진 아니고.. 캣 이모 정도?"


 그래, 사실 나는 너를 '엄마'처럼 극진히 돌보진 않았으니까. 엄마라기보다는 가끔씩 조카와 놀아주는 이모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 너에게 사료를 사주고, 누울 방석과 이불을 갖다 주고, 간식을 사주고, 마실 물을 챙겨주는 수많은 캣맘들 사이에서 나는 츄르 한 번 사주지 못하고 그저 너를 귀여워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기만 했었지. 그래도 너는 항상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냥했어. 결코 간식 유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으니까.


 하필 하루에도 수없이 차가 들고 나는 주차장에 너희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곤 했지만, 너와 함께 조용히 오후의 햇빛을 받으며 나 자신을 회복해가던 그 시간들을 기억해.


 가끔은 너를 주로 돌봐주던 주차장 건물의 사람들과 우연찮게 몇 번 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들을 통해 네 이름이 '아롱이'라는 걸 알게 됐지, 일단은 말이야. 아롱이, 다롱이, 초롱이, 메롱이. 그것이 너희 4 총사의 이름이었어.


 너는 그중 나이가 제일 많았을 뿐 아니라, 엄마이기도 했어. 너는 자식에게 조금 무른 편이었던 것 같아. 네 딸 메롱이가 너한테 발톱을 세워서 아프게 장난을 쳐도, 까칠하게 굴어도 너는 그저 다 받아주었지.


임신한 딸을 돌보는 엄마의 고단함..


 당시에는 모두가 어린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네 딸 메롱이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었어. 메롱이는 임신을 하기엔 너무 어렸고 나름대로 낳은 새끼들을 키워보려 했지만 결과는 항상 좋지 않았지. 그러다 결국 누군가 의견을 냈고, 어느 틈엔가 먼저 훌쩍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린 다롱이를 제외한 너희 모두는 중성화 수술을 받았어. (중성화 수술 후 표시를 한답시고 자른 귀 끝이 너무 많이 잘려나가 있어서 다소 마음아프기도 했지만 말이야.)



고깔을 쓴 넌 답답했겠지만 내 눈엔 마냥 귀엽더라.


 모두가 너희를 사랑했기 때문일까? 너희는 정말 '팔자 좋은' 고양이였어. 아무도 해코지를 하지 않는, 유동인구가 적은 출판단지의 골목에서 너희는 마음껏 햇빛을 쬐고, 가끔은 사람들과 놀며 즐겁게 지냈지. 겨울이 다가왔을 땐 누군가 너희를 입양해서 따뜻한 가정집에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바깥에서 지내던 애들이 가정집에 입양되면 어차피 또 가출하게 되어 있다고, 얘네들은 이렇게 밖에서 자유롭게 크는 게 좋을 거라는 누군가의 말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었어.


 그러면서도, 어느 날 네가 목에 '길고양이 아니에요'라는 목걸이를 달고 위풍당당하게 나타났을 때에는 내심 안심이 되기도 했던 것 같아. 드디어 너에게도 정착할 곳이 생긴 걸까? '캣맘'이 아닌 오직 너만을 봐줄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난 걸까 싶어서. 앞으로 네가 어떤 보금자리에 자리 잡고 잘 지낼 수 있겠구나 싶어서.


길에서 살지만 길고양이는 아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한동안 네가 보이지 않았어. 주차장에 가봐도 너의 딸과 다른 고양이만 있을 뿐, 너를 발견하지 못한 채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걱정되기 시작되던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의외의 곳에서 다시 나타났지. 그 주차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다른 건물에서 말이야.


 사람들은 네가 그곳을 '간택'했다고 했어. 건물 앞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앉아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잽싸게 따라 들어온 네가, 사무실 사람들은 무척 신기했나 봐. 그렇게 건물에 첫걸음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 


 넌 엘리베이터도 탈 줄 알았고, 어떤 기척도 내지 않은 채 종종 사무실로도 쏙 들어왔어. 춥거나 심심하면 사람들의 무릎 위에 올라가거나 품으로 파고들기도 했지. 네가 의자에 앉아있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얘가 내 의자를 뺏어가 버렸다'라고 말하면서도 연신 웃으며 한 손으로는 핸드폰카메라 앱을 켜느라 바빴지. 


 네가 그쪽에서 나타났다는 소식에, 나는 종종 너를 보러 갔어.  너는 그 건물의 이름을 따서, '두성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어. 누가 뭐래도 그 건물의 마스코트, 아니 터줏대감이 되어 있었지. 그 건물 근처를 느긋하게 배회하는 네 모습은 마치 날 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어.  네 존재가 너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지.   



 너는 아침이 되면 출근하는 사람들을 마중 나와 야옹야옹하며 인사를 건넸어. 주로 사람들이 너를 보러 오는 점심시간쯤 되면 낮에 자야 하는 야행성의 본성을 거스르면서 졸린 것도 참고 사람들과 놀아주기도 했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손에는 항상 카메라가 들려 있었는데, 너는 누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프로 모델처럼 자세를 취해주곤 했.


 물론, 건물의 모든 사람이 마냥 너에게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었어. 건물 안쪽에 잔뜩 똥을 싸놔서, 청소부 아주머니가 '다시는 저 고양이를 건물 안에 들이지 말라!'라고 선전포고를 했던 때도 있었잖아. 그래도 너는 너의 지지자들의 은근한 지원(?)을 받으며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영역을 넓혀갔지. 대단하지?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이런저런 재미있는 일들도 있었지. 너 먹으라고 사료통에 밥을 넣어 놓으면, 가끔씩 네가 없는 새에 까치가 네 밥을 뺏어먹기도 했던 것, 알고 있었니? 최근에는 또, 추워진 날씨에, 사람들이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왔다가 주말에 문이 잠기는 바람에 내내 갇혀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했었잖아. 그 주말이 지난 다음 월요일에 사람들이 와서 사료를 줬을 때, 이틀 분량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는 얘기를 듣고 안쓰러운 한편 그 모습이 떠올라 웃음 짓기도 했어.






 오늘, 급하게 만들어진 너의 무덤 앞에서 울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어.

 나는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아서 눈물은 미처 나지 않더라. 여태까지 늘 그러했던 것처럼, 어디선가 네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불쑥 나타나 나에게 다가올 것 같아서.

그래도 한동안 사진첩에 있는 네 사진을 보면 마음이 줄곧 무거울 것 같아.



 네 무덤 앞에 꽃을 들고 서 있는데, 문득 바람이 너무 차더라. 네가 불과 지난주에도 비를 맞고 다녀서 사람들이 안쓰러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상처를 입은 채로 비를 맞으며 그렇게 갔다는 사실에 음이 너무 아파. 도로 한 귀퉁이에 누워있던, 내내 비를 맞아 한껏 차가워진 너의 몸을 수습한 그분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너는 또, 얼마나 추웠을까.


 요즘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네가 다가올 겨울을 어찌 날까 걱정했는데, 겨울이 오기도 전에 가버렸구나.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빨리 떠난 네가 착한 건지, 이렇게 급작스럽고 야속하게 널 데려간 하늘이 나쁜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다만 그곳에서는 항상 따뜻하고 배 부르길 바랄 뿐이야.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장에 모여 고인에 대한 추억이라도 나누는데, 길고양이에게는 그런 것조차 없어 나는 그저 여기에 끄적일 뿐이구나. 



 길고양이었던 너를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지 미처 다 알 수 없고, 너를 모두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겠지만. 너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분명 우리는 지금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을 거야. 네가 만들어 준 이 연대를, 네가 선물했었던 소중한 시간을 잊지 않을게.



안녕, 아롱아. 두성아. 웽님아.

시간이 지나도 추워지지 않을 그곳에서, 영원히 따뜻하게 쉬렴.



- 2019년 11월 18일, 출판단지 아롱이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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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파주 출판단지를 지나다 아래 삼색털 고양이를 발견하신 분은 댓글로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아롱이의 딸인데 행방불명이 된 지 한 달 정도 되어 다들 걱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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