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다, 사랑이 아니다. 그 경계선에 있는 것.
서른에 돌입한 이후부터는 뭐든지 쉽지 않았다.
연애에 있어서는 더욱 특히.
간간히 들어오던 소개팅은 끊기고, 남자를 만나기 위해 나의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모임에 나가는 노력이 버겁게 느껴졌다. 애써서 그런 모임에 참석할 때조차 진정으로 '남자'로 느껴질 만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애써 나가는 모임에서의 불순한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며 나는 점점 지쳐갔고 심드렁해졌다.
그러던 중, 알게 된 한 남자가 있었다.
함께 하던 술자리에서 잠시 담배를 피우겠다며 밖으로 나가며, '안 나와요?'라고 물었던 남자.
멍하니 이끌리듯 따라나갔던 그 새벽 2시의 홍대 뒷골목은 곧 우리의 첫 키스 장소가 되었다.
흡연자와 연애해 본 적이 없던 내게, 입 안으로 훅 끼쳐 들어오는 그의 담배냄새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마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순간 그가 내게 키스한 것은 그가 담배 한 개비로부터 취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것.
내게 키스하는 그의 한 손에는 여전히 불붙은 담배가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와 보냈던 시간은 한 달여 남짓이었다.
그 기간 동안 그에게서 오는 연락은 금요일 저녁, 혹은 주말로 한정되어 있었다.
직업상 바쁜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는 그의 사정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나는 그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조차, 평일에는 서로의 존재를 전혀 느낄 수 없다가도 주말이 가까이 다가오면 어디선가 불쑥 '뭐해요?'라 물으며 튀어나오는 그의 존재는 연락이 없는 순간에도 나의 모든 신경을 갉아먹고 있었다.
사귀지는 않으나, 주말마다 꼬박꼬박 만나는 사이.
습관처럼 이어진 주말의 만남이 한 달째 이어지던 그 날.
나는 이대로 그와 내가 서로의 주말의 습관이 되어도 좋은 걸까, 고민했다.
최대한 기대하지 않고 편하게 만나려 했지만,
만남이 반복되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도 여자인 이상 그를 향한 기대가 아예 없어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를 만나는 동안, 그리고 그의 연락이 없는 평일, 그리고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금요일 밤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서는 대체 왜 연락 한 통 없는 것일까.
내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걸까?
나는 지금도 이런 식으로 계속 그를 신경 쓰고 있는데.
자존심이 상하고 그에 대한 괘씸한 마음이 생겼지만,
나 또한 그에게서 연락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마음이 아프다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은 즐겁고 좋았지만, 뭐랄까...
이대로 그가 내 인생에서 조용히 사라져도, 다음 주말이 임박했을 때쯤 그에게서 별다른 연락이 없더라도 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초반에는 그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고, 궁금한 마음도 있었으나 그의 무반응 속에서 나 또한 그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잃어갔던 것이다.
한 달째 되는 날에서야 나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나는 심심해서 그를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결국은 나도 그에 대해 그렇게 쉽게 포기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마음에 불과했는데, 그것을 빨리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았다.
이 사람이 '아닐' 경우, 산뜻하게 바로 안녕을 고하고, 또 새로운 사람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좀처럼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까다로운 성격인 탓에, 오랜만에 나타난 '호감 가는 남자'를 어떻게든 붙잡고 있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가 내 인연이 될 사람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럼 무엇이 사랑일까.
대체 어떤 감정으로 사람을 만나야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며, 그에 대한 내 감정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과, 손짓에 현혹되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의 말투와 행동이 보여주는 진실을 바라보며.
나는 오랜만에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대체 사랑이란 뭘까, 어떤 사람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와의 마지막 한 주는 오롯이 이 문제만을 고민하며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주 주말이 되기 전, 의레 그 타이밍에 그는 내게 또다시 '뭐해요'라며 연락해 왔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만나자는 뜻이었으리라.
나는 그에게 앞으로 연락하지 말아달라고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그렇게 간단하고 명료하게 보였다.
그가 날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 사이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이유 관계의 종료를 선언하는 내게 그는 왜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요."
그는 대답이 없었다.
"당신도 제가 궁금하지 않죠? 제가 뭘 하는지, 어딜 가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내가 당신에 대한 생각을 하긴 하는지 같은 것들. 궁금하지 않잖아요."
그는 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나는 그에게 차근히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을 궁금해하는 사람을 만나세요.
당신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생각을 궁금해하고, 최근 읽는 책이나 듣는 음악을 궁금해하고.
또, 그런 궁금증을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세요.
당신에 대한 궁금증이 흘러넘쳐서 자기도 모르게 시도 때도 없이 당신에 대한 질문들이 터져 나오는 사람이요. 당신에 대한 그런 호기심을 최대한 잘 표현해 주는 사람을 만나세요.
서른이 넘은 우리 나이에도,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걸 우리 둘 다 알았으면 좋겠네요."
누군가에 대해서 계속 궁금해하고, 알아도 알아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순간적으로 문득문득 궁금해지는 것.
'사랑'의 본질은 이렇게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존재를 찾아주는 이 없는 수많은 타인들의 틈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찾아주고, 바라봐주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궁금해할 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의 시작은 궁금함이어야 하고,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과는 사랑을 시작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그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기에,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도, 사랑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순간에는 언제나 이 상황을 떠올리며 자문할 것이다.
궁금한 사람인지 아닌지.
나는 그가 계속 알고 싶은지.
Cover Image : ⓒGisella Kl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