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weeping because Richard Parker had left me so unceremoniously. 리처드 파커가 아무런 작별인사도 없이 나를 떠나서 나는 울었다.
What a terrible thing it is to botch a farewell. 이별을 망치는 것은 정말 얼마나 끔찍한일인가.
it's important in life to conclude things properly. Only then can you let go.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마무리를 제대로 짓는 일이다. 그래야만 보낼 수 있다.
Otherwise you are left with words you should have said but never did, and your heart is heavy with remorse. 그렇지 않다면 그저 평생을 그 작별의 순간에 했어야 했던 말들을 곱씹으면서, 회한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 <Life of Pi>, Chapter 99.
팬데믹-전염병이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현상-에 의한 갑작스러운 사망의 슬픈 점은, 그 날 그 순간까지 살아왔던 그 사람의 삶과 죽음이 그저 '어떤 질병에 의한 사망자 수'에 포함된 단순한 수치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지만, 전염병 유행에 의한 사망은 누군가의 인생을 그저 '숫자'로만 남길뿐이다.'1820년에는 콜레라가, 1920년에는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고, 사망자는 몇 명이었다'는 것처럼, 이번 우한 폐렴에 의해 실시간으로 발생되고 있는 사망자들도 그저 먼 미래에 역사에 대해 말할 때 숫자로만 언급되겠지.
그리고 오늘 실시간 통계 사망자에 또 숫자가 추가되었다.
어차피 인간의 삶은 점점 죽어가는 과정이라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생 전체를 세상에 대한 적절한 작별인사에 대한 준비 과정이라고 본다면 팬데믹에 의한 죽음은 결코 준비되지 못 한 죽음이고, 당사자에겐 영문을 모를 죽음이며, 가족에겐 황망한 죽음일 것이다. 죽음의 당사자에게도, 남겨진 가족에게도 '적절한 끝'을 맺지 못하게 할 것이며, 남겨진 사람으로 하여금 평생 '그가 좀 더 살아서 마지막에 제대로 작별했으면 어땠을까' 회한에 가득 차게 할 일인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파이가 너무도 급작스럽게 찾아온 리처드 파커와의 이별을 평생 아쉬워했던 것처럼, 인생에서 제대로 된 '끝'을 맺는 일은 그토록 중요하다.
나의 할머니는 일전에 아프셨을 때 병원에 1천만 원을 현금으로 들고 가셨다. 원인 모를 두려움에 떨며 의사에게 돈다발을 보여주며 '나 돈 많아, 이거 다 줄 수 있고 집에 돈 더 있으니까 제발 고쳐달라'라고 간절히 말씀하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웃프다고 생각하며, 할머니 귀여우시다고 생각하며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짠한 일이다. 늙어가며 기능을 다 해가고 점점 망가지는 몸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것도 그럴진대....
우한 폐렴으로 인한 사망자는 대부분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로 알려져 있지만, 봉쇄된 도시의 현황을 보여주는 영상들 속에서는 그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급작스런 위기에 젊은 사람들도 예외는 없다는 것도. 우한 시내 길가에서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져버리는 사람들과, 병원 복도 누워 돈을 뿌리며 살려달라는 사람, 패닉에 빠져서 울부짖고 '나도 살고 싶다'며 동료에게 절규하는 영상 속의 의료진들을 보며, 실시간 사망자 통계에 +1이라는 숫자가 되어버린 누군가의 저버린 삶을 안타까워 애도하며...
그저, 모두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의 인생에 존재하는, 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만이라도.하루라도 빨리 이 상황이 안정되길 바라며, 더 이상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황망히 떠나보내지 않게 되길 바란다.
+
오늘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된 누군가에게.
이 세상에의 수많은 사람에게는 그저 '사망자 중의 하나'인 숫자로 먼저 기억될지도 모르겠지만, 숫자 뒤에 가려진 당신의 인생이 있었음을,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는 힘든 인생을 견디고 살아가게 한 리처드 파커였다는 것을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