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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Sep 19. 2019

제게 평온을 허락하소서(Serenity Prayer)

친구의 결혼 소식에 하염없이 마음이 흔들린 어느 날에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친 드라마 중에, Queer As Folk(퀴어 애즈 포크, 통칭 QAF)라는 드라마가 있다. 피츠버그의 게이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퀴어들의 사랑과 그들이 직면한 삶에 대해 다루고 있 드라마이다.



 퀴어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이 드라마가 시즌 5까지 이어가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삶의 층위가 비단 ‘퀴어’들을 대상으로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당시 퀴어들을 메인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될 수 있었다는 소재의 파격과, 온갖 곳에서 이 드라마에 대한 입방아를 찧어대게 했던 자극적인 연출들을 걷어내고 나면 이 드라마는 그저 이 지구 상 한편에서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등장인물이 퀴어든 아니든.


 어쨌든 이것을 처음 접했던 10대 소녀였던 나 역시 처음에는 소재 자체의 자극적인 면에 끌렸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와, 미국에서는 이런 드라마가 나와?’라는, 단순히 신기했던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당시 온스타일 같은 케이블 TV에서 방영하던 미드들을 두루 섭렵하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이 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 그저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의 퀴어 버전인가 보다,’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스쳐 지나가듯 본  장면이 이상하게 뇌리에 남아 꼬박꼬박 챙겨보기 시작한 이 드라마는 이후 아무리 못해도 2,3년에 한 번씩은 ‘재탕’하게 되는 내 인생 드라마가 된다.


 보통, 20년에 걸쳐서 3년에 한 번씩 N차 뛰는 드라마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도 거의 QAF가 유일한 대상이기도 하고. 교복을 입던 10대 소녀에서, 어느덧 처음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던 나이의 2배쯤에 다다른 나이대가 될 때까지.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문득 생각날 때마다 드라마를 다시 보았다


 신기한 것은, 매번 볼 때마다 내가 가장 감정 이입하는 대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를 '처돌이'로 만들었던 아름다운 소년, 저스틴 테일러. a.k.a 썬샤인

 10대 소녀 시절 처음 봤을 때는 17세 소년 저스틴의 맹목적인 사랑에 이입했다. 진심으로 그의 첫사랑이 이뤄지길 바랐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그의 한없는 애정의 대상인 브라이언을 사랑하고, 또 미워했다. 저스틴의 순정(?)과 헌신을 폄하하고 독한 말로 사람들을 밀어내는 브라이언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미웠다.



 20대 중반쯤 다시 봤을 때는, 처음 봤을 때보다는 브라이언의 심경이 조금 더 이해가 갔다. 비단 그뿐 아니라, '사랑밖엔 난 모른다'며 대책 없이 브라이언에게만 목맨 저스틴에게 ‘Fucking Teenager’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다른 다이너 식구들의 마음이 이전보다는 좀 더 이해가 갔다고나 할까? 나듬과 늙어감에 대한 브라이언의 병적인 불안 증세도 일견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었다. 나 또한 앞자리가 '3'으로 변하는 순간이 막연하게나마 두려웠으니까.


10대 땐 '우리 저스틴 마음도 몰라주고! 나쁜 놈!!' 필터를 씌우고 봤던 게 다소 미안해질 정도.


 이전까지는 그다지 중요한 에피소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브라이언의 아픈 가족사도 그때서야 보였다. 그가 왜 저스틴에게는 그토록 하기 힘들었던 'I love you'라는 말을 마이클에게는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는지, 육체적인 욕망이나 애정을 뛰어넘은 스토르게식 사랑과 감정적 연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 30대가 되어 다시 본 QAF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이입한 대상은, 메인 커플도, 서브 커플도 아닌 조연 캐릭터 테드였다.



잡지 화보에서조차 한없이 하찮은 존재감을 드러내며 왼쪽 아래에서 주인공 메인 커플의 다리를 소중히 감싸안고 있는 바로 이 사람.


 테드 슈밋, 브라이언이 가끔 장난스레 Theodore라고 풀네임을 부르기도 하는 그는 QAF에서 철저히 브라이언의 반대 형질로 보이는 인물이다. QAF 시즌1 첫 화에서 그의 나이는 이미 33살이다. 머리는 벗어지기 시작했으며, 엉덩이는 처지고, 얼굴엔 주름도 생겼다. 당연히 인기도 없다. 월급쟁이 회계사로 살아가는 그의 삶은 단조롭다. 오직 그의 ‘게이’로서의 정체성만이 그를 지긋지긋한 ‘평범한 삶’의 궤도에서 가끔씩 일탈하게 하는 유일한 요소인 것만 같다. 어쨌거나 그는 게이이기에 주기적으로 바빌론에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니까.


 비록 '완벽한 마성의 게이'인 브라이언에게 항상 무시당하고 놀림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그가 대차게 화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 또한 내면에 브라이언을 향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이 생일 선물로 특별히 그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그가 간절히 바랐던 것은 ‘단 하루만이라도 브라이언처럼 살아보는 것’이었다. 키도 크고, 잘 생겼고, 원하는 남자는 모두 가질 수 있는 선망의 대상 그 자체인 브라이언이.


 예전 같았으면 개그나 말썽 담당 캐릭터라며 슬쩍 넘겨보고 말았을 캐릭터인 그에게 내게 이끌렸던 것은 그가 QAF의 등장인물 중 나와 가장 닮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30대였고, 찬란하게 빛나던 신체의 노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집과 회사만을 오가는 내 삶은 어쩌면 일탈조차 하지 않는 테드보다 훨씬 단조로운 것일 수도 있다. 때때로 나는 이제 내 인생이 이보다 더 나아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개성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친구들 사이에 혼자 어두운 표정으로 이방인처럼 존재하던 테드.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라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테드. 테드의 시점을 메인으로 QAF가 흘러간다면, 아마 5개의 시즌 내내 '너 자신을 좀 더 사랑해줘'라는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충고에도 귀를 막고 다양한 삽질을 하며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그 삽질에는 일견 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속 마츠코가 오버랩되는 부분도 있다) 자기 파괴적인 캐릭터의 인생 막장 추락 후의 재기의 스토리가 메인 서사가 되지 않았을까?


 과거엔 아니었을지라도, 지금은 확실히 테드에게 끌린다.  주인공 커플처럼 각자 자신의 일도 끝내주게 해내고 섹스도 부족함 없이 하며, 위기에 빠진 게이 커뮤니티를 영웅적인 풍모를 풍기며 덥석 구해내기도 하그런 드라마 속 주인공은 어릴 때 내가 막연히 꿈꾸던 환상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실제의 그 나이를 지나오며 차근차근 깨달았기 때문인 걸까?


잘 나가는 젊은  CEO 브라이언과 장래가 촉망되는 아티스트인 저스틴. 이 커플의 사기같은 조합은 가끔 프레임 밖의 사람마저 주눅들게 할 정도다.


 지금의 나는 브라이언이 보냈을 90년대 드라마 속 '실장님' 스러운 멋들어진 30대를 보내고 있지 않다. 내겐 멋진 로프트도, 멋진 차도, 어린 애인도 없다. 그렇지만 내게서 그의 반대 형질인 테드의 모습은 무척 쉽게 찾을 수 있다. 점점 얇아지는 머리카락, 하나하나 주름이 늘어가고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 그리고 결정적으로, 외로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채 나 혼자 '그 자리에' 남겨질 것 같다는 불안감.

 

 그렇기에, 나는 나를 닮은 테드가 밉기도 했다. QAF를 보는 내내 망가져가는 테드의 모습에 '왜 자신을 좀 더 사랑해주지 않아? 왜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욕심내며 스스로를 고문하고 통제할 수 없는 쾌락에 빠져서 인생을 망치는 거야? 소중한 사람들을 상처입히면서?'라고 그를 속으로 다그치기도 했다. 그 모든 물음이 사실은 거울에 쏜 빛처럼 다시 반사되어 내 눈을 찌를 거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런 그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은, 오직 30대의 기약 없는, 어찌 보면 절박한 싱글인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테드, 바보 같은 테드. 한없이 열등감에 빠져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보려 버둥치는 테드. 단지 그가 원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한동안 잊고 지내던 테드가 갑자기 떠올랐던 것은, 지난주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한 기습이었지만. '나 곧 결혼해'라며 청첩장을 건네주는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고,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을 거쳐 점점 주변에서 청첩장을 받을 일도 줄었다. 2년 전 결혼하고자 했던 인연과 헤어진 뒤로, 나는 이런 자리가 버거웠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 내가 살고자 했던 '단 하나의 짝'을 찾아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따위. 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는 가능하지만, 나는 앞으로 할 수 없을 일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도 괴로웠다. 비뚤어진 마음이 몰려왔다. 왜 나에게는 그토록 어려운 일이 내 친구들에게는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걸까?


 때로는 내가 펫숍에서 적절히 분양되어야 할 때를 놓치고 그 안에서 너무 자라버린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난 답답한 유리 부스에서 언젠가 번듯한 '가정'으로 입양 가서 '행복하게' 살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 주변의 다른 강아지들은 한 마리씩 차례차례 적당한 시기에 '간택'을 받아서 가정의 품으로 떠나가는데. 어째서인지 나만 마지막까지 유리 부스에 남겨져서 다른 강아지들이 차례차례 분양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이렇게나 커버려서 귀염성도 없어졌으니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거야. 새로운 강아지들은 계속 부스에 들어오니까.' 하고 체념해 버리는 내 모습.


 평소에는 잊고 살던 내 나이와, 근 시일 내 결혼에 대한 기약이나 가능성이 없는 현재의 상황. 그리고 어떠한 일탈이나 모험도 허락하지 않을 단조로운 삶까지. 내 삶은 앞으로 그냥 이대로 살아가다가, 끝날 것 같은데.


 마음속에서 너무 찌질한 질투가 몰려왔다. 겉으로는 축하한다 했지만, 친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고 나 자신의 도태각을 재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해서 자괴감이 몰려왔다. 울적하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난 게 테드였다. 테드, 나와 닮은 테드. 그리고 떠오른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었다.




 마약 재활 치료 센트에서 막 치료를 마친 테드는,  그동안 자신이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사과의 편지를 전달한다. 자신을 믿고 맡겨준 아들의 학자금을 써버린 테드를, 멜과 린지는 용서한다. 그리고 멜과 잠시 대화를 나누러 산책을 나간 테드는, 자신을 격려해주는 그녀에게 덤덤하게 고백하듯 털어놓는다.



When I was growing up, my father had the serenity prayer taped to the refrigerator.

어릴 때, 아버지가 'Serenity Prayer(평온함을 비는 기도)'를 냉장고에 붙여두곤 했었지.

He wasn't in AA. He didn't touch a drop. He just liked it.

알코올 중독 치료하느라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좋아했었어.


I saw it ten times a day. Knew it by heart, of course.

난 그걸 하루에 10번도 더 봤고, 외워버렸지.

It never meant anything.

딱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어.


Now - it's been my salvation.

근데 이제는 그게 내 구원이 되어버렸어.



그리고 뒤이어 그가 덤덤하게 읊은, 그에게 '구원'이 되어주었다는 그 기도는, 내게도 일종의 구원이 되어주었다.




God, grant me
주여, 저에게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온과,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용기,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해낼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소서.






 Serenity Prayer(평온함을 비는 기도)는 기도문의 대명사급으로, 여러 버전이 있는데 그중 가장 널리 퍼진 이 기도문은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가 소개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 알코올 중독자 치료협회에서 채택한 공식 기도문이기도 하다. 나는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이번에 QAF를 보며 듣게 된 저 기도문은 마음 한편에 새기고 있다. 이 기도문이 그토록 유명한 구절이 되어 널리 인용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다양한 사유로 마음의 병을 짊어지고 각자 힘겨워하고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 간결하게 와 닿으며 잠시나마 마음의 평온을 선물할 수 있는 글귀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이 기도문이 담고 있는 모든 문장과 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바꿀 용기를 갖게끔 하라는. 어찌 보면 인생을 가장 단순하고도,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나에게 지금 당장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이나 일생을 함께 할 상대를 찾는 것은 어차피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게는 '바꿀 수 없는 일'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친구의 결혼에 마음이 심란한 것, 그것 또한 바꿀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나 스스로 바꿀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필요 이상으로 괴로워할 필요 없으며, 다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온만 구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체화'하는 것은 너무도 다른 영역이라, 아직까지 나는 마음의 평온을 균형 있게 다잡지는 못했지만, 타인의 행복한 소식에 한없이 막막하고 서글퍼져, 마냥 침잠해버릴 것만 같았던 나를 조금이나마 다시 끌어올려준 것은 실패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낸 테드의 모습. 그리고 그의 구원이 되어 주었다는 기도문을 읊던 그의 모습이었다. 이 기도문의 존재를 내게 알려준 것만으로도, 나는 테드라는 캐릭터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약 중독의 굴레에서 빠져나왔다 해도 테드는 몇 번 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사람이 사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다른 사람이 되듯 휙! 바뀌는 일도 드물고.) 연인과의 관계에서 실망하여 다시 잠깐 약에 손대기도 한다. 그는 QAF에서 가장 덜 판타지스러운 인물이기에, 가장 인간적으로 실수하고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나 끝끝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난다. 그렇기에 이번에 본 QAF 마지막 회에서, 문제의 브라이언, 저스틴의 결말보다 내게 더 진한 여운으로 다가왔던 것은 다름 아닌 테드의 엔딩이었다.


마지막 회에서 39번째 생일을 맞이한 그는, 따스한 모닥불 앞에 앉아 가장 친애하는 친구로부터 생일 케이크가 다 가려질 정도로 초가 꽂힌 사랑스러운 케이크를  받는다. 다 타버리기 전에 어서 소원을 빌라며 채근하는 그에게 테드는 이렇게 말한다.




Every year, I always wish for the same thing.

A Boyfriend. Someone to love, who'll love me.

매년 생일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소원을 빌곤 했지.

나를 사랑해 줄 사람, 연인 말이야.


This year i think i'm going to wish for something else.

그렇지만, 올해에는 뭔가 다른 걸 빌어보려 해.


The wisdom and the maturity to realize that...

I won't find what I want by looking for it.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의지로 찾아 헤맨다 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지혜와 성숙함을.


Not expect someone else to give me

what I never gave myself.

결코 내가 나 자신에게 주지 않았던 것(사랑)을

타인이 내게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며,


That I'm not a half waiting to be made a whole.

 나는 다른 '반쪽'을 찾아 비로소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And even if that special person never comes along...

설령 앞으로 내 인생에 그 소중한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I'll be just fine.

난 괜찮을 거야.




 난 괜찮을 거야(I'll be just fine).  평온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꾹꾹 눌러 뱉은 테드의 그 한마디에 나는 진심으로 깊은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I'll survive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었다. (위 대사가 나오는 시즌 5 마지막화 에피소드의 제목은 We will survive!다.) 그가 마약 재활 치료 센터에 있는 동안 도문 (Serenity Prayer)에 의지해서 얻어냈던 구원을, 나는 그의 한 마디로 얻었다.


 비록 테드가 QAF에서 썩 보기 유쾌한 장면만을 연출한 캐릭터는 아니라 해도(마약 중독이나 포르노 중독, 포르노 산업 종사, 바람피우기.... 등... ), 내가 테드를 종내에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일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겪고도, 그는 살아남았고, 원하던 평온 얻었기에. 앞으로 조금 더 방황해도 괜찮다. 비록 그의 30대를 거의 다 삽질로 바쳐내긴 했지만, 그는 확실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고 괴로워하며 스스로괴롭히기보다는,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나는 이 질리지 않는 드라마를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이고 더 '복습'할 것 같다. 그때마다 내가 공감할 대상이 또 바뀔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벤의 모습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데리고 살고 싶어 하는 린지와 멜의 모습에서. 자식들을 걱정하는 데비의 모습에서 나는 계속해서 나와 닮은 누군가를 발견해 나갈 것이다. 퀴어들이 메인인 드라마지만, 나는 기꺼이 나 자신의 모습을 그들에게 겹칠 준비가 되어 있다.


 인생이, 산다는 게, 그들이라고 우리라고 뭐 별 거 있나. 커트 보니것이 Serenity Prayer를 두 번이나 언급했던 <제5 도살장>에서 반복되는 문구처럼. 뭐 그런 거지.(so it goes)



+


QAF OST 중에서 가끔 생각나서 자주 듣는 노래가 있다. 개인적으로 테드의 테마송이라고까지 생각하는 'Love of the loveless'라는 노래. 테드가 마약 중독으로 치료를 받고 있던 센터를 떠날 때 흐르는 노래인데, 노래 자체가 주는 '어쩔 줄 모르는 느낌'과 다소 찌질한 느낌, loveless(사랑받지 못하는)의 love라는 타이틀까지 완벽하다.

Love of the loveless - Eels  (듣기)


Don't got a lot of time, don't give a damn
시간이 없어, 너무 신경 쓰지 마
don't tell me what to do, I am the man
나도 남자니까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 없어.

if there's a god up there something above
만일 저 위에 신이나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god shine your light down here, shine on the love
그는 너의 빛을 내리쬐서 사랑을 빛나게 해 줄 거야.

love of the loveless
사랑이 없는 이에게 사랑을..

Don't have too many friends, never felt at home
친구가 너무 많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
always been my own man, pretty much alone
대부분은 혼자인 채야

I know how to get through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알고 있어
and when push comes to shove
그리고 힘든 순간이 닥칠 때
I got something that you need, I got the love
네가 필요로 할만한 무언가, 사랑을 난 가지고 있지

love of the loveless
사랑이 없는 이에게 사랑을..

All around you people walking
주변 사람들은 옆을 스쳐 지나가며,
empty hearts and voices talking
텅 빈 마음과 공허한 목소리로 말하지

looking for and finding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Nothing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음을..

Don't got a lot of time, don't really care
시간도 별로 없고, 신경 쓰이지도 않아.
not selling anything, buyer beware
관심 주지 않을 거고, 입 터는 자를 경계해야지.

if there's a god up there something above
만일 저 위에 신이나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god shine your light down here, shine on the love
그는 너의 빛을 내리쬐서 사랑을 빛나게 해 줄 거야.

love of the loveless
사랑이 없는 이들에게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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