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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Feb 01. 2020

DON'T PANIC

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니기에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사방이 난리다.


 회사든, 집이든, 어디서든 요즘 매일같이 화제에 오르는 것이 우한 폐렴 감염자들의 이동 경로나 방문 장소에 대한 것이다. 그중에는 부정확한 가짜 뉴스도 많아서, 감염자가 방문했다는 강남의 주요 상점 및 식당들의 상호명이 '주의하라'는 짐짓 무서운 경고성 문구와 함께 줄줄이 적혀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신규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공문서를 위조한 형태의 찌라시도 있다.

 

 조금 놀라운 것은 저런 것들을 두려움과 함께 단톡 방에 공유하고 퍼뜨리거나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배척의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들이 평소에 전혀 그렇게 무엇인가에 쉽게 휩쓸릴 것처럼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 한 일주일간 우한 폐렴 상황과 관련하여 가장 절감한 것은, 사람들은 위기에 몰리면 자기도 모르게 숨겨왔던 자신의  바닥과 본성을 드러내 버린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생존 본능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시 되기 때문일 것이고..


'코로나 시대'의 우리는 어쩌면 모두 공포에 잠식당해 잠시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마스크 판매업자들은 이 때다 싶어서 마스크 값을 올려대고, 감염된 사람들과 중국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댄다. 그리고, 혐오와 배척이 처음에는 중국인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던 것이, 우한 시에 체류 중이었던 한국 교민들의 인근 지역 격리 수용을 거부하는 트랙터 시위로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보기만 해도 넘쳐나는 공포와 혐오에 질식 당해 인류애를 잃어버리고 말 것 같았던 순간.






우한으로 향하는 중국 의사들의 서약서를 보았다.

 

 그들은 SARS 때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이 있던 베테랑 의사들로, 본인들의 경험을 살려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데 끝까지 협력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 위에는 결연한 의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우한으로 향하는 의사들의 지장이 찍혀 있었다. 마치 체르노빌 현장을 수습하러 달려갔던 구 소련의 과학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한 병원의 의료진을 보았다.


 힘든 와중에도 책임감을 갖고 환자들을 돌보며, 병원에서 춘절 연휴를 맞으며 지치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우한 의료진의 모습을 보았다.


https://m.news.nate.com/view/20200128n12148


 우한에 남겨진 사람들을 보았다.


봉쇄된 도시에서 침착하게 생활을 영위해 나가며, 먼 거리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우한의 시민들을 보았고,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우한, 힘내라!" 를 외치며 연대하는 사람들

https://news.nate.com/view/20200130n02482


우한 경찰서에 들러 무심한 듯 마스크를 두고 사라진 선량한 시민을 보았다.

https://twitter.com/SCMPNews/status/1222454069341515776?s=19




 혐오의 벽 앞에서 좌절한 우한 교민들을 따뜻하게 맞이하#we_are_asan (우리가 아산이다) 손피켓 릴레이를 보았다. 

 https://news.v.daum.net/v/20200131105854706



 우한의 교민들을 수송하기 위해 2주간 격리를 각오하고 자원한 경찰들과 간호사들을 보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1311007311377


 밤낮으로 연구하여 진단 시약을 만들어 낸, 새벽 6시 30분에도 불이 켜져 있는 질본 건물을 보았다.


새벽 6시 30분에도 질병관리본부의 불은 환하게 켜져있다.

https://twitter.com/AFY121/status/1222592317682409472?s=20


 무엇보다, 이런저런 찌라시에 휩쓸리지 않고, 지나친 공포에 잠식당해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은 채로, 그저 개인위생에 신경 쓰며 평범한 하루를 차분하게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았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런 일들을 하나씩 목격하며. 급작스럽게 닥친 재난과 위기 상황 앞에 '이제 인류는 끝났다'며 절망하고 싶었던 순간 기적처럼 나타나는 인간의 고귀함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냉정히 생각해서, 인류의 존재가 결코 지구에 이로운 것일 순 없음에도, 여태까지 생존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사실 각종 사건 사고들로 맨날 농담처럼 '인류애를 잃는다' 하는데 맨날 잃기만 하면 어디 괴로워서 살겠나, 가끔은 이렇게 위기 상황에서 떨궜던 인류애를 조금 건져 올리기라도 해야지.

  


 파리의 시민들은 2015년의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 저녁에도 변함없이 외출했다. 테러리스트가 바랐던 것은 인명의 살상보다도, 테러 이후 남겨진 파리의 시민들이 두려움에 위축되어 일상이 파괴되고, 서로를 배척하며 인종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었다. 파리의 시민들은 두려움에 지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일상을,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코 지나친 공포가 그들의 삶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유행의 가능성이 있는 전염병과 특정 테러 행위는 경우가 다르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한 폐렴에 대해서는 물론 모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게 맞고 어느 정도는 신경 쓰는 게 맞지만, 이 일로 인해 스스로 지나친 패닉에 사로잡혀 버리거나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혐오에 동참하기보다는 소중한 일상의 평온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전염병에 걸릴 확률보다, 과도한 불안감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인간이기에, 이 세상에 잠시 손님으로 다녀 가는 필멸의 존재이기에. 적어도 이 세상에 있는 시간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가야 하고, 살아내야 하는 존재이기에.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며, 누구도 그 순간을 혐오와 배제, 공포 같은 어두운 감정으로 채운 채 마무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백 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을 같이 살아나가는 '동기' 중 누군가 예기치 못한 전염병의 피해자가 되어 아까운 생을 채 준비되지도 못한 채 떠나지 않게 하도록 연대하며, 서로가 지나친 공포에 사로잡혀 괴물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며, 차분히 일상을 수호해 나가야 한다.


 진짜 바이러스는 무분별한 공포와 혐오를 퍼트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바이러스가 아닌 인간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그러니 부디, 이 위기 앞에서 다들 이성적이길 바란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서로에게 조금은 더 다정해지길 바란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프로파간다 문구



 KEEP CALM AND CARRY ON.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로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


이 글의 제목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인용한 것인데, 포스팅 직후에 마침 이 글이 내 브런치에 발행된 42번째 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기한 우연이다.  


 그러니 모두 패닉에 빠지지 않았으면.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의 해답은 결국 '42'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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