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식에 머리가 멍해졌다. 처음에는 가짜 뉴스려니 하고 믿지 않았는데, 죽은 게 맞단다.
잠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연예인인 그녀와 내가 일면식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마치 한 다리 건너 아는 후배나 여동생이 죽은 것처럼.
그녀의 죽음이 너무 가깝게 느껴져 순간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스물다섯.
그녀는 고작 스물다섯이었다.
사실 내가 그녀의 ‘팬’이었던 것은 아니다. 내 스마트폰에는 그녀의 ‘팬아저’ 사진들이 여러 장 저장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팬심이라기보다는 그녀가 뿜어내는 한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에 가까웠다.
처음 그녀를 봤던 것은 어린 시절에 봤던 드라마 <서동요>에서였다. 맑고 동그란 눈동자에 하얀 피부, 사랑스러운 표정. 한복을 입고 곱게 머리 장식을 한 그녀의 모습은 정말 ‘선녀’ 내지는 ‘공주’ 같았다.
<서동요> 시절의 아역배우 설리
그 드라마를 계속 봤던 것은 아니었지만, 천진하던 설리의 미소만은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저렇게 예쁜데, 언젠가 또 연예계에서 볼 수 있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한동안 그녀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시대의 ‘동생’ 격이라는 걸그룹-f(x)-가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안에 설리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앳된 얼굴, 큰 키, ‘자이언트 베이비’라는 별명을 지녔던. 머리를 총총 묶은, 그러나 변함없이 상큼한 미소를 지니고 있던 소녀.
그녀의 존재는 굉장히 센세이션 했다. 그녀가 어디 출연하기라도 하는 날엔 온갖 포털사이트에는 그녀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곤 했다. 커뮤니티에는 홈마가 찍고 보정한 그녀의 고화질 ‘팬아저’, ‘입덕 짤’ 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f(x) 팬이 아니고 2,3세대 아이돌 덕질을 하지 않은 나조차 이름을 아는 설리 홈마가 한 두 명은 있을 정도였다. 가히 국민 여동생이라 불러도 좋을 어마어마한 인기였다.
그렇게 그녀가 영원히 걸그룹의 멤버일 것만 같았던 어느 날엔가,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열애설이 터졌던 것 같다. 상대는 꽤나 연상의 래퍼라고 들었고, 그가 잃어버린 지갑에서 나온 한 장의 사진과 파파라치 사진들이 정신없이 포털사이트에 올라왔다. 그녀가 핫한 존재였기 때문일까, 열애설의 여파도 너무 핫했다. 한동안은 다소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반응들이 과열되어 있었다. 설리가 어디를 갈 때마다 그의 이름이 따라붙었고, 때로는 그 남자 친구의 MC명 때문에 심한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쏟아지는 그들의 연애에 대한 관심에, 조금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 후로 설리의 삶은.. 가십, 가십, 가십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태도 논란, 몸 담았던 걸그룹에서의 탈퇴, 알려진 열애 상대와의 결별. 그리고 인스타, 인스타, 인스타. 사진 하나만 올려도 온갖 말을 덧붙여 각종 포털 사이트에 뿌려지던 그 문제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녀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가끔 잡지 화보나 영상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러 다니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젊음을 누리며 마음껏 놀러 다니는 모습이 마냥 부럽고 좋아 보였다. 그때가 아마 내가 한창 힘들 때였는데,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화보 속 미소가 너무 자유롭고 행복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게 된 날도 종종 있었다.
비록 그전에 아이돌 활동 당시 태도 문제로 팀 활동에 피해를 주기도 해서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도 많았지만 그녀는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 만으로는 거리낌 없어 보였다. 그녀의 인스타에 항상 놀고먹는 사진이나 영상만 올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댓글을 통해, 게시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위안부 관련 포스팅을 하거나, 악플러에게 경고하거나. 속옷 착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때로는 스스로 사진으로 드러내거나. 방송에 나오거나.
포털사이트에 그녀와 관련된 기사가 올라오지 않는 날은 거의 드물었다. 친구와 술을 마셔도, 수영장에 놀러 가도,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해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올라왔다. 나는 그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설리가 그랬나 보다’, 혹은 ‘설리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을 잠깐씩 하고 넘어갔다.(이상하게 그녀와 관련된 기사들은 뜰 때마다 마음속에서 한 번씩 생각해보게 하는, 그렇기에 더 뇌리에 강하게 그녀의 이미지가 남게 되는 요소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그녀가 행사장에 나타나거나, 예쁜 화보를 찍은 사진이 올라오면 기쁜 마음으로 저장하기도 했고.
그렇지만 오늘의 보도는 그저 저렇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포털사이트를 장식한 그녀는 정말 마지막까지 센세이션 했다. 그리고 아마도 한동안, 인터넷에는 설리의 이야기로 가득할 것이었다. 그저 믿기지 않는 심경으로, 집으로 돌아와 무심코 켠 아이패드 배경화면 속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기습적으로, 나는 무척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녀의 죽음이 최초로 보도된 이후. 앞다투어 가십거리처럼 쏟아지는 기사들에서는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의 죽음조차 가십거리로 소비될 뿐이다. 파파라치를 피하기 위해 달리던 자동차에서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이애나비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파파라치들과 플래시 세례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처럼. 그 날 이후로 20년이나 지났지만,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일까?
‘아이돌’, 즉 대중의 우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 스타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어린 나이에 그녀가 꿈꿨던 우상으로서의 삶은 분명 이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중들은 그녀를 우상의 위치에 올려놓았지만, 동시에 그녀를 마음대로 구석구석 뜯어보고 휘두르고 말을 얹을 권리를 스스로에게 강제로 부여해 버렸다. 설리는 우상이 되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 번 우상이었다는 이유로, 별다른 연예계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해도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찍히고, 감시되고, 평가되었다. 그녀에게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에 의해. 얼굴 없는 타인들은 그녀를 선망하고, 증오했다. 마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향수 냄새에 취해 그루누이를 미친 듯이 탐하고, 결국은 죽여서 먹어버리고 마는 우매한 대중들처럼. 가끔씩 스치듯 그녀의 소식을 들여다보는 나조차 대중의 반응에 피곤함을 느꼈는데, 정작 본인인 그녀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의견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외치던 그녀의 위악을 믿었다. 본인에게 달린 악플을 읽는 TV 프로그램에 나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는 너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이 진심일 거라 생각했다.
괜찮을 리가 없었는데. 연예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멘탈이 강하게 태어난 것도 아닌데. 일반인인 나조차 내 SNS에 안 좋은 댓글이 달리거나, 누군가 나에 대한 뒷담화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며칠 동안 생각나는데,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배설 같은 욕설을 들어야 했을 그녀는 어땠을까.
세상을 저버리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스물다섯살이었다.그녀의 이름에 붙은 연관검색어에는 아직도 그녀를 힘들게 했던 단어들이 함께 붙어 다닌다. 죽었지만,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사방에서 지켜보는 시선들을 견뎌내며 살아가다가 결국 그녀는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모니터 너머에서 그녀를 탐하고 욕하던 사람들은 같은 손가락으로 그녀를 애도하고, 그녀를 다시 추앙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흠잡을 짓을 저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상의 저 편으로 사라졌다. 이제 그녀를 사사건건 욕하던 사람들은 그녀를 애도하고, 언젠가 또 다른 희생양을 삼을 것이다. ‘우상’으로 섬기지만 그 존재를 참을 수 없는 누군가를 또 찾아내고 말 것이다.
이 혼란하고 어려운 시대에, 하나의 아이콘으로 살아가다 아이콘으로 죽음을 맞이한 그녀의 짧고 찬란했던 삶을 마음 깊이 애도한다.
비록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지금쯤은 그녀가 마음의 평온을 찾았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이패드를 사고 누군가 인물을 처음 그린다면 꼭 그녀였으면 했다. 좀 더, 많은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에 대해 말을 얹고 있는 것에 나 스스로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그녀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녀의 죽음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왜 내가 그렇게 충격을 받았는지, 여태까지의 내 삶에서 그녀를 어떻게 인식해 왔고, 그녀가 내 삶 속에 얼마나 스며들어 있었는지, 팬은 아니었지만 동경했던 우상의 존재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하고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 고인을 추억하며,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동시대에 태어나, 동경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젊음을 만끽하며 살아주어 고맙다. 부디 다음 생에는 이번 생처럼 마음이 너무 아프고 외롭지 않은 삶을 오래오래 누리며, 여전히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