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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Feb 11. 2020

'1박 2일 세대'에게 묻는다

정말 '나만 아니면' 되는 것인지.


'1박 2일 세대'라는 말이 있다.

 

 이 지칭은, 초등학생 때부터 KBS 2TV의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을 보면서 철저하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학습한 세대를 뜻한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무한 이기주의'라는 말을 그저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개그 요소로 소비해 왔다. 특히 <1박 2일>은 '복불복'이라는 시스템으로 그 무한 이기주의를 대놓고 내세우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에 고정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챙겨 보진 않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보게 될 때마다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광기에 가까운 흥분을 보이는 출연진들의 모습이 그리 유쾌하게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2시간 남짓한 정규 방송을 다 보고 나면 결국 뇌리에 남는 것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오직 그 한 문장뿐이었으니.


 나에게 <1박 2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유독 불편했던 이유는,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반복해서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승부욕이 없었다. 누군가와 싸우고, 경쟁하고, 부딪혀서 무엇인가를 쟁취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 모든 과정에 쏟아야 하는 내 에너지가 너무도 아까운 나머지, '그냥 네가 해'라고 맘 편하게 넘겨버리는 쪽이었다고나 할까. (사실은 그저 단순한 회피 성향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살면서 어떠한 이익을 두고 누군가와 갈등하는 상황이 오면, 누군가의 것을 악착같이 뺏기보다는, 기꺼이 자발적 패자가 되어 나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결코 누구의 것도 악착같이 빼앗지 않았다는 양심의 위안을 선택해 왔다.


 그렇기에, 1박 2일 출연진들의 열정과 공격적인 성향, 그것을 부추기게 만드는 프로그램의 기본 구조와 가치관은 볼 때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쓸데없이 공감 능력이 뛰어난 탓인지, 방송 안에서 복불복에 진 피해자들에게 까나리 액젓을 마시게 하고, 그 외 각종 게임에서 진 사람들읖 추운 한 겨울에 입수를 시키고, 야외 취침을 시키며 낄낄대는 장면을 보면서... 내가 만약 <1박 2일>에 출연한다면, 나에게는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들만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면 왠지 마음이 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쟁은 특히, 어떠한 의미나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거부감이 들었다. 그것은 승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패자로부터 기회를 박탈하고, 그들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며 조롱하여 웃음거리로 삼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한편, '다행히 나는 아니다'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하는. 나와 타인을 철저히 구분 짓게 만드는. 참으로 선하지 못하고, 개운하지 못한 웃음이었다.


 어쩌다 이번 한 번은 운 좋게 피했을 뿐, 타인의 곤란한 상황을 보며 즐겁고 신난다고 웃고 있는 본인도 분명 과거의 어느 회차에선가 게임의 패자로서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음에도, 그새 그 기억을 다 잊은  채로  '어쨌든 나만 아니면 된다'며 다시 다음 희생자를 찾으러 눈을 번뜩이는 모습은 내게 있어서는 언제나 '웃기다'기 보다는 '기분 나쁘다'에 가까운 쪽이었으므로.


 물론, 당시에는 그저 그런 나의 불편함을 그렇게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다. 흔히 그렇듯, 나는 이것을 '취향'의 문제로 치부해 버렸다. 그저 '나랑은 안 맞는가 보다.' 하고 넘겨버렸을 뿐.


 내가 '1박 2일 세대'에 대해 꽤나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 최근 한 여대에서 한 학생의 입학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촌극을 목격한 후였다.

 

     

(참고)[슬로뉴스] 혐오와 침묵: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논란에 관하여 (보러 가기)


 



"우리는 트랜스젠더를 반대합니다."


 위에 첨부한 슬로 뉴스 칼럼에도 이미 언급되었지만, 개인의 성 정체성은 누군가가 찬성과 반대 등 의견이나 입장을 표명할 대상이 아니다. 타인의 성 정체성은 누군가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일도 아니며, 간섭이나 규제를 통해 '교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 인정해야 할 일이다. 특정인의 성이 '김'씨라고 해서, 누구도 그 사람에게 '왜 당신은 김 씨인가요?'라고 묻지 않는 것처럼. 그것은 그냥 누군가의 특성일 뿐이다.

  

 그렇지만, 일부 숙명여대생들 사이에서 '트랜스젠더 신입생'이라는 약자는 철저한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MTF 트랜스젠더로서 여대에 진학하는 선례를 남겨 다른 트랜스젠더들의 희망이 되고 싶었다'는 해당 학생은, 일부의 숙명여대생들 사이에서 '여자가 누리는 특권을 탐내어 성전환한 기회주의자'이자 '여자의 파이를 뺏는 남자'로 대상화되어 입에 담지 못할 비난과 협박을 들어야 했다.


 나는 그녀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조롱과 비난이 집중되는 이 모든 상황들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 위와 같이 억지스러운 주장을 펼치면서까지 트랜스젠더 학생에게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이들에게 정말 묻고 싶었다. 그들은 정말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남자가 단지 '여자가 누리는 혜택을 부러워해서, 여자의 파이를 뺏으려 여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누군가가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많은 비용을 들이고 고통을 겪으며 일생일대의 결심이나 다름없는 성전환 수술을 감행했을 거라고 진정 마음속으로부터 굳게 믿고 있는 것이냐고. 당신이 저 사람이라면 그 목적으로 그렇게 하겠냐고.


 남자로서, 여자로서 이기 이전에, 그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공감 능력이라도 갖추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감히 저런 발상을 하고 그것을 입 밖으로 쏟아내어 당사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단 말인가?


 혐오와 배제는 늘 상호작용한다. 기껏해야 20대 초중반의 어린 학생들이 트랜스젠더 학생을 거리낌 없이 사이버 불링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저변에 '저 사람과 나는 다르다'라는 철저한 '선 긋기'가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비단 학생들 뿐 아니라, 사태를 방관한 숙명여대 측도 마찬가지다. '총학생회는 학생의 입학과 제적에 관해서는 어떤 권한도 없다'며 선긋기를 시전한 총학생회 측은, 비록 트랜스젠더 학생을 향한 직접적인 혐오와 사이버 불링에 직접적으로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묵인이나 다름없는 방관으로 사태에 간접적으로 동조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한 문장을 떠올렸다.



"나만 아니면 돼"


 '알 게 뭐야. 난 트랜스젠더도 아닌데.'라며, '가짜 여자' 혹은 '여자 행세를 하며 여자의 파이를 뺏는' 트랜스젠더를 교묘한 말로 공격하던 학생. '왜 하필 우리 학교야? 남녀공학을 갈 것이지'라는 말로 '우리 학교만 아니면 상관없을 수도 있었음'을 가정하는 학생들. '전례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그들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것을 기피했던 숙명여대 입학처. '우리는 특정 학생의 입학과 제적에 관여할 수 없다'는 다소 비겁한 입장문을 발표했던 숙명여대 학생회의 글은 마치 '우리한테는 이런 거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만 아니면 돼' 식의 선긋기로 보였다.


 해당 트랜스젠더 학생이 인터넷 상의 각종 비난과 논란, 사이버 불링에 힘들어하다 결극 입학 포기를 선언한 지금까지도, 일부 숙명여대생들은 해당 학생을 비난하며 여전히 본인들의 억울함만을 주장하고 있다. 본인의 잘못이나 생각의 짧음, 공감 능력의 부재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 트랜스젠더는 많고 많은 대학 중에 왜 하필 숙명여대에 입학하려고 해서, 그럴 거면 입 닥치고 조용히 다닐 것이지 왜 본인 정체성을 굳이 밝혀서 일을 키워서, 왜 시끄럽게 만들어서 숙명여대의 이름에 먹칠을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너무나도  '1박 2일 세대' 다운 '나만 아니면 돼'적 발상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이렇듯 '나만 아니면 돼'를 신조처럼 가슴에 품고 자라난 1박 2일 세대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사회적 소수자, 즉 루저가 되는 것이다. 각박한 시대에 태어나, '금수저'니 '흙수저'로 타고난 스스로의 사회적 위치를 자조하면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낙오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전 세대는 조금은 돌아가도, 낙오되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재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1박 2일 세대에게 '낙오'되어 루저 진영에 들아가는 것은 그저 '끝'이기 때문이다. (마치 기성세대들이 둥근 지구를 항해했다면, 요즘의 젊은이들은 조금만 방향을 잘못 들면 낭떠러지로 빠져 버리는 평평한 지구를 항해하는 것 같다.)그들이 그토록 스스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살다 보니 어쩌다 한 번 삐끗했을 뿐인데 인생 전체가 다 망해버릴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그들 사이에 폭넓게 조장되어 있을 정도로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부실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 사회가, 기성세대가 부채 의식을 느낄 만한 부분도 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일부의 시기라도 그들 스스로 약자의 위치에 설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한 번 '낙'이면 그대로 '낙'이기에.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올타임 위너'로, 평생 옳은 선택만을 하며 순탄하게 다수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세상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특히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에 강자와 약자의 위계를 짓자면 한도 끝도 없다. 언젠아는 누구나 상대적 약자가 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트랜스젠더 학생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고 축배를 들고 있을 숙명여대생들 또한 그 '숙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그토록 거품 물고 사수하려 했던 '숙명'의 명예를 지켜냈다고 꿋꿋하게 믿고 있을 그 숙명여대생들은 사회에서 배제를 당하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대한민국이 5년 내로 향후 50년 치의 진보를 기록해내지 않는 한, 그들은 사회에 나오자마자 '여대 출신'이라는 프레임으로 인한 어느 정도의 배제를 받을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면 유리천장을 경험할 것이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는,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신들은 이미 스스로 '소수자'의 위치에 서는 일을 종종 겪게 될 것이다.


 트랜스젠더 학생을 사이버 불링으로 쫓아낸 숙명여대의 이름은 적어도 몇십 년 뒤에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다. 적어도 50년, 100년 후쯤엔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트랜스젠더 입학생을 사이버 불링으로 쫓아낸 대학'으로 그 이름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비난했던 일부 숙명여대생들은 , 언젠가 반드시 그 혐오와 배제가 언젠가 스스로에게 숙명처럼 따라붙을 거라는 것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1박 2일>에도 그랬듯, 복불복 미션에 한 번도 걸리지 않은 출연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항상 친절할 것.

  

+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아직도 방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설마 요즘도 예전 같은 포맷과 가치관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쪼록 2020년에도 설마 10년 전과 유사한 방식으로 웃음을 쥐어짜는 게으름을 보이고 있지는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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