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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Jun 14. 2020

LIFE, TO BE CONTINUED.

정말 암 걸릴 뻔한 이야기



  대략 한 달 전 출근길. 카카오톡으로 친구 추가를 해 두었던 브런치로부터 카톡 알림이 도착했다.



 “지금 다연 씨는 암이 되기 직전 단계에요”라는 알림 문구와 함께 도착한 글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수술을 하기로 했다>는 제목의 그 글이 푸시 알림으로 내게 도착하기 바로 전날, 나 또한 의사로부터 그녀와 똑같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winniethedana/70


 그 글을 선정한 브런치 담당자가, 내게 푸시를 보낸 미상의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을 리 없는데.


 내 심경을 고스란히 써둔 것처럼 느껴지는 그 글을 보며, 그리고 그 글이 내게 도달한 타이밍에 놀라워하며.

인생은 어쩌면 이런 소소한 놀라움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 HP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가?



 사실, 그것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과거에 내가 만났던 남자 친구들 중의 누군가가 나에게 바이러스를 옮겼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제일 신빙성이 있는 가설일 것 같다. 다만, 내가 본격적으로 산부인과 국가 검진을 받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는 내가 바이러스 보유자임을 알았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회사에서 진행했던 건강검진 중 옵션으로 추가했던 부인과 정밀검진에서 HPV 바이러스 고위험군과 저위험군이 각각 검출되었으니 산부인과에 방문해 정밀 검진을 받아보라는 결과지를 받았고, 그때가 바로 내 몸 안에 보이지 않게 도사리고 있던 불청객의 존재를 처음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조금은 억울한 마음으로 산부인과에 방문했다. 살면서 특별히 문란한 성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자궁경부암을 유발할 수 있는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이렇게나 많이 감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전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도 맞았는데요?”



 억울해하는 나를 보며 의사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HPV 바이러스는 종류가 엄청 많아요. 백신이 막아주는 것은 그중 자궁경부암을 유발할 확률이 특히 높은 몇 가지에 대해서만 막아주는 거라, 백신이 막아주지 못하는 바이러스도 있어요. 재수 없게 그게 걸린 것이죠.”



 그런 건 전혀 몰랐다. 그저 백신을 맞으면 안전할 줄 알았다. 20대 대학생 시절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크게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해마다 돌아오는 독감 예방접종처럼 그저 주사만 맞으면 다 막아주는 줄 알았던 내가 너무도 나이브했던 것일까.



“그럼 이건 어떻게 치료해요?”



  나의 물음에 의사 선생님은 뭘 그런 것을 물어보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건 치료제가 없어요. HPV 바이러스가 교차 감염이 될 수 있고, 콘돔을 해도 옮을 수 있으니 바이러스가 사라질 때까지 성관계는 자제하시고, 면역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어요.”



 치료제가 없다니! 아무리 이 세상엔 인류가 미처 정복하지 못한 질병이 수도 없이 많다지만, 내가 치료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은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고, 동시에 절망적인 일이기도 했다. 심지어 나에게 느껴지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기에 이 모든 상황은 더욱 믿기지 않게 다가왔다.



“OO 씨는 HPV 중에서도 고위험군을 보유하고 있어서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데, 계속 추적 관찰을 하면서 사라지는지 지켜보고, 사라지지 않는다면 암으로 발전하기 전 단계에서 빨리 발견하고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 날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HPV 바이러스라는 무서운 존재에 대해 병원에서 얻은 정보를 머릿속에서 조각조각 기워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믿겨지지 않았다. 좋든 싫든, 앞으로는 보이지 않게 내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의 인질이 되어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 후로는, 마치 배 속에 보이지 않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듯한 심정이었다. 언제든 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그 시한폭탄은 내게 남은 기한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뭘 어쩌겠는가. 그저 1년에 한 번씩 부지런히 정기검진을 받고 바이러스 검사를 하며 ‘그것들’이 자연 소멸했는지 아닌지를 매번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은 나를 무척 헷갈리게 했다. 어떤 해에는 고위험군 1개가 사라져 있었다. 또 어떤 해에는 사라졌던 고위험군 1개는 돌아오고, 있었던 다른 것은 사라졌다.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그것들은 고도의 잠복술을 유지하며 나를 기습할 최적의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던 것만 같다.


 내 몸에서 HPV가 발견된 이후, 나는 무척 규칙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별도의 치료제가 없는 만큼, 나 스스로 면역력을 키워서 그 바이러스들을 비활성화시키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 2-3회 운동했으며, 밥을 골고루 챙겨 먹었고, 최소 7시간 수면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프로폴리스 및 각종 영양제도 챙겨 먹었다.



 그 모든 노력들이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나의 지난 3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사라지지 않던 HPV고위험군 바이러스들은 끝내 내 자궁경부를 암 직전 단계로 변형시키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내가 진 것이다.







환자의 심리 5단계 :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그랬기에 이번에 자궁경부 이형성증 진단을 받았을 때, 더불어 이어진 조직검사와 대학병원에서의 추가 검진에서 모두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을 때, 나는 무척 억울하고, 답답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릴 때부터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일까. 나는 항상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익숙했다. 라섹 수술을 할 때에도 보호자 없이 혼자 병원에 다녀왔고, 새벽에 갑자기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위경련이 왔을 땐, 아픈 배를 움켜잡고 스스로 운전을 해서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의사가 하지 말라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고, 치료를 위해 알려주는 지침은 남들이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수했다. 천성이 혼자서도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것은 아니었고, 단지 필요에 의해 강인해져야 했다. 나 외에는 나를 보호하고 돌봐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쩌면 나는 ‘자신’이란 게 있었던 것 같다. ‘건강’에 대한 문제에서조차, 내가 열심히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라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 의사 소견을 들었을 때, 가장 깊이 느꼈던 것은 ‘최선을 다 했음에도, 나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패배감이었다.


 인정해야 했다 지난 3년간 HPV 바이러스 박멸을 위해 해 왔던 내 모든 노력들은 헛된 것으로 돌아갔고, 나는 암 직전의 단계에 서 있었다.

어쩜 인생이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처음 전화로 소식을 들었을 땐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받은 전화에 목이 막혀 그 날은 밥을 한 젓가락도 먹지 못하고 다 남겨버렸다. 가만히 있는데 심장이 뛰고 눈물이 났다. 어린 시절에 봤었던 드라마들이 생각났다. 온갖 희귀한 병들이 나오던 90년대 드라마. 내가 그것들을 그저 드라마로만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나와 그 사람들의 상황이 너무도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대의 나는 30대의 내가 암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것을 몰랐을 테니까. ‘암’이라는 무서운 질병과, 나 자신과의 사이에 어떠한 연결성을 짓기 어려웠고, 지을 일도 없을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해 왔기에. 막상 내가 그 당사자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원망스러웠다. 어쨌든 HPV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매개는 성관계이기에, 누구였는지 모를 예전의 남자 친구들을 떠올려보며 후회하고 또 원망했다. HPV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관계를 맺었던 젊은 날의 나를 자책했다. (만약 그 당시에 HPV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 알았더라면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들에게도 백신을 맞히고, 주기적으로 같이 검사를 받으며 철저히 관리했을 것이다.)



 HPV 바이러스는 여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지만 남자에게는 증상이 없기에, 나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누군가는 지금쯤 다른 여자들에게 그 바이러스를 또 무증상 전파하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화가 치밀기도 했다. 내가 이토록 두려움에 떨고 있고, 결국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수 있는 이 상황이 너무 드라마틱하게 느껴져서 잠시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다음에는 화가 났다. 만약 내가 10대 시절에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을 때, 혹은 대학시절에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접종할 때. 누군가 내게 HPV가 무엇인지, 왜 조심해야 하는지, 백신을 맞는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줬더라면, HPV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에 나 스스로 조금이라도 더 조심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왜 내가 어린 시절에 받았던 성교육은 오직 임신과 출산, 피임의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일까?



 요즘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사람들이 이토로 두려워하고, 대비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 바이러스 또한 치료제가 없으며 무증상 감염자 및 전파자가 존재하여 전파력이 높기 때문이다. 질본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운 이유가 가장 친밀한 사람부터 감염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HPV 바이러스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성관계를 할 정도로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전파가 되고(심지어 구강에 HPV가 있는 경우에는 키스로도 감염이 된다!​), 그 결과 여자들은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왜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아무도 공론화하거나 조금 더 이른 단계에서 교육하지 않느냔 말이다.




 20-30대 자궁경부암 환자가 5년 새 50%가 늘었다고 한다. 자궁경부암은 매년 20만 명이 발병하며, 10만 명이 이로 인해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다. 그런 무서운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지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https://m.news.nate.com/view/20200514n34913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적어도 고등학교 단계에서라도 이 무서운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고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인에게는 증상이 없지만, 본인으로 이해 미래의 애인이나 배우자가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은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닌가. 독일에서는 남성들에게도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접종을 권하며, 호주는 남/녀 학생들에게 전부 백신을 접종시킨다고 한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864439.html


 


 일단 나는 ‘이제라도’ 이것에 대해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아직 ‘암’이 된 것은 아니니. 아직 분노와 억울함, 우울함이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3년간이나 내 몸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이 HPV 바이러스가 물러나리라는 법은 없었으니. 타이밍 좋게 도착한 브런치의 글 알림이 나에게 어느 정도 위안을 주기도 했다. 이렇게 어느 정도 상황을 수용하고 나서, 내가 아는 남녀 지인들에게 용기를 내어 내가 겪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증언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질환에 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가 조금 두렵기도 했다. HPV 바이러스 자체가 성관계를 매개로 감염되는 것이다 보니 결혼하지 않은 미혼 여성으로서 이 질환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사람들이 ‘문란하다’는 편견을 가질까 봐 지레 겁이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또 어떤가. 내가 그런 오해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로 인해 한 명의 여성이라도 더 이 무서운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지며, 단 한 명의 남성이라도 더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의외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의외로 알게 모르게 많은 여자들이 나와 같은 증상을 갖고 있었고, 본인은 아니더라도 주변에 한 두 다리 걸쳐 보면 이로 인한 수술을 받은 여자들도 꽤 많이 있었다. 다만,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질환이다 보니 쉬쉬하면서 수술을 받고 묻어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남자 지인들은 나의 상황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위로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자궁경부암 백신을 비싼 돈 들여 맞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남자들은 무증상이고, 이 바이러스 자체가 남성에게 유발하는 질환이 자궁경부암만큼 치명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경각심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름 의식 있다고 생각했던 남자 지인들이 ‘여태까지 아무렇지 않아서, 비용이 너무 비싸서, 나는 깨끗해서, 난 이미 결혼해서, 지금 맞기엔 늦었대서... ‘ 등등 어떻게든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지 않을 핑계를 찾아 나열하는 모습을 보며, HPV 바이러스와 관련된 인식 개선은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방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핑크 리본 캠페인이 있다. 그렇지만 왜 자궁경부암이나 HPV 바이러스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별도의 캠페인은 없는 것일까? 이 질환에 대해 공론화하는 것 자체가, 마치 무증상 전파자인 남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것처럼 느껴져서 불편한 것일까? 그렇지만 잠깐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사랑하는 아내와 여자 친구와 더욱 건강하고 안심할 수 있는 성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여자들에게는 경각심을 갖고 신중하게 관계하기를 당부하고, 남자들에게는 미래의 여자 친구와 부인을 위해 HPV 검사나 백신을 접종하라고 꼭 권유하는 것. 그것이 현재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런 내 나름의 ‘캠페인’의 일환이기도 하고.









하마터면 정말 암 걸릴 뻔했지 뭐야 




 지난주,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수술실 침대에 누워 머리 위로 지나가는 미로 같은 통로의 조명들을 바라보며. 수많은 의사, 간호사들에게 내 신원을 확인시키며. 두꺼운 주삿바늘을 꽂고, 산소마스크를 쓰고, 뇌가 저릿한 느낌으로 마취가 되는 모든 순간들이 아직 내 머리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수술 후, 회복 기간 동안 회사에는 휴직을 신청해 두었다. 이후로는 집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나날들이다. 수술 자체는 잘 되어 큰 문제나 출혈은 없지만,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조금 피곤한 정도의 문제는 있어 크게 무리하지 않고 쉬다, 주말이 되어서야 조금씩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하고 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빨래를 돌렸다. 잔뜩 미뤄놨던 여름옷 빨래를 한꺼번에 돌리느라, 등 뒤에서 두 번째로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부엌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첫 번째 빨래를 널다, 몇 년인가 신었는지도 모를 양말을 널던 중이었다. 떨어진 양말을 주워 자세히 보니, 조금 구멍이 나 있었다. 그 구멍을 보니 괜스레 울컥했다. 신발에 숨겨져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조금씩 닳고 닳아 구멍이 나 버린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닳아서 상해 가는 것, 그게 마치 내 몸 같아서.



 수술로 문제가 되는 부위는 잘라냈지만, 아직 해당 부위를 정밀 검사한 조직검사 소견이 나오지 않았다. 다음 주면 그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나는 또 한 번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바깥에는 바깥 나름대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이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는 하루에도 30여 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집에서 쉬고 있는 중에도 재난문자는 쉬지 않고 날아온다. 회사나 거주지에 확진자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코로나 19는 점점 거리를 좁혀 오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이 바이러스를 정복하기 위한 백신 및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지만, 어느새 반년이 훌쩍 지나버린 시점에서 과연 이 상황이 종식이 될 수 있을까? 싶은 불안한 마음도 든다.



문제는, HPV나 코로나 뿐 아니라 세상에는 정복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많다는 것이다.





 때로는 지구가 전 인류를 대상으로 <출발! 드림팀>을 찍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방 안을 돌아다니는 한 무리의 바퀴벌레들을, '이래도 안 죽어? 이래도? 얍얍!' 하면서 슬리퍼로 내리찍는 느낌이랄까.


 코로나 19로 인해 인류의 활동이 극도로 제한된 지금, 비로소 자정 작용을 회복한 듯 보이는 지구의 모습을 보면, 그 또한 지구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인정해줘야겠지만.



 이 시국에, 하마터면 암에 걸릴 뻔했다.



 서른이 된 이후 줄곧 죽음을 이전보다 가까이 느껴왔지만, 이번 일로 한걸음 더 그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출발! 드림팀> 같은 세상에서 만약 내가 주어진 수명을 다 누릴 수 있다면 이제 반 정도 달려온 것이지 않을까.


 넘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고, 수술을 빌미로 주어진 휴식 시간을 한껏 한량처럼 흘려보내는 이 시기는 어쩌면 앞으로 내 남은 반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뭐, 아니면 또 어떤가,


 인생에 주어지는 절망들 앞에 한껏 호들갑을 떠는 드라마 퀸이 될 필요도, 다 해탈한 듯 구는 허무주의자가 될 필요도 없다.

 어떤 것들은 노력으로도 피할 수 없으며,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숨어 있던 바이러스가 내 몸을 공격해도.

내 몸의 일부를 잘라내었다 해도.


그래도 살아있는 이상,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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