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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pr 24. 2020

어떻게 회사까지 사랑하겠어

그저 날 사랑하는 거지.



이 달 초, 인사 발령이 났다.

 


 처음 그룹웨어에 올라온 승진자 명단을 볼 때,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이 어려운 시기에 회사가 잘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기에 승진자 명단에 기재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 기쁘면서도 조금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최근 사내에서 있었던 일련의 갈등으로 인하여, 좀처럼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떠 다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내 시선이 내 이름 밑에 적혀 있는 이름에 닿았다. 같이 일하는 2년 후배였다.

 그녀 또한 나와 같은 직급으로 발령이 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조심스레 물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런 그들에게 그저 ‘모른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입 안이 어쩐지 무척 썼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그 직전 주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회사에 대한 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던 시기에 접하게 된 인사 발령의 충격은 생각보다 깊고, 오래갔다. 그 주 주말은 유독 날씨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줄곧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누군가는 ‘어차피 나중에 가면 다 위에서 만나게 된다’며 나를 위로했고, 누군가는 ‘다음에는 네가 더 빨리 승진하면 된다’고 나를 격려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외부에서 쌓았던 2년의 경력이 결정적인 순간에 평가를 받지 못한 것 같다는 자괴감을 좀처럼 극복하기 힘들었다. 30대 중반, 사회생활 7년 차에 갑자기 사춘기처럼 번 아웃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던 중, 예전에 내가 썼던 브런치 글 - <나는 왜 일하는가> - 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 글은 최근까지도 종종 유입이 있는 글로, 가끔씩 뒤늦게 글을 접한 사람들이 댓글을 남기기도 하는, 그런 글이었다. 그중, 유독 머릿속에 남는 하나의 댓글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먼 미래를 생각했을 때
나의 가치를 타인에게서 확인한다는 게 한계가 있더라고요.
스스로의 가치는 과연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어쩐지 말문을 턱 막히게 했던 그 질문.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던 그 질문.

‘타인에게 나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기분으로 한없이 가라앉은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던 순간, 내 머릿속에는 마치 풀어야 하지만 미뤄두고 넘어갔던 숙제처럼 그 댓글이 떠올랐다.


 

 슬슬, 저 질문에 대한 답을 나 스스로 찾아봐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정할 때, 항상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 회사에 대한 나 자신의 개인적인 ‘호감도’였던 것 같다. 내가 그 회사의 서비스를 좋아하는지, 그 회사의 대외적인 이미지에 만족하는지. 대외적 이미지가 좋더라도, 회사의 ‘겉과 속’이 다르지는 않은지. (이건 사실, 입사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회사에서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중점적이고 핵심적인 가치가 나의 그것과 일치하는지도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었다. 나와 다른 마음을 품은 상대를 사랑할 순 없으니까.



 나는 분명 연인을 찾듯이 회사를 찾고 있었다. 나의 인생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함께 공유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인생의 동반자를 찾듯이 말이다. 그랬기에 새로운 회사의 사람들을 만나는 면접 자리는 마치 소개팅 같았고, 처음 출근한 뒤 몇 달은 마치 처음 사귀게 된 풋풋한 연인처럼 달콤한 허니문을 즐겼다. 좋든 싫든, 그 시기에는 ‘콩깍지’가 쓰여 있다. 전 회사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 회사에 나의 충심을 바치겠다는 의지가 가슴 깊은 곳에서 마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랑의 균형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회사엔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각종 상황과 변수들이 발생했고, 예외적 상황 및 특수한 일들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가끔은 일어났고, ‘조직은 원래 그런 것’이라거나,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것’이라는 말로 회사 사람들은 ‘회사’라는 존재의 부조리하고 변덕스러운 생리를 납득하기 위해 각자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를 사랑했지만, 회사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사실, 사회생활이란 것이 원래 그토록 불균형한 것이다. 이 세상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흑과 백이 명확하다거나, 인풋과 아웃풋이 명확하다거나. 예측한 대로 오차 없이 일이 흘러가는, 그런 세상이라면 오늘날 전 인류가 갑자기 창궐한 전염병에 각자 격리되어 두려움에 떠는 일도 없을 것 아닌가. 인간은 그저, 스스로의 한 치 앞날을 모르면서 일희일비하는 그저 한없이 안쓰러운 존재일 뿐이니까.

 


 나는 일단 내가 현재 속해 있는 이 조직에서 앞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런데 어쩐지 내 미래가... 그다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순간, 이미 우리의 길은 갈라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항상 내가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순간은 ‘이 회사엔 미래가 없다’ 기보단 ‘이 회사에 있다 보면 내 미래가 없다’고 느꼈을 때였기 때문에.



 어쩌면, 이젠 떠날 때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노트북 안에 잠들어 있었던 경력기술서를 꺼냈다. 4년 치의 경력을 한 줄 한 줄 정리하며, 이 회사에서 보냈던 지난 시간들을 정리했다. 어떤 일을 할 때는 굉장히 뿌듯하고 기쁠 때도 있었고, 수치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더라도 나 스스로 재미있고 신나서 했던 일도 있었다. 하기 싫었지만 꾸역꾸역 해냈던 일도 있었다.


 번 아웃 상태에서 한없이 땅 속으로 꺼질 것 같았을 때, 언제든지 마음에 드는 이직처가 나타나면 낼 수 있도록 시작한 경력기술서였지만, 의외로 그것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점차 차분하게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텍스트와 수치로 남겨진 한 줄 한 줄의 경력 속에서, 나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경력기술서를 한참 들여다보며, 나는 내가 생각했던 만큼 내가 특별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실에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그 친구에 비해서 먼저 승진해야 할 명분이 나이와 경력밖에 없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아닐까?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내가 나이와 경력으로 그 친구보다 먼저 승진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 끝에 나는 마침내 이 사랑의 불균형을 납득했다.(조금의 현타-현자 타임-이 수반되긴 했지만) 회사는 원래 그런 존재이기에, 나 스스로 회사로부터 인정 욕구를 버려야 편해진다는 것을. 비록 경력직으로 입사할 당시의 나는 이 회사에 있어서 조금은 특별한 존재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평범한 존재라는 것을.

그렇게 머리로는 납득했지만.... 마치 헤어졌다 다시 만난 연인처럼.... 마음에 꺼진 사랑에 예전처럼 다시 뜨거운 불이 붙지는 않는다. 사실 이것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이 주관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선택지 사이에서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그저 한없이 같은 자리를 횡보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이 가만히 방치되어 이끼가 낀 돌처럼 느껴졌다. 한 때는, 내게도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굴러다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였다. 최근 있었던 일련의 일들로 인해 회사에 예전과 같은 ‘진심’이 되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내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럴 때는 말이지, 다른 ‘파이프라인’이 필요해.
회사가 아니더라도 돈이나, 인생의 에너지를 수혈받을 수 있는 파이프라인 말이야.”



 회사가 내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물질과, 정신적 성취감을 공급하는 유일한 ‘파이프라인’이라면, 회사와 소속된 개인 사이의 애정의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 영원히 방황할 수밖에 없다고. 이직을 한다 해도, 회사가 유일한 파이프라인인 한 이런 상황은 또 언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외부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회사의 이름과 내 이름이 함께 새겨진 명함이 자랑스럽다가도, 가끔은 회사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내 명함을 받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느새 인생의 중반부에 도달했고, 어쩌면 지금은 내가 또 다른 이름을 가질 필요성에 대해서 자각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여태까지 해 왔던 것과 유사하면서도 다르게,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준비해 보고자 한다. 이직에 대한 가능성도 물론 유지한 채로, 나 자신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회사가 아닌 다른 ‘파이프라인’을 발굴해 보고, 어떻게든 그 성과를 내는 것. 내 삶에 복수의 파이프라인을 연결하여 에너지 공급원을 늘리고, 점차 삶에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올해 가장 큰 목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일단 단기적으로 다음 목표를 세워보았다.






‘인생의 파이프라인 찾기’ 플랜 




1.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 및 경력기술서 오픈. 면접 꾸준히 보러 다니기.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돌아보고, 타인의 가치 평가에 의존하지 않기. 뭐, 그러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인생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니 충분히 그대로도 좋을 것이다.


2. 자체적으로 주 4일 - 4.5일 근무하기. 휴가가 동나서 무급 휴가를 쓰게 된다 하더라도, 매주 1회는 연차나 반차를 이용해서 평일 낮 시간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보낼 예정이다. 내 삶에서 회사가 차지하는 점유율을 점진적으로 낮추고, 내가 준비하는 일들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사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주로 운동하는 데 그 시간을 쓰고 있지만...)


3. 매달 월급 외 10만 원 이상 벌어보기. 사실 이 나이 먹도록 돈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경제적인 생존력이 떨어지는 것이 평소의 콤플렉스였다. 회사의 월급이 월 수입의 100%가 아닌, 다른 파이프라인에서 나의 수입을 얻게 된다면 조금은 더 회사 내 인정 욕구에 초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수단은 상관없다. 요즘 비트코인만큼이나 ‘핫’한 주식 투자여도 좋고,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파는 부업이어도 좋다. 아니면 이탈리아어 번역이어도 상관없다.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로 내게 돈이 공급되는 파이프라인을 발굴하여 경제적 자신감을 획득하고자 한다.


4. 마지막. 이것은 당분간 내게 가장 중요한 일수도 있을 것 같다. 브런치에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모아 독립출판물로 출간을 해 보려고 한다. 사실 '팔리겠나' 싶지만... 그냥 내가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들, 써 왔던 것들을 글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브런치 자체를 시작한 목적이, ‘이 세상 어딘가에 나의 파편을 남기고 싶어서’였으니. 떠도는 글들을 모아 실체화하는 것도 나쁜 생각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칩거하는 시간이 늘어서인지 어딘가에 몰두하고 싶기도 했고.. 뭔가 여태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을 해 보고 싶어진 참이니까.

 사실, 독립출판물이긴 해도 어쨌든 ‘책’을 혼자서 만들고 펴낸다는 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스스로 학습하며 헤쳐나가는 중이라 대체 언제 책을 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부담되지 않는 물량만 한 번 제작해 볼 예정이다. (한 100부 정도....?) 만약에 다 못 팔게 되면 나중에 죽을 때 나랑 같이 순장하면 될 일이고! 그냥 그까짓 거 한 번 해보자 싶다. 혹시 누가 아는가. 잘 될지도....







 어쩌면 이것은, ‘나의 가치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라던 그 댓글에 대한 길고도 장황한 답변일지 모른다. 내가 앞으로 하기로 결심한 이 모든 일들은, 나 스스로 나 자신의 성장을 유도하고 지켜보기 위한 선택이고 도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나의 기분과 스스로에 대한 가치 평가가 타인에 의해 좌우되도록 방치한다면, 멘탈이 쉽게 무너져 내릴 수도 있겠다는 위험 신호를 읽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둘러싼 타인의 인정에 목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다. 즐겁게 일하고 노력하고 성장하는 사람이고 싶다. 너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려고 하다 보면 또 지쳐서 번 아웃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구르는 돌로 돌아가 극복해 나갈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불변의 진리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회사에 대한 나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미묘하게 변한 것 또한 서글프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어찌 보면 인생의 또 다른 과정으로 건너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어떻게 회사까지 사랑하겠어. 그저 월급 받으러 다니는 거지.’ 라는 말은 너무 슬프니까.



‘어떻게 회사까지 사랑하겠어. 그저 날 사랑하는 거지.’



라고, 매일 나 자신을 다독하며. 일상을 차분히 살아나가며, 회사와 다른 영역의 균형을 조절해 나가면서. 나의 삶을 지탱해 줄 인생의 파이프라인을 조금씩 발굴해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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