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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Jun 21. 2020

알람을 켜다

2주 간의 짧은 휴직을 마치며.



 지난번 글 (LIFE, TO BE CONTINUED​)에 언급한 대로 나는 2주 전 월요일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 기간에 맞춰서 2주 간 휴직을 신청해 두었다.


 시나브로 시간은 흘러 오늘은 복직 전야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린 것일까?’하는 소박한 의문을 가져보지만, 어쨌든 이 시점에서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는 것이 지금의 내게 그닥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잠들기엔 뭔가 좀 아쉬워서 나의 휴직 기간에 대한 짧은 소고를 남겨보고자 한다.





 



 휴직 전 마지막으로 출근했던 금요일 저녁, 집에 돌아와서 내가 제일 처음 한 행동은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서 ‘월-금’까지 일괄 세팅되어 있던 알람을 끄는 것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고작 2번 순회될 뿐인 짧은 기간이지만, 알람을 끄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무척 좋아졌던 것 같다. 앞으로 2주 간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매일 고정적인 시간에 일어나서 향할 곳이 없다는 것. 알람 버튼을 OFF 하면서 그러한 압박감도 같이 OFF 하는 느낌이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2주를 연이어 쉬어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평소 나는 결코 긴 휴가를 선호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루틴한 일상을 사랑했고, 아침에 일어나서 향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으로 이끌어 준다고 믿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최대 6일을 붙여서 쓸 수 있는 ‘리프레시 휴가’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이 제도를 이용할 경우 휴가 기간은 주말 포함 최대 10일이 된다) 나는 그 휴가를 굳이 붙여 쓰지 않고 조금씩 쪼개어 나누어 썼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휴가를 이틀, 삼일씩 연달아 쓰는 것조차 드물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내가 사랑했던 루틴 한 일상에 지장을 줘 가면서까지 휴가라는 일탈을 즐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휴가 보다도 휴가에 대해서 주변인에게 통보하고, 휴가에 들어가기 전에 업무를 몰아서 해둬야 하는 상황에 무척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무리해서라도 휴가를 많이 땡겨서 장기 휴가를 이용해 부지런히 해외여행을 다니고, 1년 동안 그 기간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동료들의 말을 들을 때도 어쩐지 믿겨지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내 삶에서 필요했던 게 일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상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내게, 일상성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가야 하는 ‘여행’이나 ‘휴가’라는 일탈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평소 워라밸을 칼같이 지켜준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와 그런 형태의 일시적 단절이나 거리두기가 필요 없다는 속단을 내렸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년을 장기 휴가 없이 연이어 일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 과정에서 내내 속이 곪아 들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



 나는 마치 평일 내내 계속 전원이 들어온 채 있는 회사 컴퓨터 같았다.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저녁으로 부팅과 재부팅을 반복하는 과정이 귀찮았고, 그렇게 컴퓨터를 내내 켜진 상태로 방치하다 금요일 퇴근 시에 끄곤 했다. 화면만 꺼 두어서 남들 눈에는 전원이 꺼져 있는 듯 보이는 그러한 눈속임 상태로 계속해서 전원이 돌아가고 있던 나의 컴퓨터는 그다지 편히 쉬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2주는 휴직이라기엔 조금 짧은 기간이다. 나에게 주어진 남은 유급 휴가를 ‘영끌’하면 굳이 번거롭게 인사 발령을 하고, 월급이 깎일 일 없고, 승진에 불리한 기록이 남지 않는 형태로 쉬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지만. 나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그저 ‘휴직’이라는 것이 하고 싶었다. 분명 수술로 인한 사유이긴 했지만, 최근에 연이어 달려온 회사 생활과 주변 상황에 심각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수술이라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이로 인해 얻게 된 휴직의 기회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 같기도 했다.



 나는 기꺼이 2주의 ‘잠시 멈춤’을 받아들였다. ‘수술’이라는 것 자체와 그 이후의 내 몸 상태가 내게 있어서는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뭔가를 해야지 딱히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은 없었다. 다만, 내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조금 걱정은 되었다. 평소에 집에만 있으면 내가 썩는 것처럼 느껴지고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 산책이라도, 자전거라도, 운동이라도, 혹은 카페에서 글쓰기라도 하던 나였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못하게 되었으니 갑작스레 생긴 2주 간의 공백을 대체 어찌 메워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다음과 같이 소소한 목표들을 세웠다. 그렇지만 지금 쓰면서 돌아보니 결과적으로는 별로 이룬 게 없는 것 같다.






1. 백수 같은 나의 전.투적 투자 생활



 전업 투자자의 삶을 ‘체험’하는 것을 잠시 꿈꿨건만...어찌 보면 이 기간 동안 남몰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전업 투자자의 꿈을 완전히 접은 것이 이 기간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수확일 수 있지 않을까.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분기점이 되는 시간대마다 잠깐씩 들여다봤을 때는 오히려 거래가 잘 됐는데, 계속 호가창을 쳐다보고 있자니 시간만 자꾸 가고 그렇다고 해서 가격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것도 아니더란 말이다. 9시에 들여다보기 시작해서 10시가 되면 나는 금방 지루해졌다. 결과적으로 2주간 트레이딩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직장생활을 하며 주식 투자를 병행했던 시기와 큰 차이가 나진 않았지만, 시간만 많아 괜히 쓸데없는 매수-매도를 반복한 끝에 애꿎은 매매일지 행수만 평소의 2,3배로 늘어나 버려 괜히 정리할 때 스트레스만 오지게 받았다. 그래도 이 기간 동안 미뤄뒀던 주식 관련 책을 2권 정도 읽긴 했는데, 그 중 한 권인 <시간여행TV의 주식투자전략>이라는 책의 아래 부분을 보고 진심어린 만류를 느끼고서 결국 전업투자자의 꿈을 접게 된다.


<시간여행TV의 주식투자 전략>, 177p


2. 평일 오전에 평소에 못 가보던 곳에 가 보기


 쇼핑센터랑 맛집에 각각 가 봤는데... 둘 다 사람이 많더라. 어쩜 이렇게 어딜 가든 사람이 많은 걸까? 심지어 다들 평일에 이런 곳에 오는 것이 무척 익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 중에 평일에 9 to 6로 일하는 사람은 정말 나 밖에 없는 걸까? 왠지 서글퍼졌다.




3.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낮잠



 2주 간 밤낮으로 집을 지키다 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굉장히 볕이 잘 든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일어나는 것을 좋아해서 우리 집엔 암막 커튼이 없었는데, 수술받고 집에서 쉬다 그 사실에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더라. 결국 2주 동안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데에는 번번이 실패했지만, 우리 집에 특정 시간대에 볕이 굉장히 잘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한낮에 창문이 다 닫힌 집이 얼마나 더워질 수 있는지도, 어떤 창문을 열어두어야 집 안에 통풍이 잘 되는지도 알았다.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뜨거운 집을 지켰을 새들에게 미안해졌고, 앞으로는 출퇴근 시에도 바람이라도 통할 수 있도록 일부 창문을 열어두려 한다.




4. 새들과 원 없이 놀아주기



 언제부터 나는 잊고 있었던 걸까? 내가 얘들하고 놀아주는 게 아니라 얘들이 자기 내킬 때 나하고 놀아주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내내 서운할 정도로 사회적 거리를 유지했다. 얘들도 내가 계속 안 나가니까 본인들 할 일을 못해서 조금 답답해하는 것 같아 몇 번 안방으로 자리를 피해주기까지 할 정도였다. 어쨌든 사람으로 치면 각각 100세, 60세 노인일 그들의 심기를 한낱 30대의 미천한 인간일 뿐인 내가 감히 거스를 순 없지 않은가.


 얘네는 아마 그저 주말이 한 10번 쯤? 연달아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 그런 거지) 그저 그뿐이었다. 휴직 전 ‘얘네도 이제 나이 들었는데, 언제 또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겠어’하고며 마냥 감격스러워했던 내가 뻘쭘할 정도였다. 역시 어르신들은 뭔가 다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 무심함.




5. 콘텐츠 소비 및 생산 


 책 > 영화 > 드라마 순으로 많이 보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다 그저 그렇게 봤다. ‘넷플릭스 볼 거 없어 병’은 넷플릭스 만의 고질병인 줄 알았는데, 넷플릭스에서 왓챠로 옮겨 간 지금도 다람쥐 볼따구에 도토리 저장하듯이 ‘오! 다 보고 싶다!!’하고 신나게 플래그만 꽂아두고 결국 끝까지 완주한 건 <와이 우먼 킬>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10분짜리 애니메이션 <해골 서점 직원 혼다 씨> 시리즈는 이 기간에 완주했고, 영화도 뭔가 하나 보기라도 보긴 해야 할 것 같아서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 <127시간>을 봤다. 다시 정주행하고 있는 <오피스>도 시즌 6 중반까지 넘어왔고, <후궁견환전(옹정 황제의 여인)>의 손려에게 반해 몇 달째 천천히 보고 있는 <미월전>도 50화까지는 봤다.


 책은 위에 언급했던 주식투자 책 외에도 만화책을 몇 권 보긴 했다.


 브런치는 쓰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계속 미루다가 <아직 최선을 다 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만화책을 읽었다.


 마흔 줄에 들어선 나이에 만화가로서의 도전을 시작하면서, 별다른 성과는 없으면서도 매일 꾸준히 만화를 그리며 도전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삘 꽂힐 때만’ 글을 쓰는 나의 불성실함에 대해 조금 반성했다.


세상 한량처럼 보이지만 할 땐 하는 남자.


 그렇지만 그 땐 이미 휴직 기간이 이틀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뭐, 그런 거지.




 



 이외 ‘냉장고 파먹기’등의 소소한 꿈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다시 월화수목금의 일주일 알림을 세팅하고 있는 지금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실제로 이 기간 중에 내가 이뤄낸 성취 중 가장 극적인 것은 아이패드의 마리오 카트 리그 랭킹 3위 안에 꾸준히 든 것뿐인 것 같다. (나름 글로벌 기준이다! 일본인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또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앞으로  시간만 있으면 이것도 할 텐데, 저것도 할 텐데’라는 착각으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2주 간의 휴직 기간은 나로 하여금 무엇이든 더 이상 ‘시간이 없어서 못하겠다’는 변명을 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인간은... 이렇게나 아무것도 안 했다! 이보다 더 명백한 증거가 있을까? 내가 뭔가를 안 하는 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인 것이다.


 ‘시간만 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은 내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은, 앞으로도 브런치 글부터 꾸준히 성심성의껏 써 나가도록 하자.


이경미 감독은 본인의 에세이집 <잘돼가? 무엇이든>​에서 ‘쓰레기를 쓰겠어!’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했다. 2주 간 인간쓰레기처럼 살았지만.... 이젠 써 보는 거다. 매일 꾸준히 쓰레기를 쓰는 마음으로 쓰다 보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세상에서 가장 인용하기 좋은 커트 보니것의 소설 속 한 구절처럼, 뭐, 그런 거지.




+



 휴직 기간 중 의외로 유튜브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 새벽까지 K-meme을 섭렵하게 되었다.


요즘은 ‘1일 1 후유증’이 대세라는데, 나 또한 내일 출근하면... ‘이 지독한 (휴직) 후유증’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https://youtu.be/YySS1GOlWbs

자꾸 하염없이 눈물이 나옹~하는 것 같고..하..



그치만 뭐 회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문제에 대해 미리 걱정을 당겨해 봤자 의미가 없으니 일단은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보련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기에 뭔가 변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의 나는 모르니까. 다시 돌아가서 부딪힐 게 어떤 상황이든 난 결국 열심히 할 것이다. 본인 파트가 곡 전체의 80%의 비중을 차지하는 슬픈 노래를 해맑게 웃으며 완창해 내는 김동준이 결국 일류고 위너인 것처럼.



제발 돌아와줘.. 너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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