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간 가져온 나만의 연례행사
연어가 알을 낳을 때 고향으로 가는 본능과 비슷하게 계절이 바뀌면 나는 과천으로 간다. 스물여섯 무렵부터 이십여 년 간 가져온 나만의 연례행사 같은 것이다. 봄이 막 오려던 즈음의 어느 날, 친구와 "동물원이나 갈까" 하며 별생각 없이 갔다가 서울대공원에 반하게 되었던 게 그 시작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계절이 바뀔 때면, 어쩐지 마음이 설레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그런 감정들이 몰려왔다. 도시에서는 버거운 그 감정을, 미술관과 동물원 사이 숲길을 따라 걸으면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곳에 있다 오면 마음이 차분해져 계절의 변화에 나도 몸을 맡길 수 있을 거 같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건물과 주변 공원도 좋아하지만, 동물원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동물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항상 거대하고, 지극히 동물적이다. 인간과 너무나 다르게 생김을, 그 낯섬을, 눈앞에서 마주하면 더욱 생생히 다가왔다. 그들은 아주 야생적으로 생겼음에도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나른해 보이곤 했다. 드넓은 초원 어딘가에 있어야 할 그들이, 이 좁은 우리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미안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곤 했다.
동물원을 둘러보고 나면 동물원을 끼고 산기슭을 따라 나 있는 긴 숲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봄에는 연하디 연한 연둣빛으로 우거지고, 늦가을에는 타오르는 듯 붉은색의 단풍나무로 우거진 숲길은 그림동화 속 한 페이지처럼 회화적이다. 숲길을 다 내려와 동물원을 빠져나오면 큰 호수와 잔디밭이 있다. 이곳에서 김밥에 맥주 한 캔을 하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자연 속에 있는데 완전한 자연은 아닌, 독특한 매력이 그곳에 있다. 그렇게 나는 지치지도 않고, 20여 년 동안 한 해에 한 번씩 계절의 바람이 불면 대공원에 갔다. 90년 대 영화 <바람이 불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대공원 버전이라고나 할까.
결혼 후에는 나의 가족들과 함께 대공원에 오게 되었다. 첫해는 남편과, 두 번째 해는 딸아이와, 그리고 3년 뒤에는 아들도 함께 그렇게 넷이 되어 갔다. 혼자서 대공원 주변을 산책할 때의 고즈넉한 낭만은 사라졌지만 아이들과 함께 거니는 그곳의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
그렇게 가져온 나만의 의식을 근 3년간 하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느라 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몸은 아파도 계절이 변하는 건 느낄 수 있었고 그때마다 대공원을 생각했다.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괜찮아지면 아이들 손을 잡고 다시 그곳을 거닐어봐야지, 소박한 다짐을 하며 힘든 시간을 통과했다.
석 달 전에 항암이 끝나고 정신없이 일상을 보내던 중 드디어 계절의 변화가 감지 됐다. 공기가 서늘해지고 여름의 작렬한 기운이 한풀 꺾임이 느껴졌다. 9월의 두 번째 토요일, 아침 산책을 하면서 선선한 공기를 담뿍 느낀 나는 집에 오자마자 가족들에게 "오늘"이라고 했다. 동물원에 가야 하는 날. 간식과 물을 챙기고 운동화를 신고 모자도 챙겨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대공원에 도착하고 보니 "오늘 같은 날씨가 딱 좋다"라고 한 나의 발표가 무색하게 너무 더웠다. 30도를 넘는 날씨에 온 가족이 땀을 뻘뻘 흘리며 동물원을 돌아다녀야 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큰애는 올 때마다 참으로 진지하게 동물들을 봤는데, 오랜만에 와서인지 더 열심이었다. 소개글을 유심히 읽고, 동물을 한참을 바라본다. 이제 나는 나른하게 누워 있는 동물보다, 그들을 열심히 보고 있는 나의 아이들을 바라본다. 자기네들끼리 무어라 얘기하기도 하고, 나에게로 뛰어와서 새로 알게 된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동물원을 쭉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호랑이를 보자고 갔더니, 우리가 비어있었다. 그리고 꽃다발이 쭉 놓여 있었다. 그 사이 호랑이가 세상을 뜬 모양이다. '잘 가. 그동안 고마왔어' 말라버린 꽃다발 사이에 놓인 카드들을 조용히 읽어보았다. 죽은 호랑이는 동물원에서 태어났었을까, 아니면 어디 저 멀리 야생에서 살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아이들과 호랑이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다음에는 초원에서 뛰어다니는 야생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동물원을 모두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5시, 다리가 아픈 우리는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네 명이 한 리프트에는 탈 수 없어서, 둘째가 아빠와 먼저 타고, 큰 애가 나와 뒤이어 탔다. 올려다보면 하늘이 가까이 있고, 내려다보면 동물원과 그 옆 미술관이 한눈에 보였다. 대공원은 변한 것이 없지만, 그 사이 나는 많은 일을 겪었고, 그 시간만큼 아이는 훌쩍 컸다. 리프트 아래로 늘어진 아이의 다리가 좀 있으면 나보다 길어질 듯싶다. 동물원을 내려다보며 아이는 자신이 알게 된 동물 지식들을 늘어놓는다.
둘째는 연신 뒤를 보며 나와 누나의 모습을 확인한다. 웃긴 표정을 짓기도 하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냐고 큰소리로 묻기도 한다. 아이는 자기의 발밑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보다 등 뒤의 누나 일이 더 궁금하다. 요즘 부쩍 끄는 둘째를 보며 사내가 다 됐다고 했는데 밖에 나와서 보니 그냥 일곱 살짜리 꼬맹이였다. 뒤돌아 보는 아이의 얼굴이 너무 동그래서 텔레토비 동산의 해님 같아 웃음이 나왔다.
아이의 웃는 얼굴 뒤로 가을 하늘이 더욱 푸르름을 느낀다. 머리 위에는 풍성한 구름이, 발 밑에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흘러가고 있다. 순간, 이 장면을 꼭 기억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넓고 시원한 하늘을, 하늘의 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호수를, 나를 웃기려고 못생긴 표정을 짓는 둘째의 얼굴을, 옆에서 조잘대는 큰애의 얼굴을.
공중을 수평이동하며 위와 아래, 앞과 뒤를 모두 눈에 담아본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던 투병생활, '과연 이 생활이 끝날까' 싶던 시간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일상으로 돌아오리라는 희망 하나였다. 암 진단 이후의 블랙홀 같은 시간이 드디어 멈추고, 사는 것 같은 일상을 3개월째 지내고 있다. 다음 주에 예정된 CT촬영과 그 결과를 생각하면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지만 일단은 일상의 행복을 최대한 만끽하고 싶다.
지나가는 이 늦여름이, 다가오는 이 가을이, 매일이 다른 이 맑은 하늘이 참으로 소중하다. 되도록이면 하루하루를 좋은 생각과 행복한 느낌으로 채우고 싶다. 따듯한 순간을 만들고, 충분히 느끼고 기억해 놓으려고 애쓴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열심히 일상을 살면서 또 좋은 순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면 지금의 행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만 같다. 그렇게 가족들 옆에 머무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