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로션을 찹찹 바르는데 침대에 누워 나를 물끄러미 보는 일곱 살 둘째의 시선이 느껴진다.
"엄마는 예전이랑 많이 달라진 거 같아."
"아 그래? 어떻게 달라졌을까?"
엄마를 좋아하고 아껴주는 아들이라 이런 답을 기대했다. "머리가 많이 자랐어. 그래서 이뻐."
항암 할 때 다 빠졌던 머리가 요즘 부쩍 자랐다. 아직 모자를 써야 하지만 모자 밑으로 나오는 머리카락이 제법 자연스러워 흐뭇하다. 가발 썼을 때보다 훨씬 나아 보여서 그 말을 해주려나 싶다. 그런데 아들의 답은 의외였다.
"옛날이 훨씬 나아."
"옛날? 언제 말이야?"
아들은 머리가 길었을 때, 구체적으로는 거실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찍었을 때 모습을 말한다. 아들의 돌 기념으로 찍었던 가족사진, 벌써 6년 전이다. 그때는 머리가 어깨선을 넘었다. 평생 남을 사진이니, 머리도 곱게 드라이하고, 화장도 하고 부드러운 인상으로 보이게 아이보리색의 캐시미어 니트를 입었다. 한껏 꾸민 6년 전의 나와 지금 막 샤워하고 나온 모습을 비교하다니, 좀 억울한 기분이다.
볼멘 목소리로 항변했다.
"엄마가 지금은 머리가 너무 짧아서 그렇지. 머리가 좀 자라면 그때처럼 되지."
아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뉘앙스로 정말이냐고 재차 물었다. 물론 머리가 자란다고 6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세월의 흐름과 노화를 설명하자니 좀 귀찮아서 비슷해질 거라고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11살 딸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때는 엄마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잖아. 머리만 길어진다고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아?"
까만 테가 동그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하는 딸애의 정확한 지적에 흠칫 놀랬다. 너 괜히 안경 쓴 게 아니구나, 제법 똑똑한데? 근데 사회성은 제로!
"그... 그렇지. 하하. 이제 나이가 들어서 똑같지는 않겠지. 엄마가 저때의 얼굴이었으면 좋겠어?"
아이 둘 다 고개를 주억거린다. 한마디로 지금은 너무 늙고 못 생겨졌다는 평이다. 하아... 이 눔의 자식들, 냉정하네.
그렇지 않아도 급노화를 느끼는 요즘이다. 남들은 보톡스다 레이저다 하며 피부관리를 하는데 나는 결혼 때 이마 보톡스를 맞은 이후 지금 마흔일곱이 되기까지 피부에 뭘 해 본 적이 없다. 서른 중반에 마사지숍을 다녀보기는 했는데 피부에 윤기가 도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 주변 여인네들이 기계가 확실하지, 마사지는 그때 뿐이라고 해서 쿠폰 횟수가 끝난 이후로 다시 가지 않았다.
마흔 중반이 되니 정말 기계의 힘이 필요하다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뜻한 사람이 있겠냐마는) 암에 걸리는 바람에 수술과 항암을 거듭하느라 관리 따위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그야말로 살기에 급급했던 세월을 겪고 나니 이제 3년만 있으면 쉰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항암을 하느라 머리가 다 빠지고 보니, 머리발의 위력에 대해 실감한다. 머리발, 화장발, 옷발, 조명발 등등, ‘빨’이란 ‘빨’은 모두 필요한 나로서는 그중에 옷발이 비주얼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몸에서 옷이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좋은 옷을 입으면 비록 다른 부분이 부족하더라도 보완이 된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비주얼에 가장 중요한 건 머리발이다. 생각해 보라. 배우전지현이나 김태희가 골룸 같은 머리였다면 지금과 같은 찬사가 나올 수 있을까. 신세경이 영구머리였다면 지금처럼 여신 같아 보일까.
항암 2회 만에 머리가 빠졌는데, 싹 다 빠지는 것도 아니고 골룸처럼 몇 가닥 남은 희한한 머리가 되었다. 그런 머리로 미용실 가기가 싫어서 밀지 않고 가발이나 비니를 쓴 채 몇 개월을 지냈는데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머리가 스포츠 선수처럼 자라 있었다. 영구머리가 연상되기는 했지만 그마저 기특하다. 드디어 머리가 자라는구나 기쁜 마음으로 머리를 빗어주기 시작했다. 쑥쑥 잘 자라라. 하지만 나이가 있어서인지 머리는 내 마음만큼 빨리 잘 자라주지 않았다. 머리가 빠진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야 축구선수 김병지 비슷한 머리길이가 되었다.
그래도 가발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다. 지난여름, 옷을 다 벗어도 더울 판국에 머리에 가발을 쓰고 그 위에 모자까지 쓰고 다니느라 쌩고생을 했다. 인모로 된 수십 만 원짜리 비싼 가발이었는데도 샴푸를 몇 번 했더니 개 아니 강아지 털처럼 되었다. 드라이기나 고대기로 아무리 펴도 어색하기 그지없어서 가발 위에 모자를 다시 눌러써야만 했다. 어찌나 덥고 갑갑한지 가발을 매일 쓰는 사람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이제 못 쓰고 다니겠다 싶을 즈음 머리가 자랐다. 비록 폭염은 지나갔지만. 가발을 안 쓰는 것만으로도 편하고 시원하다. 하지만 이건 나만 좋을 뿐, 애들은 아직까지 사진 속 엄마와 현실의 엄마의 간극이 너무 크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큰 애가 말했듯 이제 머리가 자란다고 6년 전 사진 속 외모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오히려 지난 2년간 혹독하게 고생하느라 주름이 늘어서 지금 나이 보다 더 들어 보이지만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외모 관리에 끈을 놨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고 싶고, 살도 찌고 싶지 않다. 매일 한 시간 반씩 등산을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근력운동을 하고, 잡곡밥과 나물로 식단을 조절하고 있는데 이것은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관리 차원이기도 하다. 보톡스나 레이저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있겠지만 일시적일 뿐, 진정한 건강의 미는 운동과 식단만 한 게 없다고 믿는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예전만큼 외모에 관심이 크지는 않다. 한때 패셔니스타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꾸미기를 좋아했다. 옷을 좋아해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느라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다. 하지만 “옷을 잘 입는다”,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 얘기를 들으면 그때 기분이 잠시 좋을 뿐이다.
이제는 거울 들여다볼 시간에 등산을 하고, 기도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예쁜 옷을 입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농도의 충만감이 있다. 평화롭고 잔잔한 만족감과 기쁨이 마음속에 겹겹이 쌓인다.
오늘도 창밖을 보며 하늘이 어떤가 살펴본다. 등산 하기 좋은 날이네, 혼잣말을 하며 선크림만 바르고 가볍게 나갈 채비를 한다. 김병지 머리를 하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