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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Oct 26. 2023

남편이 장기출장을 떠났습니다


우리 남편은요, (영화 엽기적인 그녀 BGM 부탁합니다)

말이 없고 표정도 없어서 언뜻 건조하고 냉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눈물도 많고 쉽게 상처받는, 마음 약한 사람이에요. 저보다 눈물이 많아서 살면서 흠칫 놀란 적이 많네요.


그리고 얼굴이… 좀… 생겼어요.

여수출신인 그는 본인이 여수 장동건이었다며,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수준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생각도 관심도 없어요. 연애하면 남자들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한테 할 법한 칭송을 애인한테 쏟아붓지 않나요? 남편은 본인의 얼굴 부심으로 꽉 차서 저한테 외모 칭찬을 한 적이 단 한. 번. 도 없어요. 연애부터 결혼기간까지 합치면 도합 15년 동안 남편한테 예쁘다는 말 한마디도 못 듣고 살기, 흔하지는 않죠?


그의 얼굴 부심에 어이가 없을 때가 많지만, 솔직히 얼굴 보고 반해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음을 급 고백합니다. 장동건 보다는 90년대 중화권에서 연기했던 금성무에 가까운 거 같은데, 문제는 같이 산 10년의 시간과 함께 이 비주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중력의 힘에 일찍 패한 그는 얼굴이 많~~ 이 길어졌어요. 지금은 가수 이문세가 언뜻언뜻 보이네요. 사.. 기.. 결혼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가끔 생각하지만, 뭐 어쩔 수 없죠. 이문세 가수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남편은, 먹을 거에 참 진심입니다.

한번 무얼 먹겠다고 생각하면 기어코 먹고 맙니다. 먹고 싶었던 음식을 주말에 먹는 낙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에요. 평일에는 먹는 것과 관련된 예능을 보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요. 저도 맛있는 걸 좋아하지만 남편만큼은 아니어서 그의 이런 먹사랑이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아요. 하지만 그 진심을 가벼이 여겼다가 큰코다친 적이 많아서 지금은 조용히 동참해 줍니다.


문득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네요.

남편이 맹장 수술을 하고 퇴원하는 날이었어요. 입원기간 동안 양념게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던 그는 퇴원하자마자 바로 게장 맛집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매운 걸, 퇴원하고 바로 먹는 게 좋지 않을 거라고 만류했지만 소용없었지요. 아직 불편한 배를 부여잡고 한 시간을 운전해 게장 맛집을 찾아갔습니다.


반지르르하고 시뻘건 양념게장을 앞에 두고 밥 한 술 뜨려는데, “악”소리가 나더라고요. 뭐지 하고 남편을 보니 남편 얼굴에 게장의 양념이 범벅 되어 있었어요. 급하게 게다리를 몸통에서 떼어내느라 양념이 흩날려서 얼굴에 튄 거예요. 그것도 칼 맞은 듯 사선으로 길게 쭉~. 눈에 양념이 들어갔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남편을 보며 ’ 차아암~ 쯧쯧‘ 혀를 차지 않을 수가 없었네요.


그리고 또 그가 진심인 것이 있어요.

가정이에요. 저와 아이들,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면 만사를 제칩니다. 남편의 무조건적인 1순위예요.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장난치고 웃으며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사람이죠. 가끔 그에게 화가 나고 서운하다가도 그의 가족에 대한 깊은 마음을 알기에 제 앙금이 오래가지는 않게 되네요.


먹보 울보인 그가 오늘 아침에 이라크로 출장을 떠났어요. 2년 정도 걸릴 거라고 합니다. 너무 가기 싫은 마음을 누르고 오로지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 결정이었어요(돈이 뭔지…).


아직 병에서 자유롭지 않은 저와 어린애들만 두고 떠나려니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출장이 결정되고 나서 술 한잔만 하면 눈물을 글썽이며 저와 아이들을 보고는 했네요.


더운 걸 조금도 못 참는 남편이 그 더운 나라에서 어찌 지낼지 걱정이 됩니다. ‘이라크’라는 나라가 특수한 상황이니만큼 바깥 외출도 못하고 회사 내 식당밥과 편의점 간식으로 지내야 한다는데요, 먹보가 어찌 견딜지 그것 또한 염려되고요. 그리고, 울보인 그가 아이들 생각에 또 얼마나 눈물을 글썽 거릴지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먹먹해지네요.


 제가 암투병을 하는 2년 동안 저의 빈자리도 채워야 했던 남편,

본인의 연약한 성정을 이기고 든든한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느라 수고가 많았던 남편,

커다란 케리어를 앞에 두고 아이들과 인사하면서 연신 눈물을 훔치던 남편.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다녀오길 기도하게 됩니다.



- 남편이 출근 전 식탁에 남겼던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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