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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Dec 01. 2023

출장 간 남편의 행복하지 않다는 톡

<남편이 장기출장을 떠났습니다>의 2편이라고나 할까요.

https://brunch.co.kr/@seul0830/144



남편이 눈물을 훔치며 이라크로  장기출장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한 달 밖에 안 됐나 싶은 마음이 큰걸 보니 남편 없이도 씩씩하게 지냈다고 자평하면서도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었나 봅니다. 남편이 출장 가고 나니 그의 식사메뉴 고민에서 해방된 것은 좋았습니다. 그는 나물 같은 반찬이 열 개가 넘어도 찌개류, 고기류 같은 메인 반찬이 없으면 먹을 게 없다는 사람이거든요. 그렇다고 메인 반찬에 다른 반찬 가짓수를 줄이면, 젓가락 갈 데가 많지 않다고 투덜대서 저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었죠.


암환자인 저는 음식을 싱겁게 먹어야 하는데 전라도 사람인 그는 맵고 짠 양념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해서 반찬을 따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리고 애들이 아직 어려서 애들용 반찬도 따로 만들어야 하니, 이 반찬 저 반찬 만드느라 고전하다가 남편용 반찬 고민에서 해방되어 솔직히 편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없는 주말은 역시 힘에 부치네요. 요즘 아이들은 왜 이렇게 한 시도 심심한 걸 못 참는 걸까요. 11살인 딸애는 알아서 책도 보고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잘 보내지만 7살인 아들은 틈만 나면 심심하다며 짜증을 부리곤 합니다. 저녁 쯤 되면 딸애도 심심하다고 무언가를 하고 싶어합니다. 제가 장롱면허인지라 운전을 못해서 어디 외출 나가기도 싶지 않고, 버스와 지하철 타며 움직이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지기도 해서 대부분은 주말을 집에서 보내는데요,  삼시세끼 돌밥에(돌아서면 밥) 온종일 애들 시중을 들다 보면, 남편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편하게 나들이하고 오던 때가 절로 생각이 나네요.


여하튼 그는 이라크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울보인 그는 출장 가기 전, 애들과 헤어질 생각에 근 2달 내내 눈물바람을 했거든요. 저러다 먼 타국에서 우울증에라도 걸리는 거 아닐까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영상통화할 때 보면 생각보다 얼굴이 밝더라고요. 독박육아로 고군분투하는 제 얼굴은 나날이 썩어 들어가는 거 같은데, 남편이라도 밝아서 참 다행이에요. 얼굴도 뭔가 뽀얘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휴대폰 카메라가 오래돼서 그런지, 요즘 제 눈이 부쩍 어두워졌는데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을 때보다 그 더운 나라에 가 있는 지금이 더 하얘진 거 같아요.


카메라 뒤로 보이는 숙소도, 사무실도 시설이 나아 보여서 그 또한 다행이고요. 사무실에만 100여 명의 직원들이 함께 근무한다고 하니,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을 거 같아 그것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걱정이 많았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요, 남편은 10여 년 전에는 베트남 현장에 2년 정도 근무한 적이 있어요. 그때 현장 소장이 직원들에게는 빌런 같은 존재였나 봅니다.


수시로 야간근무 동원에, 휴일도 없이 근무하게 했고, 온갖 욕설과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견디다 못한 직원들이 줄줄이 본사 복귀신청을 하거나 신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예 퇴사를 할 정도였답니다. 본사에서 현장으로 감사팀이 나와 소장에 대한 감사가 들어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직원들을 쉬지 못하게 하면서까지 계속 일을 추진해온 덕에 현장 성과는 좋았습니다. 소장은 현장이 마무리될 때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고 진급도 하게 되었지만 그의 밑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남편은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에 복귀 후 퇴근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누워 있기만 했었죠. 남편이 그러고 있으니 저 또한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저로서는 힘에 겨운 독박육아가 드디어 끝나나 보다 했는데, 웬걸 독박육아는 그대로이고 우울증 남편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으니까요. 남편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는 거의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현장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까 봐 내심 걱정이 되었던 겁니다.


이번 현장에서는 그런 빌런은 없는지 물어보았더니 자기가 이제 그런 일에 휘둘릴 짬밥은 아니라고 하네요. 듣자마자 콧방귀가 나왔습니다. 제가 보기엔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여린 성정의 울보인 남편입니다. 짬밥과 상관없이 그런 사람과 일하게 되면 영혼까지 흔들릴 거라 단언합니다.


여하튼 빌런도 없고,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어 한시름 놓은 요즘이었어요. 그런데 며칠 전 카톡~하고 남편에게서 톡이 왔습니다. 톡을 열어본 순간 ‘행복하지 않다’는 문장이 바로 보여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 또 무슨 일이 있나 싶었지요, 그러다 앞 문장을 읽고는 약간 코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유인 즉, 먹는데서 오는 기쁨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네요. 먹을 거라고는 식당에서 주는 급식밥과 편의점에서 파는 얄궂은 간식들이 다인 환경이라고 합니다. 이라크라는 나라 특성상 외출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나가서 뭘 사 올 수도 없고요. 전 편에 얘기했듯이 남편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힘을 내고, 스트레스를 풀고, 세상 살 의지를 다지는, 먹을 것에 가장 진심인 먹보입니다.


다독이는 저의 이모티콘에 먹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 놓은 내용이 바로 올라왔습니다. 회, 간장게장, 대방어, 굴보쌈.  많지는 않다는 저의 말에 아직 작성 중이라는 진지한 답변이 돌아옵니다. 보고서인 줄.


직원들이 한국으로 휴가를 나오게 되면 복귀할 때 이삿짐 2박스에 먹을 거로 꽉꽉 채워서 간다고 합니다. 아마 그 또한 그렇게 하겠지요. 2박스뿐이겠습니까. 수하물 최대무게까지 채울 수 있는 한 채울 것입니다.  

남편은 저녁 6시에 한 번, 3시간 뒤인 9시에 또 한번, 매일 두 번씩 영상통화를 해 오는데, 때로는 애들이 통화하기 귀찮아할 때도 있어요. 티브이 보느라고 정신이 팔려 있거나 놀잇감에 집중해 있을 때요. 남편은 크리스마스 때 갖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지, 1월에 휴가 가면 뭐 하고 놀지, 시큰둥한 아이들을 잡고 연신 물어봅니다. 아마 통화가 끝나면 먹보 리스트를 검토하며 또 추가할 게 없을까 궁리하겠지요. 일하다가도 먹고 싶은 게 퍼뜩 생각나면 부리나케 리스트에 올릴 그입니다.


모쪼록 울보인 그가 눈물바람으로 있지 않아서 다행인 상황이 계속되었으면 좋겠고요. 휴가 나오면 또 당면하게 될 그의 먹부림에, 먹보 부인으로서 열심히 동참해 줄 결심을 지금부터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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