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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에게 20년 만에 안부를 물었다

by 뮤뮤

“악!” 얼굴을 감싸고 K가 주저앉았다. 나와 정신없이 얘기하며 걷다가 앞에 있는 전봇대를 보지 못하고 머리를 그대로 박은 것이다. 놀란 나는 웅크린 K 옆에서 괜찮냐고 연신 물었다. “괜찮아” 하면서 고개를 든 그녀, 그런데 코에서 한줄기 피가 주르륵 흐르는 게 아닌가. “너 코피…” K가 얼른 손으로 코를 훔쳤다. 그 바람에 코피가 옆으로 쭉 번지고 말았는데 마치 바보 분장의 콧물 자국 같았다. 순간 나는 '큭'하고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비뚤어진 금테안경에 옆으로 쭉 퍼진 코피자국. 요새 말로 '만찢녀'라고 해야 할까.


순정만화가 아니라 코믹만화의 주인공 같은 비주얼. 웃음을 참는데 실패한 내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하자 그 애는 안경을 고쳐 올리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나이, 전봇대 옆에서 그렇게 한참을 웃었던 열여섯의 우리가 기억이 난다.


엄청난 곱슬머리에 큰 금테안경을 끼고, 볼에 여드름이 올라온 단발머리 여학생이었던 K. 나와 키가 비슷해 교실에서 앞뒤로 앉게 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열여섯에게 친구란 얼마나 절대적인 존재인가. 등굣길에 만나 하교할 때까지 우리는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 점심시간은 물론, 같이 편의점에 가고 같이 분식점에 가고, 심지어 화장실도 같이 갔다. 집 앞에서도 금방 헤어지지 못하고 한참을 얘기하곤 했다.


아마 우리는 열여섯의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공유했으리라. 좋아하는 수학 선생님, 짝사랑하는 옆반 남학생, 얄미워 죽겠는 어떤 친구, 늘 제자리인 성적표와 미래의 꿈 등 우리가 할 이야기는 우주만큼 끝이 없었다.




학교에서 매일 만나도 우리는 갈증을 느꼈다. 열여섯에겐 미지의 영역이 너무 넓어서 도무지 잠차코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교환일기를 주고받으며 미처 말이 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섬세한 감수성을 담아 글로 남겨 보고는 했다. 글 안에서 우리는 꿈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걱정하고, 금세 허튼소리를 하고, 다음 일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는 전혀 모른 채, 꿈을 꾸고 노력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줄 알았던 시절이었다.


말랑말랑한 핑크빛 꿈과 거창한 계획들을 속삭이며 열여섯을 지내고 각각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늦은 하교 시간과 입시준비로 만날 시간이 부족해졌지만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서로의 집으로 편지를 보내거나 시간을 쪼개 틈틈이 만나곤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가 처한 환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하루하루 같은 날인 거 같아도 오랜만에 만나면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간극이 확 커지게 된 건 스무 살이 넘어서부터였다. 둘 다 대학생이 되었는데 K는 전공이 맞지 않다며 학교에 잘 나가지 않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시 수능 시험을 볼지 다른 대학교로 편입을 할지 고민했다. 반면 나는 학과와 동아리 활동, 동기들에 빠져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서로의 생활이 다르다 보니 대화의 공통주제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고 예전과는 달리 대화가 뚝 끊기는 일이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K가 집에 전화를 걸어와 다음날 우리 학교에 놀러 오겠다고 했다. 5시에 교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갑자기 학과장님이 임원들을 소집시켰다. 당시 우리 과는 창설 30주년 기념으로 졸업생들을 초청하는 큰 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나는 편집일을 맡아 기념책자 진행과 신문발행 등을 진행하고 있어 나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 5시가 되어가는데, 회의는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나라의 중요안건을 결정하는 국제회의도 아니고, "저 약속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하면 될 일이었지만, 순진하고 어렸던 나는 심각한 분위기에 눌려 아무 말 못 하고 시계만 애타게 보고 있었다. 휴대폰은 물론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다.


결국 삼십 분 늦게 약속 장소로 뛰어나갔지만 K는 이미 떠난 뒤였다. 나중에 여러 번 사과했지만 그녀의 화는 꽤 오래갔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K를 만나기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아니, 그 일이 있기 훨씬 전부터 나는 그 애와 만나는 시간이 불편해졌다. 아무렇지 않았던 그녀의 개성, 아주 큰 목소리와 저 멀리까지 들리는 큰 소리의 웃음이 싫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강한 곱슬머리도, 너무 진한 화장도, 입을 크게 벌려 밥 먹는 모습도... 마음이 싸늘히 식어버린 오래된 연인처럼 못마땅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는 했다.




그즈음 K에게는 안 좋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다. 지인의 아이를 봐주다가 손가락이 부러지고, 그 손가락 수술이 잘못되고, 짝사랑하던 남자가 갑자기 어떤 여자랑 결혼하는 일이 있었다. 새로 입시를 준비하는 것도, 편입도 잘 되지 않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집안 사정도 안 좋아졌다.

그녀는 속상한 마음에 자주 술을 마시고 밤늦게 나에게 전화를 하고, 만나면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하소연하고는 했다.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했는데 그 여자가 꼬리 치니까 넘어간 거야." 이 말을 반년 넘게 듣고 나자 나는 K가 지겹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은 밤늦게 걸려 오는 전화를 받지 않기도 했다. 나도 나름의 결핍과 고민에 머리가 아팠는데 친구의 삶의 무게까지, 버겁고 무겁기만 했다. 그래서, 어느 날 K가 아버지의 결정으로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는 슬픔보다는 안도감에 젖었다. 더 이상 그녀의 한탄을 듣지 않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가 너무나 차갑고,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솔직히 그랬다.


K는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꿈꿨다. 이미 결혼한 짝사랑도, 풀리지 않는 학교문제도 강제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차라리 잘 됐다고 말했다. K 스스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그녀가 한국에서 일이 자꾸 꼬이니 미국에서는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꼭 놀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K는 오랜만에 활짝 웃으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바로 연락할 거라는 K에게서 한참 동안 소식이 없었다. 이메일로 여러 번 소식을 물었지만 확인을 하지 않았다.




"나야. 잘 들려?" K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일 년이나 지난 후였다. 전화를 건 곳이 시끄러운 장소였는지,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전해 들은 소식은 미국에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이었다. "뭐? 갑자기?"


나도 몇 번 뵈었던 어머니는 일찍 결혼하셔서 아주 젊고 건강하신 분이었다. 내가 놀러갈 때마다 상냥한 미소로 맞아주셨던 분.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건지 연거푸 물었으나 내 말이 잘 들리지 않는 건지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 그녀는 횡설수설 다른 말을 했다. 발음이 많이 새는 게 아무래도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안 들리는 상황 속에 정리하자면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가족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 같았는데 아르바이트 같은 일인 거 같았고 또 무슨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려는 찰나 전화가 뚝 끊겼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또 연락이 오겠지' 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종종 생각날 때마다 메일을 보냈으나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아 이제 마흔여덟이 되었다. 꽤 성실하게 살았지만 열여섯 K와 꿈꾸던 인생에서 어째 한참 먼 삶을 살고 있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한국에 들어온 건 아닐까. 무수히 많은 일을 겪은 나의 삶처럼 그녀 또한 그런 삶을 살았을까. 나를 기억하고는 있겠지. 가끔씩 K의 모르는 인생을 상상해 본다.




살다 보니 운명같이 여겨졌던 관계도 여러 이유로 멀어지게 되는 일이 많았다. 쏘울 메이트라고 자신했던 친구들도 지금은 추억 속의 인물로 희미해졌다. 우정뿐이겠는가.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던 뜨거운 사랑도 식어버린 커피와 같이 되던 순간을 수없이 목격했다. 이 세상에는 사랑도 우정도 영원하지 않다 한다.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 한다. 평생 친구가 될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빨리 멀어졌던 K와 나처럼.


하지만 K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릿하다. 그 애의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들어주면 되는 거였는데 그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청승이었는데. 연약한 엄살이었는데.


그녀를 이해하려고 조금 애쓰다가 나가떨어져 버렸다. K의 단점에 몰두하느라 그녀의 너그러움과 따뜻함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에 관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넉넉히 내어줄 사람이었는데.


살다 보니 그렇게 해서는 그 무엇도 지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사랑과 우정은 소중할수록 '감수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걸 안 후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무엇에서 뒷걸음치는 일을 줄이게 되었다.




1월 1일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다. 새해와 함께 자신의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된다고 자랑처럼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메일을 열어 그녀의 메일 주소를 찾았다. 그녀의 이니셜인 메일 주소를 클릭해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여 글을 썼다. 나의 근황을 전하고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답이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K에게도 나에게도 긴 세월이 남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유보된 만남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려면 제법 긴 세월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게 만나게 되는 날, 열여섯 소녀가 희미하게 남은 얼굴로 우리는 서로의 모르는 인생에 대해 얘기하겠지. 서로의 불행과 행복에 대해 한참을 말하고 듣게 되겠지. 그때까지 그녀가 안온한 공간에서 크게 웃으며 지냈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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