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터의 짝사랑
인생의 전반전을 막 끝낸 신생 쉰으로서 가장 먼저 부딪힌 장벽은 노안도, 줄어든 근육량도 아니었다. 그것은 소위 요즘 애들의 지독하게 차갑고 눈부신 거리두기였다.
필라테스 센터 입구에서였다. 낯익은 회원이 들어오길래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돌아온 건 대답이 아닌, 나를 유령 취급하며 고개를 획 돌려버리는 냉정한 옆모습이었다. 난생처음 면전에서 당해본, 실시간 읽씹.
이어폰도 안 끼고 휴대폰도 안 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정확하게 내 인사만 골라 외면했다.
허공으로 날아간 나의 인사가 갈 곳을 잃고 발등 위로 툭 떨어진 기분이었다. 시선을 거두었으나 귀 끝까지 달궈진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내 살가움이 한순간에 민망한 오지랖으로 전락해 버린 그 순간을 곱씹으며, 나는 내가 그들의 세계에서 더 이상 유효한 피사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시당했다는 무안보다, 내가 그들의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존재가 되었다는 무색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날 저녁 동생에게 읽씹 사건을 말하자 동생은 "요즘은 함부로 인사하면 안 된다"라며 옆집 이야기를 꺼냈다. 현관문에 붙어 있던, ‘인기척이 들리면 잠시 나오지 말아 주세요’라는 옆집의 정중한 경고장. 처음엔 눈을 의심했지만, 이내 수긍했다고 했다. 이웃과 마주치는 일 자체가 요즘 사람들에겐 피로한 침범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동생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일상이기도 했다. 복도로 나서기 위해 현관문을 열 때면, 옆집 문이 황급히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집을 나서려던 이웃이 우리 집 도어록 해제 소리를 듣고는 마주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뒷걸음질을 친 것이다.
온라인에선 지구 반대편과 연결된다는데, 정작 10cm 두께의 현관문 앞에는 거대한 절벽이 버티고 있다.
반경 1미터 이내에는 그 누구의 진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자기 방어. 이 낯선 행성의 희박한 공기에 숨이 가쁘고 자꾸만 어리둥절해진다. 하지만 서운해하기엔 나 역시 할 말이 없다. 나의 청춘 역시 쉰 살들의 안부 따위엔 무심했으니까. 선배들의 다정함이 "오늘 저녁에 뭐하니"라는 취조로 변질될까 봐 뒷걸음질 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의 내가 '간섭'으로부터 도망쳤다면, 지금의 그들은 '침해'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단순히 세대 차이라는 말로 정리하기엔, 우리가 관계를 맺는 공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직감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상의 규범과 상식은 이미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한때 낭만이라 불렸던 '창문 밖의 하염없는 기다림'은 이제 스토킹이라는 범죄 목록의 상단에 기록된다.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었던 시절은 지나간 듯하다. 수첩에 펜을 꾹꾹 눌러 적었다. '과잉된 다정함으로 타인의 영토를 침범하지 말 것.' 시대의 축이 이동했음을 인정하자, 뾰족하게 일어섰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인정은 패배가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선 영토의 경계를 다시 긋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눈길이 머문다. 그들이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상처받는지, 밀도 높은 젊음 뒤에 숨겨진 불안은 또 어떤 형상인지 알고 싶어진다. 이성과 별개로 내 안의 어떤 감각은 자꾸만 그들의 빛을 향해 고개를 든다.
체력을 회복한 후 처음 필라테스 센터에 들어섰을 때,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젊은 생동감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기구 위에서 온몸을 늘리던 그들의 피부 위로 정오의 햇살 같은 윤기가 흘렀다. 그것은 마모된 내 몸이 찬란한 생명력을 향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잊고 있던 먼 기억 속에서 문득 찾아낸 내 안의 푸른 봄이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아득한 동경이라고나 할까.
이제 무작정 인사를 건네는 대신, 그들이 그어놓은 선 밖에서 서성거리기로 한다. 앞집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려주기. 다가갈 수 없지만 멀어지고 싶지도 않은 마음. 언젠가 그들의 철벽에 아주 작은 틈 하나가 생길 때, 내 인사가 발등으로 떨어지지 않고 그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1미터 밖에서 기꺼이, 미련하게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