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동안의 시대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얼굴의 시계도 덩달아 늦게 흐르는 듯하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면 젊은 시절 관리에 성실했는지 게을렀는지가 성적표처럼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앞서 쉰의 고개를 넘은 선배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진짜 훅 가는 건 쉰 이후이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관리에 꽤 진심인 편이다. 나를 꾸미는 행위를 본능적으로 좋아했다. 결혼 전은 물론, 갓난아기를 키우며 쪽잠을 잘 때도 나는 얼굴에 팩을 붙였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 골룸 같은 몰골로 항암 치료를 견딜 때조차 그랬다. 병원 진료가 있는 날엔 마치 출근하는 사람처럼 차려입었다. 보다 못한 동생이 “누나, 의사 앞에서는 좀 불쌍하게 보여야 상담도 길게 해 줄 거 아니야”라며 핀잔을 줄 정도였다.
누군가는 중한 병 앞에서 외모 타령이냐며 철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말기 암 환자들도 잡티를 없애려 레이저를 맞고, 깊어진 미간 주름을 펴려 보톡스를 맞는다. 암 환자 커뮤니티에는 “이번 항암 너무 힘들어서 미간 주름이 깊어졌다. 보톡스부터 맞으러 가야겠다.”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병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지만, 얼굴만큼은 내 마음대로 가꿀 수 있다는 사실에서라도 아주 작은 통제감을 찾고 싶은 마음. 그렇게라도 평범한 일상의 무리에 섞여 있고 싶다는 간절함.
팩 한 장으로 근근이 버티다 마침내 ‘쉰의 행성’에 착륙했다. 그런데 이곳의 중력은 이전과 달랐다. 더는 홈케어 따위로 버틸 수준이 아니었다. 가장 보기 싫은 건 입꼬리 옆에 불거진 심부볼이었다. 딱히 화가 난 것도 아닌데 얼굴 하단에 묵직하게 얹힌 그 살덩어리들은 나를 고집스럽고 심술궂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턱선은 또 어떤가. 얼굴과 목의 경계를 나누던 예리한 선은 간데없고, 축 늘어진 젖은 빨래처럼 맥없이 처져 있었다. 매일 거울 속의 나를 째려보다 결심했다. 이제는 정말 기계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피부과 호구가 되지 않으려 유튜브로 시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세상에, 시술의 종류가 이토록 방대할 줄이야. 예전에는 목을 보면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요즘은 목주름은 물론 자갈턱, 애교살, 심지어 표정 근육의 움직임까지 정교하게 조각하는 시대였다. 뼈를 깎지 않고도 '어딘지 모르게 예뻐진' 얼굴들. 분명 1년 전과 같은 얼굴인데 동시에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기묘한 기술의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그 세계 속에서 팽팽하기만 한 어린 친구들이 얼굴이 처진 것 같다며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안 하면 나중에 더 늦어요.” "적금 든다고 생각하고 차곡차곡 관리해야 해요."
대체 어디가 처졌다는 걸까.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젓다가 나의 삼십 대 초반이 생각났다. 그때의 나도 그녀들과 똑같은 고민으로 피부과를 기웃거렸다. 결국 쉰이든 서른이든, 거울 앞에서 느끼는 초조함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울 속의 변화가 이토록 거슬린 건, 단순히 늙어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얼굴은 지난 몇 년간 내가 통과해 온 시간의 밀도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텨야 했던 날들, 포기할 수 없었던 역할들,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체력의 한계까지. 관리란 이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일이 아니라, 이제는 조금 다른 표정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신호를 나 자신에게 보내는 일에 가까웠다. 그 사소한 위안이라도 얻고 싶어 나는 결국 피부과로 향했다. 깐 달걀처럼 매끈한 피부를 가진 상담 실장은 내 얼굴을 훑더니 낡은 집 견적 내듯 시술 리스트를 읊었다. 내가 가성비 레이저를 꺼내자, 그녀는 이미 탄력을 많이 잃어 울쎄라 정도는 받아야 기별이 갈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묘한 압박감에 홀린 듯 220만 원을 결제하고 병원을 나왔다.
집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0만 원이라니.... 아이들학원비가 머릿속을 스쳤다. 한 시간 뒤, 나는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체면보다 생존이 우선이었다. 원래 하려던 20만 원짜리 가성비 레이저로 하향 조정을 하고 나서야 숨이 놓였다. 차가운 마취 크림을 바르고 누워 있으니, 의사가 기계로 얼굴을 문질렀다. 뼈를 얼리는 듯한 통증에 눈물이 찔끔 났다. 예뻐지겠다고 이 나이에 무슨 고생인가 싶을 즈음 시술은 끝났고 의사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병원문을 나서게 됐다.
다음 날 아침, 별 기대 없이 거울을 보았다. 턱선은 생각보다 잘 붙어 있었고, 얼굴은 조금 덜 피곤해 보였다.
그뿐이었다. 인생이 달라진 것도, 누군가가 알아본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거울 앞에서 오래 서 있지 않게 되었고, 얼굴에 쓰던 에너지는 다시 일상의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쉰의 행성을 살아간다는 건,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작은 선택을 하나씩 쌓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날 내가 한 선택은 아주 사소했지만 분명히 조금 더 편안한 오늘로 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