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와 싸우느라 삶의 지도를 분실한 채 쉰의 행성에 도착했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조급함이었다.
반백 년을 살았는데도, 나라는 사람의 가능치가 어디까지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투병으로 보낸 5년을 단숨에 복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매일 밤 나를 흔들었다. 남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는데, 나는 출발선조차 찾지 못한 채 텅 빈 트랙 위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았다.
TV와 스마트폰 너머로는 유능한 이들의 성공담이 쉼 없이 쏟아졌다. 그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복사하면,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해도 얼추 흉내라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이 맞는지도 모른 채, 나는 대중의 열광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알고리즘은 그런 나의 결핍을 정확히 포착했다. 한 번씩 내비친 욕망의 흔적을 따라 ‘트렌드 2026’, ‘부의 추월차선’ 같은 단어들이 금세 화면을 점령했다.
이 영상도, 저 영상도 꼭 봐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노트북 앞에 앉아 공부하듯 메모를 해나갔다. 초반에는 착실하게 성장하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끝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맨몸으로 막아내는 형국에 가까워졌다. 진짜 세상은 저만치 달려가는데, 나는 사각형의 빛 안에 머문 채 타인의 궤적을 복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오후,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AI 시대를 대비한 생존 전략’ 어느 인플루언서의 라이브 방송 알림이었다. 미래를 선점하겠다며 알람까지 맞춰두었던 나를 떠올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노트북 앞에 앉는 대신 낡은 운동화에 발을 밀어 넣었다. 그놈의 '트렌드' 대신 젖은 흙냄새와 초록색 나무들을 보며 그냥 뛰고만 싶었다. 하지만 현관문을 나서 얼마 못 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가 우산을 가져올지 망설였지만, 현관문을 여는 순간 알고리즘이 설계한 안온한 골방으로 다시 끌려 들어갈 것임을 직감했다. 나는 돌아가는 대신 속도를 높였다.
빗줄기는 금세 굵어졌다. 사실 나는 기가 막히게 비를 잘 피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도 예보 없이 쏟아지던 비가 내가 퇴근할 때쯤이면 거짓말처럼 그치곤 했고,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는 그 찰나에 폭우가 멎는 작은 행운이 늘 있었다. 하지만 오늘 하늘은 그간 내게 베풀던 호의를 완전히 거두어간 모양이었다. 작정이라도 한 듯 쏟아지는 물줄기 앞에서, 그동안의 소소한 운은 힘을 쓰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젖기로 했다.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고 운동화 속 발가락이 질척거리기 시작하자, 기적처럼 머릿속이 비워졌다. 자기 계발이니 갓생이니 하는 데이터들은 빗물에 씻겨 길바닥으로 흘러갔다. 알고리즘의 주파수가 닿지 않는 이 고요한 사각지대에서 내게 중요한 건, 오직 눈을 찌르는 빗물을 훔쳐내는 일과 다음 발을 내딛는 감각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눈, 비를 이토록 흠뻑 맞아본 적이 없었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조차 풍경을 감상하러 나가면서 머리 위론 우산을 받쳐 들었다. 비 오는 날은 되도록 외출을 삼갔고, 해변을 거닐 때도 수영복을 입은 게 아니라면 발끝도 적시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무런 방어막 없이 비를 맞으며 뛰고 있다. 사유할 틈도 없이 온몸으로 빗줄기를 받아내는 내가, 그 무모하고도 오롯한 이 순간이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한참을 뛰다 보니 어떤 감각 하나가 기억의 심연을 건드렸다. 이렇게 흠뻑 젖었던 적이 처음이 아닌데... 초여름, 바로 이즈음이었는데.... 기억의 안개 너머로 비에 젖은 아홉 살의 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아이. 말 없던 내 짝꿍. 흰 얼굴에 쪼르르 앉은 주근깨가 귀여웠지. 이름이 뭐였더라...
“종현이.”
40년 동안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이름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내가 9살이던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오전에는 맑던 하늘이 점점 어두컴컴해지더니 하교시간 쯤에는 빗줄기가 거세어졌다. 우산이 없던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학교까지 오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교문 근처에서 짝 종현이를 만났다. 우리는 흠뻑 젖은 채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애와 그렇게 조금 더 걷고 싶어서, 우리 집과는 정반대 방향인 그 애의 집 쪽을 가리키며 “나도 이쪽으로 가야 해”라고 서툰 거짓말을 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빗줄기는 어느새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굵어져, 쏟아진다기보다 차라리 때려 붓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기세가 되었다. 그 기세에 밀려 하천에 아이 하나가 떠내려갔다는 소문이 마을을 휩쓸었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장대비 사이로 내 이름을 부르며 평소의 하굣길을 거슬러 올라갔지만, 나는 이미 종현이의 동네로 향하는 낯선 길로 발을 들인 뒤였다.
엄마가 빗속에서 절망적인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종현이와 나란히 걷는 생경한 시간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주친 엄마는 하천에 떠내려간 아이가 너인 줄 알았다며, 내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불붙은 듯 등은 따가웠지만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뺨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차가웠으나, 젖은 옷 안쪽에서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온도로 뜨거웠다.
"맞아, 그랬지."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잘가, 하며 종현이가 살짝 손을 흔들 때, 빗물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코 위로 점점이 박힌 주근깨, 그리고 토끼처럼 살짝 튀어나온 하얀 앞니까지. 종현이의 수줍은 미소와 쫄딱 젖고도 배시시 웃던 아홉 살의 내가 빗줄기 사이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아이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질려 빗속을 미친 듯이 헤맸을, 지금의 내 눈에는 한없이 어리고 가냘프게만 보이는 서른세 살의 엄마. 40년 전의 뿌옇던 화면이 비에 씻겨 새 영상처럼 눈앞에 복원되었다. 나는 마치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주인공처럼, 빗줄기를 가르며 그 어여쁜 기억 안으로 나아갔다.
비를 쫄딱 맞는 와중에도 내가 그 어느 때보다 즐겁다는 게 신기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동안 나는 더 이상 무엇이 부족해 조급해하던 쉰의 이주민이 아니었다. 누군가 정의한 '갓생'이 아니어도, 내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충분히 좋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나는 40년 전의 빗속에서 이미 배웠고 오늘의 빗속에서 다시금 확인했다. 오직 비를 맞는 행위만으로 충만해진 채 나는 쉰의 행성을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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