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두쫀쿠’라는 기묘한 이름의 간식으로 들썩이던 날들이 있었다. 두바이 쫀득 쿠키라는 그 직관적인 이름 앞에 줄을 서는 건 남편의 몫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40분을 기다려 사 온 쿠키는 보름 뒤 다시 남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번엔 5분도 안 기다렸단다. 뜨겁게 달궈졌던 냄비가 식는 속도처럼, 세상의 혀는 이미 ‘봄동 비빔밥’으로, 다시 ‘버터떡’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어제까진 정답이었던 것이 오늘 아침이면 구식이 되는 속도. 이미 익숙했던 것들마저 유행의 궤도로 강제 호출되었다가, 단 며칠 만에 낡은 것으로 폐기된다. 이 소란스러운 속도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자산'의 영역으로 옮겨 붙을 때, 사람들은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라고 불렀다. 대열에서 낙오되는 것에 대한 실존적인 공포. 그 공포는 이미 부동산과 주식, 심지어 아이들의 학원 선택에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고백하자면, 고작 적금밖에 모르던 나도 그 공포의 주파수를 수신한 적이 있다. 재작년,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전문가들의 진지한 충고를 믿고 미장에 올인했다. 숫자가 오르는 기쁨도 잠시, 세상은 “이제는 국장”이라며 불타올랐다. 저평가된 한국의 가치가 드디어 빛을 발할 것이며, 이 물결은 꽤 오래 이어질 거라 했다. 심사숙고 끝에 국내 증시를 난생 처음 시작했다. 그날이 2월 27일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매수 버튼을 누른 바로 다음 날인 28일, 미국-이란 전쟁이 터졌다. 나의 포모는 종종 한 박자 늦게, 가장 뜨거운 지점에서 나를 배신하곤 했다. 이 코미디 같은 상황에 허탈한 웃음이 났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이 행성의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이고, 내가 산 가치 또한 다시 제 궤도에 오를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태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유행의 파도에 올라타려다 휩쓸리고, 다투어 일어나는 거품 속에서 빠져나오려 허우적대는 과정은 생각보다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사람들은 이제 그 뜨거운 열기를 식힐 냉각기를 찾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 숨 가쁜 포모의 피로감을 ‘조모(JOMO:joy of missing out)’로 씻어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유행에서 소외되는 즐거움. 주말마다 템플스테이를 떠나거나 혼밥을 하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평일에는 포모에 쫓겨 빚투를 하고, 주말에는 조모로 마음을 세척하는 현대인의 분열된 리듬. 그 위태로운 줄타기가 쉰의 행성에 불시착한 내게는 낯설면서도 서늘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사실 지금 나의 생활은 순도 100%의 조모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템플스테이를 떠나지 않아도 나의 일상은 충분히 정적이며 아주 좁은 궤도에 머문다. 하지만 이건 트렌드를 앞서가는 힙한 선택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해 건강을 최우선 순위에 두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단절에 가깝다. 회복을 위해 강제로 정리된 이 적막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세상의 소음과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어쩌면 이 고요한 고립은 나라는 인간의 본질과 그리 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유행이라는 파도에 몸을 잘 싣는 성향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전 국민 귀가 시계라 불리던 드라마, ‘모래시계’ 본방 사수를 위해 거리가 텅 비던 90년대에도, 나는 일부러 TV를 끄던 쪽이었다. 나의 성향을 네 글자로 규정하는 일이 왠지 답답하게 느껴져 MBTI 검사조차 외면해 왔다. 다들 한 방향으로 몰려갈 때면 어딘가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주식 시장의 붉은 숫자 앞에서는 그 단단하던 방어막도 무용지물이었다.
스님과 다름없는 적막한 일상 속에서도 주식 창의 일렁임에 마음이 동하는데, 세상의 한복판에서 매일 ‘새로운 정답’을 강요받는 이들의 공포는 오죽할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쫀쿠가 지나가면 버터떡이 오고, 삼전이 휘청여도 이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반골 기질이 있는 나 역시 수많은 유행의 파도에 휩쓸리고 무수한 오답 앞에 좌절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극한으로 치달을 것 같던 위기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어찌저찌 흘러갔고,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내일의 태양을 띄워 올렸다. 수없이 휘둘려본 세월이 내게 준 선물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 즉 어떤 소란에도 나만의 궤도를 지켜내는 법이었다.
쉰의 행성에서 배운 값진 기술은 유행을 무작정 등지는 금욕이 아니다. 세상이 열광하는 맛이 궁금하다면 기꺼이 줄을 서보고, 붉은 함성에 슬쩍 발을 담가보는 호기심 또한 이 행성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다만 그 파도에 올라타되 잡아먹히지 않는 감각이 중요하다. 유행의 주파수는 맞춰두되, 소음이 심해지면 언제든 볼륨을 줄이고 나의 문장 속으로 망명하는 일. 포모와 조모 그 어느 쪽에도 갇히지 않은 채 나만의 공전을 이어가는 주도권만 있다면, 쉰의 행성은 언제든 안온할 수 있다.
*알립니다 _ 지난겨울, 몇 가지 일로 좀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지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결국 지난 주말 응급실행으로 이어졌네요. 상반기에 계획한 일들을 무사히 갈무리하기 위해, 그리고 너무 무리하지 않기 위해, 이 연재를 격주 발행으로 조정하려 합니다. 주1회 연재를 하지 못해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