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은 될 수 없다.

by 뮤뮤


“어떻게 우리가 쉰 일 수 있을까.”


친구들과의 대화는 늘 이 믿기지 않는 전제로 시작된다. 친구들은 “뭐 어쩌겠어”라며 담담히 그 숫자를 받아들이지만, 나는 유독 이 나이가 쉽지 않다. 종종 작은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떠올린다. 그날 작은 아버지는 착잡하면서도 묘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내가 칠순이 될 줄은 몰랐어….”


그때 마흔을 막 넘긴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도 제가 마흔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그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나는 쉰의 입구에 서 있다.


사실 내 시계는 암 선고를 받았던 마흔넷에 멈춰 있다. 그 뒤의 다섯 해는 오직 살아남는 데 집중해야 했던 유예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 덕에 삶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지만, 남들처럼 흘러가지 못한 계절에 대한 아쉬움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 있다. 그래서 더 독하게 쇳덩이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진부하지만 절실한 문장을 내 이두박근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혹시 오십견 오지 않았어요?”


스물일곱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단단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오르던 무렵, PT 트레이너의 무심한 질문 하나에 그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웬 오십견인가 싶어 힘껏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혀요.”


그 대화가 있고 석 달 뒤, 나는 동생과 함께 한의원을 찾았다. 나는 왼쪽 팔이, 동생은 오른쪽 팔이 계속 뻐근했기 때문이다. 병원 문을 열기 전까지도 나는 옆으로 자는 버릇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통증일 거라 확신했다. 반면 동생은 자신이 오십견일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진단은 반대로 내려졌다. 동생은 단순 근육통이었고, 나는 전형적인 오십견 증상이라고 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도 오십견이 오나요?” 내 볼멘소리에 의사는 간단하게 답했다.


“운동한다고 천하무적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운동하면 천하무적이 되는 거 아니었나.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의사는 오십견은 노화의 신호라고 덧붙였다. 치료라고 해봐야 통증의 정점과 기간을 줄이는 정도이며 최소 6개월은 걸릴 거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통증은 꽤 전부터 있었다. 트레이너가 오십견을 물었을 때도 팔 근육이 묵직하게 아팠지만, 나는 보란 듯이 더 세게 바벨을 밀어 올렸다. 자세가 어딘가 어긋난 것을 그가 알아차렸던 것 같지만, 나는 ‘혹시’라는 생각을 곧장 밀어냈다. 그럴 리 없다고, 그럴 수는 없다고.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데 오십견이라니, 했던 것이다.


“아니, 왜 벌써 오십견이 왔지?” 내 물음에 동생이 짧게 말했다.

“나이 들어서 그렇다잖아.” 그 당연한 말 앞에서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끝까지 오십견이라는 단어를 부정하려 했던 내 모습이 그제야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진료실을 나오는데 묘한 허탈함이 밀려왔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몸을 돌봤다. 오직 생존에만 몰두하느라 잃어버린 것만 같은 내 마흔의 5년. 그 공백을 운동으로라도 보상받고 싶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운동하면 덜 늙을 것이고, 그러면 세월을 비껴가 조금 더 젊게 유지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오십이라는 숫자는 기다렸다는 듯 정확히 그 나이에 맞춰 오십견을 데려왔다. 인생의 모퉁이를 돌자마자 행성 원주민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불쑥 내미는 초대장을, 얼떨결에 받은 기분이었다.


<입성 통지 : 환영합니다. 당신은 진짜 오십입니다.>


인생이란 참 너무한 데가 있다. 큰 고비 하나를 겨우 넘었다 싶으면 발밑 어딘가에 또 다른 균열이 생긴다. 그 균열 사이로 내가 애써 쌓아 올린 자신감이 속수무책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무력하다. 팔을 들 때마다 뻐근한 통증이 올라오고, 이제는 그 통증이 그냥 통증이 아닌 어떤 현실감을 가진 무엇으로 다가온다. '이런게 오십견이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뻐근한 통증조차 실은 사치스러운 고민일지도 모른다. 마흔넷의 병실에서는 쉰이 되는 날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때의 나는 다음 계절이 올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내가 쉰일 수 있을까.

여전히 이 질문은 낯설고, 거울 속의 나는 어색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시간을 거스르는 천하무적은 되지 못했을지언정,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기어이 쉰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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