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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Aug 29. 2018

혼란의 여름 : 성인방송 작가

내 인생에서 가장 헛웃음이 많이 나왔던 석 달을 기억한다.

성인채널에서 잠깐 작가 일을 했던 2016년의 여름은 내가 당연하게 여겨 온 거의 모든 윤리와 개념들이

끊임없이 부딪히거나 사라지는 나날들이었다.

모든 순간을 직업정신과 페미니즘사이에서 고민하고 싸워야했고 불쾌하자마자 납득해야했으며,

화가 나는 동시에 부끄러웠던 ‘존나’ 혼란한 여름이었다.    



친한 선배가 쉬는 동안 가볍게 하라며 성인방송 작가 일을 소개시켜줬다,

나는 쉬는 동안 돈도 필요했고,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성인방송 일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해서

아주 흔쾌히 OK를 했다.  


그때 나는 성인방송 일을 어려움없이 잘 할 수 있을거라고 자만하고 있었다.

외국여행을 하면서, 또 몇 년 동안 SNL 작가 일을 하면서 익히고 들어온 야한 얘기와 농담으로 잔뼈가 굵은 나인데! 이 정도 짬이라면 성인방송 작가일 쯤은 머리나 식힐 겸 가볍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근 첫 날, 내가 새롭게 일 할 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제일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아..? 쫌 좆 된 것 같은데?’였다.



그러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가 제일 처음 본 건 다름 아닌 '야동' 이었다.



방송국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방송국 사무실에는 TV가 정말 많다.

그 많은 TV들에서 해당 채널의 프로그램들이 끊임없이 플레이된다.

내가 일하게 된 성인 방송국도 어쨌든 방송국이고,

그 곳에서 다루는 컨텐츠는 야동과 야한 영화였으니 너무 당연하게 수십 대의 TV에서 온갖 종류의 섹스장면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 무수한 묵음의 야동들에 둘러싸여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있는 정장차림의 직원들이 보였다.

어린 사원과 과장급 어른이 야동 스크린 앞에서 인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곳에서의 예의란 온갖 체위가 난무하는 스크린을 지나치다 우연히 마주친 상사와 태연하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맞은편 사무실은 힐링채널이었는데, 그 쪽 TV에서 단양 여행을 간 리포터가 평화롭게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처음으로 교양 방송작가이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 때 만난 피디님은 성인프로를 7년인가 8년째 하고 계셨는데, 그의 말버릇은 ‘아, 교양하고 싶다.’랑,

‘내가 진짜 곧 이 바닥 뜬다’였다. 언젠가 왜 다른 프로로 옮기지 않고 거의 10년 째 ‘이 바닥’에서 일을 하고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피디님은 “빌어먹을, 시청률이 잘 나오잖아, 팀장이 안 옮겨줘”라고 말했다.     

아.. 저주받은 재능이란 이런 것일까?     


피디님은 성인방송을 하도 오래한 탓에 이제는 성욕도 없고, 연애도 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 출장을 갈 때면 자위기구를 한 박스씩 사와서 후배PD에게 나눠주며 “나는 더 이상 못하겠으니 써보고 리뷰 해”라고 말했다. 그에겐 자위도 안하면 밀리고 쌓이는 일이었다. 피디님이 안타까웠다.

참 색다른 차원에서 느껴보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었다.    


‘좋은 체위’를 주제로 회의를 하던 날이었다. ‘좋은’이란 상대적이고 개인적인 개념이어서 회의방향이 자연스럽게 본인의 경험 쪽으로 흘러갔다. 키가 190에 가까운 까맣고 우락부락한 40대의 피디님이 본인이 좋아하는 체위에 대해 설명하는 걸 듣고 있자니 당연히 불쾌하고 또 민망했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회식자리에서 개저씨 부장이 하는 성희롱이 아니라 돈 받고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피디님은 69자세를 제일 좋아한다며 69자세가 왜 좋은지, 침대에서 할 때와 방바닥에서 할 때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늘어놓았다. 나는 그걸 진지하게 회의록에 받아 적었다.     


‘메인PD : 69자세 선호, 침대 위가 더 좋음’     


한참을 회의해도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았고 곧이어 너무너무 피하고 싶었던 순간이 왔다. 피디님은 “막내 너는 어떤 체위가 좋은데?” 하고 물었다. 나는 나이가 가장 어린 막내였고, 이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체위에 대해 말할 차례였다. 나는 최대한으로 쿨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하는 척을 했다 “음................”     


오 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내가 그나마 프로페셔널해 보이면서도 스스로 현타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같이 일하는 언니가 네 맘 다 안다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한 쪽 미간을 약간 찡그리며 웃었다. 1초가 1억년 같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빨리 뭐라도 말해야 했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피디님이 친절하게도 선택지를 불러주었다.

“여성상위, 뒤치기, 가위치기 뭐 많잖아? 그냥 편하게 얘기해”


나는 “뒤치기요..”하고 대답했다. 피디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방바닥과 침대에서의 차이를 덧붙여야 하나

고민하다가 관두었다. 싱겁기 짝이 없는 내 얘기를 듣고 피디님은

“기 뭐라고 오래 걸리노, 그냥 편하게 빨리 빨리 얘기해 회의 길어지잖아” 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자세의 섹스 이야기를 상사와 동료들 앞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피해를 주는 일을 하고 있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현타가 몰려왔다. 나는 현타 온 표정을 숨기려 고개를 처박고 회의록을 적었다.     


‘막내작가 : 뒤치기 선호’    


2주 간의 회의를 통해 만들어진 내용으로 녹화를 하는 날이었다.

리딩을 위해 모인 배우들에게 ‘좋은 체위’ 녹화 때 어떤 게임을 할 것이며, 어떤 토크들을 할 것인지 등을 간략히 일러주고는 ‘10분 뒤 모이겠습니다’ 하고 공지했다.

막 뒤돌아 나가려는데 피디님이 공지 하나를 더 덧붙였다. “여배우들 속바지 입지 마라, 니네 빤쮸 하나도 안 보인다.” 나는 ‘이거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여성 출연자들이 상처받았을까 걱정이 돼 급히 그녀들을 살폈다. 여성 출연자 중 한 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짧은 치마를 들어 보이더니 “속바지 안 입었어요” 하며 자기 빤쮸를 보여주었다.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입고 있던 속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피디님은 엄지를 들어 보이더니 “프로페셔널 해” 하고는 담배를 피러 나갔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나만 발이 땅에 박혀 멈춰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여기에서는 나만 아마추어였다. 받는 돈 값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프로들 사이에서 나만! 내가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은 아주 더러웠다.


나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무지 뭘 열심히 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날 녹화의 게스트는 무명 트로트가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는 소속사의 강제에 하는 수 없이 성인방송에 출연하게 됐는데, 녹화 내내 ‘나 이런 일 하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하는 티를 팍팍 냈다. 이를테면 여성 MC들이 야하게 춤을 추면 인상을 쓰고 바라보거나, 좋아하는 체위에 대해 물으면 불쾌한 티를 감추지 않고 “꼭 대답해야해요?”하는 식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이거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    

우리입장에서 그녀는 불성실한 아마추어였다.

모니터룸에서 보다 못 한 피디님이 아래로 내려와서 게스트에게 똑바로 하라고 다그쳤다.

게스트가 열 내는 피디님을 지나치며 “뭘 똑바로 하라는 거야?”하고 작게 혼잣말을 했다.

나는 ‘참나, 돈 받았으면 똑바로 해야지’하고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사실 뭘 똑바로 해야 하는 지는 나도 잘 모르는 일이었다.    

 

그 날 녹화가 끝난 뒤 우리는 회식장소에서 술 한 잔 씩을 기울이며 자연스럽게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놀라울 만큼 정상적이고 근본적인 고민들이 오갔다.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지만, 유난히 인상 깊었던 고충은 남성 출연자 A가 느끼는 딜레마였다.     

A는 언제나 대한민국의 쉬쉬하는 성문화에 대해 불만을 느껴왔다고 했다. 섹스는 나쁜 것도, 아름다운 것도, 불결한 것도 아닌 그냥 섹스일 뿐인데 왜 음지에 가려져있나, 왜 대한민국 방송에서는 소리 높여 ‘섹스’라고 당당히 말 할 수 없나, 이렇게 쉬쉬하니까 자라나는 대한민국의 새싹들이 섹스에 대해 올바르게 배울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A는 성인방송 섭외가 들어왔을 때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출연에 응한 거라고 덧붙였다.

성은! 섹스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식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어쩌다 여자 출연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여성상위자세를 흉내 내게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가만히 듣던 피디님은 ‘광고 붙으려면 어쩔 수 없어. 이렇게 입소문 타다보면 언젠가는 바뀌겠지’하고 말했다. 여기저기에서 쓴 한숨들이 오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송을 하려면 광고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프로그램은 더 많은 광고를 받기 위해 앞다투어 더욱 자극적인 아이템을 찾는다.

출연자와 제작진의 사명감만으로는 바꿀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그러나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런 방송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피드백이 활성화 되면서 시나브로 대한민국의 오픈된 섹스문화를 선도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출연자 A의 결단이 영판 의미 없는 객기일리만은 없지 않을까.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굉장히 많은 딜레마들의 유기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 더 쓰레기 같은 프로도 없었다.

여성의 신체를 상업적으로 소비하고 여성을 하대해서 돈을 버는 저질프로니까.

나는 여권을 낮추는 일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후회스럽고 부끄럽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제작 과정들 전체가 저질스러웠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극과 극은 정말 통하는 것일까.

나는 성인방송 작가 일을 하면서 평등의 끝을 보았다.

일단 나는 이 성인프로의 회의실에서는 순수, 순결의 판타지를 뒤집어 쓴 20대 여자가 아닌 그냥 인간이었다. 40대의 남자 피디님처럼 나도 당연히 섹스 하는 인간이었다.

내가 뒤치기에 대해 얘기했을 때 아무도 나를 문란하다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리거나 혀를 차지 않았다.

단지 ‘빨리 말 해’라고 했을 뿐이다. 회의시간 길어지지 않도록!

만약 그 때 ‘여자니까 너는 얘기 안 해도 돼’ 라고 했으면 정말 많이 화가 났을 것 같다.

‘뭐야 씨 나도 직원인데? 나도 섹스 하거든?’ 하고 속으로 100번 넘게 외쳤겠지.    


출연자 대기실에선 여자와 남자가 모두 옷을 벗는다. 이 곳의 남자 출연자들은 여성의 벗은 몸을 보고서 대놓고 훑거나 면박주지 않는다. 그냥 스쳐지나간다. 그들은 서로에게 그저 인간일 뿐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 척이라도 한다.     

어찌 보면 짧은 치마를 갈아입으라고 조언이랍시고 월권하는 회사 상사보다는 훨씬 깨어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장소가 성인방송 대기실인 것 빼고는 굉장히 이상적인 그림이 아닌가?     


직업의식에 관해서도 몹시 혼란하다. 섹스에 대해 문란하게 떠들고 야한 몸짓을 하는 배우들은, 그리고 이걸 기획하는 제작진들은 100프로 천박한가?

비록 자본주의에 짤 없이 지고 말았지만 그 시작이 ‘대한민국 성문화! 음지에서 양지로!’라는 건강한 포부였어도?


그리고 하나 더, 프로그램을 위해 기꺼이 팬티를 보여주는 여성 MC와, 2시간 촬영에 100만원이 넘는 돈을 받고서 성인방송에 출연했음에도 약속한 야한 댄스 한 번 추지 않는 여성 출연자 중 프로페셔널한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아직도 위의 질문들에 대한 정답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 때의 여름은 아직도 나를 자주 혼란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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