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사히 두근거리는 방법을 익히면서 어른이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금 능숙하게 할 줄 아는 모든 행위에는 나도 모르게 지불해야 했던 분명한 대가들이 있었다.
해서 나는, 두근거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치를 쌓아야지만 비로소 무탈하고 능숙하게 두근거릴 자격을 얻는다.
우리는 무사히 두근거리는 방법을 익히면서 어른이 된다.
내 기억 속 최초의 두근거림은 다섯 살의 가을. 난생 처음으로 가는 소풍 전 날이었다.
평소 잠들던 시간, 늘 베던 베개에 누워 똑같은 이불을 덮고 엄마의 살 냄새를 맡으며 잠을 청하는데
돌연 가슴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아, 내 몸속에 심장이라는 게 정말 있긴 하구나,
묵직한 심장의 존재감을 새삼 실감하며 엄마 손을 내 가슴에 가져다 댔다.
엄마는 ‘내일 소풍 때문에 이슬이 심장이 이렇게 뛰나보다, 두근거리는 거야’ 하고 말했다.
나는 이 생경한 느낌이 기분 좋으면서도 낯설고 불편했다.
두근거림을 의식할수록 심장이 더 세게 뛰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두근대고 싶었지만 심장이란 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빨리 내일이 와서 어서 소풍을 가고 싶었다.
그래야지만 약간은 불쾌하기까지 한 이 두근거림이 멎을 것이므로.
한시라도 빨리 소풍에 가려면 일단 잠에 들어 이 긴 밤을 없애야 했다.
나는 편한 자세로 고쳐 누운 뒤, 눈을 감고 빠르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 땐 숨을 빠르게 쉬면 이 밤이 숨처럼 가쁘게 지나가 금세 아침이 올 거라고 믿었다.
눈을 감고 밭은 숨을 내 쉬는 동안 몇 번이나 창밖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확실히 아침이 되었을 때 눈을 뜨고 싶었으므로 다섯 살의 참을성을 최대로 발휘해 눈을 꼭 감고 버텼다.
이렇게나 많은 숨을 이렇게나 빨리 쉬었는데, 이제는 아침이 되고도 남았겠다 싶었을 때 살짝 눈을 떴다.
실눈으로 확인한 창밖은 여전히 캄캄했다. 나는 그게 너무 속상하고 실망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을 참으면서 잠든 엄마 등에 뺨을 부볐다.
그래도 뱃속의 장기가 흐늘흐늘해지는 기분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나는 부지런히 자라 소풍 전 날의 설렘 쯤은 가볍게 즐길 줄 아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멜랑콜리 했던 첫 두근거림의 기억을 거의 잊을 때 쯤 같은 반 남자애를 좋아하게 되었다.
한 쪽 앞머리를 길러 노란 브릿지를 넣은 그 애가 어찌나 멋져보이던지..
나는 그 애 앞에선 항상 ‘들숨, 그리고 정지’ 상태였다.
그 애가 시야에서 사라져야지만 비로소 나도 모르게 참았던 날숨을 길게 내뱉을 수 있었다.
남 몰래 그 애를 좋아하던 수많은 날 들 중 하루, 그 애가 교실 중앙에서 어떤 여자애에게 고백을 했다.
그 상황이 가히 충격적이어서 순간적으로 눈물이 터졌다.
남자애의 용감한 고백을 향한 박수와 환호 사이에서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당황스럽고 창피했지만 눈물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몇 명이 우는 나를 발견하고는 왜 우는지를 물었다.
여러 개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나를 향했다.
나는 배가 아파서 그런다고 거짓말했다. 짝꿍이 교무실에 계시는 선생님께 알리겠다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자포자기의 심경으로 선생님이 오실 때 까지 엎드려 울었다.
그 후로 몇 십번의 부끄러운 상황들을 겪으며 나는 안전하게 두근거리는 방법들을 터득했다.
이제는 좋아하는 사람과 아무렇지 않은 척 술을 마실 수 있으며
긴 여행이나 중요한 발표 전 날에도 큰 노력 없이 숙면 할 수 있는 내공을 갖게 되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의 두근거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정도로 드물고,
혹여 감당하기 힘든 긴장을 느낀다 하더라도 눈물을 흘리는 대신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거나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하며 스스로를 달랠 수 있게 되었다.
긴장된 마음을 숙련된 솜씨로 차근차근 정리할 때면 불현듯 서툴었던 어린 날의 두근거림이 떠오른다.
그럴 때면 앞으론 두근거림에 눈물이 날 정도로 압도당하는 날은 영영 없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 쓸쓸해진다.
허나 나는 그런 종류의 헛헛한 마음들을 달래는 법은 아직 알지 못한다.